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랄라 블루베리 따러 가요 노란상상 그림책 18
줄리 플렛 글.그림, 김경연 옮김 / 노란상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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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렌스는 아기였을 때, 할머니 등에 업혀 블루베리를 따러 갔답니다. 할머니는 노래를 불렀고 말이죠. 그런데, 이젠 제법 커서 할머니 뒤를 따라 양동이를 들고 룰루랄라 함께 노래를 부르며 가네요.

클라렌스는 할머니와 함께 블루베리를 땁니다. 물론 신 나게 따 먹기도 하고요. 개미 한 마리가 클라렌스 다리 위로 올라오고, 거미가 집을 짓는 모습도 구경합니다. 클라렌스는 양동이 하나 가득 딴 블루베리 가운데 한 줌을 나뭇잎 위에 올려놓네요. 숲 속 새들과 동물들이 먹으라고 말입니다. 양동이 하나 가득 블루베리를 따고 돌아가는 클라렌스와 할머니를 축복하는지 새들이 노래하네요.

이 짧은 그림책은 무엇을 우리에게 말하려는 걸까요?

먼저, ‘함께’함에 대해 생각해봤답니다. 처음엔 클라렌스가 아기였을 땐 할머니 등에 업혀 있었답니다. 할머니 혼자 노랠 불렀고, 혼자 블루베리를 땄죠. 이젠 그 모든 것을 함께 하네요. 노래도 함께 부르고, 함께 걷고, 함께 블루베리를 딴 답니다.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과 뭔가를 함께 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죠. 비록 우리가 종종 그 일상의 행복을 깨닫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또한 숲 속의 친구들을 배려하는 마음도 아름답네요. 블루베리를 하나 가득 따오는데 그치지 않고, 숲 속 친구들을 위해 한 줌 나뭇잎 위에 올려놓는 그 마음이 아름답네요. 예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랬답니다. 감나무의 감을 따며 모두 따지 않고 남겨뒀답니다. 까치밥으로 말이죠. 어쩌면 지금 우리들보다 삶은 더 풍요롭지 못했을 텐데도 그런 마음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음이 얼마나 멋진가요? 오늘 우리들은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아감에도 자꾸 힘들다, 못 살겠다는 말만 하며, 정이 사라지는 모습이 아닌가 안타깝네요.

 

그리고 자연을 즐기는 클라렌스의 모습도 부럽고요. 거미가 집을 짓는 모습을 오늘 우린 어쩌면 돈을 내고 체험학습을 하러 가야만 볼 수 있진 않나요? 개미가 다리를 타고 간질간질 올라오는 그 느낌을 우리 아이들은 알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삶의 편리함은 얻었지만, 왠지 자연의 풍요로움은 잃어버린 것 아닌가 싶어 씁쓸하네요. 이 책은 그런 도시의 아이들에게 자연의 맛을 물씬 느끼게 해 줄 좋은 그림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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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랑 집을 바꿨어요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7
이솔 글.그림, 김영주 옮김 / 책속물고기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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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오는 텔레비전을 좋아한답니다. 벌써 여섯 시간째 보고 있답니다. 그런데, 그 때 눈을 번쩍 뜨게 할 광고가 나오는 겁니다. 집을 바꿔준다는 겁니다. 일주일간 외국인 친구와 집을 바꿔 생활해 보는 그런 프로그램 광고를 보고, 훌리오는 당장 방송국에 편지를 보냈답니다.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은 아프리카라며 말입니다.

일주일 후 훌리오 앞에 커다란 상자 하나가 도착했답니다. 그 안에는 바로 코끼리 봄보가 들어 있었답니다. 이제 코끼리가 훌리오의 tv 앞을 차지하게 되고, 훌리오는 코끼리 봄보의 가정을 향해 아프리카로 가게 된답니다.

그곳에서 훌리오는 tv는 한 번도 보지 않고, 자연 속에서 신나는 일들을 벌이고, 멋진 자연 풍경도 감상하게 됩니다. 수영도 신나게 하고요. 어느새 일주일이 훌쩍 지나 훌리오가 집에 도착해 보니, 코끼리 봄보는 여태껏 tv 앞에 있네요. 그런데 봄보의 눈을 한 번 유심히 보세요. 눈이 핑글핑글 돌아가고 있답니다.

아프리카에서 신나게 놀고 온 훌리오는 이제는 tv를 그렇게 오래 보지 않는답니다. tv에 나오는 멋진 풍경들은 훌리오가 직접 가서 보고 느낀 곳이거든요. 그런데 아프리카의 집으로 돌아간 봄보는 어떨까요? 왠지 봄보의 눈은 아직도 핑글핑글 돌고 있네요.

이 책은 tv를 보지 않아도 신나는 일들을 많이 경험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답니다. 그리고 자연에 노출된 삶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말하고 있고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tv나 컴퓨터, 스마트폰에 얽매여 눈이 핑글핑글, 머리도 핑글핑글 돌고 있는 건 아닐까요? 특히, 요즘은 tv보다는 스마트폰이 더 문제인 것 같네요.

 

어쩌면, 이제 곧 시작될 설 명절에 친척들이 만나서도 각자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우스운 풍경이 우리들의 풍경이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네요. 눈이 핑글핑글, 머리도 핑글핑글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오랜 만에 친척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시골 자연에서 신나게 뛰놀아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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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곁엔 사랑하는 이가 없었다
김경주 지음 / 열림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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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시극[詩劇]”이다. 마치 연극 무대를 감상하는 것과 분위기이지만, 산문보다는 대체로 운문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그런 시극. 처음 접하는 장르의 책이기에 약간 어색했다. 하지만, 읽어가는 가운데, 그 안에 빠져들게 된다. 금세 읽을 분량이기에 한번 읽은 후에는 다시 한 번 훑어보며 그 여운을 즐겨본다.

 

무대는 폐기된 해수욕장의 작은 파출소. 한 사내가 파출소 직원에 의해 업혀 들어온다. 업혀온 사내는 김씨다. 김씨는 고무인간이다. 반은 인간, 반은 고무인 고무인간. 그의 다리는 기껏 15센티미터 가량. 그 다리를 기다란 고무 튜브로 감싸고, 길바닥을 기어 다니며 구걸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바다를 향해 기어가다, 파출소 직원에 의해 업혀 온 거다. 이렇게 파출소에서 둘은 대화를 나눈다. 주로 이 둘의 대화가 시극의 주를 이루고 있다.

 

김씨는 땅바닥을 기다가 사람들에게 손을 밟히면 하늘을 올려본다 말한다. 그렇게 올려다본 하늘엔 물고기들이 날아다닌다고. 김씨는 물고기가 되길 꿈꾼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항 안의 물고기 지느러미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단다. 그곳 물고기의 지느러미에서는 무슨 냄새가 날까? 김씨는 꿈 냄새가 난다고 한다.

 

그렇다. 그에게는 물고기가 되어 자유롭게 물속을 헤엄치는 꿈이 있다. 언제나 바닥이 익숙한 그는 다시 태어나면 물고기가 되고 싶어 한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인생보다는 물고기가 되어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침이 더 낫다 여겼을 터. 어쩌면, 그 꿈을 찾아 바다로 기어갔던 건 아닐까? 어쩌면, 김씨는 자신의 몸 절반을 뒤덮고 있는 고무 튜브가 마치 물고기의 지느러미가 되길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씨는 땅을 기어 다닐 때, 선글라스를 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글라스를 끼는 이유는 자신의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의 눈을 보지 않기 위함이 아니라는 말이다. 도리어 사람들이 김씨의 눈을 보면 불편해할까 봐 선글라스는 낀단다. 사람들은 김씨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한다. 왜? 작은 동정을 지불하기도 부담스러워서일까?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내 안에 자리한다.

 

그는 또한 나비의 연한 발목을 바라보곤 했다고 말한다. 실처럼 가늘고 긴 나비의 발목, 하지만, 그에게는 그나마 가는 발목조차 없다. 나에게 없는 것이기에 어쩜 더욱 아름답게 여겨졌을지도.

 

이런 김씨와 대화를 나누는 파출소 직원은 이제 은퇴가 몇 날 남지 않은 늙은 경찰이다. 이제 곧 폐쇄될 해수욕장, 그리고 그 안의 파출소와 운명을 같이하게 될. 그런 그에게도 상처가 있다. 자폐를 앓던 아들이 집을 나가고, 그 아들의 죽음과 함께 아내 역시 죽음을 선택했던 것. 그는 다리가 있지만, 그 역시 파출소와 그 관할 구역을 제외하곤 어느 곳도 향할 수 없는 다리 없는 인생이다. 그리고 가슴 속에 견딜 수 없는 슬픔을 품고 있으면서도 술로 위장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어쩜, 우리네 인생은 이처럼 아픔이 가득할까? 우린 누군가의 다리가 되어주기보다는 왜 누군가의 남은 다리나마 밟고 살아가는가? 왜 우리는 남에게 밝힐 수 없는 아픔 하나씩 감추고 살아가야만 하는가? 안타깝다.

 

그렇다. 인생이란 누구나 아픔 하나쯤 감추고 살아가는 게다. 그렇기에 극 중에서 김씨는 말한다. 자신은 언제나 땅바닥에 있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고. 그것은 바로 ‘몰래 떨어진 눈물’이라고. 이처럼 누구나 남이 알까 두려워 남 몰래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는 인생이다. 그런데, 그 눈물은 언제나 따뜻하다고 김씨는 말한다. 그래, 오늘 우리가 남 몰래 흘리는 눈물, 아픔의 눈물, 고통의 눈물도 따뜻하다는 것. 우린 이것을 잊지 말자.

 

슬픔이 있고, 눈물이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음은 따뜻한 것이다. 우리 안에 아픔 하나씩 감추고 있다 하지라도 이 세상은 여전히 살만한 곳이다. 작가는 김씨를 통해 말한다. 사랑은 이불 속에서 지느러미를 부비며 노는 것이라고. 그렇다. 우리에 삶 속에 다리가 찢기고 그저 지느러미 하나 불쑥 튀어나와 있다 할지라도, 그 상처 난 지느러미를 서로 부비며 노는 행복이 우리에겐 여전히 존재한다. 오늘도 삶의 지느러미를 내 곁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맞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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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소원 - 천 개의 마음이 모이면 꿈이 이루어진대 북멘토 가치동화 11
전용호 지음, 가아루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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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화는 전남 화순에 있는 운주사에 얽힌 설화랍니다. 이곳 운주사에는 지금도 수많은 불상들과 석탑이 있답니다. 지금은 실제 그 정도 숫자는 아니지만, 원래는 “천불천탑”, 천개의 불상과 천개의 석탑이 있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한국의 앙코르와트라고 말하기도 한답니다.

 

바로 그러한 천불천탑이 어떻게 새겨지고, 세워지게 되었는지를 이 동화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답니다. 물론, 사실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안에 진실은 담겨 있죠. 그 진실은 바로 모든 이들이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꿈꾸던 그 소망이 진실이랍니다. 돌들이 실제 동화 속에서처럼 움직이진 않았겠죠. 하지만, 돌들조차도 꿈꾸는 바가 있었다는 것. 그러니 오늘 우리도 꿈꾸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이야기 안에 담겨진 진실이겠죠.

 

그럼, 동화 속으로 잠깐 들어가 볼까요?

 

“세상 모든 것이 말하던 때의 일이야”라며 작가 선생님은 동화를 시작한답니다. 모든 것이 말할 때니, 돌들 역시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돌들이 불만을 이야기하네요. 왜 자신들은 움직일 수 없냐는 거죠. 결국 이 소리를 하늘이 듣고 소원수리를 해줍니다. 바위들도 움직일 수 있게 해 준겁니다.

 

단, 2가지 단서조항이 있네요. 첫째, 해가 진 밤에만 움직여야 한다는 것. 둘째, 바위가 움직이는 모습을 사람이 보게 된다면, 그 바위는 그곳에서 영원히 생명을 잃고 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

 

이제 이런 단서조항을 안고 수많은 바위들이 움직인답니다. 밤이면 한 곳에 모여 이곳저곳 소식들을 서로 전해 듣는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닷가에서 온 바위가 부처에 대한 이야기를 하네요.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미륵사에 가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너무 커서 잘 움직이지 못하는 못난이 바위와 돌기둥은 함께 운주사를 향한답니다. 과연 그곳에서 이들은 부처가 될 수 있을까요?

 

또한 삶이 너무 힘겨워서 못 살겠다고 탄식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이런 소문이 퍼집니다. 미륵사에 가서 보름달이 뜬 밤새 천개의 부처와 탑을 쌓는다면, 모두가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도래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역시 미륵사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이렇게 서로의 필요에 의해 미륵사에 모인 돌들과 사람들이 깎고, 쌓은 것이 바로 천불천탑이란 겁니다. 안타깝게도 못난이 바위를 세우기 전에 닭이 울어버렸답니다. 그래서 여전히 세워지지 못하고 누워있는 불상, 즉 ‘와불’이 지금 운주사에는 있다는 겁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는 ‘어찌 이런 황당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이 이야기가 품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를 봐야 한답니다. 모든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 모두가 함께 사람대접 받는 세상을 꿈꾸는 그 마음을 읽어내야 한답니다. 바위들마저 말을 하고,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라니, 참 멋진 세상 아닌가요? 이런 꿈을 우리가 함께 꾼다는 것, 아름다운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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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의 소보로빵 바다로 간 달팽이 14
홍명진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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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 중 하나가 기억을 잃게 된다면 어떨까? 기억을 잃음으로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마저 잊어버림으로 그 아름다운 추억을 이젠 공유할 수 없다면? 이제 아름다운 추억은 ‘우리’의 것이 아닌, ‘나’만의 것이기에 아름답던 추억을 떠올림이 고통의 순간이 된다면? 게다가 기억을 잃은 것에 머물지 않고,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아가며,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기에 함께 함에도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앨리스의 소보로빵』은 바로 그런 상황 가운데 갑자기 놓이게 된 한 가정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젊은 나이에 갑자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엄마, 그로 인해 겪어가는 가족들의 눈물어린 사연을 전하고 있다.

두희는 이제 14살 소녀다. 그런 그녀의 엄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영문도 모르게 사라진 엄마가 다시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바란 두희네 가족 앞에 다시 나타난 엄마는 과연 저 사람이 우리 엄마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였다. 잠시 외출을 하였던 엄마는 흔히 치매라고 부르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집을 찾지 못해 10개월 동안을 떠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온 엄마는 일곱 살 아이처럼 변해 버렸다. 엄마의 머릿속 사진은 마치 ‘먹다 버린 사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제 엄마는 가족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래서 엄마는 소보로빵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자식들을 몰라보기도 한다. 식탐도 늘었다. 그런 엄마로 인해 가족들은 모두 힘겨워한다.

 

“우리 식구에게 엄마는 함부로 떼어 낼 수 없는 커다란 혹과 같다. 엄마이기 때문에 떼어 내어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무 데나 달고 다닐 수도 없을 만큼 무거운 혹.”(21쪽)

알츠하이머병을 앓는 이의 가족들이 겪어나갈 그 마음의 짐을 그대로 잘 느낄 수 있는 표현이다.

 

한창 뒹구는 낙엽만 보고도 깔깔거릴 나이의 두희는 벌써 삶의 무게를 알아버렸다. 게다가 두희가 마음에 두고 있는 같은 골목에 사는 도운 역시 그렇다. 도운의 부모는 광신적인 종교에 빠져 공동체 생활을 한다. 그런 그들을 찾아간 도운과 할머니. 그런데 그날 밤 도운의 부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이 일로 도운은 말문을 닫아버린다.

 

두희는 자신이 겪는 이 모든 일들이 거짓말이길 소망한다. 견디기 힘겨운 고통과 슬픔, 그 충격으로 인해 말문을 닫아버린 도운의 모습도, 그리고 일곱 살 아이처럼 변해 버린 엄마의 모습도 거짓말이길 소망한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은 거짓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두희는 자신이 겪는 이 모든 말도 안 되는 시간들, 고통의 순간들이 마치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서 헤매는 것과 같은 일이길 소망한다. 비록 이 일이 거짓이 아닐지라도, 이 이상한 나라를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일이 정상을 회복될 테니 말이다.

 

왜 이토록 우리네 삶은 고단한 걸까?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녹녹치 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쓴 맛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아이들의 모습이 안타깝다. 과연 소설 속에서만 그렇겠나. 현실의 세상 속에서도 소설 속에서처럼, 아니 어쩌면 더욱 커다란 아픔의 사연 하나씩 숨겨두고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바라기는 우리 모두 이 힘겨운 세상이라 할지라도 견뎌낼 수 있길 원한다.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우리 각자의 시간이 끝났을 때, 참 이상한 세상, 힘겨운 소풍을 다녀왔노라 웃으며 말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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