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내 안의 음란마귀 - 두 아재의 거시기하고 거시기한 썰
김봉석.현태준 지음 / 그책 / 2016년 6월
평점 :
책이 꼭 진중하고 시사적이며 문제의식 가득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금기를 타파해야 하고 사상의 자유를 부르짖어야 할 수단이 책이다. 하하~ 너무 어깨에 무게 잡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군사정권 시절인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경제는 성장기에 접어들면서 단순히 의식주 해결에서 벗어나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여가에 대한 욕구가 늘어났다.
그리고 그 관심 중에는 유교문화 속에서 일그러지고 억압되어 온 성에 대한 폭발적 반향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군사정권하에 미디어 통제와 출판, 음반, 영상물에 대한 강력한 검열로 자연스럽게 B급의 서브컬처에 머물렀지만 말이다.
성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연착륙(?) 시켜야 할지 고민은 사치이자 엉뚱한 시각으로 치부되던 시절, 나를 비롯한 작금의 40대 후반 50대 초반 세대들은 끓어오르는 육체적 욕구는 강하지만 그 어디에도 이를 적절히 해소할 소위 해방구가 없었다.
그 때 겪었거나 들었던 웃기면서도 서글프기도 했던 아련한 기억은 어느새 희미한 흔적이 되어버렸다. 추억이라고 하기엔 낯부끄럽기도 하고...
희한(?)하고 독특한 책이 나왔다. <내 안의 음란마귀>.... 나와 같은 1980년대에 청소년기를 거친 저자들이 당시 겪었던 성에 대한 B급 컬쳐 경험담을 풀어 놓은 이 책은 앞서 언급했던 공통의 기억들을 갖고 있는 4-50대 세대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반가워하면 ‘그땐 정말 그랬었지’라고 얕은 탄식과 함께 미소 지을 수 있는, 이제는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차 있는 책이다.
갓 신혼살림을 차린 큰 누님의 집에 가서 몰래보는 여성지 속 속옷 모델들의 자태, 건강다이제스트 등 건강 관련 잡지를 표방하지만 화보는 터질 듯한 가슴 등 육감적 몸매로 어필하는 서양 모델들의 섹시 시위나 다름없었으며 나름 여유 있게 사는 친구 집에 있는 비디오를 통해 접했던 신세계와 같은 미국, 일본 성인물 등이 사춘기 소년들의 욕망에 제대로 불을 지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움츠려들고 숨기는게 마음 편했던 기억들을 되살리는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전무했던 시기, 스스로 시행착오 속에 배운 성지식 고군분투기가 정도 차이일지라도 공감하고 또 되돌아보는 시간으로서 충분히 가치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이 책은 <19禁 응답하라 1998>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좋다. 눈살 찌푸려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과거의 경험을 무작정 아련한 추억으로 치환하고픈 생각도 없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혈기왕성함 보단 무뎌졌지만 그래도 과거의 기억 속에서 인간미 풀풀 나는 우리의 모습이 풋풋한 연애가 아니면 좀 어떤가?
품어야 할 내 인생은 짝사랑했던 그녀를 속절없이 놓치고 찌질하게 울던 <건축학개론>의 승민이면서 동시에 깊은 밤 화장실에서 죄지은 양 몽정한 팬티를 엄마 몰래 빨고 의지와 상관없이 꿈틀거리던 그 곳을 부여잡고 어쩔 줄 몰라하던 모습도 있기 때문이다. 음란마귀는 흔하고 평범한 대한민국 청춘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