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의 그녀
가쿠타 미츠요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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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 이게 뭔가. 왜 이리 콕 집어서 내 속을 까발리는 거지? 나는 그리 나긋한 사람도 아닌데, 여고 시절 정신없는 입시지옥을 살아냈고, 친한 친구도 있었고, 아직 우리 시절엔 따돌림이 심한 문제도 아니었는데, 아오이나 사요코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다니. 이 왠지 부끄럽고 안타까운 공감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또 사요코 처럼 남편이 답답하지도 않고 내 인생을 탓하기엔 하루하루가 너무 바쁜데, 이 어쩔 수 없는 '여자의 인생' 일본판에 이렇게 공감을 하다니, 어쩌지? 나도 그냥 한낱, 여자인건가?

이 책의 두 주인공 사요코와 아오이는 각각 십대와 삼십대를 살아 내면서 심한 성장통을 겪는다. 그리고 사요코는 깨닫는다; 나이드는 것은 만남을 향하는 거라고. 제목의 "대안"은 아오이가 친구 나나코와 거닐던 강둑의 저편을 가리킨다. 사요코는 그 강 저편의 싱그러운 사춘기 소녀 아오이와 나나코를 만난다. 그리고 지금, 여기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기로 한다. 한 발자국 씩 앞으로 나가겠지. 아오이나 사요코나.  

과거의 소녀시대와 지금의 아줌마 시대를 엇갈려 배치하면서 속도를 조절하는 작가의 섬세한 배려가 아름답다. 소설 속에서 숱하게 아슬아슬한 순간이 있었지만 처절한 비극으로 치닫지 않아 주어서 더 고맙다. (나름 대로) 폭풍우 치는 밤 같던 나 자신의 여고 시절을 떠올리게 한 이 책을 선물해준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책을 덮고도 시원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 대신 가습이 답답하다. 이렇게 강한 공감을 하는 게, 정말 괜찮은 건지, 내가 나약한 여자란 걸 들켜버려서 당황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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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의 그녀
가쿠타 미츠요 지음, 최선임 옮김 / 지식여행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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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를 스펀지에 흡수시켜서 바닥의 일부에 대고 동글동글 원을 계속해서 그려댄다. 눌러 붙어 있던 기름 층이 얇아지는 것과 비례해서 머릿속은 점점 더 새하얘진다. 지겹게 계속되던 시어머니의 싫은 소리가 사라지고 유아원 대기 리스트가 사라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해답이었나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사라져 그냥 뻥 뚫린 공백이 넓어진다. 그 공백은 언제까지고 거기에 있고 싶은, 기분 좋은 것으로 느껴졌다.-62쪽

"난 무서워. 무섭다는 건 대단한 거야. 난, 어른이 되어서 제대로 혼자서 돈도 벌고 있고 영업에도 뛰어들고 훨씬 나이 많은 남자와 싸워서 이길 자신도 있어. 그런데 아이를 낳는 것이 무섭다니, 뭐라고 할까. 좀 한심해. 하지만 자기가 낳은 아이가 성장해서 내가 모르는 일로 절망하거나 상처받을 걸 생각하면 상상만 해도 무서워. 내가 부모님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그런 아이였거든. 나 같은 아이가 나오면 난 정말 싫을 것 같아." -123-124쪽

갑자기 시작된 일하는 엄마들에 대한 비난에도 사요코는 애매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기시감을 느꼈다. 기시감이라기보다 그것은 기억의 재생이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몇 살이나 나이를 더 먹었는데도 책상을 붙이고 도시락을 함께 먹던 고등학생 때와 전화 달라진 것이 없다. 가공의 적을 만들어서 한순간 강하게 단결한다. 하지만 그 단결이 놀라울 정도로 무르다는 사실 또한 사요코는 알고 있었다. [...] 무엇을 위해 우리는 나이를 먹는 것일까. 큰 창 밖, 잎을 떨군 은행나무 가로수를 바라보며 사요코는 멍하니 생각했다. -356쪽

그 생각으로 얼굴을 빛내면서 벌써 메뉴를 생각하고 있는 그 부인을 보면서 사요코는 드디어 깨닫게 된 것 같았다. 왜 우리가 나이를 먹는지. 생활 속으로 도망가서 문을 닫아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만남을 선택하기 위해서다. 선택한 장소를 향해서 자신의 발을 내딛기 위해서다. -3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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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알라딘 신간 평가단이 되었다고 동네 방네 친구 세 명한테 자랑했더니만, 어쩜 좋으냐고, 그거 신간으로 사람 달달 볶는 거라며 겁을 주는 친구 하나, 좋겠다, 좋겠다, 그거 뽑히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좋겠다면서 부러워하는 친구 하나, 좋은 책 줘요? 괜찮아요? 책 밀리겠다 싶으면 리뷰 하청 주지 그래요? 하면서 농담하는 친구 하나. 

 아직 받지 못해서 궁금증이 매일 매일 커져만 가는 책은, 

 

책 제목을 친구에게 얘기하니까, 만화책이냐고 묻는다. ㅋㅋ 얘야, 독고탁을 떠올린거니?? 응??  

신간 광고를 신문에서 보고나서 찜 해뒀더랬는데, 어쩜 이렇게 맞춤형으로 내 몫이 되다니! 표지도 마음에 들고 믿을만한 지은이에 - 헉, 하지만 고종석의 글은 번역만 읽어봤는데... - 최인훈의 '광장'을 이은 삼부작이 된다고 해서 - 헉, 하지만 광장은 못 읽었는데 ... - 슬슬 부담도 된다.  

그래서 늦게 오나봐. 최인훈의 '광장' 이나 작가 고종석에 대해서 공부 좀 하라고..... 그러기엔 내가 너무 게으른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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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코브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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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제목에 Lust Lizard 가 들어있고, 현란한 표지 그림에 물고기와 금붕어 같은 꽃 항아리를 머리로 얹고 있는 사람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푸른숲에서 내 놓은 <디 아더스> 시리즈가 말하는 "다른 이들"이 정말 다르다는 걸.  

초반 부, 관광객들이 떠나고 조용하게 9월을 맞은 캘리포니아 코브 마을에 주민 대부분이 프로작 같은 항우울증 알약을 먹는다고 했을 때도, 뭔가 이상하다 했는데. 바로 이 만성 우울증, 아니면 만성 나른함에 젖어있던 마을을 뒤흔드는 그 분이 오신다. 바다괴물. 

파충류라고, 괴물이라고, 공룡이라고, 아니면 정말 "신"이라고도 불리는 멋진 숫컷, 하지만 오래전엔 암컷이었으며 수천년간 저 뜨끈한 바다 화산 옆에서 자다 깨다 했던 생명체. 그 생생한 생명 덩어리가 육지로 올라와서 여러 일들이 벌어진다. 나른한 코브 마을의 대마초 피는 보안관과, 나쁜 놈들과, 예술가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 생명체에게서 각자 다른 것들을 보고, 느끼고, 기대하는데, 재미있게도 "나쁜 마쵸"들만 희생당하는 설정도 이게, 무슨 .... 상징이나 아님 무슨 비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뭐, 어쩌랴. 공룡 옆엔 공주님이, 우리의 괴물 옆엔 몰리가 있을 뿐. (몰리의 화려한 과거 장면에서 난 나름대로 "킬빌" 을 떠올렸다)

사전 정보가 하나도 없이 읽었으니 이야기가 전개되는 내내 황당하기만 했는데, 책 속의 거짓뿌렁이에 적당히 물들 즈음, 이야기는 뒷정리에 들어가더니 아주 착하게 끝난다. 사실 좀 더 화끈하게 괴물의 눈과 입과 두 손으로 마을의 가식을 파헤쳐 주었으면 하고 바랬는데 말이다. 이야기가 쫀쫀하기 보다는 성기게 대충 대충 뛰어넘지만 사건들이 하나 같이 즐거움과 괴기스러움 사이를 오가는지라 꼼꼼히 따질 필요는 못 느꼈다. "색다른" 이야기가 궁금할 때, 늦 여름 오늘 같이 비가 계속오고 축축 처지는 날, 읽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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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코브 마을의 모두 괜찮은 결말 디 아더스 The Others 1
크리스토퍼 무어 지음, 공보경 옮김 / 푸른숲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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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세상을 부정하거나 약에 취해야 살 수 있어요." -30쪽

파인 코브 철물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주로 은퇴한 남자들로 거만하고 자기밖에 모르며 잘난 척이 심한, 자칭 알파 남성들이었다. 상대해주는 여자가 없다보니 그들은 자신이 똥 덩어리 그 자체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고들 있었다.
파인 코브 철물점의 문턱에서 초인종 소리가 울리면 테스토스테론 경보기가 곧바로 작동하면서 상점 분위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초인종 소리에 맞춰 점포 구석구석에 수컷의 영역 표시용 소변 분무기라도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184 쪽

"너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어, 시오?"
"특별한 사람?"
"단순히 남들보다 잘났다는 게 아니라 긍정적인 방식으로 남들과 차별화된다는 생각, 그래서 이 행성에서 넌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 말이야. 그런 느낌 가져본 적 있어?" -2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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