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 애기 우리 빛깔 그림책 3
송창일 글, 이영림 그림 / 개암나무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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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 애기』는 1930년대에 활동하셨던 동화작가 송창일 선생님의 작품입니다. 북한이 고향이셔서 해방 후에도 북한에서 사셨기에 우리가 접하기 어려웠던 분이신데, 요즘, 문학계에 불고 있는 복고 바람의 영향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 작품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창비에서 같은 시기에 출간된 「근대유년문학선집」3권 가운데, 『콩 눈은 왜 생겼나?』에도 실려 있는 작품이랍니다. 물론, 이번 도서출판 개암나무에서 출간된 『베개 애기』는 송창일 선생님의 동화뿐 아니라, 이영림 선생님의 예쁜 동화가 더해졌기에 훨씬 그 느낌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죠. 그림책만의 장점이기도 하고요.

 

이 책에는 “우리 빛깔 그림책 3”이라고 되어 있네요.

아이들의 장난감이 귀한 시절, 배개는 아이들에겐 너무나도 좋은 놀이감이죠. 요즘 아이들이 인형을 안고, 자신의 아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놀이죠. 베개를 아기라고 업기도 하고, 맛난 것도 먹여주기도 하고,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 온갖 사랑을 쏟듯 베개에 정성을 다하는 명애의 모습이 참 예쁘네요.

게다가 울고 있는 명애에게 “베개 애기의 어머니도 우나?”는 엄마의 말씀에 명애가 울음을 뚝 그치는 장면은 너무 순수하고 귀엽네요.

 

엄마가 되어 엄마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 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참 잘 묘사하고 있는 동화랍니다. 단지 요즘 아이들은 온갖 인형들을 늘어놓고 이 놀이를 한다면, 명애는 베개를 인형삼아 논다는 점이 다르고요. 요즘 아이들이 당시 아이의 모습을 보며,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더 행복할 수 있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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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티의 모험 - 세상의 끝을 향해
율리아 뵈메 지음, 율리아 긴스바흐 그림, 이혜림 옮김 / 키즈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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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어캣인 몬티는 다른 미어캣들과는 달리 모험심이 강하답니다. 다른 미어캣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서 멀리 나가는 것을 두려워한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위협하는 무서운 동물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특히, 독수리 이크루는 미어캣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동물이죠. 그래서 미어캣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공간 주변에 흐르는 작은 도랑도 건너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몬티는 다르네요. 몬티는 언제나 저 멀리 보이는 높은 언덕 너머가 궁금하답니다. 할아버지는 언덕 너머엔 아무 것도 없다고, 언덕이 세상의 끝이라고, 그러니 그곳에 갈 필요는 없다고 말하지만, 몬티는 여전히 언덕 너머가 궁금하답니다. 그래서 결국 그곳으로 모험을 떠나기로 합니다.

 

위험하다고 주저앉아 버리는 인생에겐 더 큰 미래가 약속되지 않는답니다. 위험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용기 있는 자들에게 더 넓은 미래가 주어지게 마련이죠. 몬티는 용감하게 모험을 떠난답니다.

 

그 모험을 통한 수확 가운데 무엇보다 큰 수확은 친구들을 만든 것이랍니다. 친구들은 많을수록 힘이 됩니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친구는 큰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된답니다. 몬티는 핀젤이란 멧돼지를 친구로 삼게 된답니다. 핀젤이 사자 라이킹에게 잡아먹히려던 것을 몬티가 꾀를 내서 구해줬거든요. 이렇게 구해준 핀젤은 몬티와 친구가 되어 몬티에게 큰 힘이 되어 준답니다. 우리 친구들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길 바랍니다.

 

몬티의 모험에 있어 마지막 고비는 언덕 앞을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강이랍니다. 아무래도 몬티는 이 강을 건널 수 없어 포기하려 하네요. 하지만, 핀젤의 도움 가운데 무사히 건너게 된답니다. 몬티가 이 강을 건널 때, 두려움이 그를 짓눌렀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떨쳐버릴 때, 비로소 꿈을 이루게 되는 거죠. 물론, 몬티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하지만, 두려움 가운데서도 과감히 두려움의 강을 향해 몸을 던질 때, 건널 수 있게 되고, 꿈의 성취를 맛보게 되죠.

 

우리 앞에 두려움의 강이 언제나 가로막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의 강을 향해 과감히 뛰어드는 용기가 우리에게 주어지길 소망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신앙이 있는 분들이라면 신앙의 힘으로 두려움의 강을 향해 뛰어든다면 좋겠죠.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그 두려움의 강을 건널 수 있다는 믿음 말입니다.

 

아무튼 몬티가 모험 후 얻게 된 또 하나의 성과가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던 그 공간도 언덕 저편과 다름없이 아름다운 공간임을 깨닫게 된 것이랍니다. 그래서 다시 집으로 향한답니다. 물론, 아무런 도전도 없이 그저 자신의 삶의 공간에 만족하며 사는 삶과 도전 이후에 자신이 살던 삶의 공간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은 다르겠죠! 우리가 넓은 세상으로 향한다고 해서, 그저 모두 자신의 고향을 등지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젊은이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죠. 그래서 자꾸 고향은 더욱 낙후되어져 간답니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 그곳을 경험하고 돌아와 다시 고향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는 것이야말로 더욱 의미 있는 일 아닐까요? 그럴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큰 곳, 넓은 곳, 세상으로 퍼져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것이 목표는 아니랍니다. 퍼져나가 마음을 더욱 넓히고, 배우고 익혀, 다시 돌아오는 축복도 있길 원합니다. “몬티의 모험”이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여겨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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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오렌지 선생님
트루스 마티 지음, 홍미경 옮김 / 영림카디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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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멘토 오렌지 선생님』은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던 때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답니다. 여섯 남매 가운데 셋째인 리누스가 주인공으로 리누스의 가정은 식료품점을 하고 있죠. 첫째, 아프케가 자원입대하고 되고, 이로 인해 한 단계씩 형이 하던 일들을 맡아 하게 되면서, 리누스는 둘째 형 시몬이 하던 배달 일을 맡아 하게 됩니다. 물론, 형 시몬이 신던 구두도 물려받게 되고 말입니다.

 

경제적 궁핍이 있던 시대의 모습이 되려 정겹게 느껴지기도 하며, 또 한편으론 애틋함도 느껴지네요. 첫째 형이 군에 입대하며, 새 군화를 지급받음으로 첫째의 신발은 둘째에게로, 둘째의 것은 셋째에게로, 이런 식으로 순차적으로 물려받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형제는 작아진 신발에서 넉넉한 신발로 바뀌어 좋기도 하지만, 또 어떤 형제는 딱 맞는 신발에서 너무 커져버린 신발을 신게 되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침대 역시 이처럼 물려받게 되죠. 그래서 셋째인 리누스는 아이들의 방에서 형들의 방으로 옮겨가게 된답니다. 이처럼 손위 형제의 것을 물려받게 되는 모습은 없던 시절의 흔한 풍경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요즘이 사라진 그래서 정겨움을 느끼게 풍경이네요.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모든 물려받음은 맏이의 군입대로 인함이기에 안타까움이 묻어나고요.

 

리누스는 과일 배달을 하게 되면서, 새로 이사 온 아저씨에게 오렌지 상자를 배달하게 된답니다. 그분은 화가인데, 정기적으로 오렌지 상자를 배달하게 되면서, 오렌지 선생님과 리누스 간에는 마음의 교류가 일어나게 된답니다. 그래서 『나의 멘토 오렌지 선생님』이란 제목인가 봅니다.

 

이 오렌지 선생님은 “피에트 몬드리안”이란 실제 화가를 모델로 삼고 있답니다. 재즈 음악인 ‘부기우기’를 추상화로 형상화 시킨 유명한 화가로 원색을 사랑한 화가랍니다. 책의 표지는 바로 그런 몬드리안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부기우기 기법을 연상시키네요. 오렌지 선생님과 과일 배달 아이 리누스 간의 우정이 멋져 보이는 이야기랍니다.

 

하지만, 단지 아름다운 이야기만은 결코 아니랍니다. 전쟁의 슬픔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랍니다. 아마 전쟁에 대한 반성과 돌아봄이 이 이야기의 주된 메시지가 아닐까 여겨지네요.

 

리누스의 어머니가 하던 말, 전쟁은 결코 축제가 아니라는 말이 『나의 멘토 오렌지 선생님』의 주된 메시지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전쟁은 결코 신나는 일이 아닙니다. 전쟁은 결코 자랑할 만한 것도 아니고, 드러내며 내세울만한 일도 아닙니다. 전쟁은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리는 괴물이랍니다.

 

전쟁에서는 이기는 쪽도 지는 쪽도 없이, 모두 지게 되는 것이랍니다. 이것을 기억하면 좋겠네요. 전쟁에서의 승리는 없다고 말입니다. 모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되거든요. 게다가 어떤 전쟁도 정당한 전쟁은 없답니다. 모두 그 안에 더러움과 추악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전쟁이랍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들, 그리고 청소년들이 읽고 전쟁에 대한 생각을 해보면 좋을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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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는 용감했다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39
알렉스 쉬어러 지음, 정현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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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차이로 형과 동생이 된 쌍둥이 형제. 둘 다 못 말리는 말썽꾸러기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형은 형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느끼게 되고, 동생은 동생으로서의 특권을 누리며 더욱 말썽을 피우는 모습이 유쾌하다. 이들 형제는 엄마 없이 아빠와 살아가는데, 아빠의 직업은 형제들과 오랜 시간 떨어져 있을 수밖에 없는 초호화 크루즈 여객선의 고급 승무원. 이로 인해, 아버지가 일을 나가면 언제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보내야만 하는 두 쌍둥이 아들. 그들은 이번만큼은 아버지를 따라 가보자며, 밀항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그리곤 위험한 계획이 성공하여 초호화 크루즈 여객선의 모든 것들을 누리며 즐기게 되는데...

 

행복은 언제나 불행과 짝을 이루나보다. 형제는 그곳에서 같은 학교의 잘난척대마왕 왓슨을 만나게 된다. 부유하면서도 공립학교에 다니며, 잘난척대마왕으로 불리는 왓슨에게, 쌍둥이 형제의 동생 클리브는 일전에 자신들의 아버지는 초호화 크루즈 여객선의 선장이라고 거짓말을 했었는데. 과연 왓슨 가족과의 선상에서의 만남은 두 형제의 밀항 여행에 또 다른 긴장감과 흥미를 불어넣게 된다. 왓슨 가족과 두 형제, 그리고 초호화 크루즈 여객선의 선장과 아빠 사이에서 형제의 밀항 여행은 계속하여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인지.

 

게다가 그 배에는 해적들이 타고 있었으니. 무서운 해적들 앞에 겁 없는 좌충우돌 형제의 활약상을 기대하시라! 해적들의 선상 점령으로 모든 승객들의 안전과 재산이 위협받고 있을 때, 우리의 용감한 형제가 나서는데...

 

 

쌍둥이 두 형제의 좌충우돌 선상 모험담을 읽으며,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스릴을 느끼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 전개가 책을 놓지 못하게 하며, 작가의 유머감각에 웃음 짓게 되는 소설이다.

 

알렉스 쉬어러란 작가에 대해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런 그의 작품, 『형제는 용감했다』를 처음으로 읽으며, 그의 작품세계에 매료된다. 무엇보다 글이 재미있다. 남자 아이들이 공감할 모험 이야기는 피터팬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가는 남성들에겐 언제나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그렇기에 ‘아동․청소년 모험 소설’만이 아닌 ‘성인 모험 소설’로 읽혀져도 좋겠다. ‘아동․청소년 모험소설의 왕’으로까지 불린다는 쉬어러. 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렇게 불리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쉬어러. 그럴 법도 하다. 그의 책은 아동이나 청소년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언제나 모험의 막연한 꿈을 안고 살아가는 덜 자란 어른들, 순수함을 간직한 어른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법하다.

 

아직 덜 자란 내가 책을 읽으며, 낄낄거리며 웃어대자 아내와 딸아이가 뭔 일인가 싶어 들여다본다. 그만큼 재미나다. 쉬어러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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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강상중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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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교포 김상중의 소설 『마음』은 죽음에 대한 작가의 성찰을 잘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 그리고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수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건, 이러한 죽음 앞에 죽음의 의미는 무엇이고,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작가는 찾아간다.

 

그 방식은 절친의 죽음 앞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대학생 나오히로 군이 꽤나 인지도 높은 대학교수 김상중(소설 속에서의 주인공 역시 김상중이다)에게 직접 전해준 편지 상담 요청으로 인해, 여기에 김상중이 대답하며,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가운데, 죽음에 대해 풀어나간다. 이러한 과정 가운데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나게 되고, 그 엄청난 사건 이후 나오히로 군은 “라이프 세이빙” 봉사활동을 하게 되는데, 바다에서 시신들을 건져 내는 가운데 또 다른 정신적 충격과 죽음에 대한 또 다른 견해를 갖게 된다. 아울러, 나오히로는 자신이 활동하는 연극부의 공연, “친화력”이라는 작품을 통해,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접근을 하게 된다.

 

절친의 죽음, 그리고 상상키 어려운 엄청난 대규모 자연재해를 통한 무작위 다수의 죽음, 그리고 연극을 통해, 괴테의 『친화력』에 대한 재해석. 이런 과정들을 통해, 저자는 상중과 나오히로 군의 주고 받는 메일을 통해,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성찰을 이어간다.

 

이 소설에서는 괴테의 『친화력』이 큰 역할을 감당한다. 극중의 상중은 『친화력』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주인공 네 사람 간의 사랑과 애증보다는 무분별한 ‘개발’에 의한 비극적 삶에 있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저자가 『마음』을 통해 강조하는 바가 명확하다. 그것은 바로 동일본대지진을 통해 드러난 ‘개발’의 맹점에 대한 고발이다. 이것이 바로 삶과 죽음이라는 주요 주제 뒤편에 감춰진 또 하나의 메시지이다.

 

동일본대지진의 참사를 통해, 세계는 원자력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린 이런 세계적 흐름과 반대되게 정부차원에서 원자력 개발을 강행하며, 이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국민들의 ‘마음’을 서로 나뉘게 하고 있다. 자연의 엄청난 경고 앞에서도 우리가 배우지 못한다면, 무엇을 통해 배울 수 있을까? 괴테의 『친화력』을 통해 감춰진 경고를 들을 수 있을까? 아님, 이 책 『마음』을 통해, 작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극중 연극 대사를 통한 질문, “도대체 우리들, 어디서 잘못된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는 노력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가 죽음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결론 격은 청년 나오히로 군의 말을 통해 밝혀진다. 죽음은 결국 삶을 빛나게 해준다고 말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죽음을 곱씹어야 할 이유이다. 우리가 죽음을 이야기하고 죽음을 고민하는 이유는 죽음 앞에 정의도 없고, 죽음은 정당한 이유도 없이 진행되기에 허무함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다. 신의 부당함(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신정론이라고 말한다)을 고발하고자 함도 아니다.

 

물론,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기에, 그리고 누군가는 맑고 깨끗하고 바르게 살아감에도 부당한 죽음을 당할 수도 있기에, 죽음 앞의 우리 인생은 허무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허무함을 말한다 할지라도, 우린 죽음 앞에 인생은 허무하기에 한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한번 주어지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며, 행복함을 추구하며 살아야 하며, 긍정적 인생을 살아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통해, 드러나는 허무주의는 ‘부정적 허무주의’가 아닌 되려 ‘긍정적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소설, 『마음』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죽음에 대한 성찰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으며, 누구도 그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언제일지 모를 나의 끝 날을 예비하며,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길 촉구하는 것. 이것이 죽음 앞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아닐까?

 

 

또한 대중매체들을 통한 죽음의 접근에 대해서도 저자의 도발이 느껴진다. 죽음의 참혹함, 직접적인 그 슬픔의 울림은 외면한 채, 그저 통계적이고 무미건조한 숫자상의 죽음에 대한 저자의 문제제기가 마음에 와 닿는다. 우린 올해 “세월호”라는 엄청난 슬픔을 경험하였다. “세월호” 사건 앞에서 방송매체들의 문제점이 얼마나 많이 드러났는가? 게다가, 그 슬픔을 우린 어떻게 기억하나? 우리 역시 그저 숫자상의 죽음, 하나의 사건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죽음에 대한, 그리고 그 죽음으로 인해 삶이 송두리째 뽑혀버린 남은 자들을 향한 애도의 마음도 외경의 마음도 없다. 여전히 자신의 정치적 소견에 의해 비인격적인 비방과 섣부른 이용만이 있을 뿐 아닌가! 어느 누구도 엄청난 죽음의 사건에 책임지지 않는 사회, 이 사회는 과연, 어떤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괴물인지 궁금하다.

 

『마음』이란 이 소설, 표지 디자인이 썩 손이 가는 디자인은 아니다. 하지만, 그 알맹이는 참 좋다. 죽음에 대한 작가의 성찰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옥에 티가 있는데, 그건 나오히로 군의 컴퓨터가 고장 나서, 친구의 컴퓨터를 통해, 친구의 메일계정으로 이메일을 보낸다는 설정인데, 이는 작가의 착각에 의한 설정이 아닌가 싶다. 이메일계정이란 것이 자신의 컴퓨터를 통해서만 열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느 컴퓨터를 통해서도 자신의 메일계정을 사용할 수 있음을 작가가 몰랐던 것일까? 이런 설정이 옥에 티라면 티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성찰을 깎아 내리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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