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마지막 질문이다. 집에 애장하는 그림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인가? 


슬로터다이크: 내가 좋아하는 그림을 집에 갖고 있는 거 같지는 않다. 

내가 좋아하는 광경은 (view) 있다. 내게 "image"와 "view"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순수 미술의 미학에 끌리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나는 자연 미학이라 부를 것에 더 끌리고 그림보다 

"view"를 더 좋아하는 쪽이 되었다. 이건 특이한 일이 아니다. 바존 브록은 검정색 사각형을 보느니 

인간의 젖가슴을 보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말에 공감한다. 내게 브록의 말은 "view"를 위한 탄원이다. 

나는 내 서재의 "view"를 가장 사랑한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 저녁의 서재를 특히 더 사랑한다. 

서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게 나는 서재의 불을 켜놓는 편이다. 나는 좋은 영혼들에 (good spirits)

둘러싸이는 그 감각을 좋아한다. 수천의 고요한 조언자들이 내게 그들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오직 그게 다일 뿐, 그 외엔 나를 평화 속에 있게 한다. 


*바존 브록 (Bazon Brock): 독일의 예술가, 비평가, 이론가. 



I like the sense of being surrounded by good spirits, many thousands of silent advisers who offer me their services and leave me in peace otherwise. 이게 마지막 문장인데, 도저히 지금은 어떻게 말이 말처럼 되게 번역하지는 못하겠다. 이 문장에 감동함. ㅎㅎㅎㅎㅎㅎ 감동이 제일 쉽. ;;;; 


좋은 영혼들에 둘러싸이는 그 감각. 

그 감각 없이는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고요히 그들의 서비스를 제공할 뿐, 그 외엔 나를 평화 속에 있게 함. 이 역시! 

.......... 이러니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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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1-01-23 02: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맘에 쏙 와 닿는 글이네요

몰리 2021-01-23 04:37   좋아요 0 | URL
불을 켜놓고 다니다니!
잠시 그러심 안되.... 했다가 따뜻하게 불켜진, 유리창이 있고 책들이 가득한 방 상상하게 됩니다.
자연발광되는 무엇이 있다면 구해서 그걸 구석에 두면 좋겠어요. 뭔가 있을 거 같아요. 아니, 없으려나요.

psyche 2021-01-23 07:38   좋아요 1 | URL
요즘은 전화기로 불을 켜거나 타이머로 시간을 맞춰둘 수 있으니까요. 내가 올 시간에 맞춰서 불을 켜면 되죠. ㅎㅎ ‘따뜻하게 불켜진, 유리창이 있고 책들이 가득한 방‘ 아 상상만 해도 넘 좋아요!

몰리 2021-01-23 08:05   좋아요 0 | URL
아아아 맞아요!
아 이 시대에 뒤떨어진 나님 (나새끼...;).
아 아아아아. ;;;;;; 정말,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을요.
지금 사는 구닥다리 집을 얼른 벗어나야 한다는 결심을 새로이 합니다.

han22598 2021-01-26 0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뷰와 이미지의 차이는 틀이 존재의 여부정도밖에 생각 못하는 나. 문득 드는 생각은, 저분은 나같은 사고체계를 가진 인간들을 어찌 생각하는지. 참으로 밋밋하고 심플하다 생각할듯 ㅋ

2021-01-26 04: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슬로터다이크: 21세기의 세계는 아마도 지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자본주의의 세계일 것이다. 테러와의 전쟁, 이슬람주의자들의 지하드 낭만주의, 전쟁 자본주의가 이미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시도들이 곧 있을 것 같다. 


문: 민주주의의 뿌리를 우리에게 상기시키는 게 지식인이 할 일인가? 


슬로터다이크: 원칙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지식인들 자신 그 뿌리가 어디 있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한다. 


문: 그렇다면 이 질문을 하고 싶다. 우리 독일인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에게 자유보다 안락함이 더 중요하다. 우리는 구석방에서 따뜻하게 웅크리고 있고 싶어하지 

큰 방에서 덜덜 떨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는 오블로모프 같다. 소파에서 일생을 보내는 19세기 러시아 소설의 

주인공 말이다. 


슬로터다이크: 그렇다. 독일인이 누구인가 알려면 러시아인들과의 친연성을 보아야 한다. 

현대 독일인은 그들 생각보다 훨씬 더 러시아적이다. 우리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에서 낭만적 상투형으로서의 러시안들을 닮았다. 냉전 시기 모종의 영혼의 여정들이 있었던 거 같으며 그렇게 우리의 영혼 속으로 그들이 이주해 온 거 같다. 그렇긴 한데 우리는 우리의 동방 사촌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안락함을 추구한다. 우리는 벼랑 곁으로는 결코 가지 않는다. 우리의 안락함은 일과 양립 가능하다. 



이건 2004년 연말에 있었던 인터뷰가 출전이다. Selected Exaggerations 이 책에 실린 인터뷰들은 

1994년 시작해서 연도 순으로 실려 있는데 마지막 인터뷰는 2012년. 


90년대에 있은 인터뷰들 보면 그런 일들이 그 시절 있었는가, 내가 이 시절을 살았던 거 맞는가, 등등 멀다 느껴지는데

21세기로 들어오면 거리감 사라지기 시작한다. 단순히 20년전과 30년전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적 "단절"이 

있었던 게 맞는 거 같다. 911. 세계를 지탱하던 상징 질서의 붕괴가 있었던 거 맞는 거 같음.   


인터뷰에서 그가 하는 말들. 

"음?" 하게 되는 대목들이 없는 게 아니지만 

아낌없이 찬사를 보내고 싶은 대목들이 무수하다. 정말 좋은 선생. 

위에 옮겨 본 건 밑줄 부분이 그냥 웃겨서. 

웃긴 말 많이 하시는 분이다보니 어떤 말들은 그냥도 웃기다. 


오블로모프. 소파에서 일생을 보내는 남자의 이야기. 금시초문인데 

그냥 이것만 알아도 아낌없이 찬사 보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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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1-22 1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눕기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하루종일 눕기에 집착한 인물‘의 사례로 나왔던 인물이 소설 <오블로모프>의 주인공인 ‘오블로모프‘에요 ㅋㅋ
[일리야 일리이치(오블로모프)의 안색은 별반 특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안색이다. 운동 부족 혹은 바깥 바람을 적게 쏘인 탓이리라. 윤기 없는 허연 목의 빛깔과 작고 오동통한 손, 그리고 가녀린 어깨로 판단하건대, 그의 몸은 전반적으로 남자 체격이라 하기엔 왠지 연약해 보인다. 걱정거리가 먹구름처럼 얼굴에 몰려들면, 시선은 멍해지고 이마엔 주름이 잡히면서 의심과 슬픔과 놀람이 교차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러한 근심이 일정한 하나의 사고틀로 굳어지는 경우는 드물고, 무엇을 하겠다는 의욕으로 발전하는 일은 더더구나 거의 없다. 모든 근심은 한숨으로 해결되고 무관심과 졸음 속에서 기력을 잃고 만다.
침대에 눕는 것은, 말 그대로 일상인 것이다. 사실 거의 매일 집에 틀어박혀 있고, 집에 있는 날은 항상 누워 있다. 침실 겸 서재이기도 하고 또 거실이기도 한 바로 그 방에서 말이다. 그에겐 방이 세 개나 더 있지만 거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아주 드물어서 고작해봐야 아침에 누군가가 자기 서재를 청소할 때나 어쩌다 들여다볼 정도다. 사실, 청소라고 매일 하는 것도 아님은 당연하다.
그는, 9시부터 3시까지, 8시부터 9시까지 자기 방 소파에서 빈둥거릴 수 있다는 사실에 잔잔히 밀려오는 기쁨을 누렸고, 보고를 할 필요도, 보고서를 작성할 필요도 없이 그저 자유로이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왠지 뿌듯했다.]

오블로프가 21세기에 살았다면 유툽에서 ‘눕기 기술‘로 구독자수 왕창 몰려서 골든벨 받았을지 도 ^ㅎ^

몰리 2021-01-22 10:37   좋아요 2 | URL
모든 근심은 한숨으로 해결되고.....

여기 주황색 형광펜 쫙 긋게 됩니다.
아 정말 러시안들. ㅎㅎㅎㅎㅎㅎ 아웃라이어들. ;
 



서재 포스팅에 쓰려고 이 분 이미지 검색 하다가 

그의 개인 서재인지 아니면 초대받은 타인의 공간인지 모르겠으나 

개인 서재처럼 책들이 꽂힌 서가들 사이에 서서 찍은 사진 발견했었다. 지금 그 사진 찾다가 못 찾고 

이 사진으로 대신.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해 말하는 방법" (이 제목 맞나?) 움베르토 에코. 자기 서가의 책들을 보고 "이 책들을 다 읽으신 겁니까?" 질문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답하는가. 이런 얘기 듣고 난 다음엔 저자들이 서가에서 찍은 사진 보고 "그는 이 책들을 얼마나 읽었을까?" 같은 생각 든 적 없는 거 같다. 그런데 슬로터다이크의 그 사진은 거의 보자마자 


이 분 이 책들 다 읽었을 거 같다. ㅇㅇ 

ㄹㅇ (..... 뒤에 숨은 서가가 있고 거기 책들도 다 읽었을 것임).

(박스로 내놓은 책들이 있고 그 책들도 다 읽었을 것임). 안 읽은 책이 설령 있다 한들 

거의 다 읽었으면 안 읽은 책은 안 읽어도 되는 책. 




책을 무시무시하게 많이 읽은 사람들은 흔히 오히려 예민하지는 않은 거 같은데 

(예민함을 서서히 잃어가지 않나 한다, 무시무시의 지경으로 가면 갈수록) 슬로터다이크는 극히 예민하기도 하다. 

이런 면모 가진 철학자는 내겐 슬로터다이크가 처음이다. 사실 철학사에서 희귀할 거 같다. 

이 시대의 시대정신과 닿아 있을 거 같음. 이 시대라서 나온 예민함. 


"In Place of a Preface" 이 제목 인터뷰에서, "boredom" 주제로 말할 때. 

내가 발번역으로 대강 옮겨 오면 이렇다: 


슬로터다이크: 인터뷰에서 내가 진짜로 싫어하는 게 뭐냐 묻는다면, 공식 발표처럼 들리는 공허한 말들을 교환하는 거라고 답하겠다. 공허한 말들을 나는 혐오한다. 내게는 "boredom"에 대한 아이같은 공포가 있다. 학문 담론 시장에서 나오는 표준적 언설들이 내 기준엔 이 세상에서 가장 지겨운 말들이다. 오해가 없도록 덧붙이자면, 세상엔 좋은 종류의 지겨움도 있다. 우리를 침착하게 하고 우리를 통합하는 힘으로서의 지겨움도 있다. 그런 지겨움에 우리는 우리가 유치원 시절 선생님에게 그랬듯이 우리 존재를 의탁할 수 있다. 어떤 풍경이 갖는 절묘한 지겨움. 바다가 우리에게 주는, 해방과 함께 하는 지겨움. 산들이 품고 있는, 고양감의 지겨움. 위대한 서사문학이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할 때 갖게 되는 지겨움. 


사악한 지겨움은 허풍스럽고 공허한 말들로 진리는 자기 편에 있다는 듯 행세하는 이들에게서 발생한다. 이 지겨움은 이미 악명이 높고 그 악명만큼 치명적이다. 당신은 당신 상대와 몇 마디를 교환한다. 대화가 시작하기 전 당신에게 상대에 대한 반감은 없었다. 세네 문장이 오고 간 다음, 당신은 삶의 의욕 모두가 사라지는 피로감을 느낀다. 당신 생명력의 배터리가 단 수초만에 방전된 느낌이 여기 있다. 당신은 그 순식간의 방전 앞에서 멍하다. 


나는 이 유형의 지겨움을 결사적으로 피해 다닌다. 그 지겨움이 끼여드는 한, 말하기의 즐거움은 사라진다. 나의 의견을 표현하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내가 본 대로의 세상을 말할 수 있다는 감각이 주는 즐거움이 사라지고, 아니 진정, 삶의 즐거움 전부가 사라진다. 사악한 지겨움의 강도가 높아질 때, 언어가 붕괴한다. 갑자기 말들이, 정확한 순서대로 나오기를 거부한다. 간신히 명사는 꺼내 놓지만 그 명사가 요구하는 동사가 뒤따르지 못한다. 그 무엇도 말하고 싶지 않다는, 나를 압도하는 끔찍한 감정이 덮친다. 이 감정은, 아무 할 말이 남아 있지 않다는 유쾌한 느낌과 결코 혼동될 수 없다. 나의 상대가, 전적으로 진부한 질문들을 내게 던질 때, 나는 내가 위험 구역에 들어섰음을 감지한다. 이런 질문들은 인간을 우매화한다. 이 질문들엔 서브텍스트가 있다: 자 너도 그만 항복해라, 너도 그만 우리의 비참에 동참해라! (.....) 



번역은 안되지만 

옮겨 보면서 몇 번 실제로 다시 웃기도 했고 다시 감탄하게도 된다. 

특히 저 마지막 문장. 인간을 우매화하는 진부한 말들, 진부한 질문들에는 

"자 이제 그만 너도 항복하고 우리의 비참 속에 같이 빠지자"는 초청이 있다..... 이 말.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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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홀. 

무에서 유가 나왔다는 것. 

존재의 문제. 철학과 물리학의 접경 지대. 

철학은 너무 중요해서 철학자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존 휠러 인터뷰 찾아보았는데 이 클립, 7분 지점에서 저런 말씀 하신다. 

특히 마지막 문장. Philosophy is too important to be left to the philosophers.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특히 물리학자들이, 철학에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로 비슷한 얘기를 

많이 해왔던 거 같긴 하지만 오늘 아침 들으면서는 (......) 그냥 몰표. 이런 말을 하고,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해도 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클립이 업로드 되었을 때 

메릴랜드인지 델라웨어인지에서 60대의 존 휠러라는 남자가 피살되어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견되고 

그게 연방정부를 향한 어떤 메시지가 담긴 살인이었고 ..... 이런 사건이 있었나 보았다. 댓글들이 ㅎㅎㅎㅎ 

60대 피살당한 존 휠러 얘기들을 하고 있음. "사람들아 야 이 바보들아. 다른 사람이야! 이 분은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과학자였다. 양자 우주론의 아버지시다." 이러는 댓글 나오고. 이런 미친 스레드는 

처음 본다는 댓글도 나오고. 




여름 동안 오래 산책하기가 힘들었는데 

10월 시작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산책하기가 훨씬 즐겁고 쉬워져서 좋다. 

아침에 늦게까지 어둡다는 것. 시원하다는 것.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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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교향곡 4부작의 4부에서 

아론 콥랜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영국은 수세기에 걸쳐 "음악이 없는 나라 land without music"라 불리었지만 

미국은 음악이 "아직" 없는 나라... 미국적 음악을 만든 미국 작곡가들은 

20세기에 나오게 되는데 그 중 누구보다 아론 콥랜드. 


말년에 그는 

뉴욕시에서 거리로는 멀지 않지만 

은둔자처럼 살 수 있는 시골에 집을 지었고 

실제로 그 집에서 은둔자처럼 살았다. 모더니즘 양식이 어느 정도 보이는 집이고 

초라한 집은 아니지만 그가 평생 그의 삶에서 보여준 절제, 검박함이 드러나는 집이다. 

(.....) 저런 설명을 하는 사람이 나오는데 조금 찾아보니 그가 살았던 집이 지금은 기념관으로 

쓰이나 보았다. 





아슈케나지와 그의 스위스 집이 

나오는 다큐가 있었는데 아슈케나지의 집은 

............ 아 저기서 그처럼 피아노 칠 수 있으면서 산다면 

매일 초월의 체험이겠. 매일 현세를 떠나 저 너머로. 아니 현세도 이토록 아름다운데. 

그의 집도 넓은 창이 있었고 창밖은 그 그림같은 스위스 산들의 풍경이었다. 


뉴욕주 시골에 지었다는 콥랜드의 집은 

그에 비해 현실적인 집이라 느껴지긴 한다. 





이제는 이런 용도로도 쓰인다는 Copland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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