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히 계세요, 아빠 VivaVivo (비바비보) 24
이경화 지음 / 뜨인돌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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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호세는 모범생이다. 편부모 아래에서 사춘기를 보내는 많은 청소년들이 방황하며, 문제아(?)의 길로 들어서기도 하지만, 편모와 함께 살아가는 호세는 여전히 모범생이다. 그런 호세의 가슴을 뒤흔드는 아이가 있다. 바로 같은 반의 자그마한 여자아이 연주. 교실의 자리배치 상으로 분류할 때, 문제아에 속하는 아이. 하지만, 연주의 눈망울은 호세의 영혼을 뒤흔든다.

 

결국 호세는 야자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연주의 뒤를 쫓게 되고, 재개발지역의 빌딩으로 들어가는 연주를 따라 빌딩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호세와 연주는 사랑을 키워가게 된다. 무엇보다 둘을 연결하는 고리는 둘 다 아빠가 없다는 사실. 아니 이 땅에 존재하지만, 그네들의 삶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 아빠들을 두고 있다는 아픔이 공동분모이다. 용감한 연주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아빠를 만나려는 계획을 세우고, 그런 연주를 보며 호세 역시 아빠를 찾아보게 되는데. 과연 이들은 어떤 아빠를 만나게 될까? 또한 아빠와의 만남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될 진실은 무엇일까?

 

이 소설, 『안녕히 계세요, 아빠』는 청소년기의 풋풋하며, 약간은 어설픈 사랑 이야기와 함께 그네들을 버린 아빠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성장소설이다. 무엇보다 어른들의 서툰 사랑, 책임지지 않는 사랑으로 인해 상처받게 되는 자녀들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다. 우리 어른들의 책임질 수 없는 사랑은 자녀들에게는 커다란 상처를 남길 수 있음을 우리 어른들이 언제나 기억하면 좋겠다.

 

아울러 지붕위로 올라가야만 하는 청소년들의 모습 역시 안타깝다. 탁 틔인 지붕 위는 꽉 막힌 그네들의 정서를 반증하고 있기에 그렇다. 그들을 짓누르는 입시의 압박감, 부모의 기대의 강요, 어른들의 정해놓은 삶의 패턴들로 인해 청소년들은 힘겨워하고, 나름대로 자신들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비록 제도권에 대한 반항으로 드러난다 할지라도 그 안에 그네들의 확고한 주관이 있다면 결코 문제아가 아님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뿐 아니라 오늘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청소년들을 지붕위로 내몰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 속에서 호세와 연주의 풋풋한 사랑이 참 예쁘게 보인다. 연주를 사랑하는 마음과 성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허둥대는 호세의 모습마저 귀엽게 보인다.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해 초월하도록 강요할 순 없다. 단지, 그네들이 욕정의 노예가 아닌, 풋풋할지라도 아름다운 사랑에 흔들릴 수 있길 바란다. 그 나이에 맞는(?) 흔들림, 설렘, 아픔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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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교장과 아주 특별한 시계 다릿돌읽기
김해우 지음, 홍찬주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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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프로그램에 한 초등학생이 자신에게 고민이 있다며 출연한 적이 있답니다. 이 여자아이는 너무 많은 학원에 다니기에 힘들다고 했답니다. 밥맛도 없고, 자고 일어나도 자신의 몸이 자신의 몸 같지 않다며 말이죠. 게다가 이 아이는 학교 숙제보다 학원 숙제를 하느라 새벽에 잠들 때가 많다고 하네요. 그런데도 그 엄마는 그렇게 하니 공부를 잘하고 영제 대접을 받는다며 은근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답니다.

 

참 충격적인 모습이었어요. 그 아이가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잠과 입맛마저 포기하고 공부를 하여 나중에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해마다 하버드대학에 제일 많이 입학하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치맛바람이 센 거죠.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제일 졸업율이 저조한 것도 우리라고 하네요. 왜냐하면 이들에게 인생의 목표는 일류대학에 합격하는 것이거든요.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며 달려왔거든요. 그런데, 그 목표를 이루었으니, 뭘 더 하겠어요? 목표를 잃었으니, 더 이상 공부할 이유가 없어진 거죠.

 

왜 우린 공부에 목숨 거는 걸까요? 물론 공부는 해야 합니다. 이왕이면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입시를 위한 공부가 아닌, 자신의 꿈을 향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됨을 위한 공부를 해야겠죠.

 

 

여기 공부에 목숨 걸게 하는 교장선생님이 있답니다. 유유네 학교에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셨는데, 이 교장선생님은 친구들에게 멋진 시계 하나씩을 나눠줬답니다. 이 시계는 마법처럼 그 주인의 팔에 차고 있을 때만 가게 된답니다. 그리고 학교 공부 외의 공부를 10시간 하게 되면, 해피월드를 맛보게 해 주는 마법과 같은 시계랍니다. 해피월드에서 느끼는 그 기분은 정말 행복하고 환상적이랍니다. 그렇기에 너도 나도 해피월드를 맛보기 위해 공부만 한 답니다.

 

그런데, 끝까지 시계를 받지 않는 우리 주인공이 있답니다. 바로 유유란 친구죠. 유유는 지금 노는 것이 더 행복한 데, 왜 굳이 행복을 저금하려 하는지 잘 모르겠답니다. 게다가 해피월드에서 맛보는 행복은 가짜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유유는 어느 날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공부만 하게 하는 교장 선생님은 알고 보니 마녀였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녀는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으려는 겁니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그만큼 자신의 힘이 커지기 때문이랍니다. 게다가 언니의 복수도 해야 하고요(언니의 복수가 궁금하시면 책을 보세요^^). 과연 유유는 마녀 교장에 맞서 아이들의 행복을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야 하는데, 어른들은 언제나 행복을 저축하라고 하네요. 지금은 모든 것 참으며 공부한다면 나중에는 행복하게 된다며 말이죠.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공부하여 목표를 이룬 사람들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 마는 않다는데 있답니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행복해야죠. 그렇다고 지금 행복하기 위해 놀기만 하라는 것은 아니랍니다. 공부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공부라는 것은 결국 사람을 만들어주는 일이거든요. 문제는 우리가 사람 만드는 공부는 하지 않고, 입시를 위한 공부만 하고 있으니 불행하죠. 같은 과목을 공부해도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닌, 사람됨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답니다. 물론, 시험도 봐야겠지만 말이죠.

 

문제는 이런 공부함이 행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목표(좋은 대학 가는 것 말고, 정말 자신의 꿈)를 이루어가기 위한 과정으로 행복하게 공부해야 한답니다. 학교 과목만이 아니라, 좋은 책도 많이 읽고요. 물론 이것 역시 행복하게 해야겠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행복하게 하며 말이죠.

 

물론, 말처럼 쉬운 문제는 아니기 때문에 어렵네요.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이 이런 재미난 동화를 통해, 행복을 꿈꾸고, 행복을 누리면 좋겠네요. 행복하면 좋겠네요. 아울러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기 위해 공부를 하게 하는 마녀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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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사장 장만호
김옥숙 지음 / 새움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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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오길 꿈꾸며 노동운동을 하였던 주인공 장만호, 그는 교통사고로 인해 삶의 궤도를 수정하게 된다. 끔찍한 교통사고로 인해 이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모르는 그에게 운동권 선배인 포카 형은 자신이 운영하던 돼지갈비집을 인수하여 운영하길 권한다.

 

이로 인해 평생 운동원으로 살아갈 줄 알았던 그는 자본주의 세상 속으로 성큼 발을 들여놓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만호가 운동권으로 있던 당시의 방향성을 상실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는 더 나은 세상을 모색하는 도구로서 식당 운영을 꿈꾼다. 물론, 식당은 치열한 생존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장만호의 식당은 치열한 삶의 자리이며 또 한편으로 꿈꾸는 이상향의 실천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아울러 언제나 장만호에게 든든한 동지가 있다. 바로 함께 노동운동을 했던 여인이자, 식당의 살림꾼인 아내. 하지만, 정작 장만호는 아내가 힘겨워할 때, 아내를 보듬어주지 못한다.

 

뿐 아니라, 장만호는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사업을 더욱 확장시켜나가며, 선배이자 운동의 멘토 황동하를 끌어들인다. 평생 운동성을 잃지 않고, 변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지던 사람, 자신에게 노동운동의 길을 열어줬던 인생의 멘토인 황동하. 하지만, 그런 그가 결국 자본의 노예가 되어 장만호의 뒤통수를 치고 배신하고 만다. 이에 장만호는 분노하며, 황동하에게 복수를 꿈꾸는데. 그가 꿈꾸는 복수는 황동하 보다 사업으로 더 성공하게 되는 것. 과연 장만호는 복수할 수 있을까?

 

 

이 소설, 『식당사장 장만호』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 장만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그리고 그 길을 평생 걸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삶의 궤도는 우연찮게 수정된다. 그리고 그렇게 수정된 삶 속에서 많은 사람들의 진짜 삶을 만나게 된다. 그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며, 치열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행복과 슬픔은 모두 한 그릇의 밥에서 시작된다. 그렇기에 이 소설은 결국엔 한 그릇의 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밥을 먹지 않고 살아갈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한 그릇의 밥을 위해 노동력을 팔고, 어떤 이는 더 많은 밥을 소유하기 위해 상처 주며 탐욕의 노예가 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밥이 없어 눈물 흘리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밥 한 그릇으로 인해 희망을 품게 되기도 한다.

 

주인공 장만호 역시 밥을 팔며, 좌절하기도 하며, 시기하기도 하고, 행복을 맛보기도 하며, 꿈꾸기도 한다. 그리고 결국엔 그 밥 때문에 배신당하고, 좌절하며, 분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 역시 한 그릇의 밥이었다.

 

한 그릇의 밥은 작가의 말처럼 눈물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이 담긴 한 그릇의 밥은 누군가에게는 다시 살아갈 희망의 이름이기도 하며,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렇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밥 한 그릇은 생명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여기에서 성경 이야기 하나 하겠다. 우리가 왕왕 잊고 살긴 하지만, 예수님 역시 ‘생명의 밥’으로 이 땅에 오셨다. 그랬기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던 것이다.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의미이다. 즉 그곳은 ‘밥집’이었다. 아울러 그렇게 태어난 아기 예수가 처음 누운 곳은 다름 아닌 말구유였다. 말구유는 결코 낭만적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밥 그릇’이다. 즉, 예수는 우리의 밥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를 믿고 따른다는 성도들은 과연 세상의 밥이 되고 있는가? 교회는 세상의 밥이 되려하기보다는 세상을 밥으로 삼으로 하고 있진 않은지 부끄러워진다.

 

식당사장 장만호가 꿈꾸는 느티나무 식당, 배고픈 사람이 주머니에 돈이 없어 밥값을 못 내거든 공짜로 먹여 줄 수 있는 그런 식당, 부자든 가난뱅이든 누구든 거리낌 없이 들어와 마음을 놓고 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식당, 그런 잔치마당은 오늘 우리의 삶에서 다시 신장개업되어야 한다. 우리의 가정 가정이 이런 사랑의 밥 한 그릇을 장만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식당사장 장만호가 되어보면 어떨까?

 

『식당사장 장만호』, 참 좋은 소설이다. 저자가 우리에게 대접하는 맛난 밥 한 상 거하게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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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詩 - 돈에 울고 시에 웃다
정끝별 엮음 / 마음의숲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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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돈 詩』는 돈과 연관이 있는 시들을 모아 놓은 시집이다. 엮은이는 돈에 관한 시들을 엮은 것만이 아니라, 그 시들 하나하나에 대한 해설을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해설이 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물론, 그 해설이 절대적이지 않음도 당연하지만 말이다. 아울러, 이처럼 한 가지 주제로 여러 시들을 묶어 우리로 하여금 그 주제에 대한 풍성한 시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줌이 참 감사하다.

 

돈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이제는 수단에 머물지 않고, 우리의 삶을 간섭하는 절대자의 자리에 앉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런 돈의 절대성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나는 어느덧 세상을 믿지 않는 나이가 되었고 //

이익 없이는 아무도 오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

이익 없이는 아무도 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

부모형제도 계산 따라 움직이고 /

마누라도 친구도 계산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었다 //

나는 그게 싫었지만 내색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

너 없이는 하루가 움직이지 않고 /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박용하, < 돈 > 전문

 

그렇다. 우린 이제 돈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우린 자본주의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옳은지 그른지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바로 이러한 돈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 계급이 노동자 계급으로부터 노동력을 사서 생산 활동을 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해 나가는 경제 구조 또는 그 바탕 위에 이루어진 사회제도”

 

이러한 사전적 정의로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가진 자들이 갖지 못한 자들의 노동력을 돈으로 사서 이루어지는 활동 위에 세워진 사회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노동력을 팔게 된다. 물론, 어떤 이에게 그 노동력은 남들보다 더 가치 있다 하여 노동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받는 반면, 또 어떤 이들의 노동력은 상대적으로 가치 없다 하여 적은 것을 받게 된다. 과연 그 가치는 누가 정하는 걸까? 물론, 가진 자들, 노동력을 사는 사람들이 정하는 거겠지. 그리고 그들이 정한 노동력 가치대로 대가를 받기 위해 자신들의 삶을 팔고, 또한 버텨낸다.

 

나는 소금 병정 / 한 달 동안 몸 안의 소금기를 내주고 / 월급을 받는다 /

소금 방패를 들고 / 거친 소금밭에서 / 넘어지지 않으려 버틴다 /

소금기를 더 잘 씻어 내기 위해 / 한 달을 절어 있었다

 

윤성학, < 소금 시 > 일부

 

이렇게 삶을 버텨내는 생활인들, 오늘도 삶을 위해 삶이 절어 있는 샐러리맨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그렇다면 시인의 노동력은 얼마나 평가 받을까? 아마도 많은 평가를 받지 못하나 보다. 그렇기에 이 시집 가운데 많은 시들은 시인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노래가 참 많다. 하지만, 이처럼 힘겨운 삶이 시인들의 삶뿐이겠는가? 오늘 대다수의 소시민들의 삶이 힘겨운 삶이다. 딱 먹고 살만큼 얻기 위해 다른 것에는 눈 돌릴 여력도 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어쩌면 딴짓 하지 못하도록 먹고 살만큼만 노동력을 평가받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러니, 돈이 원수 아닌 원수가 되었다. 바라기는 돈 때문에 울지 않고, 돈 때문에 서러운 인생들이 적어질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돈을 초월한 노래가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내게 땅이 있다면 / 거기에 나팔꽃을 심으리 /

때가 오면 /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랏빛 나팔 소리가 / 내 귀를 즐겁게 하리 /

하늘 속으로 덩굴이 애쓰며 손을 내미는 것도 / 날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리 /

내게 땅이 있다면 / 내 아들에게는 한 평도 물려주지 않으리 /

다만 나팔꽃이 다 피었다 진 자리에 / 동그랗게 맺힌 꽃씨를 모아 /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를 주리

안도현, < 땅 > 전문

 

나에게는 땅도 없다. 아이들에게 물려줄 변변한 재산도 없다. 하지만, 시인의 노래처럼 “아직 터지지 않은 세계”, 그것을 물려주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에게 사랑의 꽃씨, 희망의 꽃씨, 꿈의 꽃씨를 모아준다. 결국엔 아이들의 삶 속에서는 그것들이 활짝 피어 아름다운 노래로 그네들의 삶을 즐겁게 하는 축복이 있길 소망한다.

 

『돈 詩』, 철저한 세속적인 주제이지만, 결코 세속적이지 않고, 도리어 먹먹함 가득한 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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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 백 마디 불통의 말, 한 마디 소통의 말
김종영 지음 / 진성북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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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란 책 제목만 봤을 때, 이 책은 혹 긍정적 말, 아름다운 말, 남을 세우는 말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완전히 벗어났다. 이 책은 말의 소통에 대한 책, 보다 정확하게는 수사학에 대한 책이다.

 

수사학이 무엇인가? 한 마디로 상대를 설득시키기 위한 기술이 아닌가? 즉 수사학이란 설득의 기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수사학에 대해 저자는 1부에서는 수사학이 생성 발전하게 된 역사를 설명한다. 한 마디로 수사학의 계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은 어쩌면 학문적인 느낌이기에 딱딱한 느낌, 때론 따분한 느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 부분을 건너뛰지 않길 권면한다. 수사학에 대해 확연하게 알 수 있도록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2부에서는 수사학적 소통의 원리 5단계를 설명한다. 사실 이는 저자가 구분한 단계라기보다는 고대 수사학에서 연설이 생산되는 다섯 단계의 과정 설명에 근거하고 있다. 고대 수사학에서 말하는 연설이 생산되는 다섯 단계는 다음과 같다.

1. 생각을 발견

2. 발견한 생각을 정리

3. 언어적으로 표현

4. 머릿속에 기억

5. 목소리와 몸짓으로 효과적으로 전달

 

바로 이 다섯 단계를 가지고, 저자는 수사학에서의 소통의 다섯 원리라고 이름 붙여 2부에서 하나하나 설명하고 있다. 제1원리-생각의 원리, 제2원리-배치의 원리, 제3원리-표현의 원리, 제4원리-기억의 원리, 제5원리-전달의 원리 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다섯 단계의 원리들을 잘 숙지하게 된다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설득의 기술, 수사학에 능통한 리더가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수사학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없지 않음도 사실이다. 이렇게 부정적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아마도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기술이라니, 그 안에 진정성이 없지 않겠느냐는 문제제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수사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말 잘 하는 기술도 아니고, 상대를 혹하게 할 분위기 조성도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설득에 필요한 3요소는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라고 말이다. 먼저, 세 번째 로고스는 설득하기 위해 하는 말 그 자체를 말한다. 물론, 이 말은 논리적인 설명이 따라야 상대를 설득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요소인 파토스는 내 말을 듣는 상대의 감정적인 부분을 말한다. 같은 말이라도 상대의 감정에 호소하여 설득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동정심이나 증오심 등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설득의 기술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첫 번째 요소를 눈 여겨 봐야 한다. 첫 번째 요소는 바로 에토스이다. 이것은 말하는 사람의 성품, 윤리적인 부분을 의미한다. 그러니, 수사학의 기본은 바로 이것 에토스에 있다.

 

수사학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하는 진정성의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서 해결된다. 진정한 설득의 기술은 말을 잘 하는 것도, 효과적인 전달을 위한 기술만도 아니다. 물론 이런 모든 것들을 동원하여 설득하게 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화자의 진실함, 화자의 인격, 화자의 성품, 화자의 윤리성에 있다.

 

우리는 이런 예를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오랜 시간 성도들을 맡아 목양한 나이 지긋한 목사님의 경우, 설교를 들어보면, 별로 참신한 내용도 아니요, 어떨 때는 논리적이지도 않은 경우도 적지 않다. 또 어떨 때는 발음도 좋지 않고,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많은 은혜를 받게 된다. 왜 그렇겠는가? 바로 이 부분이다. ‘에토스’, 오랜 시간 성도들이 목회자를 삶으로 겪어 나가며, 그 인격에 감화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설득의 기술, 수사학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만이 아니다. 이스크라테스의 경우, 수사학 교육이란 연설을 잘 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성품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즉 말 잘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 올바른 성품을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사학의 또 다른 대가인 퀸틸리아누스 역시 수사학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교양과 건전한 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윤리와 정치적 덕목이라고 말한다. 역시 에토스가 강조되고 있다. 이처럼, 수사학이라고 해서 얕은 말장난이나 전달 방법 내지 기술이라고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바로 이처럼 수사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고 있음이 이 책의 장점이 아닐까 여겨진다. ‘바른’ 생각, ‘좋은’ 생각, ‘훌륭한’ 생각을 가지고 말과 행동을 동원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바로 수사학이다.

 

아울러 저자는 수사학이 설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상대’만이 아님을 언급한다. 이 ‘설득’에는 ‘나’도 포함된다. 이것 역시 어쩌면 수사학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 대한 바른 교정이 될 듯싶다. 수사학이라고 하면, 내 주장으로 상대를 설득하고 제압하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니다. 설득의 대상에는 ‘나’ 역시 포함된다.

 

아무리 설득의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그들이 모두 설득의 대상에서 ‘나’를 제외하게 된다면, 그런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는 소통의 사회가 아닌, 도리어 불통의 사회가 된다. 오늘 이 시대에 말 잘하는 사람들이 왜 없겠나? 오늘 이 시대에 설득의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 왜 없겠나? 그럼에도 왜 이 시대는 여전히 불통의 시대로 인식되는 것일까? 바로 여기에 그 원인이 있다. 모두들 ‘자신’은 설득의 대상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종교인도, 모두 타인만을 설득의 대상으로 삼게 된다면, 그런 사회는 더욱 불통의 사회가 될 뿐이다.

 

이렇게 ‘바른’ 수사학을 갖춘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리더가 된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수사학에 대한 책만이 아닌, 리더십에 대한 책이 되며, 자기계발 분야의 책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을 통해, ‘바른’ 수사학을 갖춤으로 이 시대가 더욱 소통이 되는 시대가 되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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