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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거짓말 - 2000년대 초기 문학 환경에 대한 집중 조명
정문순 지음 / 작가와비평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흔히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낀다’고 한다. 이는 어느 한 분야에 종사하거나 관심을 갖고 오랜 기간 지켜보면 점차 그 분야에 대한 나름의 시각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남들은 미처 알 수 없는 부분을 염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글로서 타인과 교감하고 공감하며 어젠다를 형성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매력있는 일이다. 이 어젠다가 사회적 현상으로 격상되든 아니면 소수지만 이를 공유한 이들과의 즐겁고 의미있는 지적 토론이 되든 말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 순수함은 때묻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때묻는 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풍토의 수용은 비열한 변절이고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낯부끄러운 현상을 얼마전에 목도하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여성작가의 표절과 이를 둘러싼 소위 우리 보다 아는 이들의 어이없는 반응과 대응은 어리둥절을 넘어 ‘모르는 이’들조차 외면하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한국 문학의 거짓말>을 읽게 된 계기는 문학계를 강타한 표절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대표작가조차 문학의 이면에 자리잡은 무언가에 집착했길래 수치심을 넘어서는 짓을 서슴치 않았을까 하는 궁금함에 있었다. 정말이지 아는 만큼 보인다기에 문학계를 오랫동안 지켜봐왔고 그들의 성과물에 대한 비평을 해 왔으며 특히 표절을 인정한 대표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비평을 십수년전부터 해왔던 저자의 아는 것을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의 거짓말>에 대한 서평이지만 평론집을 서평한다는 것이 못내 자격이 될 수 있을까 스스로 반문하곤 한다.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가 앞에 있지만 그렇다고 여성 대표작가의 표절을 마녀사냥하기 보다는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한국문학을 둘러싼 내부의 모순은 물론 외부요인은 무엇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아무리 창작의 고통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작가의 예술적 감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이고 고갈시킨다 하지만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표절을 해가면서 작가라는 명함을 내밀려 했을까? 이 책에서는 그러한 배경에 자본주의체제 하에서 오랜기간 병들어 온 돈과 인기작가라는 명성, 그리고 이를 토대로 시스템이 돌아가는 문학계와 출판계의 권력이 빚어낸 부끄러운 민낯임을 독자들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독자들을 자신의 글을 사주는 호구로 생각하는 작가들, 그렇기에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 그동안의 작품세계는 온데간데 없이 독자들의 시각적 감성에만 호소하는 글장사에 치중하고 고갈된 창작력을 간단하게 메우기 위해 아직 등단하지 못해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글을 뻔뻔스럽게 도용하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감히(?) 이런 행태를 서슴치 않는데 대해 그들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이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아무리 자본의 논리에 함몰되어 돈벌이로 전락해 버린지 오래지만 한국문학의 순수성과 예술성을 최소한만이라도 지켜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문제제기에 우리도 떳떳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대표작가들에 대한 평론을 읽으면서 드는 미안함은 삶의 고단함이 가져온 여러 문제들, IMF이후 우리가 겪었던 불안한 삶의 위치가 결과적으로 한국 문단의 기형을 낳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지함 보다는 유려하고 자극적인 문구로 치장하는 문학에 더 열광했고 지갑을 열었으며 깊게 사유하지 못한 채 시각적 감성에만 치우친 독자들의 경향은 결국 자본의 폭력 앞에서 길을 잃은 우리들의 심리적 황폐함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와 문단은 경제적 어려움 속에 구매력을 잃은 독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 비윤리적인 행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원한다는 미명하에 두 눈을 질끈 감았고 수요가 있음을 확인한 출판사들은 권력을 앞세우고 돈을 빌미로 이를 조장했고 변호했다.
두터운 여성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소설분야에서 신경숙, 공지영, 은희경 등 여성작가들의 부상은 분명히 많은 여성 작가들은 물론 일반 여성독자들에게 롤모델이 되고 있지만 이 작가들 역시 문단권력의 수용 범위 안에서 타협하고 그 산물로 작품을 내 놓으면서 한계를 내비치고 있는데 대한 저자의 아쉬움은 앞에 언급한 한국문학의 풍토를 여실히 드러낸다.
표절에 대한 관심 때문에 도대체 한국문학이 어떻게 이지경까지 왔나 싶어 책을 펼쳤지만 나 또한 이러한 사건에 방관자이지 않았나 싶다. 먹고 살기 힘든데 실용서 한권을 더 읽으면 읽었지 한갓지게 소설이나 시 한수 읽을 여력이 없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는데 문학계의 병폐에 대해 어떤 언급이나 지적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병폐나 기형적인 문학계 현상에 대한 진정성 있는 저자의 비평을 등에 엎고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는데 이 책이 가진 진정성은 비록 2000년대를 들여다 보고 있지만 지금의 시선으로 차용하기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십년전부터 저자가 제기해 온 문제의식인데 여전히 돈과 명성과 권력은 공고히 해 왔고 이제서야 표절로 그 치부가 드러났지만 여전히 환골탈태의 의지는 보이지 않고 공허한 수사만 남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거짓말의 해결을 위해서는 독자들도 문제의식을 갖고 고민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단지 표절현상만을 다룬 것이 아니다. 작가들이 지난 창작성과 예술성을 돈과 명예와 권력안에서 적절하게 스스로 깎아내리고 알아서 기기(?)보다는 세상과 호흡하고 사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함을 제시하고 있으며 이는 독자 역시 객체가 아닌 주체임을 자각하고 참여해야 할 때 가능할 것임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