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에 잠겼다.
그 애는 왜 이 동네 사는 걸까. 그 애는 내가 이 동네 사는 걸 안다. 시간이 흘렀으니 이사갔을거라 생각하고 사는 걸까.
아니면 만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면 나와 한 동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싶어서? 갑자기 같은 하늘 아래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그애가 그 노래를 불렀었다.
10년 전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평소와 같이 지루하게 흘러가는 수업시간이었다.
나는 내 담임반이 아니어서 그다지 주목하지 신경쓰지 않고 수업을 했다.
그러다 문득 어느 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선아?’
만약 선아가 맞다면 선아는 내가 수업 들어가는 반 아이가 아니므로 여기 있어서는 안 되는 아이였다,
그애는 나를 잠깐 쳐다보다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짓굿은 아이 하나 말한다.
“선생님 출석 불러요.”
나는 부르지 않았다. 아무리 내가 초보 선생이라지만 아이들 수에 말려들만큼 바보도 아니다.
“그럼 노래시켜요.”
아이들은 웃었다. 서로 키득거리며. 선아만 얼굴이 빨개졌다.
“미현이 노래시켜요.”
“미현이?”
“미현이 누군데?”
아이들은 일제히 선아를 쳐다보았다.
“쟤가 미현이에요.”
나는 마음을 바꾸었다. 혼내서 상처줄까도 겁났지만 노래정도야.
“그래 미현이 나와서 노래해.”
아이들은 마다하는 선아를 끌어냈다.
마지못해 선아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너무 진하지 않은 향기를 담고
짙은 갈색 찾잔에 다소곳이
말을 건네기도 어색하게
너는 너무도 조용히 지키고 있구나.
노고지리의 찻잔이었다. 우리 세대나 알까하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요즘 아이 선아가 부르다니. 이상하게 노래가 와 닿았다. 아이들도 조용히 경청하는 분위기였다.
‘앵콜.’
아이들은 수업하기 싫은데 잘되었다하는 마음으로 앵콜을 외쳐대었고 선아는 마다하며 들어가려했다.
웬일인지 장난기가 발동했다.
“미현이가 맞으면 앵콜할 텐데,”
선아가 나를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선아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박수를 쳤다.
선아는 나와서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생각 만으로도 나는 좋아.
아까와 다르게 음색이 떨렸다.
그 노래가 같은 하늘 아래라는 노래라는 걸 그때 알았고 그 뒤 다시 선아로부터 그 노래를 듣지는 못했지만 가끔 나는 그 노래가 생각나곤 했다.
같은 하늘 아래.
어찌되었던 선아와 나는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
같은 하늘 아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다. 그애의 마음을.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말한다.
“늦었네. 오다 누구 만났어?”
“응? 응. 제자를.”
“그래? 이 동네서? 데리고 오지. 저녁이라도 같이 먹게. 몇 살인데? 몇 년 된 제자야?”
아내는 그 제자가 여자라는 그것도 아이 엄마라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 엄마면 더 편한가? 괜히 내 발이 저려 그냥 그렇게 만나 헤어졌다고 말을 돌렸다.
아내와 나는 30대 후반에 만났다. 만나자 마자 아이도 내리 둘을 낳고 살고 있다. 30대 후반 40 가까운 나이에 결혼했으니 풋풋한 맛은 없어도 그냥 저냥 동료 같은 느낌이 있다. 나이가 있어서 인지 아내는 선생의 부인 자리를 무척 잘 해내었다. 가끔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제자들도 싫어하지 않고 대접하고 오히려 나보다 더 친하게 지낼 때도 있었다.
아내도 선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다른 선생님들이 우리 집 집들이 와서 이야기를 했기도 했고, 집에 선아가 내게 준 물건 곳곳에 이름을 남겨서이기도 하다. 아내는 선아를 극성 팬정도로 알고 있다.
극성팬. 선생님을 좋아하는 극성 여고생.
나도 한 때 선아를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