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물이 되어 들어왔다
넉살좋은 기름속
누런 끈적기가 달라붙었으나
섞여 들지 못한다
하나 둘씩 호기심을 굴리며
다가오는 이들
어색한 입김 속에 이리 끌려 저리 끌려
물인지 기름인지 혼미한 정신
물로 남아야 하는지 기름이 되야 하는지

어느덧
번질번질한 꾀를 배우고
누런 끈적기를 입고
기름 인양 기름 옆에 달라붙어 
기름 행세를 한다

그들 속에서
자꾸만 느끼는 것
기름은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물이라 믿어 줄 이
있을까.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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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밝은 비오는 날
활짝 열어 제친 창문가
에 붙어 앉아
빗방울을 센다

채 헤아리기도 전에 
이미 내려앉은
은죽 같은 비

가슴에 다 
받아 넣으려는 듯
턱을 괸다

비오는데
어둡지 않은 하늘
은 햇살보다
따사롭다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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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10-30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수록..마음이 편해집니다..^^

요새 새 일도 시작하시고, 이리 저리 마음 씀씀이가 많겠지만 그 곳에 여유가 깃들어 있길 빌어봅니다.
 

   진단




맨살에 맞닥뜨린 세상의 맛깔
당혹한 가슴이 한차례 밀려가면
아려 오는 상처
겹겹이 쌓은 방어벽 틈새엔 
파상풍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몸뚱지
길을 잃어 갈 때면
숨은 강단을 
송곳처럼 움켜지던 야무짐
제풀에 지쳐 길게 눕던 그림자

세상엔 정말 사람들이 많다고
하, 다르고 휴, 다르다
고개를 저으며 내민 손은 
허공 속을 가위질하고
다시는 믿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먼저 한 발 다가서는 것이 
병이었습니다

 

199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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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돌과 칼날




나는 섬세하게 반응하는 석돌
품안에 칼은 날마다 시퍼렇게 자라고
서슬이 스쳐 갈 때마다 오싹하는
매저키스트

너는 야심깊은 칼날
불타오르는 냉정한 살결로
있는 힘껏 끌어안고 
있는 힘껏 부딪힌다.

소름 돋는 향락의 소리
스르륵 스르륵
날이 설 때마다
무뎌지기도 바래 보지만
서로가 준 곳곳의 상처가 눈물겨워
핥으며 핥으며
동동거리던 나날

칼이 내게 기대고
난 칼에게 기대고
서로에게 상처 주며 굳어져 온 세월
세상에서 잔인한 사랑
얼마나 나리 나리 줄을 서랴 마는,
서로가 준 상처가 클수록
더 깊게 사랑한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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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시간에 읽는 동시 푸른책들 앤솔로지 4
이혜영 외 지음, 신형건 엮음, 성영란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가끔 요즘 국어 교과서 동시를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어릴적 달달 외우기만 해야했던 시들과 달리 말과 글이 살아 있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가 쓰는말과 글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더욱 그렇다.
교과서 동시와 그 작가의 다른 동시를 만나는 재미는 마치 시인과 편지를주고 받는 느낌이다.
그 작가의 또 다른 동시를 안다는 것은 어떤 비밀을 아는 느낌과 같다.
이혜영 시인의
담쟁이 시엔 담쟁이가 기어 올라가는 건 종을 치고 싶어서
재미있다
그런데 그 시인의 교과서 동시엔 아름다운 말이 있다
빗방울은 어디서 그네를 탈까

김용택 시인의 유명한 시 콩 너는 죽었다는 이제 처음 만난는데 그 재미가 남다르다
아주 웃기고 유쾌하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시를 많이  쓰신 김용택 시인이 저런 유머까지 갖고 계시니 샘이 난다.

아무도 없을 것 같지만은
외로운 아이의 마음을 달래주는 것같아 맘이 싱숭생숭해졌다.

소녀같은 정두리 시인은
그 소재가 소박해 보였다

내가 가장 맘에 드는 시는 이혜영 시인의 전깃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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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6-04-2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혜영 동시도 참신하더라구요. 개구장이같고요.^^;

하늘바람 2006-04-21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너무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