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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에서는 장애인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이 말을 못하는 장애아들을 성폭행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공간적 배경인 무진시에서 그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고 그것을 문제화 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커다란 바위를 계란으로 깨뜨리려 했다는 암담함이 묻어나온다.
유리와 연두 그리고 민수 그리고 자애학교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실화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사회 복지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짓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두 얼굴을 갖고 살까 하는 생각을 했다.
차라리 나 나쁜 놈이오 하며 사는 게 낫지. 좋은 얼굴 좋은 풍채 좋은 인상으로 뒤로는 갖은 술수를 다 쓰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는 용케도 버티며 살아가고 혹은 가끔 비슷한 범죌르 저지르며 죄를 빌기도 하겠지.
읽으면서 내내 아~ 하는 하지만 그렇겠지 하는 내 나이에 걸맞는 한숨이 베어나왔다. 도가니 딱 맞는 표현이나 그 도가니 속에 일조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참 무섭다.
우리 사는 세상은 어떨 때 늪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난 그것을 고등학교 처음 느꼈다. 고 2 역사반 서클에 가입해서 여러 시대의 역사를 그룹별로 공부하고 발표하던 어느 날 서클 친구 한명이 현대사도 하자고 제의했고 다수결에 따라 그리하기로 했으며 공교롭게도 현대사 중에 교원노조가 들어갔고 교원노조 발표 조가 우리 조가 되었다. 더 공교롭게도 조장이었던 내가 발표를 맞게 되었다. 사실 우리 조는 그다지 협조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교원노조나 현대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던 나는 반 친구들에게 지난 신문 중 교원노조가 나온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당시 우리집은 신문 조차 배달해 읽지 않았다.
다시 말해 나는 교원노조 자체도 몰랐고 그저 선생님 좋아라 쫓아다니며 얼굴 붉히고 소설이나 읽고 그림이나 그리던 사춘기 소녀에 불과했다. 그리고 발표 일주일 전부터 나는 전에 안하던 공부를 해야 했고 발표에 민감했기에 달달달.
차트에 내 나름대로 정리했다 . 교원노조의 역사, 변천사,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등 생각해 보면 지금은 전혀 기억도 안나는 것들인데 열심히 정리하고 발표해서 박수를 받았다. 발표가 끝나고 나는 짐하나를 덜은 느낌으로 차트를 둘둘 말아 개구쟁이 아이처럼 친구들과 칼싸움을 했고 아무 생각없이 학교 휴지통에 버렸다.
그리고 일주일 뒤 매번 토요일마다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시험을 치루는 날 교감선생님이 우리반으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다지 뛰어난 학생도 아니었고 문제아도 아니었기에 교장이나 교감 선생님이 나를 부를 일은 없었다. 나를 데려간 곳은 이사장실.
이사장님은 처음 내게 시험 안봐서 좋으냐며 여러가지를 물으셨다. 내가 일학년때는 방송부와 문예부 두 서클을 하다가 일이 있어 둘다 탈퇴를 했는데 정작 내 꿈이 무언지 나는 대학교를 어떤 과를 가고 싶은지. 나는 국문과나 사학과를 가고 싶다고 했고 글쓰거나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때 내 표정은 자신만만 그리고 꿈에 부풀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새 돌변한 이사장님의 표정과 말투를 나는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사장님은 내가 쓰레기통에 버린 차트를 보여주셨다. 그리고 하는 말 .
"이걸 누가 써 주었니?" /"그건 제가 썼는데요?" /"그럼 이 내용은 누가 주었니?"
"그 내용은 제가 신문을 정리했는데요?"
이사장님은 너희 아버지는 무슨 일을 하시냐? 어머니는 삼촌은 등등 다양한 가정환경을 물으셨다. 솔직히 다 말한 다음 들은 말은 너무나 다정한 그리고 웃음 까지 띄며
"우리 상미가 거짓말을 하네!"
아 지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때 난 고2였다. 나는 그제야 이사장님 책상 주변을 보았다. 나도 잘 못보았던 학적부을 비롯하여 내 모든 자료가 와 있었다. 나는 직감했다. 보통 사안이 아니란 걸. 다행 난 무사히 풀려 났고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말했다. 저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국문과 사학과 가고 싶다지만 갈 만큼 공부도 잘하지 못하고요. 우리 부모님과 삼촌은 ~ 사실 우리 부모님과 삼촌은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오셨지만 그런것을 알거나 이해하기도 벅찬 분들이다. 만약 우리 부모님이 대학물이라도 먹고 화이트 칼라이거나 선생님이었다면
모두 해직에 난 아마 무기정학 혹 유기정학? 난 이사장실을 나와 교무실을 지날때 역사 클럽 선생님이 담배를 피우시는 걸 보았다. 그 얼굴에는 엄청난 고뇌가 보였다. 저 분 혹 나 때문에 자칫 학교를 나가셔야 할 수도 있었겠구나.
이때의 기억이 주인공 강인호가 전교조 교사라는 이야기를 할 때 갑자기 떠올랐다. 정말 늪과 같은.
어쩌면 나역시 어느 순간 넌 고등학교때 교원노조에 참가한 아이가 아니야 할 지도 모른다는.
성폭행이 가장 첫째 도가니라면 발을 담글수록 수렁에 빠지게 만드는 거짓과 협조의 연결고리들이 더 엄청난 도가니다. 그것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는 그래도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언급한다.
그리 안하면 이 책이 어찌 끝나겠는가 싶다마는
나 역시 덤벼들어 싸움 엄두가 안나는 세상에서 우리 딸 태은이가 살아갈 이 세상을 어찌 보여주고 어찌 이해시켜야 할지 책장을 덮고서 한참 생각했다.
공지영. 이작가가 왜 주목받는지 알듯하다. 그저그럴듯한 연애 소설담을 썼다면 난 아마 그러려니 했을 거다. 하지만 이 작가는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작가로서 어떤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직시하고 그런 삶을 살아가는 듯하다.
힘겹게 읽었고 함께 분노하고 지금은 마음을 추스리고 있다.
도가니.
아직은 헤어나오지 못한 늪.
그래도 그런 사회가 되지 않도록 다 함께 노력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