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전부터 교과서가 필요해서 고민중이었다

사면 싸다지만 한권이나 싸지 다 사려면 그것도 장난아니다.

그런데 미경언니가 4학년과 5학년 교과서를

구해서 택배로 부쳐주었다.

언니딸은 이제 2학년인데 동네 아줌마들을 수소문한 것이다.

택배를 받고 보니 무게가 꽤 나간다.

아무리 착불이라지만 박스에 담고 포장하는등 택배아저씨를 부르고 귀찮은 일 투성일 텐데 보내준 맘이 너무나 고맙다.

언니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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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3/29

베스트셀러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문이당)에는 이미 남편이 있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남편에게 청첩장을 내놓습니다. 남편은 처음에는 당혹해하지만 차차 그런 사태를 받아들이기 시작합니다. 나도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루어지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어느 이가 쓴 서평을 읽으니 주위 사람들이 두 번째 남편 역할이라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나요? 이 책의 유행을 보면서 철옹성 같던 일부일처제가 이제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저뿐일까요.

『브로크백 마운틴』(애니 프루,Media2.0)은 동성애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금 상영 중인 동명의 영화 선전문구를 빌리면 이 소설은 '전 세계를 벅차게 한 (두 남자의)위대한 러브스토리'입니다. 물론 이 소설은 이미지가 다층적입니다. 두 남자가 강렬한 사랑을 하던 양 치던 시절, "그들이 세상의 주인공이었고,잘못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던 것 같은 산 위에서의 시간"은 우리가 결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강력한 기억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두 남자는 엄연히 아내들이 있음에도 남몰래 사랑을 키워갑니다.

『결혼의 재발견-마케이누의 절규』(사카이 준코,홍익출판사)는 어떻습니까. 인격모독처럼 들리는 마케이누(싸움에 진 개)라는 말은 2004년에 일본에서 유행한 10대 키워드 중의 하나인데 노처녀나 이혼녀를 의미합니다. 이 책은 대단한 베스트셀러였습니다. 글쎄요,독신여성의 문제가 비단 일본만의 문제일까요. 우리나라도 독신여성들을 모두 결혼시킬 수만 있다면 심각한 주택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 않을까요.

『밤티마을 영미네집』(이금이,푸른책들)은 '20세기를 대표할 만한 10편의 우리 아동문학'에도 선정된 10만부나 팔린 그림책입니다. 이 책은 이혼가정을 다뤘습니다. 『로테와 루이제』(에리히 캐스트너,시공주니어), 『따로 따로 행복하게』(배빗 콜,보림), 『악어입과 하마입이 만났을 때』(장수경,사계절), 『난 이제 누구랑 살지?』(에밀리 멘데즈-아포데,비룡소), 『아빠는 지금 하인리히 거리에 산다』(네레 마어,아이세움) 등은 모두 이 주제를 다룬 책인데 주요한 아동전문 출판사에는 어김없이 이혼가정을 다룬 잘 팔리는 그림책이나 동화책이 있습니다.

작년에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작가 김애란의 소설집 『달려라 아비』(창비)는 아버지의 부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고 집을 나간 뒤 죽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나라 밖의 통제할 수 없는 힘이 자신의 삶을 규정하는 것에 대한 울분을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까요.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정말로 가족이라는 개념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가족의 재발견'에 값하는 주제는 이 밖에도 많습니다. 하인즈 워드,대니얼 헤니,데니스 오 등의 등장이 의미하는 혼혈 문제와 가족이 아니면서 가족처럼 살아가는 드라마 <안녕,프란체스카>의 대안가족 등도 우리가 깊게 생각해봐야 할 주제입니다.

산다는 것은 진정 무엇을 의미할까요. 앞에서 예시한 사례들은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에서는 파행적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보니 남들이 뭐라 하든 그런 삶 또한 별 것 아니더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우리는 누구나 딱 한 번뿐인 인생을 초보자로 살아갑니다. 삶이 자기 의지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요. 누구나 삶에서는 늘 초보자일 뿐입니다. 그래서 개인에게 운명처럼 다가오는 다양한 삶을 이제 서로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사게재 : 국민일보 200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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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억 원의 한 출판사와 5억 원의 200개 출판사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06/03/21

1000억 원 매출의 한 출판사와 5억 원 매출의 200개 출판사.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일까? 얼마 전 '책을만드는사람들'(책만사)에서 이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고 여러 언론에서 그 내용을 크게 다뤘다. 웅진씽크빅 출판부문 최봉수 대표와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가 양쪽의 발표자로 나섰다. 이 토론회는 잡지기획자인 내게도 너무 매력적인 주제인지라 발표문을 뒤늦게 구해 읽어보았다. 그날 참석한 사람들 몇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속마음은 똑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 대표의 주장은 '명쾌'하다. 개별 나라의 사정을 살펴보았을 때"상위 출판사의 시장점유율이 영미권의 경우 랜덤하우스 17퍼센트, 펭귄&피어슨과 사이먼 앤 슈스터가 15퍼센트 등 상위 5개 출판사가 70퍼센트 이상, 프랑스는 아세트와 비방디가 80퍼센트, 심지어 이태리는 몬다도리가 9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은"단행본 기준 상위 5개 출판사가 5퍼센트 내외다. 민음사계열이 작년에 400억 가까이 매출을 했는데, 시장 점유율은 1.7퍼센트, 1000억 출판사가 나와야 4퍼센트"에 이를 뿐이다. 그러니 규모가 큰 출판사가 나올 필요가 있다는 논리다.

물론 우리 출판계 종사자 중에 이런 주장에 흔쾌히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오히려 비난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에 대해 한국출판계가 정말로 겸허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느꼈다.

과연 한국출판은 김학원 사장의 발표문에 나와 있는 대로 "전문성의 확보와 최소한 20년, 30년을 한 분야에 매진하는 출판 인력 시스템"을 추구해 왔는가? 작년에 대한출판문화협회가 '1000명의 전문편집자를 키워야 한다'며 국가에서 100억 원을 지원하라는 이른바 '제주도 선언'을 했을 때 '지나가는 소도 웃을 소리'라고 웃고 넘겼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사 직원들에게는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제대로 된 대접을 하지 못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출판계는 인력난이 심각하다. 그런데도 '한국형 임프린트'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몇 출판사에는 경력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들 회사는 대기업 수준의 연봉과 인센티브, 그리고 상당한 자율권을 보장한다고 한다. 위즈덤하우스의 김태영 사장은 회사 경영의 다른 것은 양보할 수 있어도 55세 정년 시스템만큼은 결코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다. 지금까지 이 땅의 출판'업자'들은 그렇게 하면 회사가 망한다고 생각하고 처자식을 줄줄이 회사로 끌어들였다.

그렇다면 김학원 사장의 주장은 어떤가? 1개 회사보다는 200개 회사가 있을 때 출판물의 다양성이나 창의성, 혁신성을 추구하기 쉽다는 그의 주장은 옳다. 그의 표현대로"깊이를 통한 두터운 넓이의 개척이며 사유의 세계가 보다 전문적이면서 보다 대중적인 길을 열어갈 희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화려한 수사가 갖는 기만일 뿐이다.

지금 이 땅의 출판풍토에서는 그 같은 일이 99퍼센트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과다 할인경쟁이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는 지금 현실에서 연 5억 원 매출의 출판사가 나도 한몫하자고 나서기는, 더구나 '깊이'마저 갖춘 책을 펴내기는 10년 가뭄에 밭에서 콩 나는 것보다 어렵다.

전문기획자가 '깊이'를 지닌 책을 펴내기 위해서는 지금의 할인경쟁 체제보다는 도서정가제가 훨씬 유리하다. 그런 구조라야 자본경쟁이 아닌 질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김학원 사장은 지금까지 도서정가제는 변화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갖는 시대착오적 망상이라고 비판해왔다. 따라서 그의 이번 주장은 모순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날 이벤트의 한 참석자가 지적한 바대로 한 사람은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욕망을 숨겼지만 결국 두 사람의 견해가 같은 맥락이라는 의견에 내가 전적으로 동의한 이유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172호 발행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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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김성신|출판저널리스트 0183768027@naver.com

시공사 이동은 편집부장을 만나러 간다. 그녀는 우리 출판계에 이제 몇 안 남은 희귀한 존재다. 나이 사십 줄에 들어서서도 여전히 출판사에 적을 둔 편집인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다들 이러저러한 이유로 사십 줄에 들어서기도 전에 출판계를 떠나기도 했고 출판경영인이 되기도 한다. 젊고 의욕 넘치는 출판경영인이 많아지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오륙십 대의 노련한 전문 편집인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것이 늘상 우리 출판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곤 하지 않는가.

이동은. 1967년생. 올해로 마흔의 나이. 생물학적인 연령이 결코 많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 출판계에서 편집자로서는 많은 나이다. 그녀는 십수 년을 출판현장에서 편집자로 일해 왔고 나름의 감각을 유지하면서, 부침 없이 좋은 기획들을 선보여 왔다. 그녀를 만나면 출판 편집인의 삶이 어떤 것인지 우선 묻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절대 지치는 법 없이 꾸준하게 뭔가를 이루어나가는 에너지의 원천도 알고 싶다. 이제 숨을 고르며 그녀를 기다린다.

김성신 (이하 김) 반갑습니다.
이동은 (이하 이) 오래간만이에요. 근데 무슨 인터뷰? 내가 그럴 만한 사람이나 되나요?
        그건 제가 정하는 것이고요.(웃음)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전초전 오래 할 것 없이 바로 궁금한 것부터 물어볼게요.
        이런, 막가파군요. 그래요 그럼. 뭐가 궁금한가요?
시리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시공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들이 주로 시리즈더군요. 시공아트의 책들, '디스커버리 총서' '로고스 총서' '샴발라 총서', 아동물의 '네버랜드' 시리즈 등등. 어떤 관점에서 이 많은 시리즈를 출간하고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앞에 계셨던 선배들이 다 했던 것이고, 사장님이 했던 거고, 자본으로 했던 거고…, 제가 한 것이 뭐 있나요? 예전에는 시장이 급격하게 요동치지 않아서 좀 길게 내다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해낼 수 있었던 책입니다. 하지만 최근엔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시리즈물을 검토하고 있지만 과거처럼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기획을 하고 여유 있게 전략을 짜면서 만들어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시리즈에 대한 기획을 많이 해봤고 그래서 경험이 풍부한 저희가 어떤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꾸준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조금 전까지도 회사에서 그런 내용을 논의했어요. 결론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하자'였습니다. 우리는 교양 시리즈물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그냥 쉽게 나오는 책은 없잖아요. 시리즈도 마찬가지죠. 일단 결정되면 들어가는 돈이 만만찮으니까 신중할 수밖에 없지요. 하여튼 시리즈를 기획할 때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기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급하게 결정하고 곧바로 쏟아내기보다는 1년 정도는 꼬박 준비과정에 투입할 수도 있어야 하고. 이렇게 해도 제대로 기획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예전에 비하면 그렇게 하기가 훨씬 어려워졌어요. 사람도 부침이 심하고 누가 나가버리면 기획도 따라서 망가지는 경우도 있고, 준비해나가는 사이에 회사측에서 생각이 바뀌는 경우도 많고.

        제일 힘든 건 회사의 생각과 판단이 중간에 바뀌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편집자가 시리즈 기획을 하고자 할 때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회사의 의지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점이지요.
그런데 이건 회사 의지만의 문제이거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진행 중이더라도 아니다 싶으면 중단하는 것도 경영상에서는 필요한 일이잖아요. 회사가 망하게 생겼는데 밀어붙일 수는 없잖아요.
        물론 그렇죠. 하지만 처음부터 자사의 자금 규모나 시장 파악을 면밀하게 해서 일단 시작한 일은 끝을 볼 수 있어야지요. 시리즈를 기획해서 책을 내기 시작한다는 것은 독자와의 약속이고 신뢰의 문제니까요. 그러니까 기획 준비 단계에 시간을 여유 있게 투입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 생각에는 편집자가 기획을 통해 출판 자본을 설득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봐요. 시리즈 기획할 때나 단행본 진행할 때나 기획 추진의 방식이 다를 바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편집인들이 한 권의 책을 기획해서 자본을 설득하는 방식에는 유능한데, 장기적인 플랜을 제시하는 데는 그리 유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시리즈가 출간되고 3년 이후에는 얼마만큼의 매출을 올릴 것이다 혹은 올릴 수 있다. 이런 식의 비전을 보여주거나, 질 좋은 시리즈로 인해 독자로부터 얻게 될 출판사의 지명도 같은 무형 자산까지도 각종 데이터를 바탕으로 계산해서 기획을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잘하는 편집인이 드물다는 겁니다.
        맞아요. 게다가 이직이 잦은 우리 출판계 현실에서 자신이 몇 년 후까지 그 회사에 있을지마저 불투명한 상태니 장기적 의지가 필요한 시리즈 기획이 더욱 힘든 것이지요. 이것은 결국 출판사가 독자와의 신뢰관계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콤팩트하고 알찬 시리즈를 기획하고 싶어요
        얘기를 다른 쪽으로 좀 돌려보지요. 최근에는 어떤 출판사의 책을 눈여겨보나요?
        상대적으로 자본에 여유가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최근 만들어낸 출판물과 출판 시스템이 우리 출판계 전체에 긍정적인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고 봅니다. 독자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기획의 신선함에 대해 점수를 줄 수 있는 책들이 우리 눈에는 보이잖아요. 출판계가 그걸 가지고 열심히 고민하고 분석해서 공유하면 공부가 많이 됩니다. 가령 누가 실용서로 베스트셀러를 기획했다면 거기에다 교양의 성격을 더 부과해보기도 하고, 또 다른 방향으로 영역을 확장시켜보기도 하고, 그런 고민은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의무라고도 생각해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가 지금보다 조금 더 고민의 질을 높이고 집요하게 분석해보면 출판이 더 희망적이지 않을까? 전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우리 출판은 누군가 하나를 이루고 진척시키면 금방 금방 그 영역을 자기 영역으로 만들고, 좋은 요소들을 받아들여 소화시키는 데 정말 빠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단행본도 단행본이지만 시리즈 기획에 대한 욕심도 있겠지요?
        시공사에서 좋은 시리즈물을 기획하고 싶습니다. 독자들은 시공사를 대표하는 시리즈에 대해 여전히 디스커버리 총서요, 아트 시리즈요, 로고스총서요 하는데, 이것들은 출간된 지 좀 오래됐고, 게다가 전부 외국의 저작물이고 그래서 우리 저술가들의 시리즈를 만들고 싶어요. 수십 수백 권에 이르는 대형 시리즈는 아니더라도 콤팩트하고 알찬 시리즈를 기획하고 싶어요. 구체적인 것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두고 타진 중입니다.

        아까도 잠깐 언급했던 문제지만 어떤 기획자가 시리즈를 기획하다가 퇴사를 하면 시리즈가 중단된다니 그건 정말 코미디 아닐까요?
        코미디지요.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도대체 그 출판사는 무슨 의지를 가지고 책을 만들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얘기겠지요. 그런데 그런 경우 전 해당 기획자의 책임도 크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후임으로 온다고 해도 그 시리즈를 계속 진행해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놨어야 한다는 것이죠. 시리즈의 방향과 의미는 뭐고, 어떤 방식으로 전개가 되어야 하고, 인적 네트워크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이런 것들을 정리해서 온전하게 회사 시스템으로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본인이 나간 뒤 회사에는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면 그건 정말 문제가 많은 편집자지요.
시리즈뿐만 아니라 일반 단행본이라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편집자들은 전임자의 기획을 잘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자기중심적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내가 한 기획은 '나'의 것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남의 기획은 이어 진행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기획을 회사의 시스템으로 만들어놓지 않으려고 하죠.
        '내 일처럼 한다'라는 덕목이 정말 이상하게 적용되는 부분이지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이죠.
        내 일처럼 열심히 일하는 건 좋은데 나갈 때도 내 일로 가지고 나가버리는 거죠.
        실제로 많잖아요, 그런 일이. 일을 떠나서 사람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덕이나 양심의 문젠데….

        현장 경험이 많은 편집기획인의 한 사람으로서 현재 시공사의 기획과 편집 시스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기획자가 단순교정업무로부터 지금보다는 좀더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성을 느껴요. 차라리 교정업무만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회사가 생겨 교정 업무는 이관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의 단계에서 고려해볼 만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기계적으로 편집 업무를 떼어낸다는 것은 위험성도 커보이는데요.
        그렇죠. 그래서 이것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기획과 편집 업무는 기계적으로 나눌 수 없는 부분도 많거든요. 편집에는 너무나 섬세한 것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잖아요. 한 사람의 저자가 쓴 글에는 글자 하나하나에까지 그 사람의 철학과 사상이 담기죠. 그래서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데 있어 기획은 여기까지다 편집은 여기까지다 하고 가를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좋은 기획자라면 편집과 기획을 함께 가져가야지요. 교정 교열의 아주 기계적인 부분은 따로 떼어 외부에서 처리한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책을 세팅하는 과정에서는 편집의 영역을 잘 알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출판 기획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책을 만드는 데 있어서는 정말 많은 기능이 필요하고 이것들이 통합적인 관점에서 적용되어야 하거든요.

출판 편집자로서의 삶이 좋고 긍지도 느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 노력해서 아무나 못하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사람들을 우리 출판계는 그리 오래 활용하지도 못하고 은퇴시키는 경우가 많죠. 아예 집으로 보내버리기도 하고 출판사 사장이 될 수밖에 없도록 내몰기도 하고. 40대 이상의 편집자가 드문 것이 그 증거지요. 제가 평소에 존경하던 편집자 선배 한 분이 있었는데, 그 분이 나이 40 되던 해쯤 다니던 출판사를 그만두고 출판사를 차렸지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선배 같이 뛰어난 편집자가 고작(?) 출판사 사장이나 되다니 슬프다”고.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천직으로 알고 있던 분이었거든요. 여건만 허락됐다면 늙어서 은퇴할 때까지 출판사에 편집자로 남았을 양반입니다. 사업적인 마인드 때문에 출판사를 차린 것이 아니었지요. 계속 출판 편집자로만 남았다면 후배들에게 편집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생산하고 전수해줄 수 있었을 텐데…. 사장이 되면 사실 편집인으로서는 끝이라고 봐야 하지 않나요. 경영을 해야 하니까. 전 바로 그 점이 안타까웠습니다.
        맞아요. 외국 출판사 사람들을 만나보면, 편집자 중 50, 60 넘는 분들이 많아요. 참 부럽지요. 전 출판 편집자로서의 삶이 좋고 긍지도 느낍니다. 가능하면 이 역할을 오래 하고 싶어요.

        얘기를 좀 다른 쪽으로 돌려보지요. 최근 몇 해 동안 기획해서 출간한 책들 중에 박종호라는 저자의 책이 눈에 띕니다. 2004년에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작년에는 1000쪽 가까운 『불멸의 오페라』가 나왔죠? 지금은 『불멸의 오페라』 2권을 준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의 저자에게 한 출판사가 집중하면서 지속적으로 책을 펴내는 일이 요즘 출판계에서는 흔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저자가 사회적 지명도를 충분히 얻을 때까지 런칭을 진행하는 일종의 매니지먼트적 출판기획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같은 저자의 책이 그 사람의 의미와 맥락을 전반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는(이해해나가는) 편집자에 의해 지속적으로 기획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 의미 있어 보이는데요.
        박종호 선생은 제가 만나기 이전부터 이미 지명도가 있는 저자였습니다. 자료를 찾아보고 매력을 느껴 직접 만나보니 완고한 면이 있는 분이었어요. 하지만 그 완고함 가운데 일관된 사유가 있었고 논리가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진행하고자 마음을 먹고 기획을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드라이한 클래식 정본이나 개론서 쪽으로 쓰겠다는 의지가 완강했습니다. 그래서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갈등도 많았어요. 정신과 의사였지만 클래식이 좋아 병원까지 접고 음반매장을 연 사연 같은 건 대중에게 정말 흥미로운 요소잖아요. 그래서 “원하시는 대로 쓰시되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좀 넣어서 글을 써보세요”라고 했지요. 처음에는 자신의 사적인 부분을 책에서 밝히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여러 차례 설득을 했죠. 그래서 출판사 의견이 많이 반영되어 책이 나왔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결과적으로 좋았다는 것이죠. 저자도 만족했고 판매 면에서도 저자의 기대와 출판사의 기대에 얼추 맞아 들어갔습니다. 저자도 만족스러워 했어요. 그래도 아쉬움은 많이 남았습니다. 저자의 독특한 삶과 사유가 좀더 잘 드러나게 편집과 기획을 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쉬웠지요. 그런데 저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요. 이런 아쉬움이 계속적으로 책을 같이 만들게 된 원동력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서로 아쉬웠던 부분이 지속적인 관계의 시작이었군요.(웃음)
        저자 입장에서 한 권의 책을 내긴 했지만 할 얘기가 더 많이 남아 있었던 거지요. 묵직한 오페라 개론서도 쓰고 싶고, 클래식과 관련한 여행 이야기도 있고, 음악가와 정신분석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굉장히 쓰고 싶은 것이 많은데, 이미 한 번 책을 내서 기대만큼 반응을 이끌어냈던 출판사와 일하고 싶어했다고 이해하고 있어요. 저자의 입장에 서서 제가 예측한 것일 뿐입니다만, 제 입장에서 그분과 계속 같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요인은 따로 있습니다.
박종호라는 저자는 굉장히 까다로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편집자를 믿어주는 그런 분이죠.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나면 편집자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런 분입니다. 이런 면은 박종호라는 작가가 왜 좋은 작가인지 대변해주는 부분입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좋은 작가니까 계속 같이 일하고 싶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거기다가 편집을 하면서 느낀 부분인데, 글에 있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끊임없이 진화하고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게 되니까 저로서는 존경하는 마음까지 절로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일을 해나가며 생긴 저자와의 신뢰관계가 지속적인 관계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박종호 선생의 글을 시공사에서 계속 만날 수 있겠군요.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일할 때 까다로운 저자가 사실 좋은 저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만큼 자기 글에 대한 자부심도 크고 책임감도 더 큰 분들이니까요. 그래서 일의 결과가 더 좋은 경우가 많지요. 박종호 선생의 일을 처음 들어갈 때 이동은 부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저자가 까다롭다고 툴툴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좋았다고 말하는군요. 전 이미 그때부터 그분이 좋은 저술가일 거라고 예측했었습니다.(웃음)
        아마 또 일로 들어가게 되면 똑같이 툴툴거릴 거예요.(웃음)
        툴툴거리든 말든 어쨌든 저자에 대한 애정이 바탕이 되니까 좋은 책을 계속 만들 수 있겠군요. 그 좋은 저술가의 좋은 책을 계속 준비 중이시지요?
        그렇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클래식』 2권도 곧 나올 예정이고, 『불멸의 오페라』 2권도 연말쯤 출간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정신과의사로서의 전문성을 살리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음악 책도 기획 중에 있지요. 저자를 중심에 두고 자유롭게 여러 가지 기획을 구상하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한 사람의 저자를 중심에 두고 그 연장선상 속에서 기획을 가지쳐 나가는 방식이라 내용의 깊이와 대중성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대가 되는군요.
        이런 방식의 기획이 더 많아져야 기획자의 입장에서도 정말 기획하는 맛이 나겠지요. '어려운 필자 만나서 오랜 기간 정성 들여 책 한 권 만들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는 그걸로 끝이다.' 그러면 그건 너무 공허하잖아요? 그 저자의 책을 어떻게 만들면 될지 이제 겨우 알았는데,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의 책을 더 만들 수 없다면 아깝죠 정말. 아무리 출판이 산업이라고 하나 출판인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물건 만들어 파는 제조업자는 아니잖아요.
우리는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저자)과 함께 당대의 정신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잖아요. 책 한 권 달랑 만들어놓고 판매실적에 따라 흔들리기보다는 애초에 원했던 그 뭔가가 이루어질 때까지 함께 모색해가는 것이 옳은 출판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자기계발서는 그 의미가 날로 확장되어 가고 있어요
        최근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획의 방향은?
        자기계발서 기획에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자기계발이 끝없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고 봅니다.
        동감입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읽은 책 중에 해냄에서 나온 『나에서 우리로』(마크 & 크레이그 킬버거)나 현대문학에서 나온 『행복을 위한 변명』(마티유 리카르)이 있는데, 이런 책들을 보면 자기계발의 방향과 트렌드 변화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기계발이 자기 자신 즉 '나'만을 중심으로 하는 관점이었다면, 책 제목처럼 '나'에서 '우리'로 관점이 확장되고 있다는 겁니다.
『행복을 위한 변명』을 쓴 마티유 리카르는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에 있어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추구하는 방식은 공허하다고 지적하지요. 그러면서 '나로 인해 행복해지는 타인들과의 관계와 소통에 의해 비로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합니다. 이 책뿐 아니라 요즘 이런 이야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제시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앞으로 출간되는 자기계발서의 방향에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작년에 출간되어 화제가 된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푸른숲)가 얻어낸 반응도 같은 면에서 생각할 수 있지요.
        오늘날의 자기계발서는 그 의미가 날로 확장되어 가고 있어요. 기존의 고정관념이 해체되기도 하고 상이한 개념들이 통합되기도 하면서 계속 확장되어 가지요. 요즘에는 그런 면을 잘 담고 있는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관점에서 독자의 요구를 수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논의를 이끌어가기도 하는 책을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영화계를 보면 영화의 줄거리 말고도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외적인 부분, 다시 말해 그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서사까지 영화의 홍보에 일조하고 있음을 주목합니다. 감독이 어떤 이야기를 어떤 생각에서 왜 영화화하기로 했는지, 배우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선정되었는지 이런 수많은 이야기들이 관객에게 영화에 대한 더 많은 흥밋거리를 주고 애정을 만듭니다.
이에 비해 우리 출판계는 아쉽게도 이런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지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흥미로운 일화가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런데 이게 가능해지려면 책을 만드는 편집자들에게 출판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생각을 일관되게 관철하려 했는지를 독자에게 알려줄 수 있어야 의미가 있겠지요.
        그래요. 전적으로 동감해요. 또 다른 면에 있어서도 우리 출판인들은 영화인들에게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영화에도 오랜 침체기가 있었지요. 그런데 그들은 영화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었고 또 철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봅니다. 출판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우리가 열정과 철학을 놓치지 않는 한 반드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출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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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04-04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가져갈게요. 근데 출처는 어캐 되나요? 알아두려고요.

하늘바람 2006-04-04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저는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입니다

마태우스 2006-04-04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동은 편집장, 제 초등학교 동창이어요. 그전엔 효형에 있었는데 시공으로 옮겼지요. 인터뷰 보니까 반갑네요.

2006-04-04 0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늘바람 2006-04-04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시군요. 마태님 넓은 발 다시 한번 감탄입니다
 

[글 속에 미래가 있다]명사들이 말하는 책읽기 [06/04/03]
《우리 시대 대표적인 책벌레들에게 물었다. 당신들은 도대체 어떻게 책을 읽느냐고. 비슷한 대답이 쏟아질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책을 고르고, 읽고, 갈무리했다.

어떤 이는 집중적으로 몇 시간을 투자해 한 권을 읽었고, 어떤 이는 틈틈이 시간을 쪼개 여러 권을 나눠 읽었다. 어떤 이는 책을 읽었다는 흔적을 남기는 것을 싫어했고, 어떤 이는 서슴없이 책을 찢기도 했다. 어떤 이는 책의 주요 내용을 적어 둔 메모상자를 활용했고, 어떤 이는 낭독하거나 대화 중에 섞어 넣는 등 몸으로 책을 읽었다.

책 읽는 개성은 달랐지만 그들의 결론은 같았다. 책은 지식을 얻는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며 책은 꾸준히 읽다보면 그 학습 효과가 기하급수적으로 배가된다고.》

○ 이미지맵을 통한 입체적 독서-시인 장석주

신문 서평을 읽거나 제목과 필자를 보고 직관적 판단에 의존해 책을 고른다. 온라인 서점에서 책의 목차를 훑어보고 주로 인터넷 주문으로 1주일에 15권가량 구입한다. 온라인으로 책을 사지만 실망한 확률은 20권에 1권꼴밖에 안 된다. 하루 한 권 이상은 꼭 읽으려 한다.

한번 책을 잡으면 3시간 이상 집중적으로 읽는다. 책을 많이 읽다 보니 속독을 배우지 않고도 단어가 아니라 덩어리로 읽는 버릇이 생겨 이론서도 1시간에 60쪽 이상의 속도로 읽는다. 책에 대한 결벽증이 있어 메모도 하지 않고 줄도 치지 않는다.

다만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 직육면체의 공간을 상상하고 읽어 가면서 깨달은 내용을 그 안에 배열하는 이미지맵 독서를 한다. 이런 입체적 독서를 하다 보면 책을 읽다가 앞으로 되돌아가서 읽을 필요가 없다. 다만 쉽게 이해하기 힘든 책은 책장 가까이 두고 읽고 또 읽는다.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가 쓴 ‘천 개의 고원’이 그런 경우로 완독만 5번 했고 부분적으로는 거의 매일 읽는다. 노자의 ‘도덕경’은 개인적으로 좋아해서 국내의 거의 모든 역주본을 찾아서 읽지만 읽을 때마다 좋다.

○ 메모함을 이용한 DB독서-출판평론가 표정훈

매주 서너 개 신문의 서평을 샅샅이 읽고, 온라인 서점의 신간 코너를 두루 검색해 구입할 책 목록을 작성한다. 책 구입은 반드시 오프라인 서점을 방문해 책의 ‘신체적 건강 상태’를 점검한 뒤 결정한다. 한 달에 대략 30권의 책을 구입한다.

책을 읽을 때는 중요한 부분,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스킵(skip) 독서’를 많이 한다. 서문, 목차, 찾아보기 등을 먼저 훑어보고 무작위로 펼쳐서 읽다 보면 내게 필요하고 중요한 부분이 저절로 찾아진다. 꼼꼼하게 정독할 필요가 있는 책은 한두 달이나 그 이상에 걸쳐 조금씩 읽어 나간다. 이런 책들은 한약방 약상자처럼 언제든 꺼내 볼 수 있게 가까운 책장에 꽂아 놓고 본다. 책을 읽으면서 어떤 페이지에 어떤 주제의 내용이 있다는 것을 메모지에 적어 두고 주제별 메모 상자에 넣어 둔다. 카페에서 잡지를 읽다가도 좋은 구절이 나오거나 TV 교양프로를 보다가도 좋은 말이 나오면 메모해 뒀다가 이 메모 상자에 보관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에게서 배웠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실용서는 아예 필요한 페이지를 찢어서 별도의 파일 형태로 보관하다가 새 책을 한 권씩 만들기도 한다. 요즘은 소장서적 1만3000권의 서지사항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 몸으로 읽어라-고전연구가 고미숙

연구실(연구공간 ‘수유+너머’) 식구들이나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책을 빌려 읽거나 필요할 때는 인터넷으로 구매한다. 집필을 위해 읽는 책과 매일 반복해 읽는 경서(동양고전)를 빼고 일주일에 최소 두세 권을 읽는다. 일반 책을 읽을 때는 이해 못하는 부분은 그냥 건너뛰면서 단숨에 쭉 읽는다. 필요하면 줄도 많이 치고 여기저기 메모도 하면서 거칠게 읽는다.

책에 대한 집착이 없어 쉽게 빌려주고 잃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책으로부터 지식이나 정보를 얻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책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해 주고 내 몸을 바꿔 주는 통로일 뿐이다. 경서를 읽으면서 터득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읽으라는 것이다. 예전에 소리 높여 낭독하게 한 것은 교육의 현장감과 신체적 교감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낭독은 기운을 소통시키고 읽다가 막힌 부분을 뚫어 주는 마력이 있다. 요즘 책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일부러 소리 내 읽다 보면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특히 청소년에게는 낭독을 통한 독서를 권한다. 또 책에서 읽고 깨친 부분이 있으면 일상의 대화나 토론 현장에서 그 내용을 끊임없이 응용할 때 비로소 내 것이 된다.

○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깨라-경영저술가 공병호

매년 한 해 동안 얼마의 책을 읽을 것인지 수량 목표를 설정한다. 작년에는 300권을 목표로 했는데 380권을 읽었다. 올해는 500권을 목표로 삼았다. 새 책을 읽을 때마다 꼭 500권 중에 몇 권째임을 기록해 둔다. 한 달에 두 번씩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 정신없이 바쁘게 책을 고른다. 책을 잡으면 목차를 보고 중요한 부분부터 찾아 읽는다. 정독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앞에서부터 차례로 읽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면 발췌 독서로 충분하다. 이제는 센서 기능이 발달해서 내게 필요한 부분만 잘 찾아 읽게 됐다.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버려야 한다. 돈 내고 내게 필요한 지식을 사는 것이다. 예전엔 책을 읽다 필요한 페이지는 과감하게 반을 접어서 언제든 찾을 수 있도록 했다. 요즘에는 책을 읽고 맨 앞 페이지에 사용가치가 있는 아이디어, 사례, 키워드가 담긴 페이지를 메모하는 방식을 택한다. 또 책을 연속적으로 읽지 못하고 틈틈이 읽기 때문에 마침내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20∼30분의 시간을 들여 메모한 주요 내용을 복습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일이 손에 안 잡힐 때 남들은 술을 마시지만 나는 몇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책을 읽는다. 피터 드러커에게서 배운 휴식 방법이다.

○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라-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

아마존닷컴과 반스 앤드 노블 등 해외 온라인 서점의 실시간 베스트셀러 목록과 독자들의 서평을 참고해 온라인으로 구매한다. 특히 맬컴 글래드웰, 짐 콜린스, 토머스 프리드먼, 존 그리셤처럼 좋아하는 필자의 책은 바로 구매한다. 주로 경영 관련 서적이 주를 이루는데 한국에 있을 때도 번역돼 나오는 것을 참기 힘들어 원서로 읽었다.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보기보다는 한 권의 책을 집중적으로 본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 틈틈이 읽는 경우가 많다.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기도 하는데, 몇 년 전까지 입주했던 회사 건물의 승강기가 느려서 한 달에 한두 권은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절대로 요약본은 보지 않는다. 책의 대강의 줄거리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저자의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자신의 지식이나 현재의 상황과 대비하면서 사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이 읽는 것도 좋지만, 능동적으로 생각하면서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을 때는 그 부분에 집착하기보다는 다음에 같은 분야의 다른 책을 읽는다. 다른 표현 방식과 다른 관점으로 설명을 하는 것을 읽고 있노라면, 그 전의 책에서 이해가 안 가던 부분도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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