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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 -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
오민석 지음 / 살림 / 2016년 8월
평점 :
직장에서의 커리어 대부분을 홍보맨으로 보내고 있는 나는 늘 오프라인 신문(종이신문)을 펼쳐보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지금은 전자판이 있어서 예전처럼 광화문에 나가 전날 가판을 살펴보는 일을 덜었지만 여전히 지면에 있는 기사의 비중과 매체간 경향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종이신문의 기능은 우리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국내 3대 유력 종합일간지 중 하나인 중앙일보에는 1년여 전부터 “시가 있는 아침”이라는 코너가 신설되어 나같은 독자들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시를 좋아하는 내게 이 코너는 그야말로 업무의 일환으로 펼치는 신문 속에서 하나의 쉼표이자 갱년기 증후군처럼 메말라만 가는 중년의 감수성을 다독여주는 힐링 그 자체였다.
어찌보면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까? 자본주의 논리와 정치성향을 고려할 때 재벌친화적이고 보수우파적 언론인 중앙일보에서 작지만 지면을 할애해 꾸준하게 “시가 있는 아침”을 연재했으니 말이다.
이런 생각의 와중에 모든 현상을 이렇게 진영논리나 좌우익 스펙트럼에 기인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내 자신이 우습기도 했다.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자리한 감성이 있을진대, 그리고 그 감성의 교류는 결코 빈부나 정치적 성향에 좌우되지만은 않을텐데 말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대한 사실전달은 물론 분석기사로 가득찬 정보전달 위주의 신문속에 빠져 있다보면 느끼는 피로감을 “시가 있는 아침”을 통해 잠시나마 덜어내곤 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이렇게 연재되어 온 “시가 있는 아침”이 <아침 시>라는 단행본으로 발행되었다고 한다. 지면관계상 더 풀어내고 싶었던 저자의 시에 대한 감상평과 솔직한 소회가 더해져 나왔다고 하니 반갑고 고맙기만 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시를 좋아하게 되었을까? 시는 다른 문학장르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무지의 소치에서 나타나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소설 등 문학은 작가의 플롯의 구성에서 가미되는 치밀한 계산과 상상력등이 가미되어 독자들의 흥미를 끌지만 시는 그런 경우와는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인간 본연의 감정과 본능에 대한 좀 더 깊은 관심과 주제의식이 시를 더 매혹스러운 장르로 만드는게 아닐까 싶다. 결코 친절하지도 않고 결코 보통이지만은 않은 시는 그래서 독자들에게 해석의 자유와 작가와의 공감의 영역을 더 넓고 깊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아침 시>는 신문연재인 만큼 다양한 독자층의 성향과 선호도를 감안해서 많은 문예집이나 시집을 찾아 헤매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후 선정해서 내보냈다고 한다. 이 시들을 이번 <아침 시>로 발행할 때 인생, 사랑, 풍경이라는 주제로 분류했다고 한다.
언제 시가 내게 찾아 왔을까? 질풍노도의 시기이며 한창 예민하고 감수성 풍부한 때인 사춘기였을까? 아니다. 가장 아프고 힘들때 찾아오는게 시였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20대 후반 결혼한 후 서른에 갓 첫애를 얻었고 어느새 기어다니기 시작할 때 할머니 앞에 가려는 손녀를 온화한 미소로 가로 막으며 아픈 할머니 옆에 있으면 같이 병에 시달린다고 한사코 안기를 거부하던 어머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그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드리고 공허하며 먹먹하기만 한 시기를 보낼 무렵...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동시를 우연히 아이들에게 읽어주다 펑펑 울던 그때...그렇게 시는 새롭게 나를 찾아왔고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주었다.
<아침 시>도 출근시간 지하철 안에서 읽으면서 나에 대한 배려가 되었다. 현실 속에서 난 아직도 메말라 가기를 거부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책은 그래서 두고두고 손때 묻은 보물이 되어갈 것이다. 꼭 읽어보시라.
“그리고 그 나이 때였어....시가
나를 찾아왔다. 나는 모른다, 나는 모르지...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겨룽에서 아니면 강에서..
어떻게, 언제 왔는지, 나는 모른다...(하략)“
(본문 18페이지 中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