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해파랑길 - 걷는 자의 행복
이영철 지음 / 예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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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해파랑길』은 부산 오륙도(오륙도가 동해와 남해를 나누는 공간인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정작 그곳에 다녀와 봤음에도)에서 시작하여 강원 고성에 이르기까지 770km에 이르는 걷기 좋은 “해파랑길”에 대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30여년간 다니던 회사를 퇴직한 이후, 죽기 전에 후회되는 일들이 없길 바라며,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히말라야로 트레킹 여행을 떠나는 것이며, 산티아고 순례를 떠나는 일이다.

 

이 일을 실현해나가며, 저자는 특별히 산티아고 순례길을 예비하기 위해 국내의 ‘해파랑길’을 종주하게 된다. 그 후 산티아고 순례길을 종주하고 입국한 이후 또 다시 ‘해파랑길’을 두 번째 종주하게 되며, 해파랑길의 매력에 빠져들고, 그 매력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해 이 책을 집필하게 된다.

 

해파랑길의 ‘해’는 ‘뜨는 해’나 ‘바다(海)’를 연상시키며, ‘파’는 ‘파란 바다’와 ‘파도’를, ‘랑’은 함께 한다는 의미의 ‘랑’을 뜻한다. 그러니, ‘해파랑길’은 동해의 떠오르는 해, 그리고 푸른 바다, 넘실대는 파도와 함께 걷는 길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이처럼 멋진 이름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가 내세울만한 또 하나의 걷기 여행 코스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해파랑길은 전체 10개의 구간, 총 50개의 코스가 있다. 이 책에서는 이 코스들 하나하나를 순차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아울러 그 코스에서 가볼만한 곳, 그리고 먹거리, 숙박시설, 교통편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 해파랑길을 따라감에 있어, 혹 놓치기 쉬운 구간, 길을 혼동하기 쉬운 구간에 대한 설명들이 있어, 걷기 여행에 친절한 안내자가 되고 있다(물론, 자세한 정보는 아니기에 개인적인 조사가 필요하리라 여겨진다).

 

나는 해파랑길을 걸어본 적이 없다. 아니, 경주구간의 주상절리코스는 길을 따라 걸은 적이 있긴 하다. 그 때, 그 길이 참 멋졌던 기억이다. 그런데, 저자가 50개의 코스 중에 10개의 A코스, 10개의 B코스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 20개의 좋은 길에도 포함되지 않고 있다. 그러니 해파랑길이 얼마나 좋을지는 가히 짐작이 간다.

 

서해에서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내가 자라던 공간과는 반대편에 있는 동해에 대한 막연한 동경의 마음이 있다. 그래서 결혼 후 아직 아이가 없을 때, 아내와 함께 동해안 일주를 했던 적도 있다. 그 후에도 아이와 함께 동해안 곳곳을 다녀봤기에 동해안의 아름다운 절경들은 말할 필요가 없을 듯싶다. 그런 좋은 풍광과 함께 걸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분명 축복일 것이다. 물론 많은 거리를 걸어야 하기에 힘겨운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는 기쁨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힘겨운 노력 없이, 편히 앉아(심지어는 자리에 누워^^) 해파랑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울러 내가 걸었던 길, 가본 공간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 왠지 반갑다. 그리고 당시와 달라진 모습을 찾는 것 역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770km에 이르는 해파랑길의 각 구간 구간은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는 길들이기도 하다. 각 지자체에 따라 여러 이름들이 그 공간에 붙여져 있다. 이런 다양한 이름들을 함께 만나는 것 역시 해파랑길을 걷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해파랑길은 강원도 고성에서 마쳐진다. 이곳 통일전망대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길이 아닌, 군의 통제를 받아야만 하는 길이다. 그렇기에 50개의 걷기 여행코스이면서 마지막 한 코스는 걸을 수 없고, 차로 이동해야만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땅이 계속되기에 더 나아갈 수 있음에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우리의 한계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해파랑길은 멋지고 아름다운 길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물론 저자는 그렇기에 오히려 소망을 품는 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 단절된 이 아픔의 현실을 넘어, 더욱 그 위로 힘차게 걸어 올라갈 수 있는 날이 이 한반도에 허락되길 소망해본다. 언젠가 그곳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걸어볼 날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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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나의 사랑 - 미치도록 깊이 진심으로
아이리 지음, 이지수 옮김 / 프롬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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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이것은 누구나의 사랑』이란 책은 대만 방송작가인 아이리의 56편의 사랑이야기를 담고 있다. 방송인이자 탤런트인 박소현 씨가 이 책을 소개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은 정말 ‘사랑의 백과사전’과 같은 책이다. 마치 사랑에 대한 있을 법한 모든 경우의 수들을 이야기하는 듯싶다.

 

달달한 이야기도 있고, 또 어떤 사랑은 뭉클하기도 하며, 또 어떤 경우는 감동이 있기도 하며, 바보 같아 보이기만 한 이야기도 있으며, 또 어떤 경우는 안타깝기도 하다. 이처럼 각기 서로 다른 분위기의 56편의 사랑이야기(아무래도 사랑이야기이기에 대체로는 달달한 분위기이다), 이 가을을 물들이며 읽기에 좋을 듯싶기도 하다.

 

특히, 제목 그대로 이 모든 사랑 이야기들은 어쩌면, 내가 경험한 사랑이야기들일 수도 있고, 누군가 내 주변의 사람들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욱 공감하며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생각건대 사랑에는 공식이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랑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사랑은 공부할 수 없는 것 아닐까?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은 경험을 통해 배워나가긴 한다. 첫 사랑은 풋풋한 반면 서툴다. 첫 사랑이 능숙하다면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사랑의 경험이 쌓여갈 수록 사랑의 요령이 생기기도 한다. 사랑의 요령이라 해서 나쁜 의미라기보다는 사랑의 경험이 쌓여갈 수록 더욱 상대를 잘 배려하게 되며, 사랑함에 더욱 최선을 다하는 멋진 모습을 보인다는 의미이다.

 

물론 그럼에도 사랑에는 답이 없다. 어떤 이는 사랑의 경우가 쌓여갈 수록 더욱 상대를 옭아매는 사랑을 하기도 하니까...

 

사랑은 비슷한 경우에 이뤄지는 것일까? 아님, 서로 다른 짝이 만나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일까? 이것 역시 답이 없다. 어떤 경우에는 서로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을 만큼 취향, 취미, 분위기, 성향이 같아 그들이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정신적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가 서로 다를 수 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랑에는 답이 없다. 그러니, 누군가를 향하여 가슴이 뛴다면, 이 만남이 사랑이라 생각된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뛰어드는 건 어떨까? 사랑은 우리 인간의 특권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언제나 발정 난 강아지처럼 이성에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진 않을 것이다. 특히, 가정을 이룬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지 않을까?

 

성경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성경에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돕는 배필이다(물론, 성경에는 여성에게 남성을 돕는 배필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상 이 배필이란 히브리어 단어는 여성명사가 아닌, 남성명사이다. 그렇기에 남성 여성 모두에게 적용되는 단어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돕는다는 단어는 ‘신적 도움’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우리의 삶의 이어나갈 수 없다. 그렇기에 돕는 배필이 된다는 것은 이런 의미이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감으로 그 사람의 삶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인 것이다. 상대의 생명이 이어질 수 있도록 신적인 도움을 행하는 사랑, 얼마나 멋진 사랑인가! 우리네 사랑이 이런 사랑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사랑이 어떤 출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사랑으로 성숙해 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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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을 위한 탈무드 맛있는 공부 9
설보연 지음, 이동현 그림 / 파란정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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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자녀교육이 우수하다는 것은 누구나 다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런 유대인들에게 정신적인 기둥이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성서랍니다. 그리고 성서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탈무드랍니다.

 

탈무드는 사회의 전반적인 사상에 대하여 구전으로 내려오던 것을 집대성한 책입니다. 한 마디로 삶의 교훈을 주는 이야기라고 본다면 무난하리라 여겨집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성서에는 성문서라는 분야가 있고, 이 가운데는 지혜문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서의 욥기, 잠언, 전도서가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이 지혜문학의 출발은 바로 자녀교육이랍니다. 자녀들의 인생이 성공한 인생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지혜문학이랍니다. 물론, 나중에는 그런 전통적 지혜사상의 위기가 반영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전통적 지혜문학은 잠언서가, 후기 지혜문학은 욥기와 전도서가 여기에 속합니다.

 

따라서 전통적 지혜문학인 잠언서의 경우, 자녀가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에 수집되어진 이야기들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성서의 잠언을 보면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되고, 부지런한 자는 부유함을 누리게 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아내를 잘 얻어야 성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지혜로운 자가 얼마나 큰일을 해내는지도 말합니다. 한 마디로 자녀들이 성공한 삶을 살게 하기위한 부모의 마음을 담았다고 볼 수 있죠.

 

이런 측면에서 탈무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자녀들이 성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을 담은 이야기들이랍니다. 그러니, 탈무드의 이야기들을 마음에 새긴다면, 분명 삶의 교훈이 되고, 이로 인해 그 삶은 성공하는 삶이 될 겁니다.

 

하지만, 실상 성공이 뭘까요? 그것은 책 제목처럼 전교 1등을 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물론, 전교 1등을 하는 것도 성공이라 말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교 1등을 위한 탈무드』라는 제목은 어쩌면 협소한 의미로 탈무드를 퇴색시켰다고도 말할 수 있겠네요. 물론, 우리 자녀들이 모두 1등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1등을 하는 것이 성공은 아님을 꼭 기억하고 이 책을 접하면 좋겠네요. 1등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럼에도 이 책에서 탈무드 이야기 하나하나 사이마다 전하고 있는 공부하는 방법, 습관 등은 실제를 공부를 잘 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리라 여겨집니다.

 

아울러, 이 책이 비록 제목은 “전교 1등을 위한”이란 단서를 달고 있지만, 실제 그 내용은 그렇지 않답니다. 진짜 성공하는 삶을 위한 내용들이 많이 있답니다. 예를 든다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든지, 다름을 인정하게 한다든지, 책임감, 정직함을 갖게 하는 내용들을 담고 있답니다. 이 외에도 진짜 성공하는 삶(1등이 아닌, 좋은 사람, 바른 사람, 훌륭한 사람을 목표로 하는 것)에 대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답니다. 그런 측면에서 내용은 참 좋은 데, “전교 1등을 위한”이란 단서를 제목에 달고 있음이 참 안타깝네요.

 

우리 친구들이 1등을 목표로 삼는 어리석은 삶을 살진 않길 바랍니다. 얼마나 남에게 유익한 삶이 되었는가? 나 한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얼마나 더 살기 좋은 곳, 따스한 곳, 정이 넘치는 곳으로 바뀌고 있는가? 이런 것들에 삶의 목표를 두고 살면 좋겠네요. 다시 말해 이타적인 삶을 사는 것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공한 삶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탈무드의 진짜 의도함이고요.

 

우리네 많은 부모님들이 유대인들의 교육방법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좋습니다. 그들의 교육방법은 분명 탁월하니까요. 하지만, 그들이 지금 보이고 있는 배타적인 모습, 폭력적인 모습, 안하무인격인 모습은 배워서는 안 되겠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삶의 방향이 나를 향하기보다는, 보다 이타적인 삶의 방향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이 책 안에 담겨진 진짜 메시지들을 찾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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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 송파 세 모녀의 죽음이 상처를 남긴 이유
김윤영.정환봉 지음 / 북콤마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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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송파구에서 환갑이 된 어머니와 30대의 두 딸이 함께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그래서 일명,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 그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하얀 봉투에 5만원 권 14장, 70만원을 넣어두었고, 이런 쪽지를 남겼다.

 

주인 아주머니께...

죄송합니다.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의 빈곤가정들이 얼마나 힘겨운 상황가운데로 몰리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며, 또 한편으로는 우리 복지의 사각지대가 얼마나 큰지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이 책,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는 바로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우리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대해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안타까움, 슬픔, 분노, 무력감, 허탈감 등의 감정들이 밀려온다.

 

가난이 마치 죄 인양 살아가는 절대 빈곤층들의 아픔과 눈물에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낀다. 아울러, 이들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비정한 사회를 향해 분노를 느끼며, 더 나아가 이들을 위해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연약함에 무력감과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런 아픔을 함께 공유하는 것, 문제의식을 함께 느끼는 것, 그리고 그들을 마음속으로나마 응원하는 것, 더 나아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는 것, 이런 것들이 비록 미력하나마, 세상을 조금 더 따스한 공간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힘이 되리라 여겨진다.

 

이 책은 송파구 세 모녀 사건의 전말을 설명한 연후에 이들이 과연 박대통령의 말처럼 복지제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면, 구제받을 수 있었는지, 그들의 신청이 받아들여질 수 있었는지를 진단한다. 답은 아니다 이다.

 

그리고 이 사건만이 아닌, 다른 여러 실례들을 들어가며 빈곤층들을 향한 복지제도의 문제점, 사각지대, 구멍이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특히, 부양의무자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추정소득과 간주부양비와 같은 가짜소득의 함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솔직히 이런 문제점에 대해 잘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무엇이 문제인지, 그리고 어떻게 개선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가닥을 잡아갈 수 있어 도움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막 지점에 이른 빈곤자들을 향해, 그들의 긴급함과 간절함을 우리가 이해하고 함께 품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좋은 제도개선도 필요하다. 하지만, 담당자나 관련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마음을 품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제도로 할지라도 소용이 없다.

 

아울러 현 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노력이 절실히 필요함도 느끼게 된다. 소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과 애정, 그리고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역량을 발휘하는 자리에 앉은 힘 있는 사람들의 자세가 더욱 중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다.

 

기본적인 문제점은 그런 자리에 앉아 있는 분들에게 가난한 사람, 힘없는 사람이 혹 관심 밖의 세력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저 자신들을 귀찮게 하는 세력으로 여기고 있진 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렇기에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분들의 마음자세가 우선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저자는 복지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검열하고 의심하며 심판하려는 자세보다는 혹 우리가 빠뜨린 어려운 사람은 없는지 찾아보려는 시각으로 말이다. 현 제도는 수급자의 입장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다. 수급자를 선별하고 관리하는데 더욱 치중하고 있다며 문제의식을 제시한다. 그렇다. 무엇보다 마음자세의 변화가 중요하다 여겨진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책임 있는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이 이처럼 벼랑 끝으로 몰려가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알기를 원하며, 현 제도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알게 되길 원한다. 알아야 관심을 가지니 말이다(물론 알아도 관심이 없을 수는 있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가장 큰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그것은 바로 윗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과 빈곤의 악마적 힘에 함몰된 사람들 간에는 좁혀질 수 없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그건 바로 윗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은 결코 가난의 처절함을 모른다는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궤도에 오를 수 없는 사람들의 답답함과 무력감을 그들은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다수는 출발부터 지금까지 이처럼 생존의 문제로 발버둥치는 고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령 높은 자리에 앉은 분들 가운데는 그 출발이 비록 어려움의 상황 가운데 출발했다 할지라도 그들 모두는 이미 성공신화를 이룬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간에 그들 모두는 승리자들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노력해도 실패자의 자리, 패배자의 자리에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이들의 고통과 절규를 그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바라기는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며 집행해나가는 분들에게 이 마음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입장에서 연구하고, 이해하는 것에는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방이 우겨쌈을 당하여 고통당하는 빈곤자들의 입장으로 그들 스스로가 내려가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먼저, 가장 책임과 권한이 많은 분부터 모두 그래야 할 것이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요즘 아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이 밥을 굶는다면 밥이 없으면 라면 끓여먹으면 되지 라고 말한다는 것. 참 순진한 생각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다. 전혀 공감하지 못하며, 대안을 내놓는.

 

오늘 정책을 만들고, 결정하며, 집행하는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이 바로 이런 모습 아닐까? 여기에 진짜 문제가 숨어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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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도 정의가 필요해 - 위기의 지구를 살리는 녹생 비상구 비행청소년 3
장성익 지음, 어진선 그림 / 풀빛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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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환경에도 정의가 필요해』는 ‘환경’에 대한 책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더 나아가 ‘정의’를 이야기한다. 환경문제는 ‘정의’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에 ‘정의’가 필요한 이유는 환경 파괴의 원인이 대체로 인간에게 있으며, 그 영향을 받는 이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권을 노린 대규모 개발로 인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기업들(특히 다국적 기업)은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되지만, 그에 비례하여 환경은 파괴되며, 그 피해는 민중들, 특히, 힘없고 가난한 약자들에게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를 든다면,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투발루는 해마다 바닷물이 점점 차오르고 있어 앞으로 50-70년 안에 나라 전체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9개의 자그마한 산호초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아름다운 나라, 인구가 1만 명 정도에 불과한 이 자그마한 섬나라는 해수면이 높아지게 된 원인인 지구 온난화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나라이다. 오히려 많은 배기가스를 배출하여 온실효과를 더욱 높이고, 지구 온난화를 가속시킨 나라들은 강대국들이다(여기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된다. 우리나라는 세계8위의 이산화탄소 배출국이다). 그런데 정작 그 피해는 지구 온난화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 만큼 작은 나라, 힘없는 나라, 가난한 나라인 투발루가 고스란히 받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정의롭지 못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그래서 ‘환경정의’가 필요한 것이다.

 

뿐 아니라, 전기의 문제 역시 그러하다. 우리나라의 예를 든다면, 결코 안전할 수 없는 원자력발전소는 모두 가난한 지역에 있다(핵발전이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핵은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체르노빌과 일본의 사태가 보여준다). 그리고 여기에서 생산되는 전기의 대부분은 그 지역에서 소비하는 것이 아닌, 그 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소비하게 된다. 잘 사는 지역에서 많은 전기를 소비하기 위해 전기를 옮기는 고압송전탑 역시 가난한 지역을 지나게 된다.

 

힘없는 사람들은 자신들과는 어쩌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임에도 엄청난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반대로 실제 전기의 주 고객들은 위험에서 멀리 떨어져 안전하게 혜택만 누린다. 이것이 정의롭지 못한 모습이다. 그렇기에 ‘정의’가 필요한 것이다.

 

이뿐인가? 나무를 잘라내고, 잔디를 심어 그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 농약을 쏟아 부은 골프장에서는 가진 자들이 즐긴다. 하지만, 그 농약이 내려와 오염된 물을 마시는 자들은 골프장 아래의 가난한 농민들이다. 이것이 정의가 깨어진 모습이다.

 

풍요롭진 못했다 하지라도, 굶지 아니하며 정을 나누며 살아가던 지방에 외국 자본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곳을 대규모 농장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환경은 파괴된다. 뿐만 아니라, 이제 그곳에서 생산한 농산물은 모두 다시 외국으로 수출된다. 그러니 돈을 벌게 될 것 같지만, 실상 이익은 외국의 다국적기업이 다 가져가고, 정작 그 지방의 주민들은 적은 임금을 받고, 모든 식재료를 비싼 가격에 구입해야만 한다. 그래서 부유해지기는커녕 도리어 갈수록 이들의 가난은 깊어지고, 노동은 늘어만 간다. 이 일로 외국 다국적기업과 정부의 부패한 관료들의 배만 채워간다. 이것이 정의가 깨어진 모습이다.

 

이처럼 환경문제는 인간에 대한 문제, 특히 정의, 평등, 민주주의와 같은 문제가 포함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환경파괴의 일차적 피해자는 환경파괴에는 기여하지 않은 수많은 동물들과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이다. 그렇기에 ‘정의’가 강조되어져야 한다.

 

‘환경 정의’ 이제는 우리가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실천해나가야 할 부분이다. 개인과 기업과 정부가 함께 이 일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정부는 환경에 대한 문제에 더욱 심각한 의식을 가지고 바른 정책들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아울러 기업은 눈앞에 있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을 것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안목과 이타적인 안목을 더하여서 환경보존을 위한 노력들을 해나가야 할 것이며, 개인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의 실천들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약속받으며,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서평에서는 자세히 언급하진 않았지만, 저자가 책에서 언급하는 원자력문제와 먹거리 문제 역시 반드시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다. 저자의 환경에 대한 접근, 관점이 옳다. 『환경에도 정의가 필요해』, 참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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