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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순례자의 책을 읽으며 책 자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되짚어 보았다.
책은 나에게 어떤 것이었나?
내게 첫 책이 무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두 당여하지 할 것이다. 첫 책을 어찌 기억해? 하지만 내겐 좀 다르다. 난 어릴 때 집에 그림책 하나 없었고 그 흔한 한글 책 하나 없었다. 엄마랑 아기랑이라는 잡지 미슷한 책이 아마도 첫책인 듯한데 그 책 속에 여러 가지 직업 중에 무엇이 되고 싶냐고 부모님이 물으셨고 나는 화가가 되고 싶어 했다.
내게 했듯 누구에게 했듯 약속은 약속이어서 나는 아주 오래 도록 화가가 되고 싶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는 콩쥐 팥쥐와 김유신 같은 책이 집에 왔는데 모두 내 나이에 비해 턱없이 글씨가 많은 책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몇 달에 한두 권 씩 생기는 책 (모두 어디서 얻은 책 )은 내게 단물과 같아 외워 버릴 지경으로 읽었고 나는 계림에서 나온 책들을 참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뒤 책은 내게 무척 소중해서 용돈이 생기면 책을 사서 읽었고 나중에 책이 많아지자 부모님은 안 읽은 건 처분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도서관을 만들 테야 하면서 절대 한권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하다못해 편집증이 생겨 책마다 번호를 매기고 도서관처럼 그 자리에 꽂아둔 적도 있다.
그러다 고등학교 선생님 한분이 말하기를 책은 장식이 아니라고 하셨다. 안 읽고 꽂아두거나 다 읽어서 다시 읽지 않는 책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 나는 책을 일고 계속 읽을 책이 아니면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곤 했는데 당시는 내가 준 것을 나타내고 싶어 그랬는지 내가 감동받은 부분에 밑줄을 긋거나 많은 메시지를 적어 주곤 했다.
나 역시 책을 읽을 때 밑줄을 긋고 읽은 데까지 접어 두는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책을 내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학교를 다닐 때 같은 과 남학생이 책을 읽으면서 짜증을 내었다.
그 이유는 아버님이 책을 선물해 주셨는데 그 책에 밑줄을 그어 주고 형광펜으로 색칠을 해주고 글을 써서 주었는데 책 내용이 당췌 머리에 안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 학생 말은 책을 선물로 주면 자신의 감정을 강요해서는 안되고 그저 그 자체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내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나는 그 뒤 웬간해서 책에 줄을 긋거나 낙서를 하지 않게 되었다. 특히 더더욱 그런 책을 선물하지 않게 되었다. 내 생각을 강요한다고 해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많은 갖고 픈 책이 읽고 픈 책으로 바뀌었다. 책은 갖는 것이 아니라 읽는 것이고 책은 내가 느끼는 것이기에.
순례자의 책은 매 짧은 이야기가 있고 그 다음에 책에 대한 다양한 설명이 나온다.
모두 기발하고 재미있고 놀라운 이야기인데 그에 따라 붙는 책에 대한 설명 역시 무척 놀랍고 신기하다.
가장 놀랐던 것은 붉은 도서관이었고, 죽어서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는 것도 아주 흥미로웠다.
순례자의 책을 읽으며 책을 좋아하는 이로써 책을 가지고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가 참 멋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오늘 내 책장을 둘러 본다.
아직 안 읽은 책은 없는지 또는 읽다만 책은 없는지 읽기 싫은 책은 없는지 아끼는 책 다시 읽고 픈 책은 어떤 책들인지
그리고 안 보고 꽂아둘게 뻔한 책 몇권을 포장하였다.
더 필요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