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말해야 할까. 나는 그 수업의 모든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시멘트에 밴 습기가 오래도록 머물던 지하 강의실의 서늘한 냄새 천원짜리 무선 스프링 노트 위에 까만 플러스펜으로 글자를 쓸때의 느낌, 그녀의 낮은 목소리가 작은 강의실에 퍼져나가던 울림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 P10

"사람이요. 저 사람 왜저래? 그러면서 혼자 생각하는 거예요.
정말 왜저럴까. 응대하다보면 개인적으로 얘기해보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어요."
- P15

마치 카세트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책을 읽는 동안 그녀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P17

햇볕이 잘 드는 담장 앞에 앉아 황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일, 다시 길을 가려고 하면 졸졸 쫓아오는 황구가 자기 집을 못 찾아갈까봐 쫓아오지 마, 쫓아오지 마, 소리치며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쓰던 골목, 
- P18

그 글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나는 그곳을 언제나 떠나고 싶었지만 내가 떠나기도 전에 내가 깃들었던 모든 곳이 먼저 나를 떠났다. 나는 그렇게, 타의로 용산을 떠난 셈이 되었다‘라고 썼다.
- P20

이겨내기 어려웠을것이 분명한 비참한 순간에 대해 기록하고는 바로 다음 단락에서 슈퍼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태연하게 스크류바를 먹는 장면을적는 식이었다. 본인이 의도했든 그러지 않았든 그런 식의 구성이 여러번 반복되었는데, 그게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에게는 그런 아프고 폭력적인 순간들이 스크류바를 먹는 순간만큼이나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 P21

나라면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쓰지 못했으리라고, 앞으로도 결코 이런 식으로 나에 대해 쓸 수 없으리라고 느꼈고, 그녀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생각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었다는 걸 그녀에게 말하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 P21

"앞서 얘기한 학생의 의견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죠. 그것도말을 끊어가면서 "
- P24

내가 상처 입었다. 라고 말할 자격조차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므로, 그렇지만 상처받았다는 사실은 사실 그대로 내 마음에 남아 있었다.

- P27

나는 아직도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영혼을,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행동이라는 말을.
- P33

비록 동의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지금의 나는생각한다.
- P42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 P43

언젠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긴 숨을 내쉬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일 것처럼 떠올랐다.
그 모습이 흩어지지 않도록 어둠 속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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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노스케가 경솔한 것처럼 이 아가씨도 호기심이 많은가 보다. 피장파장인가.
- P487

음모는 되도록 은밀하게, 비밀을 아는 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
- P489

"나는 미마스 씨처럼 되지는 않아."
쇼노스케는 아직 인간이라는 존재를 신뢰하길 그만두지 않았으니까.
"미마스 씨가 배를 가르신 건 이 세상에 있을 의미를 찾을 수없게 됐기 때문이야. 살아갈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야. 무사의체면 탓이 아니야."
나는 해야 할 일이 있다. 모기떼가 수선스러운 여름 석양 아래 긴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쇼노스케는 생각했다.
- P512

"없었지. 누구 한 사람, 네놈 아버지를 두둔하는 자가 나타나지 않았어. 내가 꾸며낸 문서가 네놈 아버지의 명예보다, 신용보다 무거웠던 거야. 네놈 아버지의 목숨따위 문서 한 장의 무게만도 못 했어."
- P520

아버지에게조차 제가 아버지를 믿는다는 목소리가전달되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저는 믿었습니다. 지금도 믿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찾은 겁니다.
- P522

자신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지혜에의 이면도.
형님의 본마음도.
- P559

 "너도 마찬가지다, 가쓰노스케 도망쳐 목숨을 부지해라. 그리고 생각해라. 여생을 다바쳐 생각해라. 네 아버지는 훌륭한 무사였다."
- P590

마음의 눈에 보이고 마음의 귀에 들리는 것은 미야노번 수발인 나가호리 긴고로의 모습과 그의 목소리였다. 주름진 얼굴, 따뜻한 그 목소리였다.
여기 도네이에서 그가 주인 간타로에게 한 말이었다.
잘 생각해보게. 주인장의 아버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어느 쪽이겠나.
- P594

우연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은 좁지만,
그 좁은 곳에서 온갖 계산이 충돌하며 소용돌이를 그리고 있다.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 전부 엎어지고 말았다.
그래도 지금,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었다.
쇼노스케는 오시코미 고멘로를 움직였다. 
- P595

마음을 버리는 게 불가능한 이상, 사람은 감정을 품게 마련이다. 감정이 다르면 똑같은 것을 앞에 두고도 보이는 것이 전혀다르다. 추구하는 것도 달라진다.
- P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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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쉽지 않다. 짊어지기 버거운 짐이다. 
- P400

낚싯바늘은 물고기 입에 걸리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끝이 구부러져 있거든. 거짓말도 그렇구나. 그렇기에 남을 낚기는쉽지만 일단 걸리고 나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자기 마음을나는 것도 쉽지만 역시 걸리고 나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그래도 빼려고 들면 그냥 찔려 있을 때보다 더 깊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의 마음도 후벼 파게 되는 것이야.
- P401

와카 씨도 참 난감한 사람이다. 난감한 사람이지만.....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다.
수면은 잔잔한데 쇼노스케의 마음속에는 잔물결이 일고 있었다. 기분 좋은 잔물결이.
- P442

사람은 눈으로 사물을 본다. 하지만 본 것을 기억하는 것은마음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눈으로 본 것을 마음에 기억하는일의 축적이며, 마음도 그럼으로써 성장한다. 마음이 사물을 보는 데 능해진다. 눈은 사물을 보기만 하지만, 마음은 본 것을 해석한다. 그 해석이 가끔은 눈으로 본 것과 다를 때도 생긴다.
- P451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게 마련이고, 어쩌다가 덜컥 변하기도하는 것이야. 새벽에는 이게 옳다고 믿었던 것이 저녁에는 빛바래 보이는 일도 있지 않나."
-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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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나누어서 그날의 일기처럼 엿보고 싶었다. 그렇게 읽어보았다. 다른 가족의 삶을 엿보나, 우리 가족 생각도 했다.

참 다른 성격들인데, 남들보기엔 닮았을거다. 그게 가족이니. 다들 한 고집하지만 또 서로를 엄청나게 배려한다.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보는건 낯설지만 따뜻했다. 그리고 계속 세상은 바뀌겠지.

할 말 다할거 같은 이슬아 작가가 부럽다. 나도 어릴때부터 가장 아닌 가장노릇을 했는데, 내가 더 이른 시간에 태어나서일까, 성격때문일까. 다른 이슬아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간절히 든다. 그렇게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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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올라탄 배라기보다 정신이 들고 보니 이미 나루를 떠난 배라고 할까. 어쨌거나 이제는 내릴 방법이 없을 듯했다.
- P347

에도 사람들은 이런 아가씨를 가리켜 ‘오찻피‘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쇼노스케의 고향에서는 ‘와사시이‘라고 한다. 입담이 좋고대가 세다는 뜻인데, 쓰기 나름으로 좋은 뜻일 수도 있고 나쁜 뜻일 수도 있는 것은 두 곳 다 같다.
- P387

미카와야를 위에서 내려다보느냐, 밑에서 올려다보느냐.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알 수 있는 일과 알 수 없는 일이 있노라고 쓰타는 타이르듯 이야기했다.
- P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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