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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전망 - 돈, 부채, 금융위기 그리고 새로운 세계 질서
필립 코건 지음, 윤영호 옮김 / 세종연구원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디지털 가상화폐의 일종으로 2009년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이름의 프로그래머 또는 프로그래머 그룹에 의해 만들어진 비트코인이, 거래가 자유롭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장점으로 실물거래의 지불수단으로 사용됨에 따라 세간의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중앙은행과 같은 발행주체가 없는 비트코인은 발행량을 유동적으로 늘릴수 없는 특징으로 전 세계 국가들의 공식 화폐와 달리 그만큼 화폐로서의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어서 피자, 빵 등을 사는데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중국에서는 집을 매입하고 세금을 납부하는데도 쓰이고 있으며, 심지어 지난달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에 비트코인으로 결제한 거래가 6296건에 이르는 등 실물경제의 교환수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한다.
연초에 13달러 수준이던 비트코인의 가격은 얼마 전 1200달러를 넘었다가 최근 700달러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비트코인의 가격이 급등락한 원인은 최근 미국과 중국이 비트코인의 정식화폐 발전 가능성에 여지를 남기면서 투기적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이는 투기수요에 따른 버블형성의 대표적인 사례인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투기를 연상시키는데 튤립의 버블이 꺼지면서 결국 튤립 본연의 가치로 가격이 하락했는데, 앞으로 10∼20년 뒤에는 정식화폐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비트코인의 운명 또한 버블에서 쉽사리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트코인의 사례에서 우리는 교환 수단으로서 화폐의 장점과 단점을 알 수 있으며 화폐가 가지는 버블의 형성과정과 그 말로가 반복된다는 점도 깨닫게 된다. 화폐는 분명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양날의 검처럼 화폐경제로 인해 우리는 몰락을 더 가속화 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화폐의 경제>는 돈(화폐)의 기원과 형성, 범용 수단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훌륭한 경제사이자 앞으로 돈이 가져올 불안한 자본주의의 미래와 국가간 위상변화를 내다보는 책이다. 지불수단으로서 편리함(옥수수 1자루를 사기 위해 내가 가진 양2마리와 교환한다고 생각하면 다른 필수품 구입까지 생각한다면 머리 아플 것이다. 하지만 돈은 그 고민을 한번에 해결해 준다)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화폐는 과거 중앙집권적인 중국이나 몽골(원 제국)과 같이 국가의 강력한 신용이 밑바탕이 되어야 가능했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하지만 국가가 몰락하면서 화폐의 쓸모도 순식간에 없어지듯 ‘누군가 당신에게 갚으리라는 믿음’ 또는 그 믿음을 보장해 줄 제도와 수익이 없다면 쓸모없는 종이나 금속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은 역사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튜립버블 외에도 지난 2009년 1월 짐바브웨는 액면가 100조의 지폐를 발행했는데 미화 환산시 고작 30달러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는 화폐유통량에 대한 적절한 관리 없이 무분별하게 찍어낸 화폐의 가치 하락으로 인한 웃지 못할 일화였으며 이로 인해 급료를 받자마자 얼른 생필품을 사지 않는다면 순식간에 폭등한 가격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는 현상도 나타났었다.
미국도 예외는 아닌게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금융위기로 리먼브러더스 등 유수의 금융회사들이 파산하자 금융지원을 위한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연방준비위원회 의장 벤 버냉키를 ‘헬리콥터 벤’(헬리콥터에서 달러를 마구 뿌린다는 뜻에서 별명으로 삼았음)이라 부를 정도였었다. 이때의 부작용은 그대로 유럽의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아일랜드 등을 신용불량의 나락으로 강타했고 지금은 테이퍼링(양적축소)을 통해 터키 등 신흥국의 발목마저 붙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40년 동안 세계는 부 자체의 창출보다 부에 대한 청구권의 창출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었고 경제는 성장했어도 이를 상회하는 자산 가격과 부채 증가로 인해 채권자들은 불안해었다.
<화폐의 전망>의 요지는 자본주의체제는 채권자와 채무자간의 갈등의 연속이고 이로 인해 발생되는 부채는 결국 전부 상환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화폐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 보면서 왜 화폐가 편리하면서도 파멸로 이끌 수 있는 불안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해 주고 지금의 미국 화폐정책, 즉 양적완화나 양적축소등 화폐유통량의 조절을 통한 경기대응이 적절한지도 진단한다.
끝으로 위기로 야기된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에 대한 전망도 빼놓지 않는다. 결국 논평가들의 예상대로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것이며 금융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기존의 선진국들은 자신들을 곤경에서 구해줄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겠지만 그들의 기호에는 맞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