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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전투 - 제2차 세계 대전 최대의 공중전
마이클 코다 지음, 이동훈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3월
평점 :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1학년 때로 기억하는데... <공군 대전략>이란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과 독일의 공중전을 다룬 영화를 텔레비전에서 방영했었다. 적에게 공격당해 조종석이 불타오르면서 처참하게 죽는 모습들도 나오지만 흑백텔레비전임에도 은빛 하늘을 종횡무진하며 적기와 벌이는 공중전의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강한 인상을 뇌리에 남겼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이면 학교에 가서 가장 친했던 친구와 어제 본 그 영화에 대한 얘기를 나누며 흥분했었고....그 친구는 파일럿이 되겠다고 결심했던 계기가 이 영화를 본 그 즈음이었다고 훗날 털어 놓았었다.
<영국 전투 -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공중전>은 바로 영화 <공군 대전략>의 배경이 되는 ‘Battle of Britain'의 역사를 돌아보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전 유럽을 석권하고 마지막 보루로 남은 영국을 제압하기 위해 구상하는 상륙작전 ’바다사자‘의 성공을 위해 사전 작업으로서 영국의 제공권 장악에 나서는 나치 독일 공군의 파상공세에 맞서 싸운 1940넌 7월부터 10월까지 영국 전투기사령부와 예하 전투기비행대대 파일럿들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이 기간 동안 영국 공군은 1,963대, 독일 공군은 무려 2,550대의 항공기를 영국 상공에서 벌어진 건곤일척의 결전에 투입하였고, 영국은 500여 명의 승무원과 1,500여 대의 항공기를, 독일은 2,500여 명의 승무원과 1,900여 대의 항공기를 잃었다고 한다. 가히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최대 규모의 공중전이었다.
<영국 전투 -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공중전>은 영국 독일 양국이 결전을 앞두고 처한 공군내 상황과 전투기 개발 과정 등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상대적으로 메서슈미트 Bf109라는 최고의 전투기를 보유한 독일은 이미 2차 대전 초 폴란드와 프랑스 침공시 제공권을 손쉽게 장악함으로서 유럽 하늘을 지배하는데 성공했었고 이는 스페인 내전때 자국 전투기와 조정사들을 파견함으로서 많은 실전경험이 축적되었기에 가능했었다고 한다. 결국 영국전투는 분명히 개전 전만해도 일방적인 독일의 승리가 점쳐졌었고 실제 나치 공군의 제국원수인 괴링 이하 모두가 어린아이 손목 비틀기보다 더 쉽다고 내다봤었다. 하지만 영국에서도 차근차근 공중전에 대비하기 시작했고 천운인지 몰라도 이러한 대응에 몰두하는데 천부적인 역량을 보인 전투기사령부 지휘관 휴 다우딩 대장이 그 중심에 있었다고 한다.
다우딩은 최첨단 발명품인 레이더를 실용화함으로서 적기의 침입방향, 고도, 목표 예상을 가능케 하였으며 이를 종합적으로 파악, 분석하여 각 전투기 비행대대에 하달함으로서 완벽한 공중요격을 통해 독일 공군의 공격을 분쇄하는 중앙집중형 전투기 통제 시스템을 마련하여 전투기, 지상관제시스템, 일선 레이더 기지간 유기적인 공지(空地)협력을 통한 방어체제를 가동하는데 성공하였고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스템의 완벽한 사전대비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영국전투의 승리를 가져왔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여기에 더해 Bf109에 필적하는(오히려 기동성이나 선회반경에서는 Bf109보다 훨씬 우수했다고 한다.) 전투기인 수퍼마린 스피트파이어와 허리케인의 개발은 위와 같은 중앙집중형 전투기 운용 방식에 훌륭하게 접목되어 효과적인 공중전이 가능케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항공전의 묘미는 파일럿들의 회상과 다양한 사료를 바탕으로 실제처럼 묘사하는 당시 공중전의 긴박함과 현장감 뿐만 아니라 당시 영국과 독일 군부 내의 상황 오판(주로 독일측이 영국전투 내내 저지른 실수였다), 다우딩의 전술전략에 대한 영국 공군 내의 갈등 및 끊임없는 견제(다우딩의 부하 중 12전투비행단장인 리맬러리와 더글러스 바더의 ‘빅윙’전략 채택 주장은 결국 영국전투후 다우딩이 현직에서 물러나게 하는데 결정적인 갈등요소가 되었다) 속에서도 고집있게 자신의 전략을 실현해 나가는 상황 또한 상당한 흥미와 몰입을 유도한다.
일례로 독일 공군은 1940년 9월 7일의 공격목표를 전투기 사령부에서 런던에 대한 무차별 폭격으로 전환하는데 기존대로 전투기 사령부에 대한 공격에 치중했다면 영국 공군은 숫적인 열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제공권을 내주게 되었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조국의 영공을 수호하기 위해 그리고 비록 조국을 잃었으나 언젠가 다시 찾을 그날을 위해 영국공군에 투신하였던 젊은 조종사들의 처절한 항전의 기록은 전시수상인 처칠은 물론 영국 국민 모두를 감동시키며 전의를 다지는데 계기가 되었다. 처칠은 영국전투가 한창인 1940년 8월 20일 하원 연설에서 전투기 조종사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전쟁의 역사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적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빚을 진 적은 없다”
밀리터리 매니아 들이라면 대부분 잘 아는 전투이지만 영국항공전에 대해 책 한권으로 낼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흥미진진하면서도 눈으로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현장감 넘치는 <영국 전투 - 제2차 세계대전 최대의 공중전>은 여러모로 흠잡을 데 없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당시 영국전투의 상황을 그린 전쟁 지도라든가 하늘을 수놓았던 영국 및 독일의 항공기의 모습을 자료사진으로 첨부하였다면 독자들에게 더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텍스트로만 꽉 채워진 이 책의 아쉬움을 굳이 꼽자면 관련자료의 부족일 것이다. 옥의 티일 것이다.
끝으로 꼬맹이 시절 <공군 대전략>이란 영화에 나와 함께 열광했던 그 친구는 세월이 흘러 얼마전 동창회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영화가 그 친구 인생의 방향을 결정지었다면 과장일까? 하지만 그녀석은 분명히 다시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지금 그 친구는 대한민국 공군중령으로서 조국 영공의 수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