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두 아이가 무심해 보이는 것이 내가 보기에는 아내의 슬픔과 전반적 불만의 주요 원인이었다. 나는 이 불만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시골로 오기 전에는 어렴풋이 알았을 뿐이다. 
- P215

그러니까 누구나 어쩌다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 부닥칠 수 있고, 그 순간의 압박때문에 전혀 자기답지 않은 일을 하여 한 단어에 어쩌면 한 문장 전체에 줄을 그냥 가장 간단한 줄을 그을 수 있다는 거다.
- P217

 하지만 남자애는 뭐, 성장을 했지. 남자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몰라. 뭔 일이 있었겠지 뭐. 남자애는 잔인해지려는 의도는 없었는데도 잔인해졌고.
- P227

보안관보는 잠시 그녀를 건너다보았다. 손전등으로 하이힐을이어 모자를 비추었다. "완전히 차려입으셨네요."
"남편을 떠나는 중이라서요."
보안관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이해한다는 듯이. (하지만 그는 이해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 P229

만일 그렇다면, 나는 이제 역사 바깥에 있는 셈이 된다-말과 안개처럼, 또는 내 역사가 나를 떠났다고 말할 수도 있다. 또는 내가 역사 없이 계속 가야 한다고. 또는 이제 역사는 나 없이 존재해야한다고 할 수도 있다 - 아내가 편지를 더 쓰거나, 가령 일기를 쓰는 친구에게 말을 하지 않는 한 만일 그렇게 한다면, 세월이 흐른 뒤 누군가 이 시기를 돌아보고 기록에 따라, 그 조각과 장광설에 따라, 그 침묵과 빈정거림에 따라 해석할 수 있다. 그 순간 자서전이 이 가엾은 남자의 역사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그리고내가 역사에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안녕 내 사랑.
- P239

누군가 마침내 전화를 받았을 때 닥터 슈뵈러는 호텔에서 가장 좋은 샴페인을 한 병 주문했다. "잔은 몇 개나?" 그는 질문을 받았다. "셋!" 의사가 송화기에 대고 소리쳤다. "그리고 서두르쇼. 알아들었소?" 보기 드문 영감의 순간이었다. 너무나도 적절해서 불가피해 보일 정도라 나중에 보면 영감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 않은 순간.
- P253

 그들은 표정을 교환했다-체호프, 올가, 닥터슈뵈러 잔을 부딪치지는 않았다. 건배사는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마실 것인가? 죽음을 위해? 체호프가 남은 힘을 그러모아 말했다. "샴페인을 마신 지 꽤 오래됐군." 
- P254

바로 그 순간 샴페인 병의 코르크가 펑 튀어나갔다. 테이블로 거품이 쏟아져내렸다. 올가는 체호프의 침대로 돌아갔다. 그녀는 발판에 앉아 그의 손을 잡고 가끔 얼굴을 쓰다듬었다. "사람의 목소리, 일상적인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기록했다. "오직 아름다움, 평화, 그리고 죽음의 장엄뿐이었다."
- P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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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가꾸는 일은 놀이 삼아 하면 즐겁지만, 생활과 의무가 되면 즐거움이 사라져버린다.
- P8

이곳에서는 봄이 왔다고 저절로 나타나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벌거벗은 화단은 흙을 고르고 씨를 뿌려줄 사람의 손길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
- P9

은빛 버들가지를 꺾어다 방에 꽂아두고, 당연한 듯 제때에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는 경이로움을 기분 좋게 감탄하며 바라볼 수 있다. 생각은 많아도 걱정 따위는 하나도 없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만 바라볼 뿐, 밤에 내릴 서리나 풍뎅이 애벌레, 쥐 또는 다른 피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 P10

그것들이 시들고 썩고 분해되는 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다. 어느것 하나 그냥 버려지는 건 없다. 정원사가 세심하게 보관한 그런 추한 쓰레기 더미는 햇빛과 비, 안개, 공기, 추위에 산산이 부서진다.
다시 한 해가 지나고 여름이 화려하게 정원에 돌아오면, 시체였던 모든 것들은 어느새 썩어서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그 땅을 기름지고 검고 비옥하게 만든다. 그리고 얼마안 가서 우중충한 쓰레기더미와 식물의 시체에서 다시 새싹이 난다. 썩어 분해되었던 것들이 힘차게 다시 색채를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돌아온다. 
- P16

모든 작은 정원에서 그런 순환이 조용하고 분명하게 빨리 진행된다. 여름은 지난해의 죽음에서 양분을 얻어 소생한다.
흙에서 식물로 자라난 것과 똑같이 모든 식물은 다시 조용하고 확실하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 P17

다른 모든 이들처럼 나도 이 질서정연한 자연의 순환을 당연한 일이자 근본적으로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씨앗을 뿌리고 수확을 할 때, 땅 위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이런 순환에서 빠져 있고,
무한한 순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개인적인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려 하는 것이 참으로 기이하지 않은가, 생각하곤 한다.
- P17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은 하늘 아래서 나눈 우리의 아침대화는 그저 대화 자체를 위한 것으로, 하나의 놀이이자 오락이며 결과를 문제 삼지 않는 순수한 미적 행위였다.
로렌초의 선량한 늙은 얼굴을 보며, 대화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적절한 정중함으로 방어벽을 치는그의 외교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즐거웠다.
- P23

괴테의 시처럼 "모든 햇살과 모든 나무, 모든 바다와 모든 꿈이 그의 심장에 모였다." 이제 그는 정원 한구석에 갇혀있다. 그가 관리하고 설계하고 만들고 다듬고 거닐고 생활했던 곳. 익숙한 나무와 풀, 관목과 꽃밭이 있는 곳. 세상은 작아졌지만 충만함은 작아지지 않았고, 장미 덩굴은 넓은 세계와 바다보다 덜 지쳐 보인다. 모든 소유는 구속이었고, 모든 이해는 포기였으며, 모든 포기는 미소와 생각안에서 미화되었다.
- P29

늙은 원시인은 다시 멀리서 떠다니는 다채로운 산봉우리를 보며, 자신의 마음을 살폈다. 그는 북쪽, 포기하는쪽, 그리고 채울 수 없는 갈망의 편에 섰다. 그러나 전투는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가 인생의 절정을 넘은 뒤, 계곡의 긴 그림자 안으로 깊이 내려간 뒤, 그의 생각은 죽음의 공포를 버렸다. 
- P31

아, 그리고 이 여름 소리! 누군가에게는 편안하고 누군가에게는 슬픈 소리. 그리고 내가 아주 사랑했던 소리. 자정이 지날 때까지 한없이 계속되는 수매미 울음소리다. 그소리에 완전히 자신을 잃을 수 있다. 쉬익쉬익 속삭이며 휘청이는 이삭들의 바다를 볼 때처럼 줄곧 잠복해 있던 천둥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모기떼. 멀리까지 퍼지는 익숙한 낫 가는 소리. 후텁지근한 바람과 느닷없이 쏟아지는 빗방울의 열정적인 추락.
- P38

 키다리 목련나무는 성장하는 모든 것, 충동적이고 자연적인 삶, 근심 걱정 없는 생활, 충만한 풍성함의 상징이자 유혹의 소리 같다.
그에 반해 침묵을 지키는 난쟁이 나무는 의심의 여지 없이 목련나무와 정반대다. 그렇게 많은 공간을 요구하지 않고, 흥에 겨워 마음껏 즐기지도 않으며, 끈기를 갖고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자연이 아니라 정신이다. 충동이 아니라 의지다. 
- P43

몇 년 동안은 전쟁에서 승리했다. 온 국민이 완전히 지칠 때까지 환호하고 기뻐하면서 피곤한 승리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붕괴하고 말았다. 그리고 옛날 그토록 비난했던비관주의자들의 위로를 받으며 계속 살아나갈 용기를 얻어야만 했다. 그때의 체험을 절대 잊을 수 없다.

- P43

키다리 목련나무와 난쟁이 분재, 이 두 나무는 자연의모든 것이 그렇듯, 각자 자기 자신과 자신의 권리를 지키며 대립에 개의치 않고 마주 서 있다. 둘 다 강하고 끈질기다.  - P47

 비록 이 감정이 어느 정도는 노쇠했겠지만 절대 약해지지 않았고, 특히 이 꽃이 시들 때 더욱 강렬해집니다! 꽃병 속에서 서서히 빛이 바래 죽어가는 백일홍을 바라보며 죽음의 춤을 체험하고, 삶의 무상함을 슬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소중히 받아들입니다. 가장 무상한 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꽃이며 가장 사랑스러운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P59

조금 있으면 7시도 되기 전에 불을 켜야만 할 것이고, 점점 더 일찍 켜야 할 것이다. 조금 있으면 어둠과 안개, 추위와 겨울에 익숙해질 것이고, 세상이 한때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고 완벽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 P67

적갈색과 자주색, 회색이 감도는 나방의 날개 표면에 창조의 모든 비밀이 새겨져 있다. 온갖 마법과 온갖 저주, 수천 개의 얼굴로 창조의 비밀이 우리를 올려다보다가 다시 꺼져간다. 우리는 아무것도 붙잡을 수가 없다.
- P70

햇살이 더욱 진해지고
색색이 고운 꽃받침 안에서 더욱 강렬하게 빛난다아, 우리 인간 동물은 가지지 못한 모든 것들
너희들 안에서 활짝 꽃피어내기를 갈망하니
- P71

나무는 늘 가장 깊은 감명을 주는 설교자다. 사람들 사이에서, 집안에서, 숲에서, 들판에서 자라는 나무를 존경한다. 홀로 자라는 나무를 특히 더 존경한다. 그런 나무는 고독한 사람 같다. 나약함 때문에 현실에서 도피한 외로운 은둔자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 위대한 사람 같다.
- P76

너무 서글퍼서 삶을 견디기가 어려워지면, 나무가 우리에게 말한다.
"진정해! 진정해! 나를 보렴! 삶은 쉽지도, 어렵지도 않아. 그런 건 모두 유치한 생각일 뿐이지. 네 안에서 신이말씀하도록 하면 그런 유치한 생각은 침묵하게 된단다. 네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네가 가는 길이 어머니로부터, 고향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이야. 그러나 너는 내딛는걸음마다 날마다 다시 어머니에게로 인도되지. 고향이란여기 아니면 저기에 따로 있는 게 아니야. 고향은 네 안에있을 뿐, 다른 어디에도 없어."
- P78

방랑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이고, 어머니를 기억하고 인생의 새로운 균형을 찾으려는 동경이다. 방랑은 집으로 안내한다. 모든 길은 집으로 향한다. 모든 걸음이 탄생이고, 모든 걸음이 죽음이며, 모든 무덤이 어머니다.
- P79

나무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가 갈망하는 것은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 P79

나는 삶에 만족하고, 삶과 화해한다
수없이 찢기고 쪼개졌던 잔가지에서
끈질기게 새잎을 싹틔우리라
그리고 온갖 바람에도 꿋꿋이 버티리라
이 미친 세상을, 나는 사랑한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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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택 정보지를 보면서, 이렇게나 많은 물건이 나오고 게다가 어느 물건이나 사려는 사람이 나선다는 사실에 소박하게 놀랐다. 
- P10

 아키코는 머릿속의기억을 확인하듯이 잠시 사이를 두고 나서 천천히, 분명하게 대답했다.
- P138

히코네는 끄덕였다. 무슨 일에서나 순위를 중시하는 일본인은 어떤 축전을 읽고 어느 것을 읽지 않았나 하는 사소한 일에도 까다롭다.
- P141

주제넘은 짓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한 일은 아니에요. 
- P142

"피로연에는 신랑 신부와 가로줄 관계밖에 없는 분도, 세로줄 관계밖에 없는 분도 한자리에 모이잖아요? 파고들어 보자면, 피로연에 나란히 앉은 사람들은 신랑 신부의 스펙트럼이라고 할 수 있지않겠어요?"
스펙트럼, 프리즘을 통해 갈라진 빛의 열.
게다가 이 스펙트럼은 말없이 앉아 있기만 하지 않고, 이야기하고 웃고 손뼉 치고 표정을 바꾼다. 제각기 자신밖에 모르는 비밀을품은 채.
- P159

그게 그렇잖은가. 추리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범죄는 결국 반드시 해결된다. 즉, 그것을 꾀한 범인 측에서 보자면 실패함으로써 범죄는 완결된다.
- P184

도쿄 근교, 오 분만 걸어가면 시원한 숲에 둘러싸인 산책로로 나갈 수 있는 신흥 주택지 한 귀퉁이에 조신한 책방이 있다.
- P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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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말한다. 너는 진짜 개자식이야. 그거 알아? 무자비하고 무정한 개자식이라고. 혹시 누가 그런 얘기 해줬어?
당신이 했잖아, 내가 말한다. 여러 번.
그녀가 말한다. 나는 늘 진실만 말해. 그게 상처가 되더라도. 내가 거짓말하다 들키거나 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어.
- P137

그녀가 말한다. 정말 오랫동안, 허니, 나는 위로할 수 없는 사람이었어. 위로할 수 없었다고, 그녀가 말한다. 그 말을 수첩에 적어. 경험상 그게 영어에서 가장 슬픈 말이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어. 어쨌든 마침내 나는 극복을 했어. 시간은 신사다,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말했지. 아니면 시간은 지쳐버린 늙은 여자일지도몰라. 뭐 이거 아니면 저거겠지.
- P142

그녀가 말한다. 어쩌면 언젠가 당신이 다시 올 수도 있겠지.
어쩌면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이건 차츰 흐릿해질 거야. 알잖아.
- P145

사실 할 수있다면 몰리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이제 그녀는 다른 사람이다. 그녀는 이제 몰리가 아니다. 하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도 다른 사람인데.
- P160

나는 도울 수 있어 기뻤다. 그저 복권 당첨될 필요가 있을 뿐이었다.
- P192

"형한테 이런 부탁하기 정말 싫지만 "동생이 그 말을 하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그 짓을 했다. 동생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고 부탁했다.
- P194

나는 일보 전진하면 이 보 후퇴하고있어. 무너지고 있어. 너는 완전히 무너지면서 나도 함께 끌어내리고 있어.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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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들은 경험에서 배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 P99

내 친구 마야 바힐렐은 더블 침대용 커버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했는데, 마침 세일 중이었다. 정상가는 킹 사이즈가 300달러였고, 퀸사이즈는 250달러,
더블은 200달러였다. 그런데 이번 주만 사이즈에 관계없이 모두150달러에 판매한다고 했다. 마야는 유혹을 참지 못하고 그만 킹사이즈 커버를 사버리고 말았다.
- P109

사람들은 대부분단지 거래 자체가 너무 좋다는 이유만으로 별로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사야 하는‘ 물건을 창고에 고이 모셔둔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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