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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글쓰기는 쓸때마다 어렵고 더 무섭다는 느낌이 든다. 늘 미지의 세계면서도 가보고 싶은 경지가 글쓰기 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만하면 됐다해도 불만족스럽고 누구에게 내비치기 부끄러운 결과에 스스로를 책망하며 의기소침해 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 일수록 더 잘 쓰고 싶다는 열정이 솟구치곤 한다. 이래저래 강렬하면서도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게 글쓰기다.
언젠가 글쓰기의 내공이 깊어진다면 지금의 어줍잖은 서평들은 쓰레기통에 내던지리라는 다짐을 했었다. 치열한 고민도 적확한 어휘선택도 글을 읽어 주는 이들에 대한 고마움도 배려도 내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주제도 방향도 정해지지 않고 우왕좌왕하기만 한 글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뻔뻔스러움이 어느새 글쓰기의 경지에 다다른다면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중에 나온 많은 글쓰기 관련 책들을 섭렵해도 늘 얻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에 대한 기본적인 고민에서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했기에 지금의 이 책에 대한 서평도 어줍잖게 시작하고 끝을 맺게 되었다. 저자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소중했던 두명의 전직 대통령께 미안함으로 마음이 무겁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전경련과 기업체에서 홍보실에 근무하면서 연설문 등 글쓰기를 담당했던 저자가 우연한 기회에 고 김대중 대통령, 고 노무현 대통령 재임시절 청와대 연설담당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겪었던 많은 에피소드와 글쓰기에 대한 두 분의 전문가적 식견을 8년간의 경험에 담아 독자들에게 글쓰기에 대해 설명해 주는 책이다.
엄청난 독서광이면서 늘 사색을 통해 현안에 대한 깊은 성찰에 조예가 깊었던 두 대통령은 공통적으로 각종 국가 행사민 국빈 방문시 환영사 등 연설문에 대해 청와대 비서진들을 혹독(글쓰기에 대한 수준이 높다보니 자신의 의중에 다소 못미치는 연설문 초안에 대해 불만족스러웠다는 표현이지 결코 무리한 요구는 아니다)하게 몰아쳤다고 한다. 저자는 두 대통령의 글쓰기에 대한 식견은 공통점도 있지만 두 분이 가진 성향에 따라 차이점도 있음을 이 책 내내 드러낸다.
간결하면서도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내고 또 하나의 문장에 한가지 주제만을 다뤄서 중학교 1학년 수준의 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읽히고 들려야 하는 것이 연설문의 생명이라는 점은 같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안정, 설득, 논리, 반복을 주로 활용하면서 격식을 중시하여 사전에 마련한 연설문을 활용하였다면 노무현 대통령은 청중과 교감하는 교감형 연설을 선호하여 역동, 솔직, 소탈, 강조어법을 즐겨 사용했다고 한다. 이처럼 까다로운 눈높이와 연설 상대를 고려한 시의적절한 어위선택과 감정이입은 물론 국가간 방문과 내한시 상대국가에 대한 배려와 친근감을 반영한 연설문이 초안단계에서 통과하기는 만무한 법. 저자는 8년간에 많은 시간동안 한 해 내내 연설문을 준비하면서 과민성대장증상으로 대통령과 독대하는 와중에 화장실로 뛰쳐가고 연설문이 통과된 줄 알고 비서실 직원들과 뒷풀이 술한잔을 하다가 뒤늦은 대통령의 수정의견을 잊어버려 연설문 마무리가 용두사미가 된 사례는 물론 청와대 부서간 소통부족으로 3.1절 연설문의 마지막 수정사항을 통째로 날려버려 대통령을 진노케 한 에피소드도 소개한다.
저자는 연설담당비서관 시절의 에피소드를 곁들여 가면서 글쓰기 전문가로서 애환과 동시에 하나의 연설문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치열한 고민과 사전회의가 연속되어지는지를 자연스레 드러낸다. 글쓰기를 단순히 자신의 생각만을 두서없이 나열하고 마는 우리에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설득하며 논증하고 이해시키는데 있어서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데 충분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소설에 대한 글쓰기와 달리 자신의 견해와 주장을 상대에게 어떻게 명확히 이해시키고 설득을 구하는지에 대해 명료하고 정확하며 간결한 글쓰기가 핵심이라는 점은 두 분 대통령 모두가 견지했던 글쓰기의 철학이다. 이 부분을 저자는 독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켜 준다. 국가기록원에 공개되어 있는 두분의 연설문을 찾아 읽으면서 베껴쓰고 또 계속 반복해서 읽으면서 이 책에 나와 있는 두분의 글쓰기에 대한 원칙과 개성을 올곧이 내 것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한다면 글쓰기의 어려움이 조금이나마 덜어지지 않을 까 싶다.
끝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한 글쓰기 지침을 소개하고 마무리 한다.
1. 자네 글이 아닌 내 글을 써주게. 나만의 표현방식이 있네. 그걸 존중해주게. 그런 표현방식은 차차 알게 될 걸세.
2. 자신 없고 힘이 빠지는 말투는 싫네.‘~ 같다’는 표현은 삼가 해주게.
3. ‘부족한 제가’와 같이 형식적이고 과도한 겸양도 예의가 아니네.
4. 굳이 다 말하려고 할 필요 없네. 경우에 따라서는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도 연설문이 될 수 있네.
5. 비유는 너무 많아도 좋지 않네.
6. 쉽고 친근하게 쓰게.
7. 글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쓰게. 설득인지, 설명인지, 반박인지, 감동인지
8. 연설문에는 ‘~등’이란 표현은 쓰지 말게. 연설의 힘을 떨어뜨리네.
9. 때로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방법이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킹 목사의 연설처럼.
10. 짧고 간결하게 쓰게. 군더더기야말로 글쓰기의 최대 적이네.
11. 수식어는 최대한 줄이게. 진정성을 해칠 수 있네.
12. 기왕이면 스케일 크게 그리게.
13. 일반론은 싫네. 누구나 하는 얘기 말고 내 얘기를 하고 싶네.
14. 추켜세울 일이 있으면 아낌없이 추켜세우게. 돈 드는 거 아니네.
15. 문장은 자를 수 있으면 최대한 잘라서 단문으로 써주게. 탁탁 치고 가야 힘이 있네.
16. 접속사를 꼭 넣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게. 없어도 사람들은 전체 흐름으로 이해하네.
17. 통계 수치는 글을 신뢰를 높일 수 있네.
18. 상징적이고 압축적으로 머리에 콕 박히는 말을 찾아보게.
19. 글은 자연스러운 게 좋네. 인위적으로 고치려고 하지 말게.
20. 중언부언하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하네.
21. 반복은 좋지만 중복은 안 되네.
22. 책임질 수 없는 말은 넣지 말게.
23. 중요한 것을 앞에 배치하게. 뒤는 잘 안 보네. 문단의 맨 앞에 명제를 던지고, 그 뒤에 설명하는 식으로 서술하는 것을 좋아하네.
24. 사례는 많이 들어도 상관없네.
25. 한 문장 안에서는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해주게. 헷갈리네.
26. 나열을 하는 것도 방법이네. ‘북핵 문제, 이라크 파병, 대선자금 수사…’ 나열만으로도 당시 상황의 어려움을 전달할 수 있지 않나?
27. 같은 메시지는 한 곳으로 몰아주게. 이곳저곳에 출몰하지 않도록
28. 백화점식 나열보다는 강조할 것은 강조하고 줄일 것은 과감히 줄여서 입체적으로 구성했으면 좋겠네.
29.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을 쓰는 것이 좋네. 영토 보다는 땅, 치하 보다는 칭찬이 낫지 않을까?
30. 글은 논리가 기본이네. 좋은 글 쓰려다가 논리가 틀어지면 아무 것도 안 되네.
31. 이전에 한 말들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네.
32.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은 쓰지 말게. 모호한 것은 때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지금 이 시대가 가는 방향과 맞지 않네.
33. 단 한 줄로 표현할 수 있는 주제가 생각나지 않으면, 그 글은 써서는 안 되는 글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