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소년이 죽었습니다                                                                              
-글쓰기의 간절함에 대하여

1. 들어가며
-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바람의아이들, 2004)를 쓰게 된 동기

옛날 환공이란 사람이 배를 타고 촉나라를 지나가는데, 부하 한 사람이 강변 숲에서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그러자 그 어미원숭이가 내내 강 언덕을 따라 슬프디 슬프게 울면서 배를 쫓아오다 마침내 배 위로 뛰어내렸는데 그만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 어미원숭이의 배를 갈라서 그 속을 들여다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럴 것입니다. 충분히 그러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식을 잃은 어미의 심정이라는 것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선 감히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일 테지요.
4년 전 가을 초입이었습니다. 글을 쓰러 지방에 가 있던 내게 고등학생 딸애가 울면서 전화를 했습니다. 중학교 때 동창이었던 아이가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죽었다고 했습니다. 친한 아이는 아니었지만 그 나이에 아는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은 놀라운 충격일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다 묘하게도 그 애가 죽기 며칠 전, 딸아이는 그 애를 아주 오랜만에 우연히 만났다고 했습니다. 더군다나 건너편 길에서 딸애를 발견한 그 애가 일부러 길을 건너와 말을 걸었답니다. 그러는 일이 좀체 없는 워낙 얌전한 애라 딸애는 퍽 놀랐답니다. 그 아이가 그렇게 일부러 길을 건너와 해 준 이야기는 더욱 뜻밖이었지요. 딸애는 같은 중학교 동창인 다른 남자 아이와 사귀고 있었는데, 그 때 좀 다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 일을 알았는지, 그 애는 “걔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싸우지 말고 잘 해 줘.”라고 말하고는 도로 길을 건너갔다고 합니다. 그런 뒤 며칠 만에 그 애가 이 세상을 떠나 버린 것입니다.
그 장면 하나만으로 그 아이는 내 살을 헤집고 닻이 박히듯 콱 박히고 말았습니다. 나는 그 애를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것만 같았습니다. 나는 꼬박 사흘을 울고 또 울었습니다. 모르는 어떤 존재의 죽음이 그렇게까지 고통스러웠던 경험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내 고통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서 왔습니다. 갑작스레 자식을 잃은 그 부모를 생각하니, 특히나 그 어머니를 생각하니 누군가 창자를 잡고 쥐어짜는 것 같은 통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타인인 내가 이럴진대 그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다른 사람들과 공동생활을 하던 터라 나는 남들 앞에서는 티도 내지 못하고 혼자 방으로 돌아와서야 억누른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결국 스스로의 고통을 달래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했던 나는, 마음 속으로 약속을 하고 말았지요. ‘언젠가 네 이야기를 꼭 써 주마. 그건 물론 실제의 네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너처럼 어이없이 일찍 세상을 뜰 수밖에 없었던 아이의 이야기가 될 거야.’
내가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비록 글 속에서라도, 죽은 그 아이를, 그 아이와 비슷하게 죽어 간 다른 아이들을 다시 한 번 살게 해 주는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그 뒤로 한참 동안 나는 다른 일들에 밀려 그 약속을 지켜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닻처럼 박힌 아이는, 그 아이에게 한 약속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습니다. 그 약속을 꼭 지켜 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겨우 기회가 되었을 때, 나는 그 이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함부로 쓸 수 없는 이야기였던 만큼 온 정성을 다해 쓰고 싶었습니다. 죽음을 다루지만 열여섯의 삶을 빛나고, 행복하게 새로이 살게 해 주는 글이 되게 하고 싶었습니다.


2. 나의 창작 노트
- 작가는 수많은 영혼의 통로일 뿐이다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글이란 것을 ‘어떤 영혼이 작가의 몸을 통로로 삼아 자기 이야기를 풀어 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탓에 새로운 글을 시작할 때면 나는 내가 통로로 쓰일 준비를 합니다. 누가 들어오기 전에 내 힘만으로는 그런 얘기를 도무지 써 낼 자신이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지요. 하지만 표현을 그렇게 해서 그렇지 다른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과 별다를 게 없는지도 모릅니다. 단지 의식보다는 무의식에 좀더 의존하는 작가군에 속하는 것이겠지요.
나는 일단 청소년을 다룬 책들, 청소년들이 직접 쓴 글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또 노트를 한 권 만들어 생각나는 모든 아이디어를 적었습니다. 이런 과정은 다른 작가들이 구상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인물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아이디어라도 그렇게 메모할 수 있지만 줄거리라든가 내용에 대해서는 실제로 작품을 써 나가기 전에는 거의 생각을 펼쳐 나가지 못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특히나 첫머리도 잡히지 않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들끓었습니다. 제대로 못 써 줄 바에야 의미가 없는 작업이라고 여겼고, 그 무게가 나를 짓눌렀습니다. 이미 죽은 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까도 싶었지만 그러기가 싫었습니다. 이미 죽은 아이에게 미안하게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저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한 번만 더 누리게 해 주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그 애를 마음에 품고 지내는 사이에, 어느새 그 애는 내 속에서 분명한 성격을 지닌 한 존재로 잉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럴 때 나는 어떤 영혼이 조금씩 ‘나’라는 통로에 발을 디디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합니다. 나는 그 애에게 ‘황재준’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여자 친구인 유미의 존재도 그렇게 떠올랐습니다. 상대적이겠지요. 재준이라는 아이의 캐릭터가 선명해질수록 유미의 존재도 또렷해졌습니다. 그래도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지는 도무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하얀 종이 위에 쓰인 문장이었습니다. 그래, 이 아이는 이 말을 일기장에 적어 놓고 사는 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지요. 그래서 첫 장면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준이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엉뚱한 생각인 만큼 계기가 분명해야 했습니다.
그 무렵, 우연히 다른 작가에게서 요즘 아이들이 시체놀이를 하고 노는 신기한 사진을 신문에서 봤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이거다, 싶은 생각이 퍼뜩 들었습니다. 이럴 때도 나는 재준이가 나에게 그런 정보를 알려 주는 것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합니다. 영혼은 내게 직접 말을 걸 수 없으니 온갖 경로를 통해 내게 무언가를 전달한다고, 역시 ‘제멋대로’ 생각하는 것이지요. 나는 그 작가에게 그 얘기를 내가 쓰는 얘기에 써도 되겠냐고 허락을 얻었습니다. 시체놀이를 통해 죽은 듯이 사는 놀이를 생각해 낸 재준의 모습이 잡혔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집필을 시작하니, 중학생인 유미의 1인칭으로 쓰는 문장이 내게는 몹시 힘들었습니다. 자꾸만 이야기가 새서, 문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관념적인 문장, 어른의 사고를 담은 문장이 새어 나왔고, 그렇게 쓰고 싶은 충동에 괴로울 만큼 시달렸습니다. 내가 유미와 일체가 되지 못한 증거였지요. 안 되겠다 싶어, 나는 중학생 아이를 둔 친구들에게 부탁해 중학생들의 사진을 몇 장 얻어서는 책상 앞에 붙여 놓았습니다. 철저하게 이 아이들에게 내가 이야기를 들려 준다는 심정으로 쓰자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서서히 유미가 되었고, 재준이가 되어서 그 글을 써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지간히 머뭇머뭇, 안 나가던 글이, 재준이 살았을 때 사 준 속옷을 유미가 찾아 내서 입어 보는 제1장의 장면을 쓰는데 갑자기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대로 유미가 되어 글 속의 유미보다 더 펑펑 울어 가며 그 글을 써 나갔습니다. 비로소 이 글이 완성되겠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나처럼 구성을 미리 못 하고 쓰는 사람에게는 이런 순간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런 순간이 오지 않으면 그 글은 거의 완성되지 못합니다. 주인공과 일체가 된다고나 할까, 그 감정이 그대로 내 속으로 쏟아질 때, 아니면 전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인물이나 사건이 저절로 흘러 나올 때, 그러니까 ‘손이 쓴다’는 느낌이 올 때, 그런 순간이 와야만 나는 그 글의 완성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 장면은 그래서 내게 중요했습니다. 재준이 속옷을 사 준다는 얘기 같은 건 미리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저절로 흘러 나온 얘기였으니, 이제 인물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단계가 된 것이었습니다. 그 때부터는 느리게라도 끊이지 않고 글을 이어 갈 수 있었습니다. 통찰이 빛나는 멋진 문장을 쓰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릴 때, 마음껏 나를 표현하는 근사한 묘사를 하고 싶을 때, 나는 책상 앞에 붙여 놓은 중학생 친구들 사진을 바라보는 것으로 나의 그런 겉멋과 헛된 욕망과 싸웠습니다. 문장을 쓸 때, 감상적으로 여겨지기 쉬워 피해야 할 말줄임표의 남발도, 과잉되게 느껴지는 여러 가지 감정의 토로도, 나는 열여섯 살의 유미였기 때문에, 내가 아닌 그 애를 살리기 위해 그대로 두었습니다.
일반적인 문학의 잣대로 볼 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나는 충분히 인정합니다. 끝까지 추리물의 방식으로 써 냈다면 훨씬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으리라는 지적도 충분히 인정합니다. 왜냐면 그 점들은 그 글을 쓰는 동안 내 자신이 내내 싸웠던 유혹의 지점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작품으로서의 문학적 완성도보다 실제의 삶을 생각했습니다. 내가 써 내는 글이 마치 어떤 존재의 실제 삶으로 그대로 이루어지기라도 할 듯이 말입니다. 이런 태도가 문학적으로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유혹을 이겨 낸 나를 스스로는 대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지적들에 대해 인정하고,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 글을 쓰게 해 준 한 소년의 넋을, 그리고 그 소년처럼 어이없이, 꽃잎 날리듯 사라져 간 다른 소년들의 넋을 위로하고 싶어 그 글을 썼던 것입니다. 내게 그 글을 쓰는 목적이 있었다면 오직 그것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2년 만에 약속을 지켜 냈을 때, 내 마음은 너무도 평안했습니다. 예상 외로 이 글은 많은 분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삶이 가끔씩 주는 ‘뜻밖의 선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3. 나오며
- 자신에게 ‘간절한’ 글을 ‘간절하게’ 쓰자

이렇게 쓰고 보니, 이런 글이 앞으로 글을 쓰실 작가 지망생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 회의가 불쑥 듭니다. 어떻게 보면 잘난 척 떠든 것 같기도 하고, 아무런 체계도 없이 아마추어적으로 지껄인 듯도 싶습니다.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실제적인 도움이 되고 싶어 과정 하나하나를 가능한 되살려 솔직하게 써 보았지만, 실제적인 도움은 전혀 되지 못할 글이 된 듯싶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통해 한 가지는 말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간절한 글을 간절하게 쓰자.’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글을 쓰는 기쁨과 아픔을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을 굉장히 의미 있는 듯, 영혼과 교신이라도 하는 듯, 운명이라도 되는 듯, ‘제멋대로’ 생각하는 나의 글쓰기 방식은 어쩌면 이 ‘간절함’을 지켜 내려는 부족한 사람의 몸부림인지도 모릅니다. 마치 우리 어머님들이 태몽을 꾸면 아이의 탄생을 필연적으로 느끼고 그 생명을 더욱 소중히 여기듯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렇듯 ‘제멋대로’ 쓴 창작 노트도 ‘간절한 것을 쓰자.’는 얘기를 어떻게든 간절히 전달하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 다들 너그러이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하고 이번에도 나는 ‘제멋대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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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바람의아이들, 2004)
동화작가 이경혜의 첫 번째 청소년소설. 주인공 유미는 어느 날 갑자기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남자 친구 재준이의 일기장을 그의 어머니로부터 받게 된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내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라는 섬뜩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재준이의 일기를 읽어 내려가며, 그와 함께 한 추억을 더듬는 유미는 정신적으로 방황하며 성장한다. 짝사랑, 성적, 학원, 선생님 등 평범한 중학생의 일상이 사실적으로 펼쳐진다.


※위 글은 <동화읽는가족> 가을호 '미래의 작가를 위한 창작 노트' 코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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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정말 다른 별에서 온 낯선 종족인가?

-이 금 이

딸아이가 짜증을 부린다. 도대체 짜증을 부리는 이유나 확실하게 알았으면 좋겠다. 아니, 아이가 이유를 밝혀도 그것이 내게는 공연한 트집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순간 ‘내가 봉이야?’하는 생각에 마음이 울컥한다. 하지만 가족은 서로에게 쓰레기통과 같은 존재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엄마인 내가 봐줄 수밖에. 꾹꾹 눌러 참으며 받아들인 짜증이 쓰레기통 밖으로 넘쳐 흐를 지경이 되면  내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른다.
“나중에 꼭 너 같은 딸 낳아라.”
아, 이건 내가 내 어머니한테 귀에 딱지가 앉게 듣던 대사다. 그래도 찔끔해서 행동을 돌이켜보게 할 만큼의 권위를 지녔던 어머니에 비하면 나는 훨씬 초라하다. 아이가 콧방귀도 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반전으로 허를 찔러야지. 나는 의기양양하게 덧붙인다.
“니 딸이 지금 너처럼 하면 그때 내가 니 편 들어줄 줄 알아? 내가 니 딸 엉덩이 두들기면서, ‘괜찮아, 괜찮아. 니네 엄마는 더 했어.’하고 니 딸 편 들어줄 거야. 그렇게 복수할 거야.”
그런데 어째서 어린 시절, 언니도 오빠도 없던 내가 날 때린 사내녀석한테 ‘나중에 우리 고종사촌오빠가 오면 일러줄 거야!’하고 울면서 외치던 모습이 떠오른담. 딸애한테 개미오줌만큼도 위협이 되지 않으리란 감이 온다.
“일러라, 찔러라!”
조롱하던 사내녀석처럼 내 아이도 피식 웃으며 말한다.
“나는 나중에 자식 안 낳을 건데.”
“왜? 왜 안 낳아?”
이렇게 억울할 데가!
“엄마가 그렇게 할까봐.”
완벽한 k.o패다. 인정하는 대신 속으로 나는 나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괜찮아. 그래도 짜증이 좀 수그러들었잖아. 그리고 애가 엄마 아니면 어디 가서 저렇게 성질을 부리겠어. 철들면 나아지겠지.’

인내심을 가지고 아이들을 지켜봐줘야 하는 것은 어른의 의무다. 청소년 소설 『유진과 유진』을 쓰면서 내가 배운 것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청소년소설이 쓰고 싶었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 역시 책이 삶의 일부인 청소년기를 보냈다.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문학전집을 시험공부 하듯이 밑줄 그어가며 읽으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지금 내 또래 아이들의 삶이 담긴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동화작가 된 뒤, 주로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장편 동화를 쓴 것도 어쩌면 그 아쉬움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장편동화 『너도 하늘말나리야』도 청소년 독자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중.고생을 주인공과 독자로 삼은 본격 청소년 소설을 쓰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기를 내 아이들이 중학생이 된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내가 청소년이었던 때와는 30여 년의 세월만큼이나 달라진 요즘 아이들의 이야기를 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추억에 기대어 내 청소년기를 소재로 삼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요즘 아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라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고백하건데, 첫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청소년에 대한 내 인식은 언론과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미 문제아이거나, 아직은 아니더라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품고 있는 예비 문제아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해독할 수 없는 언어와 사고를 지닌 다른 별에서 온 낯선 종족처럼 여겨졌다.
나의 첫 청소년 소설은 그러한 선입견이 깨지는 곳에서 출발하였다. 운이 좋게도 우리 아이의 학교는, 시험감독이며, 도서관 사서 도우미, 교통 지도, 급식 지도 등으로 엄마들이 학교에 드나들 기회가 많다. 아이가 입학한 뒤, 드디어 청소년 소설을 쓸 때가 되었다는 의욕에 불타오른 나는 학교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교실에서 시험감독을 하며, 도서실에서 사서 도우미를 하며 만난 아이들을 통해 나는 그들이 결코 이해하기 어려운 낯선 종족이 아니라 평범한 내 아이의 또래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선입견이 깨지자 손등을 덮는 교복에 싸인 1학년은 물론, 코밑이 거무스름하고 여드름이 발긋발긋 돋아난 2학년도, 변형시킨 교복으로 나름대로 멋을 부린 채 말년 병장처럼 느물대는 3학년들까지도 모두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아이들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3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중학생이었던 나 자신과도 만날 수 있었다. 추억의 편린에 의해 재구성된 모습이 아니라, 사춘기라는 열병을 앓으며 일탈을 꿈꾸었던 그때의 내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모호한 경계에 서서, 내미는 어떤 손이라도 덥석 잡고 싶을 만큼 나를 에워쌌던 근원적인 외로움과 불안함까지도 고스란히 기억이 났다. 그 모습을 떠올리자 어렴풋이나마 아이들을 알 것 같았다. 그들의 낯선 언어와 행동 뒤에 숨겨진 마음은 30여 년 전 아이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이의 국어선생님이 보여준 아이들의 글은 그들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누가 요즘 아이들을 ‘풍요로움을 누리며 사는 행복한 아이들’이라고 이야기했던가? 익명이어서인지 솔직하고 과감하게 내면을 드러낸 아이들은 상처 투성이의 약자였다. 부모나 선생을 비롯한 어른들의 대다수가 몰이해와 편견, 폭력으로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고통을 일탈과 방종, 폭력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비명을 질러대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비명을 들어주고 대신 그 고통을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그전까지는 ‘성폭력 피해’를 꼭 청소년 소설에서 다뤄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성폭력’은 피해자에게 그 어떤 폭력보다 강한 상처를 남긴다. 큰유진이와 작은유진이가 경험한 성폭력 피해를 통해 요즘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폭력’과 ‘상처’를 그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어둡고 아프게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자칫, 두 유진과 입장이 다른 아이들에게 공분을 불러일으킬 뿐, 공감을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부딪히는 일상을 담아, 어떤 상처라 할지라도 그것이 삶의 길을 멈추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오랜 시간 머무는 학교는 내게 많은 자극과 영감을 주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만 있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다양한 에피소드와 구체적인 공간 들이 떠올랐으며,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이 내 등장인물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주었다. 살아 움직이는 두 유진과 소라를 따라다닌 덕분에 나는 쭈뼛거리지 않고 그들의 일상과 내면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유진과 유진』에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등장한다. 많이 고민했던 부분 중의 하나가 어른들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까 하는 점이었다. 소설을 읽은 어른들에게도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보는 동시에 바람직한 어른의 길을 찾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상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어른을 그리기보다는 어른들 또한 아이들처럼 여전히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나는 아이와 어른을 모두 경험하였다. 사춘기 소녀에서 엄마를 오가는 동안 나는 내가 저절로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동안 많은 것들이 나를 기다리고 지켜봐주었다. 세상이, 그리고 세월이 기다려주지 않았으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첫 순간에서 내 삶은 정지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된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과 세월에 빚을 진 존재들이며 빚을 갚아야하는 것은 채무자의 당연한 의무이다. 그 사실을 깨닫게 되면 아무리 요즘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는 어른이라 할지라도, 한때는 요즘 아이들이던 자신의 과거가 보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게 묻는다. 그들은 정말 다른 별에서 온 낯선 종족인가?
내가 쓰고자 하는 청소년 소설은 앞으로도 그 질문에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위 글은 월간 『어린이와 문학』2005년 8월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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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의 창작노트

밤티 마을 사람들



우리들은 종종 인기리에 방영되는 텔레비전 드라마의 결말이나, 등장인물이 맡은 역할의 비중이 열혈 시청자들에 의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자본주의의 한복판을 살고 있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소비자와 동급으로 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극히 대중 지향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엄연히 창작 예술품의 하나라 할 수 있는 드라마에조차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지요.
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도 있는 기억이 하나 떠오르는군요.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열망으로 가득 찼던 등단 초기 시절의 일입니다. 한창 즐겨 보던 드라마에서 주연 배우가 개인 사정으로 출연을 중단하여 극의 내용이 바뀐 다음 나는 더 이상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극본이라는 창작품이 외부의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못해 실망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창작 예술품이란 그것을 생산해 낸 작가의 고유 권한에 속하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대상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나는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초판, 대교출판, 1994)을 읽은 독자들의 후속편 요청이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저 책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고 고맙게 여겼을 뿐 내가 정말로 뒷이야기를, 그것도 두 편이나 더 쓰게 되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지요. 뒷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계속되는 요청은 내게 강한 영감과 자극을 주었고, 이미 끝난 것으로 여겼던 큰돌이와 영미의 여정을 계속 지켜보게 만들었지요. 나는 그제야 그들과 그 가족에 대해 할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을 나보다 독자가 먼저 알아차린 것이지요.  
이야기가 남아 있다는 말은 어쩌면 캐릭터의 생명력이 남아 있다는 말과도 같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그 인물을 만들어 낸 작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역할을 모두 끝낸 등장인물을 강제로 이끌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처음엔 한 편의 장편동화였다가 결국 세 편의 연작 중 첫째 권이 돼 버린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의 캐릭터들은 실제 인물들을 모태로 해서 태어났습니다. 1년 남짓 보았던 이웃 아이들이 모델이었던 큰돌이와 영미는 실제로는 누나와 남동생이었지만, 엄마의 부재와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도 서로 아끼고 정을 나눔으로써 고된 일상을 견뎌 나가는 모습을 더욱 절실하게 그리기 위해 오누이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큰돌이와 영미처럼 두 살 터울의 오누이였던 내 아이들의 모습이 투영돼 좀더 생동감 있게 그릴 수 있었지요. 아버지를 실제와 비슷한 상황의 인물로 했다면, 약간의 정신지체가 있을 뿐이었던 할아버지는 신체장애를 가진 인물로 바꾸었습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장애 때문에 아이들에게 방패막이가 돼 주지 못하는 현실은 물론, 헤진 담요처럼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표현해 노인의 소외 문제까지 다루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강한 생명력과 매력을 갖게 되리라고 나 자신도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팥쥐 엄마는 먼 일가 아주머니를 보고 만들어 낸 인물입니다. 아주머니는 철없는 나이에 미혼모가 되었던 이력 때문에 세 살짜리 막내둥이를 비롯해 아이들이 일곱이나 있는 집으로 시집을 갔습니다. 가난한 살림살이에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15년 동안이나 늙은 시어머니와 가족들을 건사했지만 ‘새엄마는 나쁘다’는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제대로 어머니 대접을 받지 못한 채 결혼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가슴 속에 가득한 억울함과 분노 때문에 화병만 든 채로 말입니다.
실제로는 친엄마를 따라간 아이들을 그냥 밤티 마을에서 살게 하고 싶었던 나는 대신 큰돌이네 집에 새엄마를 들어오게 했습니다. 일가 아주머니의 불행한 개인사에 마음이 퍽 아팠던지라, 돌덩이처럼 굳어 있는 새엄마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트리는 심정으로 팥쥐 엄마를 그렸지요. 큰돌이네 새엄마에게 역설적으로 못된 계모의 상징인 ‘팥쥐 엄마’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는, 그네가 푸근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큰돌이네 집을 바꿔 나가는 모습을 그렸던 것입니다.
팥쥐 엄마는 30대 중반이 넘도록 여기저기 떠돌며 외롭게 지내다 장애인 시아버지에, 애가 둘이나 딸린 시골 남자와 결혼하는 인물입니다. 그런 캐릭터에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곰보에다 껑충하게 큰 키, 남자처럼 걸걸한 목소리를 가진 인물로 만들었지만, 팥쥐 엄마는 오히려 그런 자신의 모습이 매력으로 여겨지게 할 만큼 눈부신 활약을 벌였습니다. 마치 내가 꺼내 주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흥겹고 신나게 말입니다.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팥쥐 엄마의 뒤를 따라다니며 그네가 부리는 요술을 옮겨 적었습니다.
큰돌이와 영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방패막이가 돼 주지 못하는 할아버지, 어디론가 떠나 버린 엄마, 영미를 위한 입양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오누이를 생이별 하게 만든 쑥골 할머니, 영미를 사랑하면서도 정작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던 양부모 등 여러 어른들의 굴절된 모습을 그려 내느라 몹시 힘들었던 나는 점점 팥쥐 엄마에게 마음을 기대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은 큰돌이의 친엄마를 돌아오게 하려던 애초의 계획까지도 바꾸게 했지요. 큰돌이와 영미가 없는 밤티 마을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팥쥐 엄마가 없는 밤티 마을 역시 상상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밤티 마을 영미네 집

큰돌이와 영미라는 캐릭터는 실제 인물에 대한 동정과 연민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틀린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불행하고 버겁게 보였던 그들의 현실을 동화 속에서나마 행복하게 해 주고 싶은 소박한 마음이 최초의 모티프였으니까요.
그에 비해 『밤티 마을 영미네 집』(초판, 푸른책들, 2000)은 첫째 권인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을 기반으로 해서 시작했기에 실제 체험에서 오는 구속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좀더 자유롭게 큰돌이와 영미를 그릴 수 있었지요. 입양 갔다가 집으로 되돌아온 영미는 팥쥐 엄마는 물론 전에 두려움을 느끼던 아버지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행동합니다. 큰돌이와의 관계에서도 그 위상이 바뀌었습니다. 양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준 것이지요. 밤티 마을로 되돌아와서도 위축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양부모 못지않은 팥쥐 엄마의 사랑 덕분입니다.
큰돌이는 서서히 희미해져 가는 친엄마와의 약속과 자기도 모르게 자꾸만 팥쥐 엄마에게 끌리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을 느낍니다. 나는 ‘약속’보다는 ‘마음’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뭉클뭉클 느껴지고, 출렁출렁 움직이는 현재의 마음을 화석처럼 굳어 버린 오랜 약속으로 눌러 두기엔 큰돌이가 아직 어린아이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동안 너무 힘들게 살아왔으니까요.
어린 독자들은 『밤티 마을 영미네 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목이 큰돌이와 영미를 괴롭히는 재광이네 형제를 팥쥐 엄마가 혼내 주는 장면이라고 합니다. 나도 그 장면을 쓸 때 무척 신이 났습니다. 양손으로 재광이네 형제의 뒷덜미를 하나씩 잡아 올려 공중에서 부딪치는 장면이 다소 과장스럽다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하고 썼습니다. 그 동안 어른 못지않은 질곡의 삶을 건너온 큰돌이에게 가슴 뻥 뚫리는 순간을 맛보게 해 주고 싶었고, 영미가 팥쥐 엄마에게 마음을 여는 계기도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독자들이 팥쥐 엄마의 구원자 같은 모습에 환호를 보냈다면, 어른 독자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온전히 희생하려는 팥쥐 엄마의 모습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고 합니다. 나는 친엄마의 갑작스런 출현에 팥쥐 엄마가 큰돌이네 집을 떠날 결심을 하고는 할아버지의 머리를 깎아 주며 혼잣말을 하는 장면에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그 동안 동적인 모습만 보여 주던 팥쥐 엄마의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있는 귀한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왔던 팥쥐 엄마가 듣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에게 소리내 말하는 장면을 통해 그네가 겨우 얻은 행복에 대해 집착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결국 팥쥐 엄마는 그 동안 보여 주던 성품대로 아이들의 친엄마에 대해 모르는 척하고 싶은 갈등과 욕심을 할아버지의 머리와 손톱을 깎아 주면서 함께 잘라 버립니다.
그리고 『밤티 마을 영미네 집』에서 그리고 싶었던 것 중의 하나가 가족 내에서의 비중 있는 결정과 선택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왜 만날 나만 보내는 거야. 왜 나만 미워해?’ 하고 울며 소리치는 영미의 항변을 통해 완전한 인격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이지요.
‘다 오빠만 좋아해. 사람들두 다 큰돌이 아버지, 큰돌이 할아버지라구 부르구, 우리 집두 큰돌이네 집이라구 부르잖아.’
영미의 아이다운 엉뚱한 말에 식구들은 피식 웃지만 나는 나름대로 우리 사회에서 또다른 약자인 여성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했습니다. 전편인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개정판(푸른책들, 2004)을 내면서 마음에 걸려 고쳤지만, 초판에서도 큰돌이가 대를 이을 아들이라 집에 남고 영미가 입양돼 가는 것으로 설정했었습니다. 팥쥐 엄마 역시 여자에다 곰보 자국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어린 나이에 남의 집으로 떠돌다 결국은 가족을 잃게 되었습니다. 가족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하기에 충분한 팥쥐 엄마의 파란만장한 개인사는 큰돌이네 가족을 위해 자신의 행복조차 포 기할 수 있는 캐릭터의 근간이 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그 동안 어른들의 결정에 힘없이 휘둘리기만 하던 큰돌이는 드디어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집을 떠난 팥쥐 엄마를 찾아나서는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이루어 낸 『밤티 마을 영미네 집』(개정판, 푸른책들, 2005)은 별다른 노력 없이 얻었던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보다 훨씬 값진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밤티 마을 봄이네 집

『밤티 마을 봄이네 집』(푸른책들, 2005)에서는 새롭게 만들어진 가족이 완전하게 자리잡아 가는 과정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팥쥐 엄마가 낳은 봄이는 팥쥐 엄마와 가족을 더욱 견고하게 이어 주는 끈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갈등의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봄이를 시샘하는 영미에게 화를 내는 큰돌이는 속으로는 그 마음을 이해할 줄도 아는 소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의 두 권에서 겪은 일들이 큰돌이를 부쩍 자라게 한 것이지요. 동생을 본 여느 아이들이 하는 대로 통과의례 같은 진통을 겪던 영미는 팥쥐 엄마 얼굴에 흉터를 남긴 것 같은 수두를 앓고 난 뒤에야 팥쥐 엄마와 봄이에게 느끼던 거리감을 떨쳐 버립니다.
새로운 가족의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재혼을 한 친엄마의 가족까지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 아버지처럼 새아빠도 엄마한테 잘 해 주나, 혹시 나처럼 친엄마의 새 아이들이 속을 썩이지는 않나…….’
큰돌이와 영미 오누이에게 더 이상 친엄마와의 만남은 두렵거나 가슴 아픈 일이 아닙니다. 서로의 행복을 확인하고 빌어 주는 시간인 것입니다.  
<밤티 마을> 연작의 완결판인 『밤티 마을 봄이네 집』에서는 그 동안 함께 해 온 등장인물들에게 고루 마음을 쏟았지만 그 중에서도 더 신경을 쓴 캐릭터가 있다면 할아버지입니다. 어린 시절 열병을 앓아 장애인이 된 할아버지의 일생이 얼마나 굴곡진 삶이었을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면서 죄스러운 아들이 된 할아버지는 미안한 아버지에서 부끄러운 할아버지로 한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열병을 앓기 전에 경험했던 소리에 의지해 사람과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의 마음은 잔뜩 움츠러져 있습니다. 그 마음을 알고 어루만져 준 사람이 팥쥐 엄마입니다. 본인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자신의 존재감을 일깨워 주고 인정해 준 사람을 좋아하는 건 아주 당연한 일입니다. 더구나 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더욱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었기에 할아버지는 새로운 삶을 사는 듯 활기에 찼습니다.  
고추 농사가 잘 돼 기대에 부풀어 있는 큰돌이네 가족에게 태풍이라는 시련을 겪게 하는 일은 참 힘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는 동안 피붙이처럼 정이 들어 버린 그들의 꿈을 짓밟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행복의 가치를 점점 물질적인 것에 두고 억척을 떠는 팥쥐 엄마가 더 변하기 전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어 독해지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아주 독해지지는 못하고 태풍이 몰아치기 전날 밤, 큰돌이와 영미로 하여금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게 했지요. 오누이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나는 속으로 가만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이들이 희망을 간직하고 있는 한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그 고통이 담금질이 돼 이 가족을 더욱 단단하고 빛나게 하겠구나.’
하지만 나는, 희망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시련 앞에서 쉽사리 꺼져 버린다는 사실을, 또한 희망은 시련과 함께 사라진 그것을 기억하고 되찾으려는 사람에게만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일깨워 준 사람이 바로 할아버지입니다. 나는 그 때까지 할아버지가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은 오로지 팥쥐 엄마 덕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 때문에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삶의 진리를 들려 주는 일을, 감초 같은 역할로 처음부터 함께했던 쑥골 할머니의 몫으로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다른 가족들은 물론 팥쥐 엄마조차도 절망의 나락에 빠져 있을 때 할아버지는 자신이 할 일을 알아 냈습니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힘든 삶을 살았음이 분명한 할아버지는 이들 가족이 만난 큰 시련 앞에서 이미 단단해진 쇳날이 돼 희망을 캐내기 시작한 것이지요. 다 하려면 당신의 남은 평생이 걸려도 모자랄 것 같은 동작으로 태풍이 휩쓸고 간 고추를, 아니 희망을 일으켜 세우는 할아버지를 그리면서 나는 뜨거워지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그분의 존재를 가슴 가득 느꼈습니다.
그리고 책이 나온 뒤 가장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처음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자신의 상처 때문에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가 밉고 싫었습니다. 내게는 잘 이해도 되지 않고 용서도 할 수 없는 캐릭터였기에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보다는 멀찌감치 밀어 내려고만 들었지요. 하지만 그 역시 따뜻한 부성애를 가진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밤티 마을 봄이네 집』에 이르러서야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봄이에게 보여 주는 애정은 봄이의 출생과 함께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큰돌이와 영미를 키우며 체득한 것이지요. 다만 큰돌이와 영미에게는, 그 자신도 상처투성이의 삶 가운데 놓여져 있던 터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좀더 섬세하게 담지 못한 것이 작가로서 못내 아쉬울 따름입니다.

<밤티 마을> 연작은 한 가족의 성장사입니다. 책 밖에서는 10여 년의 세월이, 책 안에서는 4년 남짓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등장인물들은 스스로 생명력을 얻어 사건을 벌이고 겪어 나갔습니다. 자신들을 향한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에 신바람이 났던 게지요. 그 세월 동안 그들과 어울려 희로애락을 겪으며 작가인 나도 함께 성장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판을 낸 출판사가 달라 책마다 달랐던 그림이 두 권의 개정판과 『밤티 마을 봄이네 집』의 출간과 더불어 통일감을 얻었을 뿐 아니라 뚜렷한 이미지의 캐릭터가 생긴 것도 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특히 제목은 『밤티 마을 봄이네 집』이면서도 너무 어린 탓에 구체적인 캐릭터로 형상화되지 못했던 인물 봄이를 앙증맞은 모습으로 아장아장 걷게 해 준 것은 작가가 아니라 화가입니다. 내 마음 속의 풍경보다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그림으로 표현해 준 화가 양상용 씨도 <밤티 마을> 연작을 완성하는 데 큰 힘을 보태 주었지요.  
밤티 마을에는 이 모든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위 글은 <동화읽는가족> 2005년 겨울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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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 홍순철 팀장
등록일 : 2006/02/06

저 역시 대한민국 출판기획자의 한 사람입니다

김성신|출판저널리스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연재 제의를 받았는데, '기획회의가 만난 사람'이란 코너야. 첫 원고에 누굴 대상으로 해야 될지 고민이 좀 되더군. 생각 끝에 널 인터뷰하기로 했어." "아이고 형님, 제가 무슨…, 그럴 만한 대상이 되나요. 연륜 높고 훌륭하신 출판사 사장님들도 많이 계신데. 아무래도 제가 나설 자리는 아닌 듯 한데요." "지난 <기획회의>를 죽 살펴보니까 네 말대로 이 코너에 지금까지 훌륭한 분들 많이 나왔어. 젊은 네가 그분들에 비해 좀 덜 훌륭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 코너에서 앞으로 엄청 훌륭해질(?) 출판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겠어? 대망의 2006년도 됐는데 좀 새롭게 가보자는 거지. 어쨌든 이미 내가 결심했거든. 그러니까 넌 무조건 내 인터뷰에 응해줘야 해!" 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 홍순철 팀장에 대한 인터뷰 요청은 이런 대화가 오간 가운데 거의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

기존 한국 저작권중개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다
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는 책의 요약본을 온라인 서비스하기 위해 설립된 벤처기업 '북코스모스'의 한 부서로 지난 2000년 4월 만들어졌다. 대학 졸업 직후 임프리마코리아 저작권에이전시에 입사해 2년여 동안 독일어권 담당 저작권에이전트로서 일했던 홍순철이 북코스모스로 스카웃된 것이 바로 이때다. 당시 경력이라고는 말단 에이전트 2년에 불과했던 그가 저작권 팀장으로 전격 발탁된 것에 대해 우려의 시각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당시 출판계에서 저작권에이전시에 대해서 하는 말이 있었다. '차리기는 쉽지만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원, 에릭양, KCC, 임프리마. 이렇게 4곳의 대형 저작권에이전시를 제외하고는 90년대 말 이후 설립된 저작권에이전시는 하나같이 그만큼의 규모로 대형화되지는 못했다. 단지 언어권별로 특화되거나 기획의 방향이 한정되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지만 외국에서 이미 베스트셀러가 되었거나, 혹은 세계적 지명도를 가진 저자의 저술들, 따라서 저작권이 수입될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빅 타이틀들은 대형 에이전시에게 중개권이 독점되다시피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형 저작권에이전시들이 이미 오랜 기간 동안 해외의 유력한 저작권에이전시와 함께 일을 하면서 성실히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후발주자의 입장에서 그 사이에 끼어들 틈은 거의 없었다. 에이전시 입장에서 보면, 빅 타이틀이 없으니 큰 수입도 기대할 수 없었고, 수입이 적으니 당연히 성장할 수도 없었다. 홍순철이 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로 자리를 옮겨 팀장을 맡게 된 2000년도 당시의 우리나라 출판저작권중개업계의 상황은 그랬다. 당연히 당시 홍순철 팀장이 이끌게 될 북코스모스 에이전시의 성공 가능성은 누가 보더라도 매우 희박해 보였고, 그런 관점에서 홍 팀장은 지극히 무모한 도전을 벌이는 셈이었다. 그렇게 꼬박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직접 물어보기로 하고 우선 결과부터 살펴보자.

2005년도 한 해 동안 북코스모스 에이전시는 약 500여 권의 타이틀을 계약했다. 작년 12월 한 달 동안 계약이 성사된 타이틀 수만 해도 50여 권이 넘는다. 불과 몇 년 사이 명실상부한 메이저 저작권에이전시가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에이전시가 빅4만큼 성장할 수 없다'던 고정관념이 깨진 것이다. 2005년은 출판인들의 술자리에서 '이제 북코스모스가 업계 몇 위쯤 될까' 하는 이야기가 종종 안주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던 한 해였다. 북코스모스 에이전시는 최근 수년 간 한국 출판의 대외적 성장에도 기여한 바가 크다. 소설로 재구성된 『겨울연가』와 『가을동화』를 일본에 저작권 수출할 때도 화제가 됐고, 소설 『대장금』을 적극적으로 해외 홍보하여 태국으로 수출한 일도 칭찬받을 만했다. 홍순철 팀장은 말한다. "이제야 겨우 생존을 위한 시기가 지나갔습니다. 우리에게 2006년은 성장과 도약을 위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그는 짐짓 겸손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질곡을 헤쳐나간 자들만이 풍길 수 있는 강한 체취를 풍겼다.

책의 진정한 힘 때문에
김성신(이하 김) 에이전시 업계에 처음 입사한 것이 언제고 왜 출판계에 들어오기로 작정했는지요? (홍순철 팀장과 필자는 오래 전부터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이기에 사실 인터뷰는 비속어가 난무하는 하대체로 시종 이루어졌지만 지면의 격을 감안하여 모두 경어체로 바꾼다.)
홍순철(이하 홍) 제가 외국어대학교 독어과를 졸업한 것이 1998년이지요. 원래 방송사 입사가 학창 시절부터의 오랜 꿈이었는데, 졸업 1년을 앞두고 IMF가 터졌어요. 그때부터 방송국들이 신입사원을 뽑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일반 대기업에 사무직으로 입사를 하기는 했는데, 이런 일을 평생 동안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더군요. 그래서 몇 달 있다가 바로 퇴사를 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평소 좋아하던 책도 읽고, 공부도 하면서 구체적으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었지요.

김  얘길 듣다보니 다치바나 다카시의 명문 '퇴사의 변'이 생각나는군요. 그 사람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지요. 비슷하군요.(웃음) 그래서 찾은 회사가 저작권에이전시였나 보지요?
홍  사실 저작권에이전시는 잠시만 있을 생각이었어요. 책을 읽어야만 하는 업종이라 공부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공부하면서 일도 하고, 그러다 경제 여건이 좋아져서 방송국이 사람을 다시 뽑으면 지원하려고요. 사회초년생들이 다 그렇듯이 당시에 제가 좀 관념적인 판단을 했던 거죠. 더군다나 당시 저작권에이전트의 보수는 정말 적었어요. 대기업의 3분의 1이나 되었을까? 그랬으니 '난 이렇게 적은 보수 받으면서 일할 사람이 아니다' 하는 건방진 생각도 있었던 것 같고요.

김  그러다가 붙들렸군요? 출판계에. 출판이 좀 미궁 같은 면이 있지요. 한번 들어오면 빠져나가기 힘든.(웃음)
홍  출판계에 붙들렸다기보다는 책의 진정한 힘에 굴복한 것이겠지요. 저작권에이전시의 일이라는 것이 그래요. 처음엔 그냥 중개되는 한 건 한 건이 이렇게 돈이 되는구나 하는 것에, 그러니까 사업적인 면이 신기하지요. 하지만 조금 일하다 보면 책이라는 것이 가진 사회적 의미, 그러니까 한 권의 책이 한 나라의 문화에 얼마나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있거든요. 생각의 힘을 지닌 책들을 제 손으로 찾아 전하는 일이 저작권중개업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점차 떠날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이 일을 제대로만 한다면 세상을 바꾸기도 할 수 있겠구나.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신용이 부족한 중소형 출판사들
김  우리 출판업계 사람들 대부분이 다들 그 비슷한 생각 때문에 붙잡히지요. 박봉과 격무에 시달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굳건함, 그건 우리의 힘이라기보다는 책의 힘이지요. 그런데 계속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기만 하다보면 초심을 잃는 경우도 많잖아요? 일단 돈부터 벌고 봐야한다, 그런 생각도 들고. 어쨌든 마음 굳게 먹는다고 마냥 버틸 수 없는 부분도 있잖아요?
홍  출판사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그렇지만 저작권에이전시도 그런 면에서 똑같아요. 처음엔 책에 관련한 일에 종사한다는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하지만 업무상에서 많이 지쳐요.
특히 출판사가 로열티 지급에 있어서 신용을 지키지 않는 일이 자꾸 생기다보면 일 자체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하지요. 사실 우리 중소형 출판사들의 파이낸셜 크래딧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봐야합니다. 대체적으로 저작권에이전시들이 규모가 큰 출판사가 아닌 중소형 출판사와의 중개 거래를 꺼리게 되는 것도 이 문제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문제 때문에 작은 출판사가 외국도서 기획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당하게 되는, 다시 말해 빈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이 생기는 거죠. 저희 북코스모스가 이제 설립 6년차에 접어듭니다. 지난 5년간이 생존의 시기였다면 이제부터는 도약의 시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도약을 위한 여러 가지 통계자료를 만들어 봤는데요. 그러다가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지금까지 저희는 기존의 저작권에이전시와의 차별화를 위해 중소형 출판사를 위한 중개 거래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통계를 뽑아보니 중소형 출판사가 계약서대로 로열티의 지급 이행을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적인 압박도 문제지만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저희 에이전시와 파트너십을 가지고 일을 하는 외국의 저작권에이전시 사이에 신뢰의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지요. 이 문제는 비단 저희만의 문제라기보다는, 한국의 저작권에이전시 모두를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문제지만 후발주자인 저희로서는 훨씬 더 치명적입니다. 그러니까 딜레마는 구체적으로 이런 겁니다. 저희가 이만큼 성장하는 데 있어 기반이 된 것은 수많은 중소형 출판사였습니다. 이런 출판사들과의 의리를 함부로 저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우리 출판사들의 경제적 사정만을 감안해드리기에는 외국 에이전시와의 신뢰관계에 있어 치명적인 문제가 일어납니다. 더군다나 최근 몇 년간 외국 에이전시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한국 출판사들이 종종 로열티 보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을 눈치 챈 일부 외국 에이전시들은 계약금을 터무니없이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 한국 출판사의 경영을 압박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는 거죠. 한마디로 악순환입니다.

김  한국 출판사들에게 섭섭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홍  섭섭하다기보다는 우선 안타깝지요. 출판사에 계시는 분들은 타이틀이라는 물건만 만나지만 저희는 중개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을 만나면 감정이 드러나지요.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요즘 좀 어려우니까 선인세 지급을 며칠 미루자' 이렇게 말씀하시지만, 계약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만으로 외국 출판인들이 우리나라 전체를 우습게 보는 느낌을 저희는 직접적으로 받거든요. 굉장히 자존심 상합니다.
이건 일을 떠나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게 되는, 아주 괴로운 감정입니다. 현실적으로도 이런 신용의 문제 때문에 우리 출판계 전체가 많은 불이익을 당합니다. 계약금액이 터무니없이 높아지는 것도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별 중요한 인물도 아닌 제가 감히 이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나선 것도 사실은 이런 말씀을 드리기 위한 부분이 있었어요. 우리 출판계 전체의 이익과 관계되는 일이니까요. 일선에 있다보니 우리 출판계가 이런 점에서 많이 걱정되거든요. 어쨌든 이건 안타까운 일이고요. 아까 섭섭한 점이 있냐고 물으셨는데 그건 따로 있습니다.(웃음)



"저작권에이전트도 출판인입니다."
김  출판사 분들에게 섭섭한 점은 따로 있다고요? 뭐가 그렇게 우리 홍 팀장님을 섭섭하게 했는지 꼭 알고 싶군요.(웃음)
홍  한국의 출판사들이 저희 저작권에이전트들을 출판계 외부인으로 인식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가장 섭섭합니다. 간혹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너희 일은 결국 외국 출판사나 저작권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너희는 우리 출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식의 관점으로 보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건 진짜 섭섭합니다. 저 개인적으로 저작권에이전트 일을 하면서 한번도 스스로 출판인이 아니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제가 일하고 있는 쪽이 책을 직접 만들어 유통하는 출판사가 아니라는 것뿐이지 출판 기획 업무라는 측면에서 보면 똑같습니다. 이 세상에 나와 있는 수없이 많은 책들을 대상으로 해서 이것을 면밀히 분석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지식과 정보가 있는지 살펴서 그 내용을 가장 효과적으로 살려낼 수 있는 출판사에 건네 드리는 것이 제 일입니다. 이것은 출판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자 덕목이고 저는 바로 그런 일에 복무하는 것인데, 그런 저에게 '너는 출판인도 아니다'라고 한다면 섭섭하지요. 더군다나 '거간꾼'으로까지 지칭하면 정말 맥이 풀립니다. 이 말 저는 정말 싫어하거든요.
제가 지금껏 저작권중개 일을 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는 책이 있습니다. 을파소에서 2001년 출간된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입니다. 보도 섀퍼라는 저자가 알려지지도 않았던 때였고, 더군다나 우리 경제경영 분야에서 독일 저자의 책이 제대로 팔려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저 경제경영 분야라고 하면 미국 저자의 책만 있는 줄 알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책을 받아 살펴보니 우리 청소년들이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열심히 소개했지요. 우리나라에서 100만 부도 넘게 나간 그 책이 정작 독일에서는 얼마나 나갔는지 아십니까? 10만 부 조금 넘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로 건너와 21세기북스(을파소의 모회사) 같은 능력 있는 출판사를 만난 것도 그 책 나름의 복이지만 저는 정말 그 책을 찾아낸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2004년에는 속편도 나왔는데 을파소가 원저작권을 따내 여러 나라에 저작권 수출까지 했어요. 그때도 얼마나 기분 좋았는지. '키라'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제 기억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저작권 수출에 힘쓰다
김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 출판 저작권을 외국으로 수출하는 일에 그렇게 열성적인 것도 홍 팀장께서 출판인이고자 하는 의지의 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홍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맙군요. 저작권 수출은 저작권에이전트가 되면서부터 관심이 있었습니다. 해외 저작권의 번역 출판이 우리 전체 출판 종수의 30퍼센트가 넘습니다. 자연히 저작권에이전시의 업무도 저작권 수출보다는 저작권의 수입에만 집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업무가 국내자본의 해외유출업무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요.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 저작권 수출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좋다는 쪽으로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침 영상매체 쪽에서 먼저 아시아권에 한류를 일으켰고, 그래서 잘하면 책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습니다. 물론 저 혼자 생각한 일이 아니라 우리 북코스모스의 저작권팀 전체의 생각이 그랬습니다. 특히 일본어권을 담당하고 있는 한유키코 씨의 적극적인 활동이 큰 성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책으로 재구성된 『겨울연가』와 『가을동화』 같은 책들이 저희 중개로 일본에 수출 된 것에 대해서 무척 기쁩니다. 더 나아가 자본의 해외유출업이라는 오명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홀가분하기도 하고, 내부적으로는 저희가 저작권에이전시로서 제대로 임무수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도 느낍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겨울연가』는 일본에서 100만 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한국으로 돈 많이 가져왔습니다.(웃음)

김  작년에는 북코스모스 중개로 『대장금』이 태국에 수출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연간 에이전시의 수출입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요? 또 북코스모스에서 중개해서 최근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들은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홍  저희가 연간 500여 권 이상의 해외 저작물들을 국내에 소개하고 있고, 2000년부터는 연간 50여 권 이상의 국내 저작물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죠? 최근 저희 중개로 국내 출간된 도서들은 음…, 너무 많아서 잘 떠오르지가 않는데. 그건 오늘 저녁에 정리해서 메일로 따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그 날 밤 홍순철 팀장이 보내준 메일에는 다음의 책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1. 수입 : 『내 인생을 바꾼 스무살 여행』(작가정신), 『물은 답을 알고 있다』(나무심는사람),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바움), 'Insights Guide' 여행서 시리즈(영진닷컴),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작품), 『행복』(랜덤하우스중앙), 『미운오리새끼의 출근』(생각의 나무), 『지금, 만나러 갑니다』(랜덤하우스중앙)
2. 수출 : 『겨울연가』 (일본), 『가을동화』(일본·중국·대만), 『가시고기』(일본), 『국화꽃 향기』(중국·대만), 『아홉살 인생』(일본·태국), 『파페포포 메모리즈』(일본·중국), 『대장금』(태국), 『하루』(일본), 『그 남자 그 여자』(일본), 『풀하우스』(중국·태국), 『웃지마! 나 영어책이야』(일본),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중국),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중국)

김  불과 5년 동안 국내 저작권에이전시로서는 경이롭다고 할 만한 성장 속도인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었나요? 현재 우리나라에는 저작권에이전시가 2-300 곳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에이전시, 이른바 '빅4'(신원, KCC, 임프리마, 에릭양을 지칭)가 형성된 이후에는 이런 규모로 커진 에이전시는 전무했는데, 북코스모스가 유일하게 그런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최근 출판인들의 술자리에서는 에이전시 순위를 다시 정해 '빅4'의 명단을 조정해야 하느냐, 아니면 '빅5'로 지칭해야 하느냐, 하는 그런 농담들이 오갑니다.
홍  업계 내에서의 순위를 거론한다는 것이 사실 별 의미는 없겠죠. 하지만 그런 말들이 나온다면 저희 입장에서 기분 나쁠 것은 없습니다. 저희가 만들어낸 성과에 대해 출판인들이 인정해주시는 어떤 방식이라는 생각도 드니까요. 그저 감사하지요. 저희의 성장에 대해서는 저희로서도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시기적으로 저희 회사가 설립되던 무렵에 벤처 기업 붐이 조성되어 있었는데요, 북코스모스는 2000년에 벤처 투자금으로 설립된 온라인 콘텐츠 벤처기업입니다. 물론 지금도 회사의 성격에 변함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북코스모스 저작권에이전시는 북코스모스의 업무 특성상의 필요에 의해 구성된 일개 부서였지요.대기업에서 다져진 경영과 자금운용 능력을 유능하게 접목한 최종옥 사장님이 저작권에이전시 경영의 뒤를 받쳐주었던 것이 구조적으로는 가장 큰 성장 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성장의 또 다른 한 축은 아무래도 맨 파워라고 볼 수 있지요. 경력이 일천했던 당시의 제게 큰 신뢰를 보내주며 뒷받침을 해주었던 우리 팀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출판기획자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김  저는 전략적인 차별화도 분명히 있었다고 보는데요. 당시에 북코스모스 에이전시를 가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뭔가 기존의 에이전시와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었어요.
그건 홍순철 팀장이 단지 미남이기 때문에 받았던 인상은 아닌 것 같거든요?(웃음) 그런 차별화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었던 구체적인 배경이 궁금합니다.
홍  앞서서도 잠깐 드렸던 말씀이지만,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출판인이다.
거간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중개자의 마인드로 실적에 집중하기보다는 출판기획자로서의 마인드를 가지고 우리도 책을 기획하자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고맙게도 저희를 보신 출판인들께서 그런 점을 눈치채셔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그런 생각은 어떤 전략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신생회사로서 출사표를 던지는 국면에서 당연히 가졌어야 할, 말하자면 일종의 도덕성 같은 것에 더 가까울 겁니다. 최근에는 그런 초심을 우리가 얼마나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점에 포인트를 두고 일종의 자기검열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김  그럼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도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홍  책은 세상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나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나침반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인지 나침반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수행하는 책들에 관심이 많이 생깁니다. 최근에는 명민한 미래예측서나 섬세한 트랜드 분석서를 찾아보고 있습니다.
가령 구체적으로는 창해에서 나온 『세계는 평평하다』나 21세기북스의 『블링크』 같은 책들을 올해에는 저도 많이 발굴해서 소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홍순철이라는 인물을 처음 만난 것은 그의 출판계 입성 직후인 1998년이었다. 하지만 그 해에 몇 번이나 만났을까? 그저 일 때문에 만났던 것이 다였다. 그런데 그가 불쑥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추적추적 비 내리던 어느 가을날 좀 우울한 얼굴로 다가온 그는 대뜸 술 한 잔 함께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우린 그 날 그 술자리로부터 형님 아우 하는 사이가 되었고 지금까지 줄곧 가깝게 지내고 있다. 요즘도 우리는 가끔 부부동반으로 식사를 하기도 하고, 아이가 태어나거나, 돌맞이를 하거나, 둘 중 누가 새 집을 얻기라도 하면 제일 먼저 인사를 챙긴다. 그런 그에게 인터뷰를 하는 동안 난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이 사람을 내가 오늘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에게로부터 오랫동안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려졌기 때문일까? 그저 어리게만 보았던 그의 속내에 그렇게 깊은 생각과 뜨거운 열정이 들어있었는지 오랫동안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본래 너무 가까운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법. '오늘 이 인터뷰가 나와 이 친구 사이에 나름대로 큰 의미가 있겠구나'하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오랫동안 친했던 아우 하나를 잃었고 대신 든든한 친구 하나를 얻었다. 묘하게 섭섭했고 묘하게 즐거웠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16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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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출판사가 대접받아야 좋은 나라입니다

최성일|도서평론가
robli@freechal.com

이제 환경 책은 수적으로나 품질로나 우리 출판 장르의 한 축을 이룬다. 하지만 출판을 다루는 지면의 환경 책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2005년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도서의 면면은 그런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구랍 21일 현재 드러난 신문과 잡지의 '올해의 책' 선정 결과를 보면, 꾸준하게 생태 환경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시사저널>을 제외한 두 신문이 환경 책을 대하는 마음 씀씀이는 박하다.

오히려 환경 책을 평가하고 널리 알리며 환경 책 전문 출판인을 격려하는 일은 환경운동단체의 몫이 되고 있다. 사단법인 환경과생명은 2005년 11월 환경 책 길잡이 2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환경책, 우리 시대의 구명보트』는 시민에게 권하는 환경 책 100권의 서평 모음이고, 『환경책, 바로 보면 바로 자란다』는 환경 책 독서교육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이 2권은 행정자치부의 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 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환경과생명은 2003년에도 역시 행정자치부의 지원을 받아 환경 책 보급 사업을 펼친 바 있다.

환경정의(옛 환경정의시민연대)는 2002년부터 해마다 '환경 책 큰 잔치'를 열고 있다. 잔치 실행위원들이 올해의 환경 책 10권을 꼽고, '다음 100년을 살리는 환경 책 100권'을 업데이트하는데, 2003년의 두 번째 잔치부터는 출판을 통한 환경문화운동을 벌여온 출판인에게 '한우물상'을 주고 있다. 첫 해 따님의 송대원 대표와 수문출판사의 이수용 대표가 함께 받았고, 두 번째는 그물코 장은성 대표에게 돌아갔다. 2005년의 수상자는 이한중 번역가다.

그런데 한우물상을 받은 출판사들의 요즘 형편이 예전 같지 않아 못내 아쉽다. 대표적인 환경 책 전문 출판사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은 우리나라 생태 환경 출판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여 씁쓸하기도 하다. 환경 책의 종수는 나날이 늘지만, 정작 전문 출판사는 발붙이기 어렵다. 필자가, 새해부터 본란의 바통을 이어받은 새로운 주자의 한 사람으로서, 힘든 여건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책을 내고 있는 달팽이출판의 김영조 대표(48)를 첫 인터뷰 대상자로 선택한 까닭은 이러한 환경 책 출판의 풍요 속 빈곤과 무관하지 않다.



20년 경력의 비주류 출판인
최성일(이하 최) 저는 인터뷰할 때 나이부터 여쭙거든요. 출판 쪽에서 일한 지는 얼마나 되세요?
김영조(이하 김) 아, 저요. 몇 살처럼 보여요? 58년생이에요.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아니라고 오해를 하는데, 젊어 보이는 게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고 그래요.
출판계에 발을 들여 놓은 건 1987년 무렵입니다. 금성출판사가 첫 직장입니다. 전공은 국문학이에요. 출판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누구 말대로 고상하게 시나 쓰면서 먹고 살겠다고 생각했지. 금성출판사에 들어갔는데 거기는 전집물 출판사 아닙니까. 업무가 분화가 돼 있어요. 한국문학부에 배치됐는데 하루 종일 교정만 보는 거예요. 교정도 많이 안 봐요. 하루에 15-20쪽 갖고 떡을 치는 거야. 그야말로 룰루랄라 참 좋았는데 문제는 당시가 열악했어요.
근무 여건이 아니라 대우가 박했어요. 시간관념 이런 건 정확해서 6시 땡 하면 칼 퇴근을 했지요. 한 시간 더 일하면 시간외 수당도 받았지만, 처우는 썩 좋지 않았어요. 당시 전집물 출판사는 부자였는데도 말입니다. 노동조합을 만들었어요. 1987년 그때가 한창 노조를 만들 때였잖아요. 동료 몇 사람과 주동이 되어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고의 수순을 밟았지요. 금성출판사에는 한 삼 년 정도 있었습니다.
금성출판사에서 쫓겨나 지금은 없어진 작은 출판사 한 곳을 잠시 거쳐 들어간 데가 영림카디널이에요. 거기는 좀 오래 있었죠. 7, 8년 있었나. 거기서 인생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편집을 맡아 출판 영업에 대해선 전혀 몰랐어요. 영림카디널에서 만든 책 중에 지금도 팔리는 것이 있어요. 『세계화의 덫』(한스 미터 마르틴 외)이라고 강수돌 교수가 번역한 것과 사이먼 싱의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라는 책입니다. 앞의 책은 세계화 비판서로는 처음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나중 책은 스테디셀러가 되었지요. 마이클 클라이튼과 시드니 셀던의 소설도 편집했습니다. 출판계의 주변부를 겉돈 비주류 출판인이죠.

   그러면, 영림카디널 그만두고 바로 출판사를 차렸나요?
   출판사 말고 다른 것을 하자고 집사람과 궁리를 했지요. 뭘 할까? 그동안 생각한 게 뭐냐 하면, 서점이었어요. 어린이 책 전문 서점. 당시 일산에서 제일 큰 서점이 정글북이었어요. 그 뒷건물에다 어린이 책 서점을 차렸죠. 어린이 도서관을 같이 했어요. 2000년대 들어와서의 일이죠. 서점은 1년을 버텼나. 도서관은 찾는 사람이 좀 있는데 서점은 안 되더군요. 서점을 하다 망하기는 했지만 그때 출판사가 불쌍하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 서점에 있던 책을 그대로 다 가져가는데, 그게 출판사엔 손해잖아요.
도서관은 2004년까지 운영했어요. 우리나라에 어린이 도서관이 몇 개 있는데 정부 지원을 못 받아요. 사설 도서관은 좋은 일인데 말이에요. 선거에 즈음해 딱 한 번 지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지원금이 한 번 나오고는 그 다음부터는 안 나와요. 그래서 집사람과 역할분담을 하기로 했지요. 아내가 도서관 운영을 도맡고, 저는 다른 일을 하기로. 솔직히 출판에는 자신이 없었어요. 주변 사람에게 물어 보면, 백이면 백 다 하지 말라고 그러지요. 요즘은 달팽이출판을 잘 해보라 격려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돈 없이 출판은 할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아는 게 책 만드는 일이라서 2002년 출판등록을 했지요.

   출판사 등록과 첫 책 발행 사이에 1년 4개월의 공백기가 있습니다.
   출판사들이 대부분 그래요. 출판사 등록증이 있어야 저작권 계약을 할 수 있거든요.
1년 정도를 창업 준비과정으로 보면 됩니다. 10종 가량 출간 예정 도서를 미리 마련해 놓고 시작해야 하니까. 창업 준비 기간에 기획한 책 가운데 아직 내지 못한 책이 있어요. 국내 필자는 잘 모르니까 다 번역서였지요.

   2006 환경 책 큰 잔치의 '한우물상' 수상자로 유력해 보이는데요.
   이런 자리에서 이런 얘기 하기는 뭣하지만 상을 받으면 기분은 좋겠지요. 그게 출판사에 격려는 되지만 한편으로는 쓸쓸해요. 잔치를 공동 주관하는 대형서점의 매장에서 책을 전시하고 판매합니다. 지난해 저희 출판사 책도 『동물의 역습』(마크 롤랜즈)을 비롯, 몇 권이 진열대에 놓였지만 얼마 못 팔았어요. 환경 책 큰 잔치가 희망을 주려는 행사임은 잘 압니다. 큰 출판사들이야 상관없겠지만 저희 같은 작은 출판사에겐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아요. 어쩌다 환경 전문 출판사가 됐는데, 이게 부담을 주고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다른 분야로 시야를 넓히려 해도 좀 걸려요. 상업성 있는 것 하고 싶어도, 주변에서 달팽이출판은 좋은 책만 낸다, 안 팔려도 꿋꿋하게 잘 버틴다, 그러니 주저하게 되지요.

틈새시장을 공략하려는 의도
   그래도 출간목록을 보면 환경 책 전문 출판을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데요.
   내 딴에는 경영적 안목에서 틈새시장을 노린 거였지요.(웃음) <녹색평론>을 창간 초기부터 봤어요. 생태 환경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내 정서에 맞는 느낌이 들었고, 그렇게 살아야지 좋은 거 아닙니까. 우선, 생태 환경을 해 보고 나서 다른 걸 하자.
따님 출판사에게 고무받기도 했지요. 따님이 지금은 방향을 약간 튼 측면이 있으나 대단한 출판사라고 생각합니다. 따님에는 한우물상이 아니라 정부에서 훈장을 줘야지요. 달팽이보다 조금 먼저 닻을 올린 그물코도 있고요. 돈은 안 되더라도 가치 있는 일을 하자는 생각도 있었겠죠. 지금 생각하면 내 욕심만 챙긴 거라 식구들에게는 참 미안해요. 3년간 집에 돈을 못 갖다 줬거든요. 일정액을 갖고 시작했는데 돈이 나오는 게 아니라 계속 들어가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2004년에는 해볼 때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돈을 긁어모아 책을 냈지요. 그런데 2005년에는 쏟아 붓기만을 되풀이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가장으로서 염치가 있지. 속도조절을 한 탓에 지난해 성적이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달팽이가 환경 책 출판에서 입지를 굳힌 것 같은데요.
   자리를 잡은 건 좋아요. 그러고 싶었고. 하지만 방금 말한 대로 나만의 욕심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내가 이렇게 계속 밀고 나가도 될런지. 2005년에도 신간을 4권 냈지만, 한 권 낼 때마다 다음 제작비는 건져야지 했는데, 제작비가 나오지 않았어요. 작년만 해도 4권의 제작비를 새로 투자한 셈이거든요. 자구책을 마련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녀 보기도 했어요.
우리나라의 생태 환경 출판이 독자를 앞서가는 것 같아요. 독자의 관심은 첨예한데 독서 행위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으니 출판사로선 참 안타까운 노릇이죠. 그 이유가 뭘까? 달팽이출판을 기준으로 한번 따져 봤어요. 첫째, 영업을 못해서 그런가? 제가 영업 수완이 없기도 하지만 작은 출판사로서는 시장의 벽이 참 높아요. 둘째, 기획에 문제가 있는가? 환경 책이라고 모두 독자의 외면을 받는 건 아니잖아요. 황대권 선생의 『야생초 편지』(박경화, 명진출판)나 최성현 선생의 『좁쌀 한 알』(이상 도솔) 같은 책은 잘 팔리잖아요.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사는 법』이라는 책도 그렇고. 우리나라 독자에게 맞는 환경 책을 만들지 못한 내 기획력의 부재 탓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대요.
셋째, 서점에 문제가 있는가? 저번에 어느 신문에서도 다뤘지만 서점의 좋은 자리는 대개 자본력이 풍부한 출판사 차지예요. 신간이 나왔다고 이야기를 하면 책을 깔아주기는 하죠.
그런데 어떤 때는 한 출판사가 같은 분야의 책을 여덟 자리나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8종이 다양하게 깔려야 할 텐데. 그 자리를 빼앗긴 출판사 7곳은 죽으라는 거나 마찬가지죠. 페어플레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시장논리에 따라 어쩔 수 없다면 할 말은 없어요. 상업성을 앞세운 출판사들이라면 그러려니 하는데 의외로 점잖고 양식 있는 출판사까지 이에 가세하니 '우리나라에서 돈 없는 출판사는 살아남기 어렵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방금 언급하신 책 중에는 엄밀히 말하면, 환경 책이 아닌 것도 있죠. 황대권 씨의 『야생초 편지』만 해도 밀리언셀러가 어떻게 환경 책일 수 있나요? 시작은 친환경이었는지 몰라도 결과는 완전히 반환경이죠.
   그래서 녹색평론사가 존경스럽기도 해요. 느낌표 추천도서 선정에 응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아무튼 환경 책 출판 여건은 점점 나빠질 거예요.



환경 책의 정의
환경 책이란 무엇일까? 작가이면서 생태 환경운동에도 몰두하고 있는 최성각 선생은 환경 책을 이렇게 정의한다. "지금 우리네 살림살이가 최소한이나마 사람답게 지속되기 위한 깊은 고민과 모색이 배어 있고,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는 신념과 뜨거운 감성이 있고, 의심하지 않고 진행되는 우리 문명에 대한 진단이 있고, 인간의 얼굴을 한 상식의 힘도 보여주고 있고, 자궁의 마음 땅의 마음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우리네 희망의 근거인 다음 세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해법이 상상력과 감수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담겨 있"는 책이다. 환경 책은 생명과 행복의 문제를 정직하게 담은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좋은 책들의 정수"이기도 하다.

   스스로를 생태주의자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생태주의'란 무엇을 말하나요?    저는 생태적으로 살려고 노력해요. 막말로 돈은 없어도 유기농산물을 먹으려고 해요. 유기농가에 가서 직접 구매를 하기도 하고, 원당에서 누구랑 같이 밭을 300여 평 일구기도 합니다. 차도 없잖아요. 집도 가난하고, 내복도 입고 다니며, 애들 사교육도 안 시킵니다.
가능하면 절약하려 합니다. 생태적으로 산다는 것은, 공해가 어떻고 매연이 어떻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리 공해타령을 해도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어요. "시인의 마음이 생태적 삶에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영성에 가까운 책들을 내는 것은 공해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더 바랄 게 없는 삶』(야마오 산세이)도 그렇고, 『에코 요가』(헨릭 스콜리모우스키)도 그렇고. 앞의 책은 특히 그렇거든요.
최근 펴낸 『2030 기후대습격』(로버트 헌터)은 환경공학 서적으로 볼 수도 있으나, 제가 추구하는 주제와 맥락이 닿아 있습니다. 이 책의 지은이 또한 영성을 중요시하거든요.  
사람의 정서적인 변화, 인식의 변화가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흐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빗방울처럼 다가와서 그런지 생태적 사치의 측면이 없지 않아요. 일부 환경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이나 유기 농산물 붐이 이는 데에는 유행의 속성도 다분히 있지요.
개인의 각성과 삶의 자세의 변화 없이 지구 환경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환경 책 일색의 목록에 변화를 꾀할 생각은 없나요?   사실 인문 분야에도 신경을 많이 쓰기는 했습니다. 인문 쪽에도 관심이 있거든요.
아직 실행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이 책 전문서점과 어린이 도서관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어린이 책도 만들고 싶어요. 그림책 공부도 했습니다.

   많이 팔린 책은 어떤 책인가요?
   『즐거운 불편』을 3쇄 4000부 찍었습니다. 수금은 2, 3000부 했을까, 겨우 제작비 건졌다는 거예요. 그밖에는 재쇄를 한 게 거의 없습니다. 첫 책 『야생의 순례자 시튼』(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청소년들의 호응을 얻어 좀 팔았지요. 그래서 청소년용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페트라 켈리의 『희망은 있다』도 청소년에게 알맞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점에 희망을 걸었지요. 한데 예상 외로 페트라 켈리에 대해 잘 몰라요.
이 여자의 삶이 극적인데다 한국어판 전기도 2권 나와 있어서 기대를 했는데 '아, 이럴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을 깨달았어요. 그나마 이 책이 2005년 문화관광부 추천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된 덕분에 재고를 많이 정리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희망은 있다』 말고도 유력기관의 선정도서나 추천도서로 뽑힌 달팽이의 책이 더러 있던데요.
   2004년에는 『즐거운 불편』이 환경 책 큰 잔치 '올해의 환경책 10권' 안에 들고, 환경부 우수환경도서로 선정되었습니다. 2005년에는 『동물의 역습』이 '올해의 환경책 10권'에 포함되고, 『지렁이, 소리 없이 땅을 일구는 숨은 일꾼』(에이미 스튜어트)은 간행물윤리위원회 청소년 권장도서로 꼽혔지요. 그렇지만 실속은 없어요.

   이른바 '황우석 사태'는 어떻게 보시는지?
   제가 과학에 문외한이었어요. 새해 첫 책으로 인천도시생태연구소 박병상 소장의 『희망의 내일』(가제) 을 출간할 예정인데 그 책 원고를 열심히 읽은 덕분에 과학상식이 좀 늘었죠.
사태의 원인은 국수주의가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고, 과학만능주의와 정부의 실적 위주의 과학정책이 상승 작용을 일으켰다고 봅니다. 요즘 과학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몸집을 불려 거대과학이 되다 보니 일반인들은 암암리에 피해를 입게 되는데 이번 사태가 그런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가 아니면서 문제 제기를 했다고 취재진이 한때 욕을 먹기는 했지만 진실을 밝히는 계기가 된 것은 다행스럽지요. 하지만 민족주의가 맹목적 애국주의로 흐르는 것은 걱정스런 일입니다. 그런 성향의 뿌리가 결코 얕지 않다는 것은 잘 알지만서도. 리영희 선생은 대담 형식의 자서전인 『대화』(한길사)에서 아직도 반공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에 대해 서글픔과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는데, 황우석 교수 사건도 색깔론이 맹목적 애국주의로 빛깔만 바꿨지 본질은 같다고 봐요. 자본과 권력이 손을 맞잡고 과학을 좌지우지하면 얼마나 위험한가 보여준 사건이기도 합니다. 박병상 씨의 글이 생명공학의 비윤리성을 잘 지적하고 있어요.

   박병상 선생의 책이 달팽이로선 국내 저자의 첫 책이겠네요.
   진작부터 국내 저자의 책을 내고 싶어서 국내 필자를 찾았어요. 대학에 학과가 개설된 환경공학 방면의 저자는 있지만 생태 환경 분야에 외국처럼 대중성 있는 작가나 레이첼 카슨 같은 현대의 고전적 저작을 남긴 저자는 없어요. 그래도 국내 저자가 중요하기에 박병상 선생을 맨 먼저 찾아갔는데 이야기가 잘 됐지요. 이 책을 필두로 국내 저자의 책들도 많이 해 봤으면 해요. 국내 필자 중에 관심 가는 필자가 몇 분 더 있어요. 『희망의 내일』 잘 만들어서 그 분들 책도 내게 되면 좋겠는데.

   『희망의 내일』은 어떤 책입니까?
   최근의 논란, 생명공학 비윤리 비판, 생태적 삶에 관한 에세이를 고루 담았어요. 욕심 같아서는 생명공학 얘기로 전체를 채웠으면 하는데 박병상 선생이 녹색평론사에서 생명공학 비판서를 출간한 바가 있어서 그건 곤란할 것 같아요. 책 제목은 박 선생과 의논하여 잠정적으로 정했는데 일부 여론이 좀 약하다 그러네요. 그래서 바꿀까 말까 고민중이에요.

비주류 출판인의 심정 토로
   1인 출판에다 유비쿼터스까지 한 것 같은데요, 맞나요?   저는 처음부터 100퍼센트 혼자 했어요. 집사람이 자기까지 쳐서 2인으로 해달라고 그러는데 지금은 전혀 아내의 도움을 못 받고 있어요. 사무실도 마고북스의 곁방살이를 하는 신세입니다. 마고북스에 계신 분들께 정말 고맙지요. 제가 자리를 비우면 전화도 받아주고, 주문도 받아주고 하니까. 뭔가 보답을 드려야 할 텐데 여력이 없으니 안타깝네요. 기획·제작·영업을 혼자 다 해야 하기 때문에 책 한번 내려면 정신이 없어요. 전철 안에서 원고 교정을 보기도 합니다.

김영조 대표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주변부 비주류 출판인의 심경 토로로 옮아갔다.

   그런데 작은 출판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요? 그 방법 좀 알려줘요. 우리 실정에서 출판계와 출판 단체가 작은 출판사를 북돋우기에는 한계가 뚜렷합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없는 한 작은 출판사는 지금처럼 구질구질하게 연명하거나 창업과 폐업을 반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가 책을 구입해 공공도서관 등에 나눠 주는 것도 좋지만 정부가 나서서 우량도서를 검증한 다음, 이를 도서관 등에 홍보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지난해 치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주빈국 행사만 해도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전시행정의 표본 같아요. 외화내빈이죠. 주변인의 눈으로 보면 출판시장은 시장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저변의 기반은 형편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고집스레 출판을 하는 까닭은 뭔가요?    첫째,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뿐이라서. 둘째, 기획해 놓은 것은 내야 되기 때문에. 셋째는 숱한 어려움에도 내게 걸맞은 일을 꾸려가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워서겠지요. 한때는 마음고생을 많이 했어요. 이럴 걸 왜 시작했나, 하고. 이제는 욕심을 버려서 그런지 걱정은 안 합니다. 하지만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해도 출판사가 문을 닫을 수가 있거든요. 그게 걱정이죠.

"달팽이출판은 자연과 사람의 조화로운 공생을 희망합니다." 달팽이의 출간도서마다 뒤표지 날개 아래쪽에 달팽이그림과 함께 새겨진 인상적인 문구다. 그런데 더 인상적인 것은 김영조 대표의 해석이다. "공생은 사람의 관점이다. 사람은 자연에 예속되어 자연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라야 한다."

인터뷰 도중 김영조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김 대표의 지인이 그에게 안부를 묻는 모양이다. "아직도 버티죠." 나도 덩달아 굳은 의지가 발동하다가 이내 힘이 빠진다. "잘 안 됩니다." 새해에는 3000부 찍어 2000부 수금하면 딱 좋겠다는 달팽이출판의 소망이 이뤄지길 간곡히 바란다. "제가 펴낸 한 권의 책으로 다음에 출간할 책의 제작비와 비록 적게나마 생활비를 손에 쥘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고 행복할 겁니다."

기사게재 : <기획회의> 1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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