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선아야, 선아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교무실을 나갔다. 짓궂은 여학생들이 떼거지로 몰려 있다.
"선아야, 선아야!"
한 여학생이 대담하게 내게 접근한다.
"선생님 선아 보셨어요?"
"선아? 선아가 누군데?"
"저기요 저기 있는 쟤가 선아예요."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어떤 아이 하나 후다닥 도망친다. 비적 마르고 구부정한 등. 나는 금세 눈치 챘다. 또 선생님 좋아하는 아이 하나 생겨난 게군.
그 뒤 매 쉬는 시간마다 선아라는 아이의 이름만 교무실 복도에 울려 퍼졌다.
'선아.'
나는 신임교사였다. 당연히 남고나 남녀공학으로 갈 줄 알았는데 여고로 오게 되었고 27세 젊은 나이에 여고생을 가르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누누이 선배 교사들에게 들었다.
"차 선생, 여자 아이들은 인사해도 어지간해서 받아 주지도 마. 이름도 특별히 부를 일 아니면 부르지 말고. 왜냐고? 말도 마 작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 웬 미친 애 하나가 글쎄 상상임신까지 했거든."
"네? 설마요.“
“ 어디 넘사스러워서 쉬쉬하고 말도 못하는 이야기야. 그러니 내 말대로 해. 여자애들 이름 불러주고 웃는 얼굴로 인사 받아주잖아? 그럼 아이고 저 선생님이 나 좋아하는 구나. 생각해. 마침 그 선생이 지가 좋아하면 이제 둘이 사랑하는 사이되었다 소문퍼지고, 싫어하면 별꼴이다 하다못해 ‘변태다’까지 소문 퍼지는데 초급 선생인 차 선생이 그걸 어떻게 해내겠어? 절대 여학생이고 여고라 쉽게 보면 안돼. 애들이 가끔 선생 머리 위에 있다니까."
말만 들어도 무서운 일이다. 대학에서 동기 여학생이 임신을 해도 난리날 판에 고등학생이 상상임신을.
함께 초임으로 온 전 선생은 별 신경을 안 쓴다지만 나는 신경이 쓰였다.
내가 맡은 반은 2학년이었다. 우리반 아이들 하나하나 볼때 정말 이쁘고 청초하다. 하지만 뭉치면 어찌나 개구진지. 이건 여고생 맞나 싶다.
하지만 여고생이 확실한 게 순수함은 곳곳에서 묻어난다.
수업할 때마다 탁자에 생화가 꽂혀 있고 막 탄 커피가 올려져 있다. 고맙단 표시 또한 따로 하면 안 된다고 누누이 설명을 들었기에 누가 올렸는지도 모르고 그저 받아먹으면 된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면 긴긴 복도에 수많은 행렬, 마치 80년대 대통령 방한 행사에 깃발을 흔들듯 모여 인사를 한다. 하지만 외면하고 지나가는 나.
또 여지없이 들리는 이름
"선아야, 선아야!"
나도 모르게 선아라는 아이가 왠지 신경이 쓰였다. 누구란 말인가 .
하지만 들어가는 6개반에서 특이하게도 선아라는 아이는 없었다.
'흔한 이름인데.'
궁금한 나는 교무실 옆자리 미술 선생님한테 물어보았다.
'"미술선생님은 혹시 선아라는 아이 아세요?"
"선아? 음 몇 학년인데요?"
"아 , 글쎄요 몇 학년 몇 반인지 전혀 모르고요. 제가 어딜 가기만 하면 아이들이 선아야하고 불러대요. 그냥 궁금해서요."
미술 선생님은 웃음을 지었다.
"그냥 그러려니 하시라니까요. 학생부장 선생님이 아이들이 하는 행동 일일이 신경쓰다 수업도 못할거란 말 못들으셨어요?"
나는 그렇죠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선아라면 2학년 아이 같아요. 3학년에도 있긴 한데 그 애는 아닐것 같고, 내가 아는 2학년 아이가 맞다면?"
"선생님은 일주일에 한번 들어가시는데 아이들 이름 다 아시나봐요.?"
"아니, 그 선아는 좀 특별해요. 그림을 그리고나 작품을 만드는 게 뭐랄까 느낌이 있고 탁월해요. 하는 작품마다 만점을 주는 아이는 그 아이뿐이니까요. 그래서 사실 내가 눈여겨 보는 아이에요. 그런데 그애는 다른 선생을 좋아하는데?"
"아, 그냥 하도 아이들이 이름을 불러 제키기에 궁금한 거뿐이지요. 뭐."
미술선생도 웃으며 갑자기 선아란 아이를 날마다 내가 만났을 거라 말했다.
"네? 제가 가르치는 반에 없던데요."
"아 그게 그 애가 교무실 청소를 해요. 아침마다. 내가 여러 번 봤는데 내 자리랑 차선생 자리 쓰레기통 비우는 거."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아침 쓰레기통을 비운 아이. 걸레로 책상을 닦던 아이, 말도 없던 아이. 맞아 그 아이도 학생이었지.
하지만 그뿐 나는 선아를 별로 머리에 담아두지 않았다. 초임교사의 하루하루는 너무 바빴고 아이들은 그런 나를 마치 시험하듯 했다. 다른 반 아이에게 까지 미칠 여력이 내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