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상미"대체 언제 들어본 말인가
엄마 아빠 빼곤 듣기 힘든 말.
나는 요즘 역사 책 원고를 쓰고 있다 . 어린이 물이고 내가 맡은 분야는 고려 시대이다.
출판사에도 있어보았고 기획도 해 보았고 들어오는 일도 해 보았는데 이번 일처럼 공들이는 일은 처음이다.
이번 일은 역사학자가 기획하였고 자신의 기획의도가 흐트러지지 않게 역사 원고를 썼다. 편집자는 기획자의 의도가 흐트러지지 않게 중심을 잡으며 오랜 시간 다듬는 과정을 거쳐 내게 전해졌다.
나는 다시 그걸 재미나게 꾸미거나 스토리를 넣는다.
일정을 정해주어서 당연히 기한이 있고 그 기한은 어찌보면 아주 긴편이다. 하지만 다시 편집자와의 조율로 한장 한장 하나하나 그리고 어투와 역사 관점까지 흔들리지 않게 잡아 나가게 되어서 편집자의 공이 장난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책이 나오면 꼭 잘되길 바란다.
내가 인세로 계약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공을 들이는 책은 잘되야 하지 않은가.
이 일로 계약하러 갔을 때 나는 회의실에 있었다. 그런데 언뜻 사무실에 누군가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꽤 높은 사람인듯. 남자였고 지극한 나이.
많이 본듯한. 아는 사람같았다.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아는 사람이었다.
그분은 내가 20살 때 '시나브로'라는 시동인 활동을 했었는데 그 모임에 함께 하던 분이다.
우리 모임의 특징은 시도 당연 시지만 무엇보다 가족같았다.
오랫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고
언제봐도 반갑고 그립다.
인터넷도 핸드폰도 없던 시기에 한달에 한번 오프라인모임을 해서 꼬박꼬박 6~7년가까이 모였고 모이다 보니 결혼, 돌잔치 집들이 등등을 함꼐 했던 사이.
그러다 어느덧 점점 바빠지고 내 삶에 많은 것들이 들어차던 시기 잠시 시도 잊고 그냥 그렇게 지내다 결혼하고 아이낳고 살다가 일떄문에 찾아간 출판사에서 다시 만난 내 젊은 날의 흔적.
아니 내 어린 날 순수의 흔적.
그분은 아직 시를 쓰고 있었고
시인이었고
핸드폰에 저장된 수많은 시를 보여주고 이야기하였다.
그분은 그 출판사 부장이었다.
꽤 유명한 출판사인데 사실 출판사 그것도 어린이물을 하다보면 상업적이고 계산적으로 되기 쉬워서 시를 쓴다는 것은 정말 놀랄 만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분은 시를 쓰고 있었고 나도 다시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둘었다 .
하지만 일은 일에 충실해야하는법
잠시 내 하는 역사 원고에 해메고 있는데 며칠 전 그출판사 원고를 쓰는 다른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그 언니도 같은 동인 활동을 했지만 잠시여서 아마도 몰라본듯하다.
그 언니 말이 그 출판사 편집자가 그랬단다.
그 부장님이
"우리 상미 글 잘써?"
라고 했다고.
고맙고, 부끄럽고, 미안하다.
어깨도 무거워 진다.
오랫만에 들어보는 말 .
좋은 편집자와 좋은 기획자, 좋은 파트너, 그리고 나를 기억해주고 기대해주는 내 젊은 날의 초상.
열심히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