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 - 상 - 탄생에서 한산대첩까지
김정산.김종대 지음, 이우일 그림 / 시루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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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순신이 대세다. 그만큼 관심이 높아지다 보니, 이순신 장군의 평가에 대해 논란이 많다. 분명, 군의 힘으로 정권을 잡았던 박정희 정권이 이순신 장군을 이용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 그것은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이다. 비록 의도적 작업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순신 장군에 대한 평가는 정당하다. 우리가 비난해야 할 것은 독재정권의 의도성이지, 이순신 장군 당사자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이순신 장군이 보여준 모습들, 그가 품었던 마음의 자세 등을 통해, 오늘 우리를 돌아봐야 한다.

 

『이순신, 조선의 바다를 지켜라 상』은 이순신의 탄생에서부터 한산대첩까지를 다루고 있는 초등 고학년, 청소년 대상 역사소설이다. 이순신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하려 애쓰며,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들은 따로 나름 저자들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다. 아울러 초등 고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용어 설명들을 성실하게 하고 있다. 여기에 이우일 작가의 그림 역시 책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아, 분량상 내용의 한계가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이순신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순신의 당당함이다. 이 당당함은 어디에서 올까? 그것은 매사에 올곧고, 떳떳한 행동에서 오지 않을까? 문관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국가 위기를 감지하고 무관의 길을 걷는 이순신은 공과 사를 철저하게 구분할 줄 알았으며, 자신의 유익보다는 국가의 유익을 우선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매사에 철저한 자기관리와 떳떳한 행동을 하였기에 당당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 우리에게 당당함이 사라졌다면, 그 이유는 다른데 있지 않고 바로 나에게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공동체의 유익보다 내 유익을 우선으로 할 때, 당당함은 사라지게 된다. 떳떳하지 못한 행위가 쌓일 때, 우리는 당당함을 잃게 된다(물론, 자신의 유익을 우선하면서도, 떳떳하지 못하면서도 당당함이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우린 양심에 털 났다고 한다^^).

 

다음으로 이순신은 어린 시절부터 불의를 참지 못하는 정의감의 사내였다. 결국 이러한 정의감이 사실 적들을 만들게 되고, 그 일로 인해 어려움도 많이 겪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국 역사는 이순신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았음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순신이 임진왜란의 국가 위기 앞에서 전승을 거두며,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 올릴 수 있었던 힘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 있었음도 생각해 보게 된다. 모두가 자신이 앉은 자리를 이용하여 자신의 유익을 먼저 챙길 때, 이순신은 언제든지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대비하였다. 이순신이 전라도 수군절도사가 되어 부하들을 철저하게 훈련시켰던 것이 국가를 건져 올린 씨앗이 되었다. 사실 어쩌면 이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당시 모든 이들이 해이해져 자신의 본문을 잊고 살아 갈 때, 본분을 지켜 행하는 그 당연한 모습은 너무나도 특별한 모습이 되어 버린다.

 

오늘 우리들에게 본분을 지켜 행하는 모습이 특별한 사건이 되지 않길 원한다. 당연한 일을 하는 것이 칭찬받는 특별한 사건이 되어 버리는 사회는 사실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 아닐까? 오늘 대한민국이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본분을 지켜 행함은 당연한 일이 되고, 지켜 행하지 않음이 너무나도 특별한 사건으로 다가오는 사회가 될 수 있길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느끼게 되는 또 하나의 생각은 위기 앞에 무능한 조정의 모습이다. 조선왕조 대부분의 시대가 그러했지만, 특히 임진왜란 당시 조정의 모습은 철저한 무능함을 보여준다. 책임 맡은 자의 도주(책임 회피), 무능한 인재 기용, 조정의 인사관리 능력 제로,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핏대를 세우는 모습들. 왠지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명량”이란 영화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이순신에 대한 책들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특히, ‘세월호’라는 전대미문의 슬픔의 사건 앞에 보여준 정부의 무능은 임진왜란 앞에 보여준 조선 조정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에. 그랬기에 국민들은 이순신과 같은 백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영웅의 리더십을 갈망하고 있는 것 아닐까?

 

갈망도 좋지만, 오늘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리에 선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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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사우루스 - 사도의 공룡 돌개바람 33
이경혜 지음, 이은영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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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공룡 사도 사우루스』는 참 예쁜 동화랍니다. 공룡의 이야기를 이렇게 예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의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사도는 전남 여수 앞 바다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그곳엔 지금도 공룡발자국이 많이 남아 있어, 공룡의 섬이라고도 불립니다. 작가는 바로 그곳 사도에 있었을 공룡들을 상상하며 예쁜 동화를 통해, 공룡들을 다시 살려내고 있습니다.

 

주인공 수와는 초식공룡입니다. 무지개공룡 가운데, 보라색 공룡이랍니다. 이들 무지개공룡들은 각기 무지개 색깔 가운데 한 가지 색깔을 갖고 있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점 한 가지가 있답니다. 무지개공룡이 진정으로 무지개가 되기 위해선 모두 함께 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결코 무지개공룡이 될 수 없습니다. 빨간 공룡만이 모여 있다면, 그저 빨간 공룡 공동체에 불과합니다. 노란 공룡 역시 마찬가지지요. 하지만, 이들이 모두 함께 모이게 될 때, 비로소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색깔을 이루게 된답니다.

 

이러한 무지개공룡의 자아 찾기는 수와를 구하기 위해 타르보사우루스와 맞서 연대할 때, 절정을 이루게 됩니다. 비록 힘이 없는 초식공룡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함께 연대하게 될 때, 엄청난 힘을 갖게 됨을 작가는 동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우리 앞에 무시무시한 공룡 같은 문제가 가로막고 있나요? 그렇다면, 약한 자들의 연대가 답이 될 수도 있답니다.

 

주인공 수와가 수와인 이유는 수와만이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지개공룡들과 다르게 두 귀를 가지고 태어난 수와는 세상 온갖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 소리를 말할 수 있답니다. 그래서 바람소리, ‘수와--’를 듣고, 태어나서 처음 외친 소리가 ‘수와--’랍니다. 그래서 이름이 수와가 되었지요.

 

이런 수와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이런 수와를 인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된답니다. 그 놀라운 일들은 뭘까요?

 

 

세상의 다른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다른 소리를 듣는 데서부터 화합과 평화가 시작된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엔 세상의 소리를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이 참 많답니다. 오직 내 소리만을 강요하고, 다른 사람의 소리는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서로 싸우고, 더 힘겨워지는 공간이 된답니다. 우리에게 수와의 귀가 있길 빌어봅니다.

 

그래서 동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의성어에는 다른 색깔로 표시가 되어 있답니다. 이런 의성어를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겁니다. 세상에는 참 여러 소리가 있다는 것을 의성어를 통해, 알게 됩니다. 나와 다른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죠. 세상에 언어가 하나라면 이거야말로 저주겠죠.

 

성경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창세기라는 책이 있는데, 이 창세기의 시작부분을 원역사라고 부른답니다. 이 원역사의 마지막 이야기는 유명한 바벨탑이야기랍니다. 이 이야기의 출발은 세상의 언어가 하나였다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세상의 언어가 하나였다는 것이 축복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언어를 흩으신 하나님의 행위가 축복입니다. 언어가 하나였다는 말은 오직 한 주장만이 소리를 내고, 다른 소리들은 숨죽였다는 의미입니다. 바벨탑이야기에 대한 명화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여러 바벨탑 그림의 공통점은 높은 성을 쌓고 있는데, 유독 채찍을 들고 감독하는 사람들이 있고, 반대로 힘겹게 노동의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언어가 하나라는 건 바로 이런 의미랍니다. 내 주장을 높이지 못하고, 오직 힘 있는 사람들의 소리만이 발해지는 것. 그래서 하기 싫어도 노예처럼 누군가의 영화를 위해 땀을 흘려야만 하는 것. 내 소리를 내면, 채찍에 맞아 고통당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인 언어’의 진면목이랍니다.

 

그래서 언어의 흩으심이야말로 사실 심판이 아닌, 축복의 행위랍니다. 많이 어긋났지만, 수와를 통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자신의 고유한 여러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소리를 귀담아 들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축복이죠. 비록 저자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말입니다.

 

또 하나 이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수와의 모험입니다. 수와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느 무지개 공룡도 해보지 못한 모험을 합니다. 바로 친구 시루와 함께 시루의 고향 바다까지 모험을 떠나는 겁니다. 하지만, 진짜 모험은 시루와 친구가 된 것 아닐까요? 시루는 육식 공룡입니다. 그런 시루와 수와가 서로 친구가 되어 우정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참 모험이 아닐까요? 수와가 시루에게 하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우린 이렇게 다른데 친해지다니 그거야말로 신기하지?”

 

이런 신기한 일이 이 땅에 수없이 일어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놀라운 일은 수와처럼 들을 수 있는 귀, 그리고 단단한 용기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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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1 - 윤인완 환타지 소설
윤인완 지음 / 박하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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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일랜드는 제주도에서 펼쳐지는 퇴마 환타지 소설이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제주도, 그곳에서 펼쳐지는 때론 끔찍하고, 때론 긴박하며, 때론 흥미진진한 이야기. 이와 같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엮어가는 주인공이 있다. 바로 원미호, 반, 요한이 그들이다.

 

원미호는 고등학교 윤리선생이자, 상담선생이다. 하지만, 그에겐 남들이 없는 배경이 있다. 바로 세계 3위 굴지의 기업인 대한그룹 회장의 외동딸, 그렇기에 그녀는 제멋대로 행동함이 몸에 배어 있다. 또 한 사람 반은 불교 퇴마사이다. 무시무시한 정염귀라 할지라도 그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반은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연쇄토막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원미호에게). 과연 그가 범인일까?

 

또 한 사람 신부 요한이 있다. 20살의 어린 나이지만, 교황청이 인정하는 엑소시즘의 최고 능력자.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되어 온갖 고생을 하였던 그는 친모를 만나기 위해 서울로 오다가 윤미호에 의해 제주도에 눌러 있게 된다. 어느 누구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아픈 과거가 있음에도 언제나 밝게 사는 그는 오락게임을 즐기며, 윤미호에게 마치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하는 영락없는 동네 청년이다.

 

이런 이들이 제주도에서 수많은 악령들과 겪어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아일랜드1』은 무엇보다 재미있다. 두툼한 책이 금세 읽혀진다. 하지만, 처음 시작이 너무 잔인하다. 마치 너무 잔인한 폭력 영화를 보면 채널을 돌리거나 정지 버튼을 누르고 싶어지는 것처럼, 이 책 역시 계속 읽어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끔찍한 장면이 묘사된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점점 흥미진진하고, 뒤로 갈수록 그토록 잔인한 묘사 역시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단순한 퇴마 환타지에서 그치지 않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1편에서는 무엇보다 학교폭력문제, 왕따 문제, 결손가정문제(외형적 결손가정이 아님. 외형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가정환경이지만, 정작 부모와의 만남도 관심도 사랑도 느끼지 못하는 결손가정)를 아무래도 가장 많이 생각해보게 된다.

 

‘벙새(벙어리 새)’라는 별명을 가진 이교빈. 3년전 서울에서 전학 온 그는 학교 전체에 친구 하나 없다. 아니 제주도 전체에 그는 혼자다. 그는 학교에서 조롱과 멸시의 대상, 폭행과 갈취의 대상에 불과하다. 그런 그가 상담선생인 원미호에게 도움을 청해보려 하지만, 매사가 제멋대로인 원미호에 의해 거절당하고 만다. 그 후에 일어난 여교사 화장실 몰카 사건으로 교빈이가 원미호에게 몰카사건을 미리 알려 줬음을 뒤늦게 알게 되지만, 교빈이는 이미 자살하여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뒤다. 그런데, 어느 날 교빈에게서 원미호 앞으로 메일이 오게 되고, 제주도에서는 끔찍한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게 되는데...

 

과연 왕싸가지 밥맛 교사 원미호는 이 사건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까? 또한 2편, 3편에서는 어떤 사건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할지 궁금해진다. 처음엔 그토록 왕싸가지, 밥맛인 미호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도 아는 사람으로 변하는 모습을 1편 마지막 부분에서 보여준다. 제주도를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미호가 제주도에 애정을 느끼기도 한다. 왕싸가지 미호가 2편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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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 하 열린책들 세계문학 66
브램 스토커 지음, 이세욱 엮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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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며, 잘 알려진 내용이다. 드라큘라 영화는 누구든 한두 편은 봤을 정도로 익숙하다. 하지만, 정작 소설 “드라큘라”를 제대로 읽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드라큘라의 작가가 브램 스토커라는 분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워낙 캐릭터가 강해, 자신의 창작 캐릭터에 묻혀, 저자의 이름은 사람들이 별로 기억치 않는다는 소설. 반대로 생각하면, 그만큼 강력한 인상을 심어주는 걸작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리라.

 

이미 출간된 지 100년이 훨씬 넘는 스릴러의 고전. 600페이지가 넘는 적지 않는 분량의 소설. 이 “드라큘라”가 열린책들에서 상, 하 두 권으로 나눠져 있는데, 이렇게 나눈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 여겨진다. 단순히 분량이 많아 두 권으로 나눴을 수도 있겠지만, 드라큘라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물론 본인의 느낌이다). 게다가 상, 하에서 드라큘라에게 전염되는 두 여인이 각기 등장한다. 물론, 두 번째 여인 미나 하커는 상편에서는 처녀적 이름 미나 머레이로 계속하여 등장한다. 아무튼 이 두 여인을 기준으로 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은 주로 각 등장인물의 일기와 편지의 형식이다. 물론, 모두가 일기를 쓰는 것은 아니다. 주로 조너선 하커, 미나 하커, 루시, 존 수어드의 일기를 통해, 각자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보며 접근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이처럼 일기와 편지의 형식을 띄고 있기에 긴박감이 없을 듯싶은데, 그렇지 않다. 특히 상편에서는 잔잔한 가운데, 느낄 수 있는 긴박감이 최고다. 상편이 훨씬 흥미롭고 스릴이 넘친다.

 

갓 변호사가 된 조너선 하커는 상관의 지시에 의해, 트란실바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을 찾아가게 된다. 드라큘라 백작이 런던에 집과 영지를 사는 문제를 의뢰해왔기 때문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찾아간 것. 하지만, 그곳 백작의 집을 찾아가는 첫날부터 대단히 음산하고 이상한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조너선 하커는 백작의 비밀에 서서히 접근하게 된다.

 

한편 하커의 약혼자인 미나, 그리고 미나의 둘도 없는 친구 루시는 함께 휘트비로 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순결하고 고결한 여인 루시는 드라큘라의 희생이 되어, 우여곡절 끝에 결국 죽음을 맞게 되는데. 과연은 루시는 죽음으로 끝일까?

 

 

드라큘라의 전반부가 흥미롭고 스릴이 넘친다면, 반면 후반부는 대사 하나 하나를 곱씹게 하고, 사색하게 하는 상당히 철학적 내용을 품고 있다. 물론, 후반부 역시 스릴을 전제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가 그렇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상편이 왠지 미신적인 접근을 주로 하고 있다면, 하편에서는 그 이면에 담긴 신앙적인 부분을 생각해 보게 한다(저자가 의도하였던지 그렇지 않던지 간에).

 

드라큘라 이야기에서 중요한 모티브 중에 하나는 선과 악의 문제이다. 물론 드라큘라는 악의 쪽에, 그리고 그 상대편에 있는 등장인물들 루시, 아서 홈우드, 조너던 하커, 미나 하커, 수어드 박사, 퀸시 모리스, 반 헬싱 박사 등은 선의 편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이 영원하지 않다는 화두를 저자는 던진다. 특히, 악은 선을 오염시킨다. 이것이 드라큘라에게 물린 자들이 흡혈귀로 점차 변하게 되는 모티브 아닐까?

 

또한 이러한 강력한 악을 이길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인가? 그것은 악과 맞서 싸울 용기, 절망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과 확신이다. 이는 특히, 흡협귀의 전문가(?)인 반 헬싱 박사의 대사에서 두드러지게 나온다. 게다가 반 헬싱 박사의 이름이 아브라함 반 헬싱이라는 것에도 저자의 의도가 담겨 있지 않을까?(유대인들에게 믿음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다)

 

반 헬싱 박사는 현대인들의 의심에 경종을 던진다. “의심은 우리를 파멸시키는 칼집, 갑주, 무기가 될 수 있다(p.542)”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보이는 것조차 의심하는 현대인들의 의심이 드라큘라의 존재를 믿지 않게 하고, 이런 의심을 이용하여 악은 자신의 영역을 확산시켜 나간다.

 

또한 드라큘라 이야기는 무엇이 참 불멸인지도 보여준다. 과연 악에 물들어 누군가의 피를 빨아 얻는 불멸이 참 불멸인가? 아님, 전편에서 보여줬듯이 흡혈귀가 된 루시가 흡협귀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면을 누리는 것이 참 불멸인가? 괴물이 되어 누군가의 희생을 전재로 영원한 삶을 누린다면 이것은 벗어버려야 할 굴레가 아닐까? 아무튼 “드라큘라” 재미있으며,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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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아베를 쏘다
김정현 지음 / 열림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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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아베를 쏘다』에서 저자는 죽은 안중근을 다시 살려낸다. 그리고 안중근은 100여 년 전 자신이 이등 박문(저자는 요즘은 모두 일본사람 이름을 일본식 발음 표기로 하지만, 저자는 일본식 표기를 앞세우지 않고, 예전의 한자식 발음으로 한다. 의도적 표기가 아닌가 싶다)을 쏘았던 그 현장에서 아베를 다시 쏜다. 그래서 판타지라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은 소설의 인클루지오를 이루고 있을 뿐, 대부분의 전개는 안중근 재판 내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가운데 갖게 되는 느낌들은 분노, 경외, 통쾌, 공감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분노는 우선 안중근을 두려워하며 야비하게 행동하는 일본의 행태에서 느끼게 된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재판권이 중국, 또는 러시아에 있음에도 자신들의 힘으로 윽박질러 자신들에게 유리한 재판을 하는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분노이다. 아울러 100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아베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일본 극우세력들의 주장과 행보에 대한 분노이다.

 

당시 일본이 안중근 의사를 사형에 처하고 급하게 집행한 이유를 검사 구연의 말을 통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대 같은 사람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 많은 한국인이 그 행동을 본뜰 것이며, 일본인들은 겁이 나서 일상을 온전히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일본이 안중근 의사를 단순 살인자, 단순 테러분자로 규정하고 사형에 처한 이면에는 안중근 의사의 의연함과 그 높은 애국의 정신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시대를 떠나 마찬가지이다. 권력자들이 민중의 행동이나 발언에 대해 과도한 대처를 하는 이유는 사실 두려움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이 두려움의 근원은 본인들의 그름에 있다. 본인들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면, 자신들을 향한 비난에 두려워하지도 않고, 과도한 대처를 하거나 온갖 거짓 주장들을 억지로 주입시킬 필요가 없다. 이는 오늘 이 시대를 돌아보게도 한다.

 

둘째, 경외의 감정은 언제나 의연함을 잃지 않는 안중근 의사의 모습에서 갖게 된다. 그리고 안중근의 정의심에 이 감정을 품게 된다. 끝까지 나라와 동포를 생각하는 그 모습에서 경외의 감정을 품게 된다. 오늘 우리는 국가나 동포보다는 ‘나’가 더 중요하진 않은가?

 

셋째, 통쾌함은 아베를 처단하는 장면에서이다(물론 이런 감정은 옳지 않은 감정이지만, 본인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다. 일본사람은 일본사람이라고 표현하면 안 되고, 일본 ‘놈’이라고 표현해야 맞는 것처럼 여기는). 하지만, 더욱 통쾌함을 느끼는 장면은 아베를 죽인 후 다시 열리게 된 재판에서 안중근 의사가 당당하게 소견을 밝히는 장면이다. 특히, 아베의 죄에 대해 조목조목 밝히는 부분에서는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 공감은 안중근 의사의 동양평화론에서이다. 비록 미운 일본이다. 어쩌면 용서가 쉽지 않은 일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동양의 평화를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한다. 안중근 의사는 바로 그러한 대안을 생각하였다. 안중근 의사가 이등방문을 쏜 것은 대안 없는 폭력만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동양평화론에서는 공감을 느끼게 된다.

 

『안중근, 아베를 쏘다』, 8월에 읽으면 더욱 좋을 책이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인클루지오 부분(프롤로그, 제3부)만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면 통쾌함만을 마음껏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껍질만 먹는 것이다. 조금은 지루한 감도 없진 않지만, 안의 내용물도 섭취해야 저자가 성의껏 장만한 맛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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