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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ㅣ 문학동네 동시집 7
김륭 지음, 홍성지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낯선 시집 읽기가 당황스럽고 내 속을 들킨 것 마냥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시치미 뚝 떼고 읽어야지. 이건 시집이거든. 이미 세상에 찌든 아줌마의 딱딱한 머리를 들켜서는 안 돼. 이번 기회에, 초등학생 아이와 통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자, 마음을 비워보리라.
시집 제일 첫 머리에 시인은 어려운 시라고 했다. 여러 싯구에서 힘이 빠지기도 또 긴장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없는 딸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다 되어 주었다는 시인 김륭 선생님의 설명 탓인지, 아니면 팥쥐 어멈 저리가라고 고약을 떠는 (특히 방학 때면 그 정도가 울트라 캡숑 특급이다) 내 양심이 찔리는 건지, 이번 시집에선 유독 생활에 또 삶에 쩔어 있는 엄마, 어머니들의 얼굴이 많이 보인다. 본디 동화나 동시에서는 자상하고 너그러운 엄마나 어머니만 있는 법 아니었나? 하지만 김륭 시인의 세상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곳이다. 나무도 풀도 과일이랑 개구리, 고양이, 개 ...모두 있지만, 다들 우리 식구가 사는 작은 집을 둘러싸고 있다. 자연도 인간이 사는 곳의 연장이고,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말로 장난질을 친다. 억지로 예쁜 척을 안하는데도, 예쁘다. 시를 쓰는 눈과 입도, 아이의 눈일까, 아니면 아이와 함께 읽는 부모의 눈일까, 삶과 생활을 함께 담고 있다. 정겹고 친근하다. 완벽한 추억과 깨끗한 자연이 아니라서 좋다.
시집 속의 엄마들은 잔소리가 많다. 그래서 ‘잎이 많은 풀’이 된다. (밥풀의 상상력) 엄마는 집안일로 종종거리다 강아지가 마당에 똥을 싸는 꼴을 보자면 ‘누렇게 신문지처럼’ 얼굴을 구기고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맛있는 동화) 나른한 오후, 엄마는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사내라고 졸라도 대꾸도 없이 누워있다. 엄마 뱃속에서 나는 꾸루룩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그 ‘산 만한 배를’ 베고 논다. 엄마는 아침부터 돼지고기, 점심에는 고등어를 챙겨 먹고, (아니, 아이들에게 챙겨 먹이고) 잠시 누웠겠지. 그덕에 아이들은 원기충천해서 엄마 배를 타넘고 장난도 친다. (게임기) 엄마가 벌떡 일어나 혼이나 내지 않을까 웃음이 났다. 사이좋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외출한 날,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자면 무당벌레 푸르르 거리듯 발랑 뒤집어 지면서 떼를 쓰는 아이들이다. (무당벌레)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손잡고 다니면서 매일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둘은 ‘따로국밥’ 이고 ‘심심하면 티격태격’ 싸운다. (부부 안경점) 아빠의 퇴근이 늦는 날이면 엄마는 ‘엄청 열 받’아서 칼등으로 동생 머리통을 쥐어박을 지도 모른다. (수박이 앉았다 가는 자리) 늘 방 한 가운데 앉는 아빠 앞에서 엄마는 부엌칼을 들고 과일 앞에 선다. (수박 대통령) 왜, 엄마는 ‘아빠가 지겹다’고 할까. (3학년 8반) ‘하루빨리 전셋집 벗어나고 싶은 엄마 가난한 마음’ 탓인가 보다. 아빠가 술에 취해 늦은 밤, 아빠의 신발은 뒤집어져 있는데 엄마는 그냥 놔 둔다. 그리고 양말도 못 신고 나서는 아빠의 발가락은 애벌레 마냥 처량하다. 힘은 세겠지만 말이다.(애벌레 열 마리) 얼핏,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런데, 그 노래를 아이들 옆에서 같이 부르는 엄마의 눈초리가 매섭다. 아빠가 외박이라도 하면 엄마는 밤새 눈에 불을 켠다. (낮달)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날이면 아이는 ‘엄마 아빠 눈빛 마주칠 때마다 털이 빠지는 미운 오리 새끼’ 가 되 버리고 만다. (미운 오리 새끼). 이 오리가 백조가 되어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미운 오리 새끼는 아직 어린 아이일 뿐이고, ‘꽁지 빠지도록 새끼들 찾아’ 가는 어미새를 기다려야 한다. 자식들 먹이려 벌레 잡는 어미새는 훌쩍 떠나버린 엄마 대신 그려보고 싶은 모습이었을까. (달려라! 공중전화) 601호 코흘리개 새봄이는 6층에서 1층으로, 또 6층으로 엄마만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린다. 코도 닦지 않고 엄마만 기다리는 꼬마는 잔소리 하는 엄마라도 그립겠지. (코끼리가 사는 아파트) 월말이면 이런 저런 세금 고지서를 안고 은행으로 향하는 엄마, ‘노란 잎사귀 무성할수록 걱정도 많겠지만 몸은 무겁고 머리 복잡하겠지만 씩씩한 우리 엄마’ , 두 아이를 은행알 처럼 품고 찬바람에 맞서는 엄마의 든든한 품 속을 그리고 있겠지.(은행나무) 그래서, 툭하면 잔소리에 무서운 눈을 뜬 엄마지만 ‘수진아’ 하고 부르면 발이 보이지 않게 데굴데굴 구르며 뛰며 달려온다. (소리로 만든 운동화)
재미있는 시,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시, 아름다운 시, 귀여운 시, 중에서 요즈음 내 생활을 가장 잘 그려내 주는 시는 단연 <여름방학>이다. 시인의 모기와 매미에 해당하는 꿀벌 두 마리가 우리 집에서 붕붕 날아다닌다. ... 오늘 하루만이라도 소리지르지 말아야지, 저 어린 꿀벌들에게 못된 대마녀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 그리고 커다란 부엌칼을 집어 든다. 냉장고에 든 수박을 쩍 갈라서 두 아이들에게 먹여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