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지하도의 바이올린 연주



광화문 지하도에 음악이 울리는 일은 
낯선 풍경이 아니었지
상인들의 입담, 부산한 발걸음들, 
눈먼 하모니카, 멜로디온, 장난감
소리들

그래서 였을까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서
내지는 그의 허름한 차림새

그 무심함들을 그도 알았는지
심각하게 무게 잡는 바이올린
허리는 곡조에 휘어질 듯, 휘어질 듯
지긋 감은 눈은 백만 청중을 우러러

바르르 앙금 삭이는 현의 가슴앓이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이따금 던지는 호기심들

걔 중 누군가는 눈치챘을지도 몰라  
그가 풀어내는 찌고이네르 바이젠 
그도 한 때는

누구
허름한 바이올린 연주자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을 연관지은 이 있을까

빈 바구니 앞에서
하모니카를 불어 댈 미래를 등에 지고 가는 이
혹시,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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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시험





일공육공공공공……사  현대…문학 이상밉니다
-- 이상미씬 왜 대학원엘 들어오려고 하죠?
네에 저어 저 시를 공부하고 싶어 섭니다
-- 그럼 의사 진술이 뭔지 말해 봐요
………………….
-- 그럼 시적 언어와 일반 언어의 차이점을 말해 봐요?
시 시적언어는요 저 저어 일반 언어 일반언어는요 그냥 그냥 일상적인 아 그니까 
시적 언어는  아이 휴, 저 시적 언어는 아니 일반 언어에서 어떤 언어를 낯설게 
하기로 그니까, 
죄송합니다.
-- 이상미씬 왜 시를 공부하고 싶어하죠?
시가 좋아서요.
-- 정말로 시를 좋아하나요?
네?
-- 정말로 시를 좋아하냐구요.
네에에
-- 외울 수 있는 시가 몇편이나 되죠?
그리 많지는 않은데요.
-- 이상미씨 
시 좋아하는 것 맞습니까?
…………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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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5-12-26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글샘 2006-04-07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가 제일 리얼하네요. ㅎㅎ
살아있잖아요. 작가의 생각이.
저 살떨리는 땀방울이...

하늘바람 2006-04-07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리얼 그자체입니다. 사실. 경험이 담겨서. 흑 글샘님 이렇게 부족한 시를 다 읽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는 울고 계셨다
TV연속극 주인공의 그리 대단치도 않은 일상이 
아버지의 눈물을 북돋았다

바보같이
저게 뭐가 슬퍼

내안의 것이 아니면
눈물을 모르는 나를 대신하여
연신 글썽이시는 아버지

눈물의 딸은 
얼은 듯 굳어 모나게
팅팅 거리고

착하고 덤비지 않는 이를 무시하는 사람들의
당연함에 눌려
납작해진 아버지

털어 내세요
털어 내세요

분노하고 억울해 할 일엔 담담하시면서
TV속 우는 연기엔 잘도 속아
훔쳐 내리시는 눈물

그 눈물을 받아먹고 자란 나는 겨우
이 모양인가 싶어
고개를 수그린다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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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域




뒷골목 어딘가 에선
궁지(?)에 몰린 마리아
영업용처럼 굴려진다
강간이든 매춘이든 간통이든
편의점을 찾듯 일상이 되는 와중
나는 오늘의 무사함(?)을 다행히 여긴다

남잔
이유 없이 여자가 필요할 때가 있단다
이유 없이?
첫사랑 선생님은 말해 주셨지
나도 컸군요 그런 말을 다 하시다니
아무한테나 하나아
아무한테나

모두들 솔직 그윽한 얼굴로
'아무한테나'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무한테나 차마시잔 말 안하고
아무한테나 술따르란 말 안하고
밤새 얘기? 하잔 말 아무한테나 안한다

걸쭉한 기름기의 주둥이가 아니더라도
다들 그렇게 정조를 지키고 위안을 하며
밤새 한 오입질은 자위라 한다

누가 남자를 아느냐 
음흉한 눈짓을 보내면
선생님께 배운 데로
남잔 이유 없이 여자가 필요할 때가 있단다고
아는 척한다
한술 더 떠
고로 그 이유 없음에 부응해야 한다고

물 흐르듯 흘러가라고
분노하거나 의문을 제기하는 이는
백치미로 통하기에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해 준다
아무한테나 하지 않는다고
 

 

1992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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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가지 나라
                                     -지금부터 눈을 감으시라-




모가지만 빽빽한 그림 속

모가지 하나 넣을 방법을 모색한다
틈 없는 곳에 들어가 보겠다고
우격다짐 밀어 넣다 보니
코는 한 일(一)자로 돌아갔고
입은 자취를 감추었다

힘줄 굵은 모가지
단내 피는 모가지
비에 쩔은 모가지
색정 깊은 모가지

가지모가지모가지모가지모가지모가지모가지모까짖모…………까악

모가지만 있는 곳엔 몸뚱이는 관심도 없고
모가지만 있는 곳엔 교수형은 없으며
모가지만 있는 곳엔 가장 급급한 밥의 일

몸뚱이 없는 곳엔 모가지만 있고
교수형이 없는 곳엔 적어도 한 번은 
교수형을 당한 모가지가 있고
밥의 일이 가장 급급한 곳엔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는 벌건 욕망들

모가지만으로도 빽빽하여 성한 곳 없는 그림 속 

모가지 설 곳 없는 모가지 나라
너나없이 인공위성을 쏘아 대고
틀 밖의 틀을 구상한다 
 
 
 
1993년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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