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일하는 엄마 [06/02/21]
집에 들인 지 3년된 벤저민 화분이 깡통 장식에 울긋불긋해졌다. 줄곧 한자리에만 두었더니 모든 가지가 햇빛을 좇아 한 방향으로만 내뻗었다. 물을 채운 청량음료와 맥주 깡통에 끈을 매 가지에 달았지만 모양을 잡기에는 너무 늦은 감이 있는 듯하다. 아이는 뒤늦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마냥 신났다. 이렇게 부산떠는 건 텔레비전에서 살림을 잘 하는 주부들의 집안을 들여다본 때문이었다. 분위기 있는 카페 같은 집과는 거리가 한참 먼 방 안을 둘러보자니 성이 잔뜩 난 벤저민 화분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요즘 들어 부쩍 아이의 주문이 늘었다. 누구 엄마는 영어 책도 같이 읽어주고 그림도 같이 그려준다,누구 엄마는 맛있는 간식을 예쁜 그릇에 담아준다. 그러더니 며칠 전에는 두 팔을 허리에 붙이고 “난 크면 일하는 엄마는 안 될거야,집에서 살림만 할거야”라고 말해 가족을 웃겼다. 평생 집과 직장 사이를 종종거린 엄마는 물론이고 지금껏 직장을 놓지 않았던 여동생과 나는 집에서 살림만 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상상을 해보았다.

지난주에 O선생과 차를 마셨다. 인터뷰 요청을 해온 잡지사는 제2의 창작을 시작하는 선생의 근황과 더불어 주부이자 소설가로서의 그간의 고충을 한 번 써보자고 했다. 갓 서른을 넘긴 아들과 이십대 후반인 딸의 모습을 본 적은 없지만 십육 개월 터울로 연년생이나 다름없는 고물거리는 아기들을 업고,안고 소설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젊은 선생의 모습이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차를 다 마실 무렵에야 잡지사의 편집장이 부랴부랴 달려왔다. 그날은 그녀의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이었다. 오늘도 오지 않으면 다시는 엄마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았다는 것이다. 교실에서 텔레비전으로 치러지는 졸업식을 보느라 학부모들이 복도에 늘어섰는데 아이가 가끔 복도로 고개를 돌릴 때마다 그녀는 손을 흔들면서 눈도장을 찍었노라고 했다. 그러더니 조금 풀 죽은 목소리로 “늘 아이한테 미안하죠” 했다. 그녀의 심정을 알고도 남는 선생과 나는 말 없이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 그리고 밥하기 싫어 울었다는 선생의 글에 공감하며 웃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곧잘 놀이방에서 어린아이를 찾아오는 직장 여성들을 만난다. 저녁 때가 다 지난 시간이다. 그녀는 집에 들어가 늦은 저녁을 때우고 아이를 씻기고 부족한 잠을 잘 것이다. 한 젊은 평론가는 아기 때문에 발을 동동 굴렀다. 좀 늦은 귀가에 아기를 돌보는 아주머니는 성화하고 그녀는 아기를 잠깐 봐줄 사람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 면에서 집이 곧 일터였던 내 경우는 행복한 편이었나? 소설을 쓰다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이고,밤을 새운 날 아침 아이가 체육 시간에 쓸 훌라후프를 놓고 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학교까지 뛰었다. 아이가 우산이나 실내화 주머니를 잃어버리면 아이를 앞장세워 학교 주변을 뒤졌다. 그리고 짬짬이 소설에 몰입해야 했다. 비가 오는지 몰랐다가 부랴부랴 우산을 들고 학교 쪽으로 뛴 적이 있다. 아이는 코트에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비를 맞으면서 걸어오다가 나를 보고는 씩씩거렸다. “엄마 미워,다른 엄마들은 다 학교 앞에서 기다렸단 말이야!”

6,7년 전쯤 소설집을 냈을 때 한 기자가 기사 말미에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앞으로 이 주부작가의 상상력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진다.’ 그때는 소설가 앞에 여성,여류라는 단어가 붙는 것도 끔찍하던 때라 이 새로운 단어에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잘 몰랐다. 하지만 이미 그때 그는 주부로서의 글쓰기,일하는 엄마의 고충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남자였음에도 말이다.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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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할때는 운동에 대한 생각만하는 것이 효과가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아침 헬스클럽에 가서 런닝머신을 하는데 순전히 런닝머신만 하기가 힘들다.

지루하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벌게진 내 얼굴 보기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시간 계기판을 보면 시간은 왜 그리 더디 가는지.

참 이상하게도 한 30분이 지나면 40분채우고 싶고 40분 채우면 50분 그러다 한 시간을 채우는데 문제는 10분에서 20분 사이가 고비다.

중간에 내려오고도 싶고 30분까지만 버티자 싶지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방법이 책을 읽으며 런닝머신을 하기로 했는데 책 한권 다 읽을 때까지 내려오지 않기로 했다.

오늘 읽은 책은 바로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은 성공이었지만 사실 그 책은 그렇게 런닝머신하며 신나는 음악 속에서 읽을 책은 아니었다.

그래서 책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좀더 재미있게 런닝머신을 할 방법을 찾던가 아니면 인내심을 기르던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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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2-2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티비를 보며 런닝머신을 하세요!

하늘바람 2006-02-21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는 헬스클럽은 런닝머신앞에 티브가 없어서요. ㅠㅠ

마늘빵 2006-02-22 0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구운동도 재밌는데

하늘바람 2006-02-2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구운동에는 쉽게 도전하게 되지 않네요. 사실 헬스를 가면 이ㅐ저래 두서너시간가게 되어 오전이나 오후가 금세 가버리더라고요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구판절판


내가 어른이 되고, 늙어 가도 너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아직 덜자란 소년으로 남아있겠지. 내가 소녀에서 여자가 되고,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도 너는 그렇게 풋풋한 소년으로만 남아있겠지. -35쪽

저 지옥! 저러고 있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는 잘 알고 있다. 단지 이 아이들은 비겁하고 소심하고 타협적인 것이다.
지난 학교의 아이들은 배짱이 있었다. 그래서 때릴 테면 때려라, 나는 자야겠다고 나왔던 것이고, 아이들이 모두 그러자 선생쪽에서 항복하고 만 것이었다.
사실 그게 합리적이지 않은가?
졸음이 안 오는 애들이나 열심히 들으면 된다. 선생님도 그런 애들만 신경쓰면서 가르치는 쪽이 훨씬 더 보람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모두들 지옥처럼 졸음의 고통에 싸우면서 오직 매가 두려워 안 자는 척 기를 쓰고 있다. 하긴 나라도 먼저 배짱을 부리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사실 나도 그런 일을 시작하기가 귀찮았다. -50쪽

엄마는 늘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내가 너를 안때리고 키운것은 매를 무서워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아서야.
그런데 내가 매를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으로 자라난 건 엄마 때문이 아니었다. 맞지 않고 자란 나는 오히려 매를 무서워해서 어린 시절엔 그야말로 소심한 모범생이었다. 언젠가부터 그 생활에 손을 딱 놓고 뻔뻔하게 나가기 시작하자 학교는 내게 매타작을 하기 시작했고, 사실 나는 그 매타작에서부터 매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51쪽

내가 생각할 때 사랑에 있어서도 우정에 있어서도, 타이밍이란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타이밍, 즉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일 때 상대를 만나는가? 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우길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상당히 중요한 요소임은 분명하다. -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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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때 나는 아주 깜짝 놀랐다.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작가의 이름을 보았다.

이경혜 선생님

나는 이경혜 선생님을 그림책 번역으로 만났다. 사실 만나지 못했고 메일한두번 전화 통화 한번이었다.

그래서 이경혜 선생님은 기억도 못하실 거다.

당시 그 그림책은 꾸꾸의 꼬마비행기라는 프랑스 그림책이었는데

책이 나오기 전 컬러프린트한 종이를 보내드렸었다.

혹시 고칠게 있으면 알려주십사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그림이 너무 예쁘니 이 컬러교정지를 가지면 안돼냐고 하셨다.

나는오히려 미안했다.

그럴줄 알았으면 더 좋은 종이에 프린트 할것을.

그렇게 여리고 소녀스런 목소리로 이경혜 선생님을 기억한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유화 풍의 표지와 제목에 나는 한동안 책을 사지도 읽지도 못했다.

어릴때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나 청소년기에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해 본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생각이 너무 강해서 우습게도 유서를 써 본적이 있다.

그런데 그 유서라는 것이 참으로 좋은 자살충동 치료법이다.

유서를 쓰다보면 나를 위해 슬퍼하는 사람들 얼굴이 떠올라 울다가 차마 죽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죽었다니.

청소년시기에는 성장통이 있다

몸보다 마음이 아프다.

사춘기라 웃기에는 나는 떨어지는 낙엽이 너무 슬펐다.

시드는 꽃도 너무 허무해 보였다.

짝사랑하는 선생님 때문에 가슴아파하기도 했다.

지금은 아름다울지 모를 일들이 그땐 온통 아프기만 했다.

그리고 정말 죽은 같은 학년 친구가 있었다.

친하지도 않았고 반도 멀어 얼굴도 가물거렸다.

그런데 너무 마음이 아팠다

 

한동안 아이들과 선생님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이들은 서로의 성장통에 부대끼며 가슴아파하고 또 그렇게 위로를 받는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나는 내가 만약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힘든 과정을 겪으며 글을 완성시켜 주신 이경혜 선생님이 너무 대단해 보인다.

슬픈 것이 모두 낭만적인 것이 아니듯 죽음은 낭만적이지 않다.

이땅에 죽어간 아이들을 아파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너희가 살아있어서 그래서 숨쉬고 있어서

그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낭만적이다

라고 일일이 편지를써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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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02-21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제목부터 신선했어요. 이경혜님이 번역한 그림책이 뭐죠? 읽고싶어지네요^^

하늘바람 2006-02-22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꾸꾸의 꼬마비행기라는 그림책이에요. 이자벨샤를리라는 작가가 그림을 그렸는데 귀여워요
 

늘어가는 현대인의 불안ㆍ초조… `종교 옷`입은 자기계발書불티

[책마을 통신] 늘어가는 현대인의 불안ㆍ초조… `종교 옷`입은 자기계발書불티

자기 계발서는 진화 중이다. 그 하나가 종교적 `외피`를 두르는 것이다. 최근 베스트셀러에 오른 `예수와 함께 한 저녁식사`(데이비드 그레고리)가 대표적이다. 평범한 회사원 닉 코민스키는 어느날 나사렛 예수로부터 저녁식사 초대장을 받는다. 친구들의 장난으로 알고 초대에 응한 그는 자칭 예수라는 사나이와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면서 차츰 대화에 빠져든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는 김영사다. 기독교 전문 출판사가 아닌 곳에서 펴낸 이 책은 종교적 엄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상황 설정부터 장난스러운데다가 내용 중에도 유머와 재미가 넘친다.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 크게 다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 읽어도 자기 삶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2003년에 출간된 후 줄곧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유지하며 70만부 이상 판매된 `목적이 이끄는 삶`(릭 워렌, 디모데)과 출간 6개월만에 34만부가 판매된 `긍정의 힘`(조엘 오스틴, 두란노) 같은 책은 장기 스테디셀러에 돌입한 상태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탈옥수가 한 가정에 침입해 인질극을 벌이다 그 집의 여주인이 이 책의 내용을 반복해서 읽어주는 것을 듣고 감화 받아 자수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더 인기를 끌었다.

미국 최대의 출판사인 랜덤하우스의 한 간부는 출판시장에서 가장 유력한 장르는 픽션, 그 중에서도 로맨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로맨스마저 뛰어넘는 분야가 바로 종교 분야의 감동서적이라고 말했다. 물론 소설이 침체한 우리 출판시장은 미국과 많이 다르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젠 열풍에서 보는 것처럼 주류 종교인 기독교보다 동양적 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사회도 1980년대에 존재한 `정상`이나 `중심`이란 목표 지향점이 사라져 동기 부여의 실체를 찾기 어렵고 사회적 경쟁은 갈수록 심해져 개인에게 정신적 위안을 주는 대상을 찾기가 쉽지 않다. 디지털 기술은 유비쿼터스 사회를 만들었지만 개인에게 그 사회는 유토피아가 되지 못했고 개인을 소비사회의 객체로 철저하게 `농락`하는 `폭력배`에 불과할 뿐이다.

미디어는 자연재해 이상으로 끝없는 불안을 양산하고 있다. 평범한 개인은 인간관계의 파편화로 말미암아 자신의 고뇌를 공유할 `친구`마저 찾기가 어렵다. 그런 개인들이 영적 세계의 독특함에 매료돼 불안한 세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본능적 욕구를 발산하는 것은 당연하다. 틱낫한, 달라이라마, 법정 등이 불러온 열풍은 바로 그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종교조직은 또한 고객이 고객을 불러오는 마케팅 채널로도 손색이 없다. 위세가 남다른 구전효과를 볼 수 있기에 종교적 감동서적은 앞으로 큰 흐름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 헤럴드경제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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