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신춘문예 문화 일보 동화 당선작
'알갱이 요정의 첫 번째 임무'
“으아아아아”
철퍼덕
세상에…. 나는 내가 이런 품위 없는 소리를 내면서 세상에 떨어질 줄은 몰랐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떨어진 곳은 두리의 손에 들린 커다란 돋보기 위였습니다. 제대로 떨어지긴 한 것 같습니다.
“누나 여기가 수상해 빨리 와봐”
잔뜩 의심에 차서 돋보기를 노려보는 두리의 눈과 딱 마주치자 나는 순간 움찔했습니다.
“어디 어디? 음마 진짜네? 칠이 벗겨져 있어”
한나가 흥분하며 동생의 돋보기를 뺏어들었습니다. 한나 역시 두 눈이 가운데로 몰리도록 열심히 돋보기를 노려보는 바람에 내 얼굴은 홍당무가 될 뻔했습니다.
‘경기1다 8537 흰색 칠 벗겨져 있음. 오른쪽 문 찌그러짐. S떨어져있음. 아주 수상함.’
한나가 수첩에다 열심히 적어 넣자 두리도 자기 수첩에다 누나 것을 그대로 베꼈습니다. 이로써 수상한 자동차들은 열세대로 늘어났습니다. 둘은 지금 지구평화를 위해 수상한 자동차들을 색출해내는 임무를 수행 중입니다. 조금이라도 흠집이 난 차를 발견하면 당장 폭탄이라도 터질 것처럼 호들갑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나를 꼬마도깨비쯤으로 여기고 있겠죠?
나는 아이들이 아끼는 장난감에 마음이 되어 깃드는 ‘알갱이 요정’입니다. 천사들이 날갯짓을 할 때 그 광채 부스러기에서 때때로 생겨나는 너무나 작은 존재이지만 나름대로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있지요. 아이들이 사랑하는 곰돌이나 장난감자동차에게 말을 걸었을 때 그것들이 마음도 가지지 않은, 단지 헝겊이나 플라스틱일 뿐이라면 얼마나 쓸쓸한 일일까요? 그런 쓸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게 우리 알갱이 요정들의 임무죠. 나도 이곳에 떨어지기 전에는 한창 인기높은 엽기토끼의 맘이 너무너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했었지만 두리의 돋보기 쪽을 택한 거예요.
엄마가 편찮으신 한나와 두리의 친구가 되기로 한 게 내가 요즘 연속극을 너무 많이 봐서일 거라고는 절대 생각지 말아주세요. 하기야 구름 속에서 방향을 잃은 전파들을 붙잡아 켜보면요, 연속극 속 엄마들은 모두 아프고 아이들은 또 모두 가엾게 울어요.
그러나 한나와 두리는 울지 않아요. 내가 본 한나와 두리는요, 날이 어둑해지고 땅거미가 지면 어쩔 수 없이 먼 하늘이 바라봐지고 눈물이 맺히려고 그러지만요, 한나는 두리 때문에, 두리는 누나 때문에 울지 않아요. 울지 않으려고 마음만 굳게 먹으면 씽긋 웃을 수도 있어요. 어떤 땐 그런 모습이 더 쓸쓸해 보이기도 하지만.
지구평화를 지키는 놀이는 어찌나 재미나던지! 두리 손에 끌려 집으로 들어오면서도 내 눈은 여전히 수상한 차들의 흔적을 쫓을 지경이었다니까요.
막상 돋보기 맘이 되고 보니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음…. 이건 진짜 비밀로 하려했는데. 돋보기가 된 후로 사람들 속마음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 있죠? (여러분도 조심하셔야할 걸요?)
“노할머닌 엉터리야. 이렇게 햄만 반찬으로 먹다가 우리가 병 걸려 죽으면 어떻게 해?”
증조할머니가 차려주신 저녁상을 대하자마자 한나가 잔뜩 심술을 냅니다. 증조할머니는 자기들과 통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이고오… 점슴 때는 또 햄 반찬 없다고 난리디만….”
내가 보기에도 노할머니는 이 팔딱거리는 변덕쟁이들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늙으신 것 같습니다. 그저, 어린 것이 엄마가 곁에 없으니 마음이 안 좋아서 그러는 것이리라 이해하십니다.
뻐꾸기시계가 아홉시를 알릴 때까지 나는 아이들과 만화영화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나가 한순간에 텔레비전을 탁 꺼버리고 촛불을 켜지 뭐예요. 한창 재미있던 차에 막 화까지 나려 하잖아요. 두리도 나처럼 미련이 남는지 꺼진 텔레비전 쪽으로 자꾸 고개가 돌아갔어요.
“철딱서닌 없어도 정성이 용하구마는.”
기도를 해본 적 없으신 노할머니도 어린것들이 기특하다 하셨습니다.
“하느님. 우리 엄마가 얼른 낫게 해주시고 덜 토하게 해주시고 과학자들이 얼른 암을 치료하는 약을 발명하게 해주시고 우리 집이 계속 부자라서 약값이 없어지지 않게 해주세요. 아멘.”
두리가 목청을 높여 멋지게 기도하자 한나가 거실 구석에 계신 노할머니에게 들리지 않도록 작게 기도를 보탰습니다.
“할머니가 얼른 추수를 끝내고 오셔서 노할머니가 다시 시골로 가버리시도록 해 주세요, 아멘.”
나는 기도가 끝난 줄 알고 이젠 텔레비전을 켜주겠구나, 좋았는데 진짜 기도는 그때부터 시작이지 뭐예요? 가만… 저런! 한나와 두리는 자기들이 애쓰는 만큼 엄마가 덜 아프실 거라 믿고 있군요! 저렇게 다리가 저려 비비 꼬아가며 하는 기돈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오늘도 아이들은 씻지 않고 잠들어버렸습니다. 이 돋보기의 눈에는 커다랗게 확대되어 보이는 꼬질꼬질한 땟자국이 침침한 노할머니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잠든 얼굴을 그 거친 손으로 쓰다듬으며 고운 것들 불쌍한 것들, 하시더니 불을 꺼주십니다.
시험이 끝난 놀이터는 아이들로 넘쳐납니다. 그동안 한나와 두리를 빼고는 전부 엄마들 손에 끌려 들어가 나름대로는 시험공부를 한다고 애를 먹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그네를 타고 어지럽도록 뺑뺑이를 돌아도 성이 차지 않는 모양입니다. 5학년 형 하나가 좀 더 재미있는 놀이는 없을까 궁리 끝에 경비실 앞에서 신문지를 한 아름 가지고 왔습니다.
“너 돋보기 좀 줘봐.”
5학년 형이 나를 가져가 해를 비추자 견딜 수 없이 따끔하고 환한 빛이 내 몸을 통과하더니 마침내 구겨진 신문지에 불이 붙었습니다. 빙 둘러서서 신문지를 던져 넣던 아이들의 마음에 무서움이 일도록 불은 점점 커졌습니다. 겁 많은 한나와 두리는 이미 일찌감치 물러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아이고! 이게 무슨 변이람! 아저씨! 빨리 물 좀 가져오세요!”
장보고 돌아오던 엄마들이 기겁을 했습니다. 경비아저씨가 물통을 가져오고 불을 끄는 동안 아이들은 와르르 흩어졌습니다. 연기를 보고 뛰어나온 엄마들이 제각각 아이들을 찾기 바빴습니다. 다행히 신문지 외에는 탄 게 없다는 걸 알고서야 엄마들은 아이들을 꾸짖기 시작했습니다.
“너희들이 한 짓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
그런데, 불은 무엇으로 붙였느냐는 엄마들의 채근에 아이들이 모두 두리의 돋보기, 즉 나를 가리키는 게 아니겠어요? 나는 나도 모르게 두리 엉덩이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엄마들이 두리를 야단치기 시작하자 한나는 억울해서 말보다 눈물을 먼저 흘렸습니다. 그렇지만 3학년 4반 반장인 한나가 그냥 그렇게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아줌마. 우리 두리가 그런 거 아녜요. 저기 저 오빠가 두리 돋보기로 불붙인 거란 말예요.”
“정말 네가 그랬냐?”
5학년 형의 엄마가 다그치자 그 형은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우리 애는 아니라는데?”
짜증스런 아줌마의 목소리에 한나는 비겁한 5학년 형을 뚫어질 듯 쏘아보았습니다. 그 자리에 역성 들어줄 엄마가 계시지 않다는 사실이 서럽기만 했습니다.
“얘네 엄마 요즘 병원에 들어가 있잖아….”
“그렇다고 애들을 이렇게 방치해서야 돼? 누가 화상이라도 입었음 어떡하고?”
엄마들은 쯧쯧 혀를 차면서 목소리를 줄이는 척만 했지, 한나와 두리에게 다 들리도록 쑤군거렸습니다.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그 자리를 떴습니다.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숨까지 가빠졌습니다. 냉랭한 눈으로 돌아서며 쟤들하고는 놀지 마, 하는 엄마들 마음이 다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말로는 불쌍하다면서 한나와 두리에게 마치 위험팻말이라도 붙은 것처럼!
이럴 때보면 사람들은 꼭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동물 같습니다. 동물들은 약한 동물을 기막히게 알아보니까요. 병들거나 약하다 싶으면 은근히 따돌리거나 쫓아냅니다. 사람들이 동물처럼 그래서는 안 되는 거 아녜요?
그날 밤 한나는 의사가 되기로 한 오랜 꿈을 바꿨습니다. 정의로운 판사가 되어서 이 억울한 일을 다시 재판하고 아줌마와 불붙인 오빠를 꼭 감옥에 보내버리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한나의 화난 눈을 보는 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오늘은 엄마가 치료를 마치고 간병하던 아빠와 잠시 외출을 나왔습니다. 하룻밤만 자고 다시 입원하셔야 하기 때문에 한나와 두리는 기쁘면서도 또 미리 불안한 마음입니다.
“엄마. 우리 두리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아줌마들이 막 뭐라 그러는 거 있지?”
이 억울한 일을 일러바치고 싶어서 한나는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엄마는 한나 편도 들어주시지 않고 가만히 듣고만 계십니다. 아이들을 보호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 아파서 엄마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세상에 사람들이… 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죠?”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아빠가 위로했습니다. 한나는 나중에 판사가 되어 복수하겠다는 결심을 엄마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엄마는 생각에 잠기셨습니다. 엄마도 순간 많이 화나긴 했지만 한나의 미움이 마음에 걸리신 모양입니다.
“그러지 말고 이렇게 복수하자. 우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 걸 보여주는 거지. 네 친구 중에 엄마가 아픈 애가 생기면 네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주고 엄마도 그 친구 임시 엄마가 되어주고.”
한나의 고개가 끄덕거려졌습니다. 나는 한나의 꿈이 슬그머니 다시 바뀌는 걸 기쁜 맘으로 지켜보았습니다. 한나는 늘 한솔소아과 선생님처럼 예쁘고 친절한 의사선생님이 너무너무 되고 싶었거든요.
오늘은 촛불을 켜고 엄마와 아빠도 함께 앉았습니다.
“이렇게 날마다 기도했어? 텔레비전도 안보고? 그래서 내가 덜 아픈 거였구나!”
눈물이 글썽하도록 기특해하시는 엄마 앞에서 한나와 두리는 딴 날보다 더 많은 기도를 생각해내고 더 길게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고 엄마가 침대로 가서 누우시자 한나와 두리는 침대로 달려가 엄마 양 겨드랑 사이를 파고들었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엄마 날개 한 쌍인 것처럼. 두리는 누운 채로 자기가 쓴 동시를 목청을 돋우어 읽어드렸습니다.
“엄마가 병원에 갔다.
엄마는 외롭겠다.
엄마가 없으니 공부나 해야겠다.”
나는 정말, 두리가 그처럼 동시를 잘 쓰는 줄은 몰랐습니다. 내가 두리의 돋보기라는 게 자랑스러울 정도입니다. 금방이라도 울듯이 듣고 계시던 엄마가 소리 내어 웃었습니다. 오늘밤 엄마는 정말 행복해 보입니다.
아침이 오자 엄마는 다시 병원 갈 채비를 합니다.
“엄만 언제 병원 안 가도 돼?”
학교를 가려다말고 현관에 붙어 서서는 두리가 눈물을 꾹 참고 물어봤습니다.
“우리 두리, 힘들어도 조금만 더 기도해 줄래? 엄마도 열심히 낫도록 애쓸게.”
두리가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낮에는 지구를 지키고 밤에는 기도로 엄마를 지키는 게 요즘 두리의 일인 걸요.
한나와 두리는 힘없이 아파트를 나왔습니다. 그런데 두 아이는 갑자기 경비실 앞에서 딱 얼어붙었습니다. 오늘은 진짜 운이 없는 날입니다. 엄마도 다시 입원하셔야 되고 불을 낸 그 5학년 형과 아줌마를 딱 마주치기까지 했으니까요.
“안녕하세요.”
어? 한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인사가 자동으로 막 나오잖아요? 생각 없는 두리는 물론 제 누나랑 합창이고요. 이런 걸 보면 습관이란 참 무서운 겁니다. 어른만 보면 완전자동으로 고개가 꺾이고 ‘안녕하세요’가 나오니까요.
“응….”
아줌마가 쑥스럽게 인사를 받아줍니다. 그러고는 머뭇거리다 5학년 형을 꾸짖습니다.
“얘들 인사하는 거 좀 봐라. 5학년이나 된 것이….”
5학년 형은 툴툴거리다 괜히 애꿎은 꿀밤까지 벌었습니다. 입안에서만 뱅뱅 돌다가 끝내 나오지는 못했지만 아줌마는 지금 한나와 두리에게 사과를 하고 싶으신 겁니다. 5학년 형이 어젯밤 집에 들어가자마자 금방 자수를 했거든요.
아줌마는 등교하는 한나와 두리 뒷모습을 멍하니 보고 서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할 걸… 끝내 말하지 못한 그 얼굴이 씁쓸합니다. 아줌마는 자기가 쓰레기 버리러 나왔다는 사실도 깜박 잊고 집으로 도로 가져가고 있습니다. 하 참… 조금 안된 생각이 드는데요?
아줌마, 한나는 벌써 아줌마가 미안해하신 걸 알아요, 한나가 얼마나 영리한데요. 한나 걸음걸일 보세요, 저렇게 나비처럼 나풀거리잖아요?
엄마가 안 계시니 한나와 두리의 지구 지키기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자동차들은 더 이상 수상쩍은 점을 발견할 수 없었으므로 이번에는 지하주차장으로 진출했습니다. 재활용품이 빼곡히 들어찬 지하창고는 정말 수상쩍은 점의 집합체였습니다. 헝겊을 친친 감은 파이프들과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 모든 것이 지구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나와 두리는 심각한 얼굴로 수상한 점을 수첩에 모두 적었습니다. 이제 수첩도 몇 장 남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안 계셔도 또 하루해가 갑니다. 나도 이제 땅거미가 지면 먼 하늘이 바라봐지고 눈물이 맺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도 한나와 두리처럼 절대 울지 않아요. 우리는 한 팀이니까 서로를 지켜줘야 하거든요.
엄마가 병원으로 가신 첫날밤은 언제나 더 길고 어둠도 더 짙게 까만 것 같습니다.
“두리야. 우리 바깥에 나가자!”
아홉 시가 되자 한나는 두리에게 오리털 점퍼를 입혔습니다.
“왜?”
눈꺼풀 근처까지 잠이 놀러왔던 두리 목소리에 불만이 대단합니다.
“그냥 기도하는 것보단 추운 걸 참고 기도하면 하느님이 더 잘 들어주실지도 몰라.”
요즘은 누나 말이면 무조건 믿어지는 게 두리입니다. 나까지도 하는 말마다 엉뚱한 한나 말이 이제는 믿어지려고 합니다. 한나와 두리는 졸고 계신 노할머니를 깨우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놀이터로 나왔습니다.
계절은 이미 초겨울로 접어들었습니다. 미끄럼틀 아래서 기도하는 두 아이 몸이 달달 떨립니다. 기도하는 소리도 함께 달달 떨려서 저절로 하늘로 막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렸던 친할머니께서 추수를 끝내고 올라오셨습니다. 아이들이 환호를 울리며 할머니를 맞이하는 모습을 노할머니는 웃으며 지켜보았습니다. 한나와 두리는 정말 철딱서니가 없습니다. 좋은 티를 조금만 덜 내면 어디가 덧나나요? 노할머니가 쓸쓸해 보여서 내 마음이 다 짠한데….
친할머니가 오시자마자 바통을 넘겨주듯 한나와 두리를 맡기고 노할머니는 떠나려 하십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한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노할머니가 시골로 가시면 속 시원할 것 같았는데 막상 가신다니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젯밤 짐을 챙기시는 걸 볼 때부터 목구멍에서 슬픈 것이 자꾸 올라오려 했거든요.
“내가 노할머니 미워해서 지금 가는 거지?”
“하이고… 느그 할매가 여그 와서 촌집이 텅텅 비었는데 곡슥이며 짐승들은 누가 지킬끼고?”
노할머니는 만 원짜리 한 장씩을 한나와 두리 손에 쥐어주시고는 저금해라 하셨습니다. 한나와 두리가 훌쩍거리며 노할머니 품에 안겼습니다. 그러게, 날마다 심통 부리는 걸 보면서 저렇게 후회할 날이 올 줄 진작에 알아봤다니까요?
한나와 두리는 노할머니가 타신 택시가 까만 점이 되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듭니다. 나도 눈물이 나와서 눈이 다 흐릿해지려는데 한나와 두리가 갑자기 문방구로 뛰어갑니다. 어어? 노할머니가 저금하라고 주신 돈으로 수첩을 사네요? 나도 지구를 지키는 놀이를 무척 좋아하기는 하지만 한나와 두리는 참 해도 너무합니다. 노할머니 때문에 울고불고 한 지 십 분도 채 안됐잖아요?
“오늘은 305동을 조사한다!”
한나로부터 새로운 임무가 주어지자 두리가 옷소매로 나를 반짝반짝하도록 닦습니다. 둘은 바람소리가 나도록 달리기 시작합니다. 나는 아직도 좀 슬픈데 둘 다 어느새 노할머니를 까맣게 잊었나 봐요. 내가 이 배신자들하고 한 팀이라니….
…
…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재미나도 나까지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아! 난 진짜 갈등이에요! 이 순간 나는 정말 이러는 내가 너무너무 싫어요! 의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없는 한나와 두리를 따라가면서 내 가슴이 왜 이렇게 사정없이 뛰기 시작하는 거예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