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는 일단 이번주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 정도를 생각하며 살았다. 웅이는 미래 계획에 관해 딱히 묻지 않는 보기드문 어른이었다. 미래에 관해 오리무중인 것은 웅이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 P121

할말이 없어진 철이가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괴롭겠다………… 대박………"
슬아는 허공을 보며 중얼거린다.
"무슨 일을 해도 괴로운 건 마찬가진데…………"
그러다가 철이를 돌아본다. 철이의 빡빡머리와 완벽한 두상을 응시하며 슬아가 말한다.
"잘하고 싶은 일로 괴로우면 그나마 낫잖아."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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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카타, 라고 말하면 마음이 놓였다. 요카타는 다행이란 말보다 더 다행 같았다.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어도 요카타라고 말하면 안심이 되었다. 어쩌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하루하루를 요카타, 라는 말로 체념하고 요카타, 라는 말로 달래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야 오늘을, 다시 내일을 살아갈 수 있었으니까.
- P35

이곳의 천장은 너무 하얗다. 다른 색으로 칠해보고 싶어.
무슨 색이 좋을까.
- P63

안나가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냐고 묻자 미영이 말했다.
나의 안녕과 건강을 바라지. 이 작은 방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 P66

"고양이는 행복할 때 진동 소리처럼 몸을 울리는 소리를 내는데 사실은 아플 때도 그래. 그 소리를 우리가 구분할 수있을까? 내가 제대로 구분한 건지 자신이 없어."
마지막 순간에도 치자는 은재의 품 안에서 골골송을 불렀다고 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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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삼십대 땐 로즈 시절이었어~"
슬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정정한다.
"리즈 시절이겠지..."
- P111

슬아가 복희를 본다. 머리엔 꽃을 단 엄마가 치마를 펄럭이며 현관을 나선다. 어쩐지 만개한 사람 같다.
"로즈 시절이네."
슬아가 중얼거린다. 복희가 총총 멀어진다. 그의 전성기가 지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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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화, 그러니까 백 살치고 세련된 내 이름은 본래 언니 것이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몇 달 뒤 죽었다는 언니, 서연화. - P21

내가 알 리도 없지만 대답을 원하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진이라면 대뜸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할머니? 하고 물었겠지. 나이가 들면 묻지 않아도 짐작되는 일들이 있다. 
- P23

일본군들이 동네 소녀들을 잡아가고 있었다. 순덕이와 정순이도 하룻밤 사이 사라졌다. 아버지가 식도 올리지않은 채 후지타 방에 들여보냈다는 얘기를 들려주면 진은 뭐라고 할까.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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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는 느낌이 좋아
북플기간 안되어 못올린 좋은구절 한번에..

이 세상은 알 수 없는 은유로 가득해
10 (오래된 영화)

어둠 속에서 이야기는 생겨나고
종이 한장의 무게란
거의 눈송이 하나만큼의 무게이겠으나
13 (밤이 검은 건)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무겁다지만
이야기를 품은 인간의 무게만 할까
14 (밤이 검은 건)

이제는 작은 것을 말하고 싶어요
20 (꽃 없는 묘비. 우크라이나에게)

그런데 이상하게 감동적인 거 말고
정직하게 좋은 시
쓰고 싶었는데요
31 (희망이 시간을 시간이 미래를)

내가 포착한 에리카와
그 포착을 빠져나가는 에리카 사이
39 (에리카라는 이름의 나라)

세상이 흔들리는데 우리도 같이 흔들려서 세상이 똑바로
보이는거라고
42 (한강)

하늘에 이를 대고 올려다보면
세상이 거꾸로 쏟아지는 느낌이야
50 (그레텔과 그레털)

세상은 계속 복잡하고 어지러울 거란다
그렇다고 세상이 아름답지 않은 것도 아니란다
55 (넓어지는 세계)

너는 내 손을 잡고 문득 흔들었지
우리가 각자 삶의 외로운
구경꾼이자 싸움꾼이었을 때
64 (우연한 열매)

미완성의식사
불협화음의 목소리
끝나지 않는 서사를 사랑하리
71 (우리는 베를린에서)

어째서 신은
텅 빈새장을 이렇게나 많이 걸어두었을까
81 (키키 스미스, 일요일)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선 한줌의 어둠, 약간의 슬
픔이 필요해
86 (둥근 탁자)

창가에 매달려 있는 여자는 사실
비내린 거리를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자기의 전 생애를 발끝에 걸어보고 있는 거야
91 (밤은 신의 놀이)

우리는 알지
마음이 얼마나 연약한가에 대해
101 (다 먹은 옥수수와 말랑말랑한 마음 같은 것)

액자 속에는 이제 사라진 빙하와
지나간 풍요와 낙관의 시대,
완전히 변해버린 우리 자신이 있고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가고 있지.
106 (천사와 악마)

무엇도 먹히려고 있는 것은 아닐 텐데
무엇이든 먹어서 우리는 살아 있고
116 (미래의 콩)

슬픔이란 아이러니한 장르야. 책방에 불을켠 우리는 슬
픔을 촛농과 웃음으로 녹이기를 반복하지.
122 (이야기 백화점)

세상의 불행은
불운한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고
세상은 불의로 인해 굴러가지
137 (호두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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