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삶의 문제들에 아주 소심하게 배팅한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것을 걸 만한 용기가 없어서 늘 작은 기대만을 결었다. 행여나 잃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의 아주 알량한 바람만을 말이다. 그건 엄마가 나에게 바라는 삶이었고, 내가 바라는 바이기도 했다. 그런데 재윤을 만나고부터 그 고요한 표면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P114

철거를 앞둔 집에 들른 적이 있다. 그곳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아마 죽었을 것이다. 고양이의 수명은 인간에 비해 아주 짧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고양이가 부러웠다. 고양이는 죽을 때 엄마가 곁에 있었겠지.
하지만 엄마가 죽을 때는 곁에 아무도 없었다. 엄마에게는 나밖에 없었는데, 내가 곁에 없었으니 엄마는 혼자였을 것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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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은 장교수의 "악담"과 현재 고발된 그의 성폭력 문제를 뭉중그리는 최교수의 나이브한 시선에 비판적이지만 심정적으로나마 그것을 이해하기를 그만두지는 않는다. 다만 그녀는 그것이 "서로 다른차원의 일"임을 생각한다. 그것은 ‘조금 다른 것‘이다. 
- P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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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검증을 통해 근미래를 예측하고 또 과거의 영향 요소를 해석하는 과정에서도 일종의 인류 중심의 서사가 그 기틀에 자리하고 있음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객관적 관찰의 결과와 그에 따른 논증의 결과가 그 자체의 사실로 남지 않고 특정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서사화‘에 기대어 담론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학이 인류세 논쟁으로 대변되는 기후 위기에 가장 문학다운방식으로 끼어들 여지가 있다면 바로 이 ‘서사화‘의 측면이 아닐까?
무엇을 ‘서사화하고 있느냐‘만큼이나 무엇을 ‘서사화할 수 있는가‘와관련한 기능의 측면에서 문학을 다시금 성찰할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 P41

이 서사에서 볼 수 있듯 위기 상황에서도 인간은 관계에 대한 지향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로써 기후 위기를 배경으로 관계를 성찰하는 서사가 ‘공존‘에 대한 감각을 상기한다고 본다면 인간의 관계 지향성을 행성 단위의 위기를 타진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서 검토할 여지가 있다.
- P47

인간이 초래한 오염으로 인해 변형된(인간 관점에서는 탈인간화된) 존재가 인간이 표준이 아닌 새로운 생태계의 질서를 구축한다는 상상으로 이 서사는 다시금 정리된다.
인간적 인지를 넘어서는 서사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가장 반 인간적측면에서가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사고를 겨냥하여 뒤집는 것에서 가능할 것이다.
- P52

소략하건대 이 글이 궁극적으로 기후 위기를 다루는 문학과 그 서사화의 양식이 실제 기후 위기를 개선하는 데 얼마만큼의 실질적인효과를 주느냐는 물음 앞에서 여전히 그 답이 모호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문학의 무용성이나 미학성을 논하는 것은 어쩌면 당장의 위기를 낭만화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여전히 떨치기 어렵다. 그러나 ‘인류세‘와 관련해 서사화/시나리오화하는 작업의 정치적 수행성을 고려하면 문학이 추구하는 이러한 종적 타자화의 상상력은 적어도 인간이 끊임없이 자신을 권력화하는 방식으로 써왔던 서사와 시나리오를 무너뜨린다. 
- P52

달리 말해 이것이 비평이 오랫동안 독자로서의ㅈ자리를 가늠해온 과정이라 한다면, 하나의 징후적인 사건으로서의
‘에세이‘를 해석하는 이러한 시도야말로, ‘엄정한 독자의 언어‘였던 비평이 ‘쓰는 독자로서의 자기‘를 바라보는 것으로 나아가야 함을 지시하는 것이겠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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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블로그 글 복붙


🌠 탕의 영혼들
손유미 (지은이)
창비 2023-04-14, 172쪽, 한국시
2023.9월 완독


🌠 미리 참여하는 인천독서대전 프로그램으로 신포동 문학소매점에서 @munhaksomae 1회성 독서모임의 진행자로 뵙게 되었는데 그 날 시인님과 같이 진행하신 평론가님, 참여한 분들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나의 지경을 넓혀주셨던 만남이었다. 그래서 바로 그 다음 주 이어지는 시인님의 시집 북토크를 신청하게 되었다는.

🌠 ‘탕의 영혼들‘이란 제목이 낯설게 느껴져 이질적이고 어렵게 느껴졌으나, 하늘 빛 표지와 살포시 놓여있는 노란 아기 오리들 덕에 무섭지 만은 않다. 표지처럼 순수함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또 읽어나가다 보면 어린 마음 보다는 깊은 마음이 느껴졌다. 어린 마음이 얕은 마음은 아니겠지만, 단순해서 마음이 놓이다가도 파고드는 다른 것들에 어렵게도 다가왔다.

🌠 여전히 시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너무나도 어렵지만, 친해지고 싶은 동경하던 언니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시를 읽는가, 란 질문과 생각들이 북토크 내에서 오갔다. 어려운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 타인에 대해 시선을 두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한 달도 더 지난 기억을 이제 기록하는 거라, 단어는 내 취향이나 대략 이런 어감). 시가 이해가 되었고 아니고, 어렵고 아니고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마음에 남은 구절

● 순간을 앞둔 주인공에게 친구들이 선한 기운을 모아주듯이 그리하여 악당이라는 세력을 물리치고 행복한 결말 모두활짝 웃으며 달려나가는 그런 결말이 내게는

목욕탕

목욕탕에 있다

16 (탕의 영혼들)


● 누군가, 왔다 인기척이 들렸다 현관에 나갔는데......이런 식으로 한눈을 팔아서 한눈을 팔지 않았다면 맞이할수도 있었을 중요한 순간을 놓쳐버렸다 그러니까

20 (팥알만큼이나 팥알만큼이나)


● 지나치게 끓인 팥죽은 너무 되고 된 것은
무겁고 문득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 당신 아마

21 (팥알만큼이나 팥알만큼이나)


●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네 우리 자매여졸음을 옆구리에 끼고 앉아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내자고 그런 순간에

37 (방문)


● 과거형으로 말해줄래?

단속을 마치고 문을 닫듯이,
오래 헤맨 문장에서 네가 빠져나가려고 하네

40 (기민히 사라진)

● 달아나는 이유 생각나지 않아 하지만
달아나는 게 익숙해 발이 멈추지
않고 일단 익숙한 대로 말이

43 (쓰르라미 울 무렵)


● 신이 멀어
귀신의 손을 잡는다

아름답지 못할 바엔
잡귀가 되는 게 낫다

48 (수의같은 안개는 내리고)


●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가장 긴 시간이 떨어졌다
68 (벌내로)


● 복숭아는 여름의 결실
분홍은 여름의 애교
이 모든 걸 담아낸 말랑이는 마음이
함께 흘러
86 (복숭아와 오다)


● 압도적인 고독과 언뜻언뜻한 외로움 사이를 짚는 순록의 발과
허공을 찌르는 뿔에 열매처럼 매달린 고요와 같은 것들이
92 (순록 부락)


● 내가 너를 믿듯 네가 나를 믿는다면 네가 나를 믿듯 내가 나를 믿는다면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더없이 개의 사람을자랄 수 있다 사람의 몸으로 그러니 기다려줘 데려가고 있어
103 (신뢰하는 에게)


● 고양이가 있었어 모르는 사이에
고요하고 나란하게 지내고 있었네
104 (고양이 담벼락)


● 바닥 마음 크기만큼 내가 가진 것은,

남은 목숨에 성실할 것

데면데면하게 여기며 손님 대우 할 것

내 등에 올라탄 나의 지구들

110 (마음 바닥의 가오리)


● 그리고 아주 잠깐 가지런하게 손을 모으며
순금같이 여기며 사랑할게 오늘은 그럴게
사는 것 앞에 고개를 숙이고
171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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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준은 끊임없이 계산했다.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그만의 테마곡이었다. 암산이 잘 되지 않는 것을 핑계로 들어오는 돈은 반올림의 반올림을 해서 올리고, 나가는 금액은 반올림의 반올림으로 내렸다. 가상의 금액으로 암산에 암산을 거듭하자 제법 마음에 드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 P57

사준의 머리는 생각하는 걸 멈췄다. 벌어진 일과 이제 곧 벌어질 일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서지 않았다.
- P84

이루 말할 수 없는 허무함이 사준을 감쌌다. 자신이 영두에게 가졌던 그 모든 감정들이,
악의와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감정들이 이렇게 부질없는 것이었다니. 
- P91

나는 늙은 인간과 산책하던길목, 늙은 인간이 좋아하던 언덕의 풍경, 가끔 몰래 빠져나와거리의 친구들을 만나던 아지트, 그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광경을 똑똑히 눈에 담았다. 그다지 슬프지는 않았다.
- P98

인간들은 다를까? 그들은 찰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쓸모있는 기계들을 많이 만들어 내니 기억의 조각을 보관하는 일쯤은 저들에게 쉬울 수도 있겠다. 허나 그렇다면, 어떻게 그 많은 상처들을 안고 살아가는 걸까?
- P98

기억이란 건 신기하다. 체에 거르듯이 회상에 회상을 거듭하다보면 결국 잠시 돌아가고 싶은 그런 순간들만 남았다.
- P98

지나간 시간에 붙잡혀 사는 것은 무척 외로운 일이다. 나는 그 애가 외롭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 P99

나는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가 차라리 화를 냈으면 했다. 화라는 것은 감정을 드러내는 거니까 계속 쌓고 쌓다 보면 쌓아 둔 무게만큼 외로워진다.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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