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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거장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2004.03.25
위태로운 생, 조각난 삶을 향해 거는 주술
전경린 소설의 테마인 것 같다. 대부분 여성의 목소리, 여성의 삶, 여성적 암시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이 아니라도, 전경린 작가 분은 어떤 구실로 상처받아 위태위태한 여성의 모습을 다양하게 그려 왔다.
"전경린의 소설을 읽는 것은 종종 금기의 위반을 향해 온몸을 팽팽하게 긴장시킨 어떤 위태로운 열정에 동참하는 일이 된다"(해설 중에서)
이전의 소설에서는 작가의 의도가 뚜렷하게 부각되진 않았단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다른 것 같다. 한국 여성의 삶에 피해갈 수 없는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끊임없이 제시하며, 또 갈구하고 점진적으로 해결책을 모색해가고 있다.
"나의 소설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여성이, 지극히 완강하고 평범한 삶의 구조 속에서 좀 끔찍하게 피워 올린 찬란한 무지개 같다"(저자의 말)
표제가 된 "물의 정거장"이란 소설은, 그전과 마찬가지로, 가족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격하게 몸부림치며, 거부하고, 이른바 일탈의 장을 향해 나아가라는 여성의 움직임을 바탕에 깔아두고 있다. 그들의 내면은 황량하기 이를 데 없으며, 상처받은 몸을 끌어안고 고통에 괴로워하고, 이쪽 삶과 저쪽 삶의 경계선에서 끝없이 갈등하는 듯하다.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과 "부인내실의 철학" 두 단편은 삶의 울타리 안에 갇힌 주인공이 외부 공간을 메운 틀을 부수냐, 부수지 않느냐로 갈라진다. 처음의 소설은 자신의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욕망을 버티지 못하고, 제시하는 길을 따라 방향을 정하는 주인공이, 다음의 소설은 틀에서 벗어나지는 않으면서, 결혼이외의 다른 것을 꿈꾸는 주인공의 삶이 있다.
어느 것이 최선책인지는 모르겠으나, 부수든, 부수지 않든 어느 것을 선택한 대가는 반드시 치르게 되어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고통까지 수반되어 처절한 몸부림을 칠 뿐이다.
유일한 남성 화자가 등장하는 "바다엔 젖은 가방이 떠다닌다"라는 소설은 결혼 제도에 관해 거부하면서도, 한 여자를 만나 그 여자가 이끄는 매력에 주체할 수 없이 빠져들고, 끊임없이 갈등한다. 열정적이고 모험을 감행해야만 하는 사랑이 주는 쾌락에 순간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여러 차례의 심리적 갈등을 겪고, 선을 봐서 만난 여자와 직장 상사와의 관계를 알고 나서, 그들이 주인공의 바깥에서 그를 눈여겨보고 있었고, 방황했다는 것도 눈치채고 있기에 남자는 즐길 수는 있으나, 해소할 수 없는 사랑에 체념하고, 안정적인 결혼을 선택한다.
주인공의 심리묘사 면에서는 제일 끌렸던 소설로 기억한다.
(나의)교보 북로그에 이미 올렸던 글입니다.
쭉 정리하고 나서, 새 리뷰 올리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