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보편적 인권을 믿는다면 공리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면, 단순히 집단적 행복의 도구로 취급되는 것은 옳지 않다(‘행복한 도시‘를 위해 지하실에서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아이의 이야기를 기억하라). - P161
아이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비난하더라도, 전체 공리가 줄었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과, 그런 행위는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고 아이에게 부당한처사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은 다르다. - P161
처음엔 칸트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엄두가나지 않지만, 그의 철학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현대의 도덕 및 정치적 사고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러므로 칸트를 이해하는 것은 철학적 훈련일 뿐 아니라, 공적 삶의 핵심 사고방식을 살펴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 P164
칸트는 공리주의를 거부했다. 공리주의는 권리 역시 무엇이 최대 행복을 만들어 내는가를 따져 보는 계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듦으로써권리를 취약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더 큰 문제가 있다. 우리에게 생겨나는 욕구들로부터 도덕 원칙을 끌어내려 함으로써 도덕을 생각하는 방식부터 그르친다. - P165
칸트는 이성적 능력이 우리 능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선뜻 인정한다. 우리는 쾌락과 고통을 느낄 능력도 있다. 그는 우리가 이성적존재일 뿐 아니라 유정적sentient 존재라고 말한다. 칸트가 말하는 ‘유정적 능력‘이란 감각과 느낌에 반응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벤담이 옳았지만 절반만 옳았다. 우리가 쾌락을 좋아하고 고통을 싫어한다는 점에서벤담은 옳았다. 하지만 쾌락과 고통이 ‘우리의 통치권자‘라는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 - P167
여기에 자율autonomy로서의 자유와 칸트가 말하는 도덕 간에 관계가있다. 자유로운 행동은 주어진 목적을 위한 최선의 수단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를 선택하는 것이다. 즉 인간만이 할 수 있고 당구공(그리고 대부분의 동물)은 할 수 없는 선택이다. - P170
칸트의 견해에 따르면, 도덕과 관련된 실천 이성은 도구가 아니라 "어떤 경험적 목적에 상관없이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순수 실천 이성"이다. - P181
주목해야 할 부분은 흥미롭게도 타살과 자살이 같은 이유로 정언 명령에 어긋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도덕적인 면에서 타살과 자살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는 그 사람의 의지를 거슬러 목숨을 빼앗는 행위인 반면에, 자살은 자신의 선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을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칸트의 시각으로 보면, 타살이나 자살이나 근본은같다. - P186
칸트는 이렇게 썼다. "어리석은 사람의 이성으로 자유를 온전히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듯이, 가장 난해하고 복잡한 철학으로도 불가능하다." 그가 오늘날 세상에 있다면 아무리 인지신경과학이 정교하다고해도 이 역시 불가능하다고 덧붙였을 것이다. - P195
꼼수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덕적으로 중요한 뭔가는 명백한 거짓말이냐, 교묘한 회피냐의 차이에 달렸을 때가 많다. - P202
롤스는 우리가 그런 사실들을 다룰 때, "서로의 운명을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에 도움이 되도록 각자에게 우연히 주어진 선천적·사회적여건을 [우리를 위해] 이용하자"고 제안한다. 롤스의 정의론이 궁극적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이론은 미국 정치 철학이 지금까지 내놓은, 좀 더 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임이 분명하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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