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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로 보는 술탄과 황제 1
김형오 지음, 조한 그림 / artePOP(아르테팝) / 2018년 5월
평점 :
품절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사를 치열하게 연구한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를 만화로 읽는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과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가 보여주는 두 군주의 리더십 대격돌!
1453년콘스탄티노플 전쟁의 무대였던 터키 이스탄불을 수차례 다녀오고 현지에 머물며
취재 및 연구 활동을 한 끝에 [술탄과 황제]를 완성했으며 이에 머물지 않고 초판을 대폭 수정한 전면
개정판인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를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1453년 비잔티움 제국 최후의 날을 더욱 생생하게 증언하기 위해 원고를 전면 재구성
전쟁의 주역이었던 술탄과 황제
두 제국의 리더십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뱃길이 막히자 함대를 이끌고 가파른 언덕을 넘어간 오스만의 술탄(메흐메드 2세)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채 무너지는 제국의 천년 성벽과 함께 장렬히 산화한
비잔티움의 황제(콘스탄티노플)가 두 주인공
콘스탄티노플 함락 전쟁에 관한 것이라면 찾고,구하고,묻고,읽으며 열심히 저자가 공부한 만큼
읽는 독자들도 찾고,구하고,묻고,읽게 된다
비록 만화이지만 표현을 못하겠다
책을 놓지 못하고 책장이 넘어가질 않는다
꼭 원작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1권은 황제 편으로
1453년 5월 29일 화요일 54일 동안의 치열한 전투 끝에 콘스탄티노플은 완전히 함락
오스만 깃발이 하늘 높이 나부끼고 술탄의 첫 행선지는 하기아 소피아였다
"이 도시의 모든 건축물은 나의 것이다
나의 허락없이 문고리 하나 손대는 병사가 없게 하라"
굉장한 대성당에 새신을 맞을 준비를 하게 되고
916년 동안 기독교 예배당으로 사용되어 온 하기아 소피아가 이슬람의 모스크로 바뀌는 순간
1453년 6월 1일 금요일 함락 나흘째 십자가가 내려진 하기아 소피아의 운명은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
하기아 소피아를 나온 술탄은 황량한 히포드롬 광장을 가로질러 옛 황국으로 갔다
"황제들의 궁에서는 거미들만 부지런히 커튼을 치고 있고
아프라시아브의 성탑에서는 부엉이 홀로 슬피 울며 보초를 서고 있구나"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사디가 제국의 소멸을 한탄하며 읊었다는 시
1453년 5월 31일 목요일 콘스탄티노플 함락 사흘째 황제의 시신을 발견하고
비잔티움 황제가 맞는지 비잔티움의 관료 루카스 노타라스가 확인을 하고
황제의 머리를 아우구스테이온 광장의 원주 위에 올려 두었다가 박제로 만들어 이웃나라
궁정에 보내 순회전시토록하라고 명령한다
황제의 서기관 게오르기오스 프란체스가 황제가 남긴 금고 열쇠 안에 일기장을 후세에 전하고 싶다고
그 일기장을 펼친다
"비록 내가 그토록 사랑한 비잔티움 제국은 적들의 침공으로 사라지더라도 이 기록은 남아 제국의 위대한 정신과 제국 신민들의 고결한 영혼을
영원히 역사에서 증언하여주기를 기대하며
제국의 황제로서 일기를 적노라" ,,,콘스탄티누스 11세 드라기세스 팔라이올로구스,,,
오판과 어리석음이 담긴 황제의 일기라고 말하는 술탄
부활절 다음 날 월요일 적들이 왔다
엇갈리기 시작한 운명
애초에 그들이 루엘리 히사르를 지을때부터 비잔티움 침공은 예견된 바였다
그들 또한 젊은 주군의 무모한 야욕을 막지 못했다
루멜리 히사르가 완공된 후에 황제는 환청에 시달리고 1454년 4월 6일 오스만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술탄은 고작 스물한 살짜리 애송이라고 하지만
단지 철부지가 아니라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무시무시한 사고뭉치라고 한다
그의 선친은 명분 없는 공격은 하지 않고 패자를 존중하며 기독교 국가들과 맺은 조약을 지키려는
신의 또한 보였다
평화를 가장한 항복을 요구하며 몇 차례나 사절을 보내 저 메흐메드 2세의 추악한 야욕과는
비교할 수 없다
황제는 생각했다
메흐메드 2세는 신사다운 군주였던 그의 아버지 술탄 무라드 2세와는 완전히 다른 인물
절대로 콘스탄티노플은 이교도의 발길 아래로 넘기지 않으리라,,,
아버지 주위의 간교한 것들 때문에 술탄의 자리에서 물러나 유배 아닌 유배생활을 할 때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헝가리 출신의 대포 기술자 우르반
비잔티움의 재정 형편은 우르반이 요구하는 높은 보수를 감당할 여력이 안되었다
그러나 술탄은 우르반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선대 술탄들이 콘스탄티노플 정복에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이 성벽을 무너뜨릴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라
판단해서 였다
"우리 제국 영토 중간에 섬처럼 버티고 있는 콘스탄티노플을 수중에 넣어야만 편해진다
마치 목에 걸린 가시를 제거해야 나머지 음식들을 마음껏 삼킬 수 있는것처럼"

서기 413년 축조된 콘스탄티노플의 유명한 삼중 성벽은 건설 당시의 황제 이름을 따
"테오도시우스의 성벽"이라고 했다
이 철웅성 같은 성벽이 바로 가용 군사 7,000~8,000명으로 격전을 치르며 버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