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과 책 만드니 얼마나 좋던지”
“한 작가의 원고를 열 명의 편집자에게 주면, 열 권의 다른 책이 나옵니다. 누구는 문고판을 만드는데, 누군가는 양장본을 고집하겠죠. 독자들은 책의 내용을 보지만, 실은 읽는 동안 그 책의 형식도 함께 수용하게 됩니다. 작가와 독자가 가장 깊숙히 교감할 수 있게 하는 책의 ‘형식’은 무엇인가, 그것이 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고민입니다. 고민의 결과는 편집자마다 다르고요.”
도서출판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작가와 독자를 잇는 다리이자, 출판계의 ‘보이지 않는 손’인 편집자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편집자의 일은 ‘어떤 책을 누구와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기획 단계부터 시작된다. 평소 책을 만들고 싶었던 작가를 접촉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의 최근 관심사를 반영한 책의 얼개를 미리 짠 뒤 적합한 작가를 물색하는 경우도 있다. 원고 집필이 시작되면 작가와 수시로 연락하고, 완성된 원고를 교정하면서 책 내용에 맞는 판형, 글씨체, 디자인, 마케팅 방향까지 정한다. 편집자는 “집필을 제외한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취향과 개성이 묻어나는 책을 한 권, 두 권씩 늘려나가는 것은 편집자의 가장 큰 보람이다. “평소 박찬욱 감독의 팬이었는데, 이번에 절판됐던 그의 영화평론집 개정증보판과 자전적 에세이를 동시에 펴내게 됐어요. 나를 매혹시킨 사람과 더불어 문화 상품의 ‘생산자’가 되는 기쁨, 그 맛에 편집을 하는 거지요.”
정은숙 대표는 올해로 편집 경력 20년을 자랑하는 베터랑이다.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뒤 기자가 되려 언론사에 입사했다가, 책 만드는 부서로 발령을 받은 것이 첫 인연이었다. 이후 고려원, 삼성출판사를 거쳐 세계사 편집장과 열림원 주간으로 일했다. 지난 2000년 출판사 마음산책을 꾸린 뒤에는 “사진과 그림이 가득한, 갖고 싶은 문학책”과 “이야기가 있는, 읽고 싶은 예술서” 75권을 펴냈다. 경력을 쌓아 그 분야 편집자으로 전문성을 인정받으면, 독립해서 자신의 출판사를 가질 수 있다는 점이 편집일의 또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책을 만드는 동안 스스로에게 물어요. 이 책이 정말 세상에 필요한 책이야?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드는 책이야? 편집자의 취향은 언제나 독자와 닿아있어야 하죠. 세상과 사람에 대해 끊임없이 참견하려는 태도, 말하고 싶어하는 욕망, 결국 글이 우리를 구원하리라는 믿음만이 편집자의 엄청난 노동 시간과 노동량을 보상하죠, 조금 과장하자면.”
(한겨레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