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에서 "여성들이일을 멈춘다면"이 나오기 전까지 한 번도 젠더가 언급되지 않음에도 특정 젠더를 상상하는 우리 모두를 염두에 두고 이 시가 쓰였을 가능성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한 나 같은 독자가 있다는 사실, 무엇보다도
‘노동‘이란 보편 사회적 주제를 다룰 때 시인과 독자에게 여성이라는 젠더가 특수한 것으로 취급되어 외따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 P2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가 생각하기에 담론이란 단일하고 커다란 무엇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것에 대한 논의와 질문의 과정 전체에 해당합니다. 한 주제에 대한 (비)동의와 이견 지금 너머의 문제 상황에 대한 고려와 질문, 조금씩 다른입장과 태도 그리고 수용과 이해의 범위를 설정하는 것, 때로 좀처럼의견이 좁혀지지 않는 사안에 대해 그 거리 때문에 한쪽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도 각자의 위치를 견지하며 이 주제를 가지고 가는 것까지. 이러한 작업은 나와 당신의 공존을 위한 삶의 원리가 될 수도, 어떤 주제에 대한 논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수 있는 지침이 될 수도있을 겁니다. 
- P176

폭력적 현실이 실제 (사실)‘라고 해서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재현‘의 충분한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그 ‘사실‘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재현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모두가 같은 응답을 하거나 그것을 수용치는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재현 방식에 관해 얼마나 치밀하게 고민했는가 하는물음은 엄정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 P178

문학의 책무 중 하나가 현실의 목소리를 반영함으로써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인 ‘우리‘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것이라 이해할 때, ‘당사자성‘이라는 기준을 ‘나‘ 아니면 ‘나 아닌 너‘로 구분되는 척도로 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김지영‘은 이것을 읽은 세계의 독자로 하여금 범세계적 차원에서 젠더 차별의 문제를 떠올려 어떤 식으로든 ‘공통된 문제의식‘을 제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구심점의 역할을 한다. 
- P187

 여성인물을 등장시키고 조명한다는 사실 자체가 여성 젠더와 시대적 문제를 ‘잘‘ 포착했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즉 ‘무엇을 등장시킬 것이냐‘보다 누군가의 시선을통해 특정한 서사적 주제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가 더 중요하다.
- P215

그들이 운전학원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러므로 아주 단순하다. 불유쾌함을 초래하는 자신들에 대한 혐오를 조심하거나 피하지않고, 싸다는 이유만으로도 그곳을 다시 갈 수 있다는 것. 이러한 삶의 태도는 작가가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로 제시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도록 최선을 다하고, 우리는 우리들에게 말할 수 있다.
- P2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얗고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전쟁에서 살아남고
굶주림에서 살아남고

신만 아는 아이는
죽음을 총알구멍에서 인간들의 입으로
가져왔다고

매대에 올려진 코코넛을 본다 저 안에서 찰랑이며 익어가고 있을 아이를 본다 구멍이 생긴 줄 모르고 누군가 침범하고 있는줄 모르고 잠에 빠져들고 있는

코코넛이 점점 달콤해지는 건 무섭기 때문이다
단단한 껍질을 부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 P41

전쟁이 벌어진 지구의 끝에서
물조차 먹을 수 없어서
구멍을 찾아 기어들어가는
아이가
상한 과즙을 흘리고 있다
- P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시탐탐 어떤 악의가 등골을 파고들어
다큐 영화에서 봤던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 P34

스스로 죄악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는 이 마음을
양산을 펼치는데 기꺼이 드는 이 헐거움을
늘 기도와 같은 것이라고 여겼었는데
- P35

나를 악인으로 몰아붙이는 여름빛은
발등에 여전히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 P3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동‘과 관련하여 이러한 사회 격변기를 거쳤을 것이 분명한 그에게
‘노동‘이 공장/육체 노동을 지시하게 되었으리라 추측하기는 어렵지않다. 다만 문제적이라 느낀 것은 어째서 나의 노동은 ‘노동‘의 경계바깥에 있는 것으로 구분되는가 하는 점이었다.
- P144

그리하여 이번에는 내가 묻는다. 노동을 해보았느냐고? 삶은 무엇이고 노동은 무엇인가? 시에서 노동 읽기가 가능한 한 삶이 노동임을 누군가의 인준 없이도 인간이 인간 존재로서 인식하는 한, 사는 일과 노동은 무관하지 않다. 타인의 승인과 별개로 개인이 삶으로써 노동을 행하는 이상 우리는 시로부터 삶으로 점철된 노동을 목격할 수있다.
- P160

‘생활이 전혀 안 된다‘고 생각해본 적 있다. 단지 ‘돈‘이 없었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일‘을 하지 않았다는 말도 아니다. 오히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그래야만 한다는 압박 때문에 제대로 살 수가 없다. 원하는 방향대로 살지 못해 불행하다는 쪽에 가깝다. 우리는 ‘생활‘을 되찾아야 하며, 최지인의 시에서 그 의지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그의 시는 ‘생활‘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주지는 않을 것이다. 대신 최지인은 이 세계에서 일을 하는 것에 관해 말하고,
일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을 고민하며 사는 삶에 대해 쓴다. 그의 시를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생활 혹은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 P163

우리가 사는 세계란 무언가를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삶을 지속할수 있도록 해주는 곳이다. "실업을 증명하"는 세상에서 화자는 자주 슬프기에 "슬픔은 지겹지 않다"고 말하는데, 이곳에는 술에 취해 "새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산다. 지금 삶에 만족하지 못하며 새 삶을 살 기회가 거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만이 술에 취해 그런 말을 "흥얼"거릴 텐데, 실현 가능한 목표라면 부단히 진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65

"쓸모"의 차원에서 볼 때, 즉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는 "쓸모"없는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고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기때문이다. 그에게는 좀더 "성실"할 것이 요구되며 직장 상사의 독려는 이러한 압박을 일축하여 보여준다. 세상에 의문을 갖는 사람을 거부하는 세계에서 생활 노동자로 살아남는 일은 녹록지 않다. 세상에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 하는 한편 그렇게 하는 것이 어딘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에 저항하고 싶은 마음은 자주 부딪친다. 
- P1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