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예심평
감동을 주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
1.
아마 요즘 아이들은 동화보다 컴퓨터 게임이나 텔레비전의 개그 프로그램과 드라마를 더 재미있게 볼 것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동화는 무엇인가?’, ‘작가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나?’와 같은 생각은 아동문학 작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봤을 문제이다.
요즘 아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동화라면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재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재미로만 따지자면 컴퓨터 게임과 경쟁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동화는 컴퓨터 게임에는 없는 감동을 갖고 있어야 한다.
재미는 있으나 감동이 없는 작품은 있어도, 감동이 있는데 재미가 없는 작품은 드물다. 그렇다면 재미란 감동의 한 부분이거나 감동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리라.
아이들은 끊임없이 변한다. 아이들의 감수성도, 관심사도 그렇다. 작품 역시 그러해야 한다. 어린이 문학의 ‘어린이’에만 지나치게 얽매인다면 ‘덜 자란’, ‘어린’, ‘아직은 미성숙한’ 같은 말이 작가의 의식을 옭아매어 동화를 계몽의 구실로 삼거나, 가정 · 학교 · 학원 · 동네와 가족 · 친구 · 이웃과의 관계를 그리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예심을 보면서 ‘감동을 주는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염두에 두었다. 물론 이런 작품을 쓴다는 것이 말이 쉽지 작가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심사를 하는 사람이나 응모한 작가들이 평생을 두고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더불어 몇 가지 함께 생각할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상자든 탈락자든 자신의 문학적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다.
먼저,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어린이가 독자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지 않으면 ‘어린이 문학’으로 완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어린이 문학에 걸맞은 구성과 문체를 사용하고 있는가를 늘 생각해야 한다. 의인화를 시킨다고 해서 다 어린이 문학은 아니다. 그렇다고 비현실적인 시공간과 인물이 등장한다고 좋은 공상동화나 판타지가 되지는 않는다. 내적 질서가 없는 비현실적 시공간은 문학적 리얼리티를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물의 성격과 행동, 사건은 타당성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 바탕에 철저한 인과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학은 예술적 의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관된 질서나 인과관계가 부족한 글은 이야기 속에 빠져들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계속 작품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또한 사건과 사건, 장면과 장면의 전환이나 연결이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작품 속 인물이나 스토리에 진실이 담겨 있는가라는 질문에도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작가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문제의 현상 밑에 숨어 있는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를 보지 못하면 자아와 그를 둘러싼 세계가 충돌하는 모양새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한다. 당연히 감동을 주기도 힘들다.
2.
응모한 작품들은 크게 아이들이 일상에서 흔히 겪게 되는 크고 작은 사건이나 가족들과의 관계를 그린 작품, 사회 문제나 역사 속에 살아가는 아이들 이야기, 다양한 소재의 판타지 등으로 나뉜다.
아이들의 일상을 그린 작품은 아무리 잘 그렸다고 해도 평범하여 문학상에 걸맞은 참신함이 부족할 우려가 있으며, 사회나 역사 속 아이들은 사회나 역사가 주인공이 되고 아이들이 배경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판타지 류는 자칫 황당함으로 빠지거나 판타지 세계를 설명하는 데 힘을 쏟다가 막연한 신비감만 남길 위험이 있다. 본심에 오르지 못한 작품들은 대개 이런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올해는 특히 눈에 띄는 장편 판타지가 여럿 있었으며, 편수에 못지않게 작품의 수준도 높았다. 해를 거듭할수록 성장하는 어린이 문학의 밝은 미래를 보는 것 같아 예심자들의 마음이 흐뭇했다.
『푸른빛으로 사라진 아이』는 낙태나 사고로 목숨을 잃은 어린 영혼을 다룬 판타지 동화로, 쉽사리 다루기 힘든 소재를 차분하게 그렸다. 독자를 빨아들이며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솜씨가 무척 인상 깊었다.
「두움이의 스물다섯 개의 외국인 친구」와 그 밖의 작품들은 무엇보다 아이들의 일상을 다루면서도 무척 새롭다는 미덕이 돋보인다. 등장인물과 소재 모두 참신하고 상상력이 발랄하다. 하지만 문장이 거칠고 불안정하다는 점, 주로 설명에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 장점을 퇴색시켰다.
『할머니는 이 동아가 키울 거야』는 개를 소재로 다룬 연작이다. 흔한 소재이지만 무엇보다 작가의 입담이 작품을 살린 경우였다.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재미를 넘어서는 의미도 담고 있다. 앞으로 기존 동화와 구분되는 자신만의 서사를 구성해 낸다면 좋은 작가가 될 것이다.
「참나무 숲의 아이들」은 간간히 보이는 논평적 서술과 사건을 해결하는 통속적인 방식이 아쉬웠다.
「네 곁에 있을게」는 작은 섬마을에 사는 진희네 식구의 일상과 인물들의 성격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대화와 서술 모두에서 사실성이 돋보인다. 하지만 서사의 밋밋함과 주인공의 성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조왕이네 게스트 하우스」는 서로 다른 에피소드들이 강약 없이 병렬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피소드도 무게를 실을 것과 간단하게 넘겨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에피소드를 같은 비중으로 다루거나 지나치게 자세히 서술한다면 독자는 이야기를 읽을 때 초점을 찾지 못해 지루해할 것이다. 좀더 버리는 미덕을 발휘하길 바란다.
『소년왕』은 아주 꼼꼼하게 잘 쓰인 흥미로운 장편 판타지이다. 형상화된 인물 캐릭터가 아주 매력적이며 이야기 퍼즐이 복합적으로 잘 짜여 있다. 현실 문제인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태도도 아주 담백하고 어린이 문학의 흔한 도식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 특히 환상계와 현실계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점이 돋보였다.
『샤르샤르의 쌍둥이』 역시 정성들여 쓴 장편 판타지이다. 동북아 신화 모티프를 우리 판타지에 적극 활용하려는 점이 눈에 띄었으며 나름대로 환상계의 논리를 구성하려 한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현실계와 환상계를 잇는 유기적 연관성의 부족, 즉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부족한 점이 한계로 보였다.
예심 심사위원
이중현, 임정자, 유영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