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걸작에 대한 오마주 단편집 <책에 갇히다>에 수록된 전혜진 작가의 <푸르고 창백한 프로메테우스>를 읽었다. 구픽 출판사의 <책에 갇히다>의 후속으로 <책에서 나오다>라니 의미심장하다.  



전혜진 작가는 이전 단편집의 <모든 무지개를 넘어>에서 암울한 미래 세계에서도 책을 찾아 읽는 어린 아이를 보여주면서 (지루했지만), 책에서 어떤 해결을 바라지만 결국 책에 갇히고 마는 사람들 (어쩌면 나도 그렇고) 이야기를 했다. 여러분, 책에선 밥도 돈도 안 나온다. 그리고 단행본 <여성, 귀신이 되다>는 옛 설화와 문헌에 남은 한 많은, 하지만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에 전혜진 작가의 오마주 대상은 메리 셸리와 <프랑켄슈타인>이다. 그녀의 이름에 '셸리'가 붙게되는 바로 그 결혼식 전날 밤에 메리는 악몽에 소스라친다. 퍼시 셸리의 전부인의 유령을 보고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결과를 고민한다. 자유연애의 시기, 낭만파 시인 퍼시의 주변에 수많은 여인들. 그녀들은 퍼시의 발목을 잡고 사회 규약과 함께 그의 자유를 막는 '괴물'이 된다. 하지만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다루는 괴물의 의미와 차이가 있다. 이 단편에서는 <프랑켄슈타인> 집필 직전의 상황, 특히 퍼시 셸리와 바이런경이 얼마나 많은 여인들의 삶을 흔들고 그녀들의 목소리는 무시했는지 '다소 한국 드라마 같은 분위기로' 상상해본다. 이 소설의 메리는 (그리고 저자도) 사회의 인정에 끝까지 매달린다. 소설에는 낭만 시인들의 여성 편력이란 너무 익숙하고 지저분한 이야기, 여성들에겐 덫과 같은 공식들을 펼쳐져 있다. 좀 지겨워 지려할 때, 전혜진 작가는 푸른 수염 같은 셸리, 성적 사회적으로 유린당하고 괴물의 모습으로 죽고 그 후에도 박제되는 메두사 같은 자신(더해서 셸리의 전부인 해리엇)을 내세운다. 바이런의 전처와 딸, 앤 이사벨라 밀뱅크와 아다 러브레이스의 빛나는 업적은 <진리의 발견>에서 읽은 바 있어서 찌질한 바이런의 푸념 부분을 읽을 땐 풋, 하고 웃어주었다. 사생활 속의 딜레마에 빠진 (자유사상가이지만 남자에게 매인) 메리 셸리를 아주 가깝게 만난 느낌이 들지만 그녀를 그저 만 16세 '소녀'로 칭하는 것과 제목에 '남편'을 올려 놓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 오마주는 시작하려다 만 느낌. 궁금하면 읽을 수도 있겠지만 뭐 굳이 .... 란 감상. 



남자의 오명이 뒤집어쓴 오물 같은 것이라면, 여자의 오명은 낙인찍히는 것이었다. - P207

퍼시가 무어라 말하든, 해리엇은 합법적인 아내이자 피해자였고, 그에게서 남편을 빼앗은 괴물은 메리와 그 자매들일 터였다. 한 집안의 세 자매가 번갈아 한 남자에게 유혹당하다니. ‘셸리부인‘의 눈에는 메리와 그 자매들이 마치 신화 속의 괴물 자매, 고르곤 세 자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처음부터 괴물이었을까.
우리는, 그리고 당신은, 어쩌다가 괴물이 되어 버린 걸까.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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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들마치>의 도러시아가 겪는 속박과 탈출의 딜레마를 설명하며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거의 평생 갇혀 살았던 앨리스 제임스를 소환한다.




도러시아의 딜레마는 한 미국 여자가 겪은 곤경을 기이하게 반향한다. 그녀의 가족은 19세기 후반 미국 인문학을 대표했다. 앨리스 제임스는 자신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의 감정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나 자신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리거나, 은백색 머리카락의 자비로운 아버지가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을 때 그의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은 격렬한 충동이 갑자기 온갖 형태로 나의 근육을 덮치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 모든 공포와 고통을 느꼈지만, 다만 광인과 다른 점이라면 내몫의 의사나 간호사의 의무와 구속복이 있다는 것이었다." (877)


결국 엘리엇은 여성의 포기를 지지하고 있다. 그것이 적절하게 여성적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적 분노의 파괴적인 잠재력을 강렬하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엘리엇은 분노를 부정해야 할 필요성과 실제로 그럴 수 없다는 절대적 불가능성을 동시에 예증한다. (878)



앨리스 제임스와 조지 엘리엇의 관계는 주석에서


앨리스 제임스는 엘리엇을 싫어한다고 고백하지만, 자신이 마비되어 있으며 표출되지 못하는 분노를 가지고 있다는 인식은 기이하게도 엘리엇의 여주인공들의 투쟁을 떠오르게 한다. 유명한 윌리엄과 헨리 제임스의 여동생인 앨리스가 갇혀 지내는 환자의 생활을 마감했을 때, 그녀는 그녀의 가족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활기와 해학적인 음조를 버리고 그녀의 간호사이자 동료인 캐서린 로링에게 자신의 일기 마지막 부분을 받아 적게 했다.


 "5일 토요일 내내, 밤까지, 앨리스는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가 나에게 한 마지막 말은 3월 4일의 문장, ‘도덕적인 불화와 신경과민적 공포‘를 수정하라는 것이다. 3월 4일의 이 지시가 종일 머릿속에서 들끓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매우 약해지고, 구술이 그녀를 지치게 하였지만, 그것을 다 쓸 때까지 머리를 쉬게 할 수 없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해방되었다."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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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8 13: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잔 손택이 앨리스이야기를 쓴 이유를 잘 모르겠던데 다락방 읽으면 좀 알게될까요?

유부만두 2022-09-28 14:17   좋아요 1 | URL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는 여성의 ‘자발적‘ 감금+불능과 연결해서 조지 엘리엇 소설, 그것을 매우 싫어했던 앨리스 제임스 이야기를 해요. 매우 적절한 인용 같아요. 하지만 시대상 손택은 이 책에 등장하지 않고요. 후속작인 Still Mad에서 손택을 다루지만 검색해 보니 앨리스 인 베드는 언급되지 않는 것 같아요.

감금, 신경쇠약 등으로 앨리스 이야기는 연결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 보여요. 하지만 다락방 책에 나오는 건 제가 올린 이 포스팅 내용이 다에요.

페넬로페 2022-09-28 17: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미여에도 앨리스 제임스가 언급되네요~~
앨리스가 조지 엘리엇에 대해 싫어한 내용이 궁금한데 벽돌책에 또 벽돌책이네요 ㅠㅠ

유부만두 2022-09-30 07:51   좋아요 2 | URL
조지 엘리엇은 ‘다미여‘에서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많아요. 인용에는 ‘마조히스트‘라고 하는 글도 있더라고요. 조지 엘리엇이 여성 인물을 상황과 인습에 묶고 가둔 이야기라 앨리스가 싫어했을 수도 있어요. (연결점은 ‘미들마치‘로 보이는데 역시 벽돌책이네요)

단발머리 2022-10-10 1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아! 이 페이퍼랑 이 댓글들 이해하고 싶은데요🙄 얼른 11월이 왔으면 좋겠어요. 근데 10월책도 아직 안 읽었음요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10-11 16:25   좋아요 1 | URL
그쵸??!!!
제가 얼마전 단발머리님의 파친코 노아 페이퍼를 읽을 때, 저도 아 파친코 읽고 이 페이퍼랑 댓글 의견을 따라가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주문 ㄱㄱ)

날이 차갑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조지 엘리엇 역시 매우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떨어져 학교로 보내졌으며, 항상 자신이 래티머의 아버지 같은 완고한 남자의 딸이라고 느꼈다. 래티머와 조지 엘리엇 둘 다 경제적 유산과 부모의 상당한 애정의 상속자는 자신의 형과 오빠라고 생각한다. 둘 다 자신이 차선이라는 느낌 때문에 괴로워했으며, 둘 다 자신의 소망과 달리 아버지로부터 마음에 들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은 교육을 강요받아 저항했다. 래티머와 조지 엘리엇 모두 애정 없는 자신의 상황과 그 상황을 만들어낸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 때문에 하늘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으며, 둘 다 개인적인 수치심과 소외감으로 이 상실에 대한 대가를 치렀다. 낯선 사람에 대한 래티머의 불신과 반감은 새로 알게 된 사람에게 보인 엘리엇의 첫 반응과 별로 다르지 않다. 편지에서 엘리엇은 새로 알게 된 사람이라면 거의 매번 부정적인 표현을 써서 묘사한다. - P773

엘리엇이 루이스를 하나의 분신으로, 그의 친구들과 연인들의 낭만적 생활의 희생자로 보는 것은 당연했다. 루이스는 어린 아내로 인해 참혹하게 괴로워했는데, 셸리처럼 자유연애의 신봉자였던 그의 아내가 손턴 헌트의 아이들을 임신했기 때문이다. 루이스 자신도 레이와 손턴 헌트를 통해 고 드윈, 셸리, 푸리에의 영향을 받았다. 아내인 아그네스에게 보여준 루이스의 관용 (아이들에게 자신을 성을 물려줌으로써 그녀의 간통 행위를 용서했다) 때문에 루이스는 당시의 법에 따라 이혼을 할 수 없었다. 루이스는 여성 작가가 바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후원자이고 사랑스러운 동료였지만 (그는 엘리엇이 글을 쓰도록 독려했고, 출판에 관계되는 세세한 일을 처리했고, 자주 아팠던 그녀를 간호했고, 작품 배경 조사를 도왔다) 그럼에도 엘리엇이 루이스와의 불법 동거 생활 때문에 사회적 징벌 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 또한 진실이다. - P797

독립적이지 못했던 엘리엇의 무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슬픈 징후는 (그녀의 일기에 나오는 위기라는 딱 한 단어가 죽은 지 5개월 반 뒤에 드러난 루이스의 배신을 가리키는 것이든 아니든) 엘리엇이 서둘러서 아들뻘의 젊은 남자와 (게다가 당시 어머니를 잃은 그는 어머니를 대신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결혼한 사건이다. 엘리엇은 죽기 몇 개월 전에 존 크로스와 결혼했으며, 이 결혼은 엘리엇의 소설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여자의 의존성에 대한 그녀의 통찰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주목하게 한다. 신혼여행에서 자신의 새 남편이 베네치아의 발코니에서 운하로 뛰어내렸을 때 (지나가던 사공 덕분에 다치지 않은 채 구출되었지만) ‘베아트리체’는 (그는 그녀를 그렇게 불렀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 P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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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14장에서 스포는 이미 당했고 저자인 조지 엘리엇의 개인사를 소설에 투사해 해석하는 것에 거부감마저 들었지만 앨리엇의 대표작 <미들마치>보다는 얇아서 읽기 시작했다. 


초반부에서 만나는 아홉 살 매기는 빗기기 힘든 억센 검정 머리칼에 어두운 피부, 말은 안듣는데 글은 잘 읽는 똘똘한 아이다. 아버지 친구가 놀러왔을 땐 총명함을 빛내며 <악마의 역사>를 읽는다. 어린아이가 읽기에 이건 좀...하는 아저씨에게 검은 몸에 빨간 눈을 한 악마의 모습 그림을 내보이며 설명도 당차게 한다. 매기 아버지는 그 책이 고급 장정에 세일이라서 사주었을 뿐인데. 이토록 총명하고 사랑스런 딸이지만 "아, 얘가 아들이었어야 했는데"가 아빠의 속 마음이다. "어릴 땐 해가 될 게 없지만, 너무 똑똑한 여자 애는 꼬리 긴 양보다 나을 게 없지. 그렇다고 값을 더 받을 것도 아니고 말이야." 머리 모양 흉을 들으면 승질 내며 자기 머리칼을 잘라버리는 아이, 금발인 사촌 루시에게 골을 부리는 아이, 세살 위 오빠 톰에 비해 차별 당하는 걸 의식하는 아이, 구박당하느니 집시의 여왕이 되겠다고 가출하는 꼬마가 주인공인데 어떻게 재미가 없겠냐고요!!! 


그런데 어째 쎄하긴 했다. 아홉살 아이가, 오빠랑 뛰댕기며 노는 게 제일 좋은 어린이라지만 '난 똑똑한 여자가 될거야'라는 결심을 하며 책읽기를 즐기는 아이가 어떻게 나중에 커서 오빠랑 한 집에 살며 수발을 드는 장래 희망을 가질 수가 있지?? 싸우다가도 금방 기권하면서, 오빠, 나 미워하지마, 라며 매달린다. 아홉살 열두살 열네살 매기는 내내 그런다. 아이 돈 언더스탠 허. 


이 소설은 저자의 개인사에 바탕해서 (저자가 유부남 편집자와 공공연한 관계를 유지하며 그를 '남편'이라고 칭해서 사회적으로 지탄을, 가족에게선 의절을 당한다) 남매의 '궁극적 화해'를 아름다운 자연과 섬세한 심리 묘사를 통해 그렸다고 하.지.만. 매기가 목매는 절대적 가치는, 부모가 편애하는 오빠, 자신을 여자라고 무시하는 오빠를 향한 더없는 사랑??? 모든 선악, 행불행의 기준이 바로 그 오빠 (그리고 그 이전엔 아빠, 엄마와 이모들이 다 못났다고 구박하는 매기 자신을 인정해주는 유일한 사람)의 인정???? 이랍니다.


매기네 집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데 강물 사용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이 일어난다. 매기 아버지는 소송에 지고 파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의 과한 '자신감'이 일을 그르쳐버린다. 그러니 이 소설은 아버지의 몰락 후 자식들이 분투하며 가세를 일으키는 이야기이긴 한데 매기에게 주어진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선 능력있는 어머니의 사후에 아버지가 넋을 놓아버리자 스칼렛이 팔을 걷어부친다 (그리고 연애와 결혼을 삼세 번 한다). 90년대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선 아버지의 파산, 사망 후 생활력 없는 어머니를 보호하며 장녀(고현정 분)가 생활 전선에 뛰어 뜬다 (그리고 연애를 한다). 여기서 매기는, 너무 어린 (중2쯤 나이의) 나이에 학교를 그만 두고 여러가지 일(교사일 포함)을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일자리를 가기 전에 스무 살 즈음에 고향에 돌아온다. 그녀는 더이상 몬난이가 아니라 매력적인 여성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 억세고 엉켜있던 머리칼도 말을 잘 들어서 엄마가 좋아한다. 이젠 엄마 말에 대들지도 않아서 엄마는 '니가 이렇게 이뻐질줄 몰랐다'라고 감탄한다. 도도한 부자 이모들도 다들 칭찬+참견이다. 니가 무슨 일을 한다고 그러니? 이젠 얌전히 있다가 시집이나 ... 


한편, 오빠 톰도 더이상 공부 못하는 멍청이에 개구장이 도련님이 아니라 세상 현실에 눈떠 돈을 모으고 가장 역할을 한다. 아버지의 무모함과 어머니의 '여성성'을 측은히 여기며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데 전념이다. 더해서 하나 있는 여동생을 아끼고 챙기라는 아버지 유언에 따라 동생을 '통제'한다. 그래서 여동생은 필립, 스티븐과의 관계도 오빠의 허락을 먼저 받아야만 한다. 


내가 가장 짜증난 부분이 여기다. 매기는 소설 내내 어깨에 아빠와 오빠를 얹어놓고 있다. 필립과 스티븐이 그녀에게 접근해 사이가 애틋해질 때도 그렇다. 오빠나 루시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다고, 가족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며 자신의 양심과 원칙을 이야기하지만 매기는 이 두 남자들을 정말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딱 한 번, 매기가 고모네 집에 다녀오는 길에 자신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그래서 피해자들이 생긴다면, 그런다고 안될 일이 뭐란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그뿐. 매기는 자신의 행동에 진심을 두지 않고 계속 눈치를 보고 핑계를 댄다. 그래도 상황은 꼬이고 그녀의 평판은 땅에 떨어진다. 이 모든 게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적 사회 규범 때문이라고??? 매기의 어정쩡함 탓이 아니라? 


매기의 비참한 처지에대해 저자는 사회 여론을 만드는 부인네들의 편견,고집을 공들여 비난하고 그에 '힘없이' 따르는 남자들을 감싼다. 필립은 툭하면 '자살할래'를 입에 올리고 스티븐은 '그런 짓'을 저지르고도 매기의 매력에 넘어간 불쌍한 사람이 된다. 이들은 저자의 눈에 매기의 자만심에 희생당한 순정남들이다. 남자들은 가산을 탕진해도 위로가 필요하며 부인네들은 편협하고 이기적인 존재들이라 생각없이 그저 남편과 '아들~'을 부르며 울기만 한다. (예전 드라마 <아들과 딸>이 떠오르는데 매기는 후남이처럼 독립적이지 않다. 그저 자신이 진실하면 된다, 다들 선함을 알아줄거다, 라고 고집만 부린다.) 그러니 남편도 아들도 없는 여자는 사회라는 뭍에서 설 곳이 없고 물에 빠지는 결말은 정해져 있었다. 저자 조지 엘리엇도 설 곳이 없었다. 그녀가 남자 이름을 쓰는 것도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마지막 장면은 피할 수 없는 귀결로 보이지만, 애초부터 톰 오빠는 매기를 아끼지도 않았다. 그의 분노는 자신의 가부장 위치에 대한 매기의 반항(이라지만 매기의 반항 의지는 빠지고 부재 상태임. 소설 내내 매기의 의지는 '도망가기'에만 적용된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위기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아, 그러니 저자가 보기엔 톰 오빠도 다시 불쌍해진다. 


하지만 정말 불쌍한 건 나라고요. 첨에 맘을 다 매기에게 주고 시작했는데, 이렇게 배신을 당해서, 일요일에 헛헛한 마음으로 유툽 다큐도 찾아봤는데도 충분한 위로가 되지 않는다. 저자 조지 엘리엇은 지적인 성취와 현실 연애는 자신이 하고 극적인 남매의 화해는 매기 몫으로 만든 셈이다. 하지만 '보수적' 사회의 용인은 끝까지 받지 못했다.


이 BBC 다큐는 진짜로 소설 스포입니다. 그래도 조지 엘리엇의 육필 원고를 보여주는 멋진 스포일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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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9-25 15: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조지 앨리엇은 어차피 읽긴 할건데 음 이런 내용이군요.
매기에게 맘주지 않고 읽기 시작해야겠습니다. ^^

Falstaff 2022-09-25 17:35   좋아요 3 | URL
그게..... 마음 주지 않기가 쉽지 않으실 거 같은 걸요. ^^

유부만두 2022-09-25 17:58   좋아요 2 | URL
맞아요. 초반에 홀랑 빠져서 읽게 돼요. 이야기가 흥미진진 꽤 속도감 있게 펼쳐지거든요.

바람돌이 2022-09-25 19:11   좋아요 3 | URL
그럼 배신당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읽는걸로.... ㅎㅎ

단발머리 2022-10-10 12: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링크 보물입니다. 저 지금 밖이라서 집에 가서 볼게요!! 만세!!!

유부만두 2022-10-11 16:21   좋아요 0 | URL
저 링크 좋아요. 그런데 스포일러 범벅이니 먼저 책을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욕하면서 읽는 그 맛, 바로 조지 엘리엇 소설입니다.
 




톰 오빠가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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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9-25 0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노래 어릴 적에 주제가처럼
불렀었는데요 하...

유부만두 2022-09-25 13:23   좋아요 1 | URL
맞아요. 어릴적에 흥얼거리곤 했는데 이번에 찾아보니 미국 민요라고 합니다.

기억의집 2022-09-25 1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노래 앞 부분만 알었는데.. 오늘 만두님 덕분에 가사 전체를 읽을 수 있네요. 추억의 노래 중에 너무나 많이 알려졌는데 앞부분만 흥얼거리는 노래 있지 않으셨나요? 저는 이 노래가 그랬거든요….

유부만두 2022-09-25 13: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그런 노래 많아요.
이 노랜 ‘물레방아 소리 들린다‘ 만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이랑 연결시켰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