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트 선장의 아이들 1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11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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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 2만리』, 『15소년 표류기』, 『80일간의 세계일주』등으로 유명한 쥘 베른의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의 책장을 펼치며, 어린 시절 그의 글을 읽으며, 넓은 세상을 향한 동경,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모험의 세상을 향한 꿈을 키워나가던 그 흥분을 느끼게 된다. 이런 기분 좋은 흥분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읽으며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19세기의 책임에도 그 기발한 아이디어가 부럽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19세기 작품이라 그럴까? 왠지 지루함도 없지 않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어쩌면 21세기를 살아가는 자답게(?) 이미 나 역시 자극적인 전개에 익숙해 진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과 함께 말이다.

 

전3권으로 구성된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 가운데 첫 번째 책으로 그럼 한 번 들어가 보자. 스코틀랜드 귀족 글레나번은 항해 중에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우연히 잡게 된 상어의 뱃속에서 유리병 하나를 발견하게 된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된 3장의 문서는 각기 다른 언어로 적혀 있는 구조요청 문서였는데, 그 문서는 이미 물에 지워져 군데군데 몇몇 문자만이 보이고, 이렇게 보이는 문자들을 조합하게 된다. 이를 통해, 이 문서는 그랜트 선장이 포로가 되며 구조요청한 문서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스코틀랜드 귀족 글레나번은 직접 구조대를 구성하여 남아메리카로 떠나게 된다. 물론 이 일행에는 그랜트 선장의 아이들인 남매도 함께 하게 된다.

 

한편 이렇게 떠나는 배에는 예정에도 없던 실수투성이 지질학자인 파가넬이 타게 된다. 그는 옆에 있는 다른 배에 타야 할 사람이었지만, 실수로 글레나번의 배에 타게 된 것. 하지만 이 일이야말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신의 섭리로 이해되어진다. 천재적인 지질학자 파가넬이야말로 이 모험, 이 여행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인물이었기에 그렇다. 뿐 아니라, 그들은 남아메리카 횡단 여행을 하며, 그들 탐험단에게 절대적 도움을 주는 인디언 탈카베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이처럼 쥘 베른은 우연한 만남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뒤편의 신의 섭리를 드러낸다.

 

뿐 아니라, 이 책에서 펼쳐지는 모든 모험은 의로운 모험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쥘 베른이 그려내는 모험이 아름다운 이유다. 곤경에 처한 누군가를 먼저 생각하며, 그 생명 구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위험한 모험의 세계에 던져 넣는 용기와 결단. 그렇기에 쥘 베른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그 모든 모험이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마땅하게 여겨지며, 더 큰 뭔가를 얻게 될 것을 기대하게 한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쥘 베른의 또 다른 철학을 발견한다. 그것은 힘겨움 가운데서도 행복을 찾는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런 철학이 있기에 수많은 모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모험이야말로 힘겨운 시간이고, 고난의 시간이기에. 하지만, 쥘 베른은 이러한 모험을 통해, 오히려 그 가운데서 행복을 만들어 내고, 그 행복을 우리에게 선물한다.

 

이처럼, 쥘 베른의 철학을 잘 발견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범람하는 물속에서 위기에 놓인 대원들을 향해 천재적 지질학자 파가넬이 전하는 이야기에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안락이 적으면 적을수록 욕구도 적고, 욕구가 적으면 적을수록 사람은 행복한 법이에요.”(316쪽) 이렇게 말하는 그는 또 하나의 우화를 전한다.

 

행복하지 않은 왕자에게 행복을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을 구하자 현자는 말한다. 행복한 인간의 셔츠를 입게 되면 왕자가 행복해진단다. 그래서 왕자는 이 셔츠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아무리 권세 있는 왕의 셔츠, 빼어난 예술가의 셔츠, 부유한 상인의 셔츠를 입어 봐도 소용이 없다. 세상을 두루 다녀봤지만, 결국 그 영험한 셔츠는 찾을 수 없어 결국 집으로 돌아오다 왕자는 밭에서 농부가 행복하게 노래 부르며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 눈에도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으로 보여 농부에게 묻는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그러자 농부는 행복하다고 말한다. 농부에게 그 행복을 왕의 처지와 바꾸고 싶지 않느냐 물어도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단다. 그래서 왕자는 그 농부에게 농부의 셔츠를 팔 것을 요청한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한다. “내 셔츠를 팔라고! 난 셔츠 따위는 갖고 있지 않은걸!”(317-8쪽)

 

이 유명한 우화가 바로 쥘 베른의 철학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 이 책에서 드러나는 행복은 난처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함께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연대, 그리고 그 뒤편에 작용하는 신의 섭리, 바로 여기에 행복의 요인이 있다. 얼마나 멋진 행복인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이런 행복이 덧입혀지길 소망한다.

 

그렇다면 과연, 글레나번과 그 대원들, 그리고 함께 하게 된 그랜트 선장의 두 아이들은 아버지를 찾고 구하게 될까? 이것을 알기 위해, 이제 2편을 통해, 함께 호주로 모험여행을 떠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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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소녀 - 테마소설집 : 십대의 성과 사랑을 말하다 바다로 간 달팽이 13
김도언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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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를 보내는 십대들에게 있어 가장 솔깃할 관심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성이 아닐까? 물론, 어떤 분들은 우리 대한민국을 성공화국이라 말할 정도로 남녀노소 모두가 관심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십대들에게 관심이 많은 성과 사랑에 대한 한 가지 테마로 엮은 단편소설집이 바로 이 책, 『안드로메다 소녀』이다(이 제목은 이 책에 실린 단편 가운데 한 편의 제목이다). 도합 7명의 작가들이 쓴 7편의 단편소설들이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에 대해 때론 재미나고, 유쾌하게, 때론 슬프고, 안타깝고, 아프게, 때론 가벼우며, 때론 무겁고, 때론 에로틱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7편의 소설, 적다면 적다고 말할 수 있는 편수이다. 그럼에도 참 다양한 성에 대한 접근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성적인 호기심에 대한 모티브를 담고 있는 소설이 그래도 많은 편이다. 김도언의 「갈증」, 김유철의 「팬티」, 주원규의 「엑소 도둑」이 이런 성적 호기심, 갈망을 담고 있다. 물론, 약간씩 다른 주제를 담고 있지만 말이다.

 

「갈증」은 성적 갈망을 당당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모티브를 담고 있으며, 「팬티」는 성적 호기심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청소년기의 남자 아이들이 모두 겪음직한 그런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나가고 있다. 「엑소 도둑」은 성적 갈망과 함께 순수하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순수함을 지향하는 십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에 반해 조금 더 무거운 주제의 성에 대한 접근도 있다. 김해원의 「여수 여행」은 청소년의 임신을 다루고 있다. 임신한 소녀, 그리고 그런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 그들이 헤쳐 나갈 힘겨운 시간을 말한다. 이 단편소설을 읽으면서는 자꾸 얼마 전 미국의 쌍둥이 형제가 아빠에게 전화하여 커밍아웃을 전하던 동영상이 떠올랐다. 사랑하는 아들들이 평범하지 않은 사랑을 이야기했을 때의 아빠의 반응. 처음엔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반응이었지만, 그럼에도 난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그런 멋진 모습. 「여수 여행」 역시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그 절망의 시간이 더욱 두드러지지만 말이다.

 

박영란의 「수지」는 변두리 인생을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사랑을 다룬다. 할아버지의 슈퍼 배달 일을 하는 소년과 장애를 가진 소년과의 함께 하는 시간들. 그네들의 사랑은 어쩌면 욕망의 분출보다는 답답한 마음의 분출로 드러난다. 그리고 그런 분출은 탁 트인 옥상에서의 시간으로 표출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제일 먹먹하며, 기억에 남는다. 남들이 보기에는 비정상인들의 사랑,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랑 역시 정상이라는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렇다. 어떤 사랑이든 사랑은 정상이며, 아름답다.

 

정명섭의 「어른 되기 힘들다」는 추리라는 장르를 통해, 동성애를 다루고 있다. 철저한 사회적 약자인 성적 소수자들의 애환을 그려내고 있다. 특히, 성인이 아닌 청소년시기이기에 더한 그 불안감. 그리고 이러한 아이들을 돌보는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애틋한 노력. 아울러 이들을 눈감아주는 주인공까지. 때론 눈감아주는 것이 더 아름다운 모습임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자꾸 드러내고, 정죄함보다는 말이다.

 

전건우의 「안드로메다 소녀」는 다문화 사랑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의 다문화는 어마어마한 다문화다. 자그만치 다른 별 외계인과의 사랑을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함은 사랑은 아프다는 것. 그리고 비록 아픔이 있고, 비극적 결말이라 할지라도 사랑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우리 십대들뿐 아니라 청년들의 사랑이 어쩌면 인정받기 힘들지도 모른다. 사랑이 우선이 아니라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랑이 때론 어설프기도 하며, 때론 단지 욕정의 분출일 수도 있다. 아울러 누군가의 사랑은 평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랑이든 당사자들에게는 아프고 힘겨운 시간이기도 하며, 가장 아름답고 절실하며 소중한 시간인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그네들의 사랑을 존중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아울러 우리 십대들 역시 사랑의 감정은 자연스럽고 피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왕이면, 그 사랑을 아름답고, 당당하며, 순수하며, 책임질 수 있는 사랑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럼으로 이왕이면 더 아름답고 소중하며 성숙한 사랑이 되면 어떨까? 물론, 그 가운데서도 아픔이 있을 테지만, 바라기는 우리 십대들의 사랑이 아플지라도 치유될 수 없는 상처가 되진 않길 소망한다.

 

[북멘토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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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생명 이야기 아우름 1
최재천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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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는 샘터사에서 기획한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의 첫 번째 책이다. 저자인 최재천 교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동물행동학의 권위자이며, 많은 저서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의 원장으로 있다.

 

책 제목이 참 좋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우리가 이 문장을 깊이 새기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무한경쟁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며, 그렇기에 적자생존의 법칙대로 살아야 한다고 믿고 산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는 바가 있음을 말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는 이 적자생존을 최적자생존으로 오해하기에 누군가를 밟고서라도 올라서려고 한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적자생존이란 살아남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를 든다면 도태될만한 최하위가 아니면 살아남게 되는 것이 적자생존이고, 생태계는 이렇게 유지되었다고 말한다. 최적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자들로 이어져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아무튼 저자는 먼저, 1장에서는 알면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이 우리 모든 생명체는 결국에는 하나의 DNA에서 유래하였기에 한 집안임을 말한다. 이 사실을 안다면 우리가 인간이라고 해서 다른 생명체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게 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저자가 말한 유전자복제의 위험성보다 더 위험한 유전자조작의 위험성에 대한 부분은 참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부분이었다.

 

아울러 2장.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에서는 전 지구를 질량과 개체수로서 지배하고 있는 생명체에 대한 언급이 인상적이었다. 전 지구를 질량에 있어 지배하고 있는 생명체는 바로 꽃을 피우는 현화식물이며, 또한 가장 개체수가 많은 생명체는 다름 아닌 곤충이라고 한다. 이렇게 두 생명체가 지구를 지배하게 된 이면에는 이 둘은 서로를 돕는 관계이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서로 손을 잡고 있기에 결국 지구의 최강 생명체가 될 수 있었다는 논리이다. 참 마음에 와 닿는 설명이다. 이처럼 서로 손을 잡을 때, 살아남을뿐더러, 더욱 풍성해지게 됨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우린 누군가와 손잡고 윈윈하려 하기보다는 여전히 독불장군이 되려하고 있진 않은지. 손잡으려하기보다는 나의 성장을 위한 도구로 누군가를 희생시키려는 마음이 가득 하진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저자는 또한 이런 손잡음은 학문에 있어서도 필요함을 말한다. 이것이 저자가 계속하여 강조하였던 ‘통섭’이다. 통섭이란 인접학문과의 교류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통섭에 가장 좋은 자연과학 학문이 바로 생물학이라고 말한다(3장). 여기에서 저자는 혹 다음세대들 가운데 생물학자를 꿈꾸는 자들을 위해 자신의 전공인 동물행동학이 무엇인지 소개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청년의 방황에 대해 말한다. 물론, 저자는 방황과 방탕은 다름을 엄격하게 구분 짓는다. 자신의 삶에 대해 어린 시절부터 모든 계획이 철저하게 짜여있어 그 시간표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물론 나쁘지 않겠지만, 자신이 평생을 가야 할 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기웃거림을 저자는 ‘아름다운 방황’이라 말한다. 이것 역시 어쩌면 손잡음, 통섭과 일맥상통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이러한 아름다운 방황을 권장하며, 자신의 방황에 대해 4장에서 언급한다. 자신 역시 과학자가 될 것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아름다운 방황’ 끝에 평생 가야할 길을 알게 되고, 그 길을 가게 되었음을 보여줌으로 다음세대들에게 꿈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저자의 말처럼 너무나도 전문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분야가 아닌 것에는 무지한 전문가 바보들을 만들고 있는 시대에 살아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다른 분야의 도움 없이 성장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편협한 생각은 전문성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더욱 도태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전문성을 만들뿐이다.

 

깊은 우물을 파기 위해서 넓게 파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기성세대들이 자꾸 편협한 전문성을 강조했다면, 이제 자라나는 다음세대들만은 통섭의 지혜를 깨닫게 되길 소망한다. 아울러 우리 이제는 함께 손잡는 지혜, 함께 가는 지혜가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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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들어간 공주 개암 그림책 9
알랭 세르 글, 상드라 푸아로 셰리프 그림,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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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릴리는 밤이 싫답니다. 이제 그만 놀고 자야만 하거든요. 그래서 매일 밤 투정을 부린답니다. 엄마 아빠에게 무서우니,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서 말이죠. 엄마가 책을 꺼내 읽어줍니다. 하지만, 엄마가 읽어주는 책은 벌써 100번은 더 들은 이야기랍니다. 그러니 하나도 신나지 않습니다. 짜증을 내는 릴리에게 엄마는 이제 그만 자라며, 방을 나갑니다.

 

릴리는 또 다시 무섭다고 소릴 지릅니다. 이번엔 아빠가 달려와 책을 읽어주네요. 하지만, 이 책 역시 릴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시시한 이야기랍니다. 아빠가 그만 자라며 인사하고 나간 후, 릴리는 또 다시 소릴 지르죠. 그리곤 때를 씁니다. 사랑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거죠. 사랑 이야기니까, 엄마 아빠 둘이 함께 읽어달라며 말입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너무 짧게 느껴지네요.

 

릴리를 재우며 엄마 아빠가 함께 잠이 들었답니다. 하루 종일 피곤하셨거든요. 하지만, 릴리는 잠이 들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릴리는 상상의 세상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자신만의 이야기, 자신의 책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바로 <헬리콥터를 탄 공주>라는 이야기랍니다. 자신만의 상상, 자신만의 이야기 세상에서 신 나게 놀고 온 릴리는 이제야 잠이 든답니다.

 

 

이 책은 조금 독특하답니다.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이야기들, 그리고 릴리가 만들어가는 이야기 모두, 책 속에서 그 표지가 한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답니다. 마치 책 속의 책이 새롭게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이 모두는 『책 속으로 들어간 공주』라는 하나의 동화 속에서 엄마, 아빠가 읽어주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실제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것 역시 동화 속의 한 내용이라는 말입니다. 혹시 이런 책이 있는지 서점에서 찾진 마세요. 아니, 혹시 잘 찾아본다면 찾을지도 모르죠. 그럼에도, 책 속에서는 어떤 책들이 들어있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겁니다. 책 속에 모두 몇 권의 책이 있는지 찾아보세요.

 

이 짧은 그림동화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의 상상력만큼 재미난 세상도 없단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우린 그 상상력을 더 키워주기보다는 자꾸 억제하고 있진 않은지 반성해보게 됩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 풍부한 상상력이 세상, 그 재미를 누릴 수 있도록 더 맛난 이야기밥을 공급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함께 해보게 되는 동화랍니다.

 

참, 책 속에 들어 있는 또 다른 책들의 제목만 보지 말고, 저자와 그림 그린이, 출판사의 이름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가 됩니다. 꼭 잊지 말고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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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잔의 시놉시스
이석규 지음 / 해드림출판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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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규 시인의 첫 시집, 『빈 잔의 시놉시스』에는 이런 수식이 붙어 있다. “타고난 노스탤지어, 낙타의 시인”이라고 말이다.

 

“타고난 노스탤지어”란 말은 그의 많은 시가 그리움에 대해 노래하기에 이런 수식어가 쉽게 이해된다. 특히, 시집의 제2부의 제목 자체가 “그리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시인의 이러한 그리움은 어머니를 향한 것으로 포문을 연다.

 

쓸쓸쓸 / 울 어머니 길쌈하는 소리가 들린다 / 허리를 펴는 소리도 들린다 /

그 소리 뒤에 주름진 이마도 보인다 / 그러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

쓸쓸쓸 / 매미가 울면 나의 불효가 쏟아진다 /

맨날 투정해도 그저 조용히 날 감싸는 어머니 / 치마 끄는 소리만 크다 //

더위가 한창인 여름에 / 매미는 어머니 속에 있고 / 매미는 내 속에도 있어 //

쓸쓸쓸 / 매미가 울면 울 어머니 / 막 보고 싶다

< 매미 > 전문

 

누구나 그렇겠지만, 우리의 근원적 그리움은 어머니가 아닐까 싶다. 어머니야말로 생존여부를 떠나 내 영혼의 영원한 고향이기에 그렇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어머니를 떠올리면, 언제나 불효만 했음을 깨닫게 되어 먹먹해진다. 대학시절, 등록금을 내야할 때가 되면, 언제나 어머니는 친지에게 돈을 꾸곤 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돈을 꾼다는 것은 자존심을 버리는 행위다. 그 옛날 4년제 대학을 나오시고, 처녀 시절 미니스커트를 입으시던 신여성인 어머니(올해로 77세가 되셨다)는 자녀의 미래를 생각하며, 자존심도 버리고 돈을 꾸러 다니시곤 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학업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의 불효가 떠올라 어머니를 떠올리면 언제나 죄송하며, 마음이 먹먹해지곤 한다.

 

시인 역시 그랬나 보다. 매미가 한참 울던 무더위 속 여름에도 길쌈하던 어머니,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던 어머니의 허리 펴는 소리는 유달리 크게 들렸을 것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의 허리 펴는 소리는 모두 ‘아이구 아이구’라는 소리와 함께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시인은 매미가 ‘쓸쓸쓸’ 울 때마다 그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 그 수고로움을 떠올리며 그리움에 몸부림친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수식어, ‘낙타의 시인’은 무엇일까? 물론 시인의 의도가 어떨지 모르지만, 이미 시는 시를 잉태한 시인의 손을 떠났다. 그리고 이젠 그 시를 읽고 감상하는 독자의 것이 되었다. 그렇기에 시인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독자의 시선으로 시를 바라보며 해석해 본다.

 

시인이 유독 많이 노래하는 것은 파도(바다를 포함), 시, 그리고 낙타다. 왜 이토록 시인은 낙타에 집착할까? 낙타는 시인에게 무엇이기에? 아마도 낙타는 시인에게 있어 욕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어쩌지요 길이 트여 덜컥 우리 만나면 / 낙타의 등에 솟은 혹처럼 /

나의 오욕들이 들통날까봐 가슴 조이고 있으니

< 봄길 > 일부

 

만약에 당신이 내게 오신다면 / 이런 새벽시장으로 오실 것 같아서 /

당신이 그리운 날엔 언제나 눈깔을 부리부리 굴리며 /

등에 큰 혹 단 채로 /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 있을 것입니다.

< 서울 낙타 > 일부

 

두 개의 시 모두에서 시인은 그리움을 노래한다. 그 그리움이 사랑하는 이를 향한 그리움일 수도 있고, 오지 않는 봄을 향한 그리움일수도 있다. 무엇이든 만남을 향한 그리움을 품는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그 만남의 그리움은 인간적 욕망으로도 표현된다. 그렇기에 낙타의 혹을 말한다. 그리움으로 인해 너무나도 만나고 싶지만, 정작 만났을 때, 자신의 실체, 그 욕망이 드러날까 가슴 조인다. 그 욕망이 바로 낙타로 상징된다. <서울 낙타>에서도 그리움과 미망이 바로 이런 등의 큰 혹으로 연결된다.

 

그렇다. 누구나 이러한 혹 하나쯤 달고 살고 있지 않을까? 아니, 수많은 욕망의 혹들이 달린 것도 모르고 살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아울러 이러한 욕망은 시를 향한 욕망으로도 노래되고 있지 않나 여겨진다. 시인에게 시는 그리움이며, 또 한편으로는 욕망의 혹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인은 낙타를 이처럼 욕망으로만 보지 않는다. 아니 궁극적으로 시인에게 있어 낙타는 치열한 삶을 향한 투쟁의 수단, 급하지는 않지만 삶의 모든 역경을 이겨내는 모습이 바로 낙타의 모습이 아닐까 여겨진다.

 

좋아한다고 빨리 가면 발병 난다 / 낙타로 가라 /

고비를 넘어 / 어깨에 손을 얹고 같이 걸을 때까지는 //

모래바람이 끝없이 불면 / 길 위에 그 이름을 펼치며 가라 //

좋아하는 마음의 길은 / 본디 사막이니까 /

사막에선 선인장으로 굴러가라 / 굴러서 사랑 그대에게로 가라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내가 바로 사막인 까닥이다 //

어서 빨리 가야 하는데 / 황사까지 끼어 앞을 가릴 때는 /

말없이 흩어지는 구름으로 흩어져서 가라 / 흘러서 외롭게 가라.

< 사랑 > 전문

 

아까부터 당신을 기다리고 있지요 / 아무리 날씨가 변덕스러워도 우리는 /

마음의 울타리를 높여 절망을 막아야 해요 / 낙타가 되어야 해야

< 봄길 > 일부

 

그렇다. 우리 삶 앞에 어떤 어려움이 놓여 있다 할지라도, 비록 그 어려움이 모든 생명을 앗아가는 사막과 같은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 사막을 뚫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낙타와 같이 나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시인에게 있어 낙타는 삶의 투쟁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시집의 서시로 돌아가면 낙타의 의미가 더욱 선명해지지 않을까 여겨진다.

 

어디에 있든지 /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지 /

그대는 불꽃들이 들어찬 가슴 열고 / 나와야 한다 //

짙푸른 바다를 사모하는 강물처럼 /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

어서 / 묶여있는 배의 돛을 세워야 한다 //

< 서시 > 일부

 

우리 시인의 외침처럼, 사막과 같은 삶 속에서 한 마리 낙타가 되어 나아가자. 망망한 인생의 바다 속에서도 돛을 올리고 나아가자. 머뭇거리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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