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시를 쓰는 일은 피부에 살았던 기억이 전혀 없는 설계도를 새겨 넣고, 그 설계 안으로 들어가 보는 일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가난한 파충류는 곧 몸에서 열을 뱉어내고 그것을 먹기 시작한다) 그러나 시를 쓰건 쓰지 않건 시를 생각하는 행위에는, 언어를 열고 보면 그 속에 존재하는 멀미와 미로 때문에라도 언어 속의 가로등과 진피가 재구성되어야 한다. 그것은 실험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원초적인 주저함에 가까워서 우리는 조금씩 열렬한 불순물에 가까워질 뿐이다. 너무 선명한 고해가 피로해서 나는 도처에 어지럽혀져 있다. 여기선 그 혈액을 흔들어보기로 한다.
바람은 한 번도 목장을 갖지 못했고, 목장은 한 번도 바람을 가두지 못했다.
이 시집은 세계를 활공하는 두두에게 바친다. ('시인의 말'에서) - 김경주
시집 <기담>은 시도 극도 아닌, 하지만 시도 극도 아직 실현해보지 못한 장르 미상의 어떤 새로운 예술적 경지를 욕망한다. 시인은 타고난 직관으로 자기 앞에 놓인 새로움이 미지의 것이며, 자신이 온몸으로 그곳을 향해 나아갈 때 그 정체가 비로소 눈앞에 펼쳐질 것임을 본능적으로 간파하며 움직이는 모험가와 같다. 이 심미적 모험가의 길에 결코 포기는 없다.
: 나는 그 모험가의 손을 다시금 잡으려 한다. 미리 주문해놓고, 리스트 작성 중. 신간 코너에서 발견하자마자, 와우 소리치고 있었다. 엄청난 목소리가 비집고 나오고, 쉬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 시험관에 든 출렁이는 혈액, 유리에 비친 불순물의 흔적. 들여다보는 눈에, 일렁이는 그림자의 자극을 받으려 한다. 어서 페이지를 펼칠 수 있기를, 웃음을 머금고 기다린다.
그가 써내려간 이야기들은 모두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소동극. 그 중심에는 스무 살, 여린 감수성을 지닌 젊은 날의 그림자가 있다.<당신의 조각들>에는 각박한 도시의 삶을 살아가는 세대를 위한, 그 터널을 지나오면서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위안을 건네준 희미한 희망이 담겨져 있다. 소설은 시종일관 건조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어느 순간 불현듯 가슴을 툭 치며 괜찮다고 위로한다.
: 그의 글에서, 나의 그림자를 덧씌울 수 있겠지. 우리가 지나친, 앞으로 지나칠 무수한 터널 앞에 순간의 망설임을 담고, 더듬더듬 길을 찾아 헤맬 때의 긴장과 땀을 담고, 꿋꿋하게 빠져나왔을 때의 안도와 거뜬한 의지, 해냈다는 성취감을 담고…. 은근슬쩍 건네는 희망의 메시지. 어느새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영상을 그린다. 사촌 동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두 권을 주문할 계획을 세운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은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허연의 시는 거침없고 솔직하다. 날것 그대로의 일상적인 언어로 가슴 찡한 서정성을 보여 준다. 표제작이기도 한 '나쁜 소년이 서 있다'는 이번 시집의 모든 시들을 요약하면서, 동시에 허연 시인의 지금까지의 삶을 요약하고 있다.
: 제목에 그대로 꽂혀버렸다. ‘서 있다’는 게, 단순함에 그친 게 아니기에, 그 둘레에서 기웃거리게 된다. 막에 가려진 그 너머의 모습이 어떨까 마구 궁금증이 인다. ‘거침없이’ 파닥파닥 뛰는 영상을 눈에 가득 담아내고 싶다.
: [들려주려니 말이라 했지만] 이후로 그의 시집을 통 볼 수 없어 아쉬웠는데, 드디어! 책 소개는 아직 뜨지 않았지만, 달리 살펴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 바로 주문 리스트에 올려버렸다. 번뜩이는 장치와, 선명한 그림과, 다채로운 연결 고리가 가득 생성되어 있었으면, 부푼 마음으로 택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 원제 Hyperion
휘페리온의 삶의 궤적은 개인사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법칙에 대한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인간은 모두 자연과 근원적인 조화를 이루었던 황금시대에서 떨어져 나와 고통스러운 개별화의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연과 반목하는 사이가 되었고, 한때 하나이던 것은 지금 서로 다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과 세계 간의 그 영원한 투쟁을 끝내는 것, 그리하여 양자가 하나의 무한한 동일체로 통합되는 일, 그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횔덜린은 말한다.
| 원제 魯迅小說全集
루쉰이 일생 동안 발표한 소설들을 엮은 소설집 <납함>, <방황>, <고사신편> 등 3권에 수록된 33편을 번역한 완역본이다. 루쉰의 소설들은 중국이 봉건주의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통하던 과도기에 중국인들이 체험하였던 고통과 혼란과 방황을 주제로 하고 있다.
: 꾸준하게 나오는 전집들. 고전 집중 읽기를 하고 있는 터라, 환호하면서 당황하기도 한다. 읽을 책이 살짝 밀려 있고, 소장하고 싶기는 하고. 한 번쯤 모른 척 태세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바로 사고 싶어, 외치고 마니까. 오늘도 영풍에서 슬쩍 페이지를 팔랑팔랑 넘기며, [역시 이건 사야만 해.]라고 생각했더랬다. 루쉰의 소설은 교과서에 나왔던 것밖에 접하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다양한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음에 마냥 휘파람을 불고 있다.
본 책은 단순히 흥미를 넘어서서 귀중한 ‘한국대중음악 사료’로 볼 수 있다. 또한 선정된 뮤지션들의 앨범이 한국대중음악사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자료이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현재 한국의 중요한 대중음악 작가(아티스트)들은 누구이며, 그들의 음악이 대중음악사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밝혀주고 있기 때문이다.
: ‘음악’ 관련 자료는 일단 주목하고 본다. 시리즈라, 간격을 가늠하며 기다리는 재미도 쏠쏠할 듯. 자극을 받으며, 밀린 음반 리뷰에도 집중해야 할 테고. (;)
- 그림책의 다섯 가지 표현 기법
이야기에는 고유한 시간 장치가 있다. 그림책 속의 시간은 단순함이 기본이지만, 다양한 표현이 응집되어 있다. 다른 시간을 같은 화면에 표현하기도 하고, 다른 공간에서 일어난 사건을 한 화면에 구성하기도 한다.
그림책의 모든 장면은 따로따로 그려져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넘긴다’는 독자의 행위를 통해 떨어진 그림 사이에 연결고리가 생긴다. 그런데 이런 행위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장면들을 어떻게 독자는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비슷한 사물, 색체, 사건, 정서의 대응이 그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다.
: 그림책 독자 연령이 아이들에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특이하고 다채로운 그림을 보면 아이 어른, 상관없이 환호할 수 있다고. 조카를 위한 선물을 고르면서, 그림*동화책에 대해 [나도 가지고 싶다]라는, 불쑥 비집고 나온 소유욕에 애써 내리눌러야 했던 기억이 있다. 퐁퐁 터지는 호기심을 잠재우기란 매순간 버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