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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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틱 리버’, ‘살인자들의 섬(영화명 : 셔터아일랜드)’으로 평단과 영화계(영화화를 통한 흥행에도 보증수표로 인정받기 때문)에 극찬을 받으며 대중성 측면에서도 추종을 불허하는 데니스 루헤인의 최신작이다.(이 작품 역시 벤 에플렉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으로 영화화 중이며 내년 개봉예정이란다)

 

출간 즉시 전미 베스트셀러를 석권하고 2013년에는 애드거 앨런 포 상에서 선정한 최고의 소설로 꼽히는 영애를 누렸다. 이와 같이 화려한 이력을 차치하고서라도 처음 도입부부터 시작되는 흥미와 긴박함은 소설 전체를 통해 독자들의 몰입도를 늦추지 않게 만드는 캐릭터의 매력과 짜임새 있는 구성, 현란한 총격전과 액션 묘사가 있기 때문이다.

 

뇌물로 부를 이룬 아일랜드계 보스턴 부패경찰을 아버지로 둔 조 커글린, 이런 가풍(?) 탓인지 아버지와 자신의 실체를 경찰VS범죄자가 아닌 그저 뻔뻔한 범죄자부자로 생각하고 있다. 보스턴을 양분하는 두 조직중 하나인 팀히키의 비호아래 똘마니로 디온형제와 함께 소소한 범죄를 일삼던 그가 우연히 반대조직 보스인 앨버트 화이트의 여자와 욕정에 휘말리면서 결코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다.

 

그녀와 도망치기 위해 은행강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빚어진 경찰관 살해와 앨버트 화이트로 인해 감방에 가면서 알게 된 마소 페스카토레, 그는 앨버트 화이트쯤은 언제든지 쓸어 버릴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진 이탈리아 마피아였다. 그의 오른팔이 되면서 출소 후 플로리다 지역의 밀주시장을 점령하고 지역 경찰, 상하의원 등 정치인과 언론인 등을 매수하면서 거물로 성장하는 과정과 그라시엘라와의 사랑 등이 때론 숨 가쁘면서 때론 플로리다의 뜨거움처럼 정열을 가져다 준다.

 

특히 마지막 부분이 압권이다. 마냥 행복할 것 같았던 그의 지위가 어느새 위협받으면서 펼쳐지는 긴박한 액션은 영화화되면 어떻게 묘사될지 눈 앞에 펼쳐지듯 선하면서도 감독인 벤에플렉이라면 어떤 신선함을 줄 지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편 내내 중절모와 긴 바바리코트를 입고 삐딱하게 쿠바산 시가를 입에 문 채 여차하면 톰슨 기관단총으로 갈겨 버리는 냉혈한 들이 나오지만 주인공 조는 그와는 달리 독특한 캐릭터를 선보인다.

마소의 아들 디거처럼 마약에 찌들거나 술에 취해 여자들을 닥치는 대로 패버리지도 않으며 자신의 2인자인 디온이나 살처럼 조금이라도 눈에 거슬리면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잔인함도 없는 조는 아일랜드계로 인해 백인 주류에도 속하지 못하고 밤의 세계에 주류인 이탈리아계도 아니다.(결국 이러한 출신의 한계로 인해 마지막에 결단을 내리지만) 감옥에서 읽었던 많은 책들로 인해 당시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지적 소양도 갖추고 있는 조가 갱스터이면서도 살인을 저지른 것은 딱 두 세번. 그라시엘라를 능욕하던 미군 수병을 갈겨 버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두 번 정도다.

 

이 소설에는 세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앨버트 화이트의 여자이자 조의 연인이었던 에마 굴드와 조의 아내 그라시엘라, 그리고 템파의 경찰서장 딸이자 헐리우드 여배우를 꿈꾸던 화려한 미모의 소유자였으나 끔찍한 일을 당하고 창녀로 전락하고 만 로레타.

 

이 세명의 여자는 그의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들을 만들어 낸다. 에마로 인해 감방엘 가고 마소를 알게되면서 본격적인 밤의 세계로 접어들게 되었다면 플로리다 템파의 밤의 세계를 지배한 그가 그라시엘라의 만남으로 진정한 사랑을 통해 가정과 아이를 갖게 되며 로레타를 제거하는데 거부함으로서 자신의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여자들과의 조의 관계는 앞서 말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동네 깡패에 불과했던 그가 설명할 수 없는 욕정에 휩싸이며 밤의 세계에 깊숙이 끌려들어 가는데는 에마라는 팜므 파탈이 있었기 때문이고 여느 조폭과 달리 잔인하지도 냉혹하지도 않으며 그라시엘라의 자선사업에 대해서도 지원하고 사업을 합법화시키려고 노력했던 장면들은 주인공으로서 그가 가진 매력을 배가시키는데 주요한 장치이며 적어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로레타의 죽음을 통해 그가 밤에 살지만낮의 세계가 가졌던 순수함 마저 타락시켜 버렸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법보다 부패와 폭력에 더 가까운 사회였던 금주법과 대공황기의 미국의 부끄러웠던 민낯을 조명하고 밤에 살지만 낮에 살아도 다를 게 없었던 당시의 모습을 드러낸다.

 

일장춘몽처럼 낮의 세계로 편입되어 아들 토마스와 함께 여생을 보내는 조의 짤막한 마지막 에필로그는 숨가쁘게 달려온 밤의 세계를 마무리 하기에는 여운이 남지만 하드보일드 장르소설로서 이만한 재미를 선사하는 책은 쉽사리 찾기 어렵다는 면에서 더 깊은 여운이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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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 - 역사학자 홉스봄이 바라본 재즈의 삶과 죽음
에릭 홉스봄 지음, 황덕호 옮김 / 포노(PHONO)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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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노도의 시기인 십대 시절부터 20대 초까지 헤비메탈과 하드락에 빠져 살던 내게 어느 순간 재즈가 스며들어 왔다. 케니지의 섹서폰 연주에 반했지만 정통 재즈와 스윙, 비밥 등에는 문외한이자 지루하기만 했던 리스너였는데 말이다. 93년 제대 후 어느 가을 누구의 연주인지 모르지만 콘트라베이스의 둥 둥 현을 뜯는 소리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다 어느새 큰 공명이 되어 마음을 앗아가기 시작하면서 갖게된 재즈에 대한 호기심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즐기던 내게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며 내게 어필하기 시작했고 재즈는 그렇게 적잖은 노력을 기울이게 만드는 음악이었다.

 

재즈를 즐기고 재즈 연주자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찾으면서 가졌던 재즈에 대한 호기심은 지금까지 식은 줄 모르는 열정을 느끼게 한다. 재즈에 대한 입문서부터 재즈 마스터들의 개인사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들을 봐왔지만 <재즈,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음악>은 재즈 대가들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평가는 물론이요 재즈가 가진 당시 사회역사적 의미와 자리매김에 대한 분석이 담겨져 있다는 데서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문화적 풍요가 상당한 성과를 거뒀던 지난 90년대초에 느닷없이 재즈 열풍이 불었지만 독특한 음악장르를 향유한다는 과시욕에 끌려나온 비련의 주인공이 바로 재즈였기에, 그리고 그 열풍은 소위 불기도 전에 바로 사그러들었다고 느낄 정도로 재즈에 대한 이해부족과 허영에 기댄 오버스러움에 시작부터 정착에 실패할 것임을 예상케 했다. 재즈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고 적지만 단단한 팬층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데 어려움을 겪게한 선입견의 근원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 책을 번역한 평론가 황덕호는 민중의 삶의 희노애락이 켜켜이 쌓인 재즈가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하나의 독자적인 예술 장르로 자리잡아 온 데는 음악적 가치를 인정하고 오랜기간 성원을 아끼지 않아 온 소수의 재즈 팬들의 열정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한다. 분명 재즈를 좋아하면 다소 특이하게 바라보며 대중문화에 대한 허세가 낀 것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곤 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재즈에 익숙해지기까지 지루하고 답답하며 반복적인 리듬으로 여겨지는 편견을 이겨내면 어느 순간 신세계를 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처럼 재즈의 세계에 푹빠진 팬들에 대한 헌사이지만 동시에 재즈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을 노정하는 암울한 침체기의 도래는 이 책을 쓴 홉스봄과 황덕호씨는 물론이요 재즈를 아끼고 사랑해 온 수많은 리스너들에게 변함없는 성원을 요구한다.

 

자본의 힘 앞에 예술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움츠려드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재즈를 지켜내고 재즈의 영원불멸을 기대할 수 있을까? 시드니 베셰,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빌리 홀리데이 같은 유명 뮤지션들의 삶과 재즈에 대한 열정을 들여다 보면서 재즈 황금기의 영화를 흠뻑 경험하지만 앞으로의 재즈가 우리 삶에 여전히 소중한 분야로 지속하기 위해서 팬들의 역할은 어떡해야 할지 막막해도 한번쯤 진지한 고민을 하도록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재즈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역사학자 홉스봄의 책이라는 부제가 있지만 재즈의 죽음은 제발 없기를 바래본다. 영원불멸의 음악장르로 오래오래 우리와 후손들의 감성을 울려주는 재즈가 되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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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10년 - 불황이라는 거대한 사막을 건너는 당신을 위한 생활경제 안내서
우석훈 지음 / 새로운현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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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전략적 후퇴란 표현이 있다. 얼핏 보면 전혀 이질적인 두 단어, ‘전략후퇴의 조합이 생소하지만 첨예한 경쟁과 대립의 상황에서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역량을 고려해 볼 때 쉽지 않은 여건이라고 판단하면 자신의 핵심역량을 온전히 보전하고 추후 반격내지는 우리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리자는 의미다. 손자병법에서도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싸우면 백전불태즉 이기지 못하더라도 결코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불황 10>의 서평에 앞서 왜 이런 얘기를 꺼내냐면 바로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상황을 바꿀 수 없는 외부효과를 이기려고 노력하기 보다 외부효과가 제거될 때까지 자신에게 유리한 시류를 기다리며 힘을 비축하자는 것이 이 책을 쓴 저자의 의도이기 때문이다. 즉 앞으로 닥칠, 적어도 10년은 족히 걸릴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본의 잃어버린 10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며, 대한민국을 이끌 중추세대이지만 구조조정과 심각한 빈부격차 등 사회 부조리로 인해 기본적인 생계마저 위협받고 있는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세대의 역량을 보호하여 불황이 물러간 이후의 경제사회 발전의 추동세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의 재도약을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이기 때문에 이를 인식하고 불황을 대비하여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꼼꼼하게 조언해 주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생존을 위해선 서로간의 협력과 공생을 위한 희생과 양보가 필요한 시기라고 일침을 놓는다.

 

저자는 <불황 10>에서 현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을 그동안 수많은 전문가와 언론, 방송에서 지적했던 일본의 잃어버린 10’(이젠 잃어버린 20이라고 불러야 할 듯 싶다)을 답습할 것이라는 예상을 일견 수용하지만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진단한다. , 일본은 정부가 가난했을지 몰라도 개개인의 높은 저축률을 바탕으로 지난 혹독했던 경제적 궁핍을 이겨내고 있지만 우리는 정반대로 개개인의 가계부채가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할 정도로 높아서 취약해진 개개인의 재무상태로는 다가 올 본격적인 경제위기의 시기를 제대로 이겨낼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그런 걱정에서 저자는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특히 현 정부가 서민을 위한 정부이기 보다 특권층을 위한 맞춤형 정책 내지는 방향성을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는 구호성 정책만을 양산하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눈뜨고 코베이는 세상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저자는 불황이라는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개인 재무구조의 건전성이 담보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무분별한 소비문화에서 탈피해서 일본의 국민들 처럼 철저하게 저축 위주로 자산을 모으고 부채를 해소해서 적어도 1년치 생활이 가능한 현금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해 놔야 한단다. 이러한 시기에 부동산 불패라는 진리는 땅에 내팽개 쳐버려야 한다. 아파트도 빌라도 우리가 나이들어 노년의 시대가 오면 처치 곤란의 허물어져가는 건물이 될 공산이 크다고 경고한다.

 

자신의 재무구조를 건전하게 체질변화를 이루기 위해 저자는 사교육비의 과감한 절약을 꼽고 창업을 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도 아낌없이 조언을 해준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서 불요불급한 곳(?)은 철저하게 지출을 생략하고 교육등에도 최소한의 지출만으로 투입대비 고효율을 거두기 위한 전략을 소개하는 책이다.

 

불황 10년을 맞아 10년간 치르게 될 게임의 기본은 자기 머리에 딱 하나 있는 모자를 빼앗기지 않는 것과 같다. 아마도 정부는 자신의 모자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는데 인색하지 말라고 하거나, 그 모자를 벗어주면 나중에 더 큰 모자가 생길 것이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집안에서 엄청난 천재가 등장하는 기막힌 우연이 겹으로 발생하기 전에는, 한번 모자를 빼앗기고 나면 다시 모자를 쓸 수 있는 기회가 10년 내에는 벌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그게 불황의 국면이다”(본문 중 260페이지)

 

냉혹한 현실을 똑바로 지켜봐야 할때다. 우리의 삶을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으며 국가도 지켜주기는 커녕 기득권이 빼앗아 갈 때 있는 놈 편들어 주지만 않아도 고마운 세상이 되버렸다. 서럽더라도 다 우리 탓이요 남 탓 필요 없다. 주구장창 서민을 옥죄는 현 집권여당을 10년 가까이 뽑아준 이들이 기득권만 있을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최대한 살아남으려고 노력해야 하며 이 책이 그러한 노력의 출발점에서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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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
황순종 지음 / 만권당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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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사관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대한민국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들어 왔던 단어일 것이다. 실체에 대해 알면 알수록 분노로 떨리며 몸을 주체할 수 없는 이 식민사관은 일본이 자신들의 조선 병탄을 정당화하고 한민족은 근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일본의 근대화된 경제체제를 도입한 통치를 통해 근대화할 수 있었다는,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과 함께 일제 지배하에 조선 국민들의 사상적 각성과 광복에의 의지를 꺾는 효율적인 정신개조 프로그램의 핵심이었다. ‘식민사관에 대해 인터넷의 유명 포털을 통해 검색을 해보면 우리 민족이 열등의식과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심리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으나 광복 이후 주체적인 역사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대부분 극복되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아직도 그 망령을 드리우며 우리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더러운 마수를 거두지 않고 있는 식민사관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고 그 뿌리를 규명함과 동시에 식민사관의 이론적 왜곡의 근거가 되고 있는 고조선의 실체와 한사군의 위치 논란, 삼국시대 초기의 역사에 대한 부정을 중국의 역사적 사료까지 탐구하고 찾아내어 인용하면서 논리적이고 단호하게 반박하는 책이다.

 

저자는 우선 한국 주류사학계에 잠입하여 해방이후 지금까지 암암리에 활동하고 있는 식민사관의 망령과 이를 신봉하는 사학자들의 인맥을 고발한다. 우선 저자는 대표적인 한국사 필독서로 꼽히며 많은 사학 전공자들은 물론 수험서로도 그 권위를 인정받았던 한국사신론의 저자이자 1970년대 대표적 사학자이지만 식민사관을 숨기며 활약해 온 이기백의 발언에서 그 연원을 찾는다. “아직도 식민사관이 청산되지 않았다면 차라리 비극이라며 겉으로 식민사관은 이미 이 땅에서 사라졌다는 식으로 표현했지만 식민사관을 되풀이 하면서 대한민국의 역사교육과 역사관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이기백이 식민사관의 태두 이병도의 제자라는 점과 한국사 교육에 있어서 고조선의 기원과 한사군의 위치를 식민사관의 논조를 그대로 이어왔다는 것에서 명백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식민사관을 통해 한민족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패배감과 무력감을 심어주려 했던 일본의 사학자들에게 사사받은 이병도는 해방 후 일제 청산을 위해 설치되었던 반민특위 등이 이승만정권에 의해 무산되면서 살아남아 아이러니 하게도 대한민국 사학계에 태두로 등극하면서 무수히 많은 제자들을 주류사학자로 키워 식민사관을 주입시켰고 이기백은 그의 장학생이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역사관은 일제 식민사관을 그대로 이식해 놓은 것과 같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우선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로 규정하고 한반도 남부를 자신들의 임나일본부설에 따라 일본이 점령, 지배하였다고 주장함으로서 한반도의 백제, 신라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이후 조선의 수준을 자신들의 중세시대와 정치 및 경제체제가 유사하다고 폄하함으로서 일본의 조선병탄 합리화에 근거를 마련하고 한민족은 일본인에 비해 열등한 존재임을 쇄뇌시켜 왔다는 것이다.

 

식민사관의 실체와 이를 신봉하는 이병도 이하 주류사학자들이 지금도 대한민국 역사학계를 주름잡음으로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독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이 책은 결국 한민족의 주체성이 녹아든 민족사관의 회복과 아직도 대한민국 사회에 드리워진 친일 잔재를 청산하는 것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향후 통일을 위해 필요한 선제적 조치가 아닐까?

 

물론 이병도가 식민사관의 본원(?)이라는 실체에 대한 논란이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점과 식민사관은 물론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해서도 학계의 격렬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좀 더 냉철하게 상황을 바라봐야 하겠지만 식민사관이 가진 그 음모의 근원과 아직도 명확하게 해소되지 않은 논란을 좀 더 많은 독자들과 일반 국민들이 인식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이 책의 발행은 상당히 소중한 발자취로 남기를 바래 본다.

그리고 저자는 물론 식민사관을 청산하고 제대로 된 한민족의 역사관 확립에 열정을 바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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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원의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
용혜원 지음, 조풍류 그림 / 나무생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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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자신의 삶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 관조의 감수성이 치열한 예술혼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주위를 따뜻하게 만드는 아름다움의 극치로 표현될 수도 있다. 예술가들이나 문인들이 그들의 예술적, 문학적 성과가 개인적 경험이나 감성이 반영된 결과물이라면 용혜원 시인의 시는 세상은, 삶은 참 아름답고 순수하다는 고마움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용혜원의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는 시인 용혜원님의 아름다운 시들을 모아 한 편의 책으로 내놓은 결과물이다. 사춘기적 앳띰과 순수함이 더욱 명징하게 드러나는 그의 시들은 우리에게 가슴에 담아두는 시간 내내 훈훈한 미소와 가끔은 창밖 하늘을 내다보게 만드는 선물을 주곤 한다.

 

사랑하는 상대에 대한 지극히 순애보적인 사랑을 비유에 기대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이입된 솔직한 표현 그대로를 구사하며 삶에 대해서는 겸손과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싶은 소박한 소망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독자들의 시인과 하나됨을 원하는 마음을 기꺼이 허락한다.

 

그대는 내 삶에

잔잔히 사랑이 흐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대를 기다리고만 있어도 좋고

만나면 오랫동안 함께

속삭이고만 싶습니다”(본문 48페이지 만나면 편한 사람)

 

항상 무언가에 묶인 듯

풀려고 애쓰는 우리들

잠깐이라도

희망이라는 연을

삶의 한가운데로 날릴 수 있다면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때론 꺼피 한잔의 여유를 느끼며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싶다”(본문 83-84페이지 커피 한잔의 행복)

 

옆집 아저씨 같은 넉넉한 모습(솔직히 이름과 이 분의 시들을 처음 접했을 땐 여류시인인 줄 알았다.) 속에 스며든 순수함은 정글과 같은 경쟁사회 속에서 스러져 간 우리들 순수성이 여전히 우리 곁에 함께 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면 지나친 감성일까?

 

용혜원 시인의 감성이 지나침이라고 하기엔 그의 세상을 보듬는 사랑이 우리에겐 너무나도 과분하다. 맹목적인 상대에 대한 사랑은 물론 우리네 삶에 한 켠에서 고된 땀을 훔치는 이들도 그는 따스함을 잃지 않는다.

 

새벽은

눈시울 붉은 이들의 시간

많은 이들이

아침을

떠오르는 행복이라 하기에

빈한 자들의

몸짓은 야위어만 갑니다”(본문 106페이지 새벽을 여는 사람들)

 

용혜원님의 시와 함께 어우러진 조풍류 화가의 그림은 한편의 시를 읽고서 가져다 주는 짙은 여운과 감성의 시각적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삶은 아름다운 것일까? 아니 아름다우면서도 때론 너무나도 고될지도 모른다. 진정한 힐링은 우리가 간과했던 문학적 순수함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의 시가 오글거리다고 느껴도 좋다. 그런 감정을 메마르고 지나치게 이성적이어서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감성조차 없다고 몰아 세우지 않을 것이다. 일부일지라도 용혜원 시인을 비롯한 많은 시인들의 시적 표현과 그 결과물이 우리의 삶에 넉넉한 어깨가 되어 기댈수 있게 해준다면 참 모질고 찌든 세파 속에서도 해맑은 웃음이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이고 그 풍요로움은 물질적인 만족감이 결코 채워주지 못할 행복일 것이다.

고맙습니다. 용혜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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