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전의 무용한 멈춤에서 유용한 시작을 발견했다. 모든 끝과 시작은 맞닿아 있듯 이 잠깐의 멈춤은 일상에서 누군가를 미워했던 지난 나의 끝이기도 여행에서 누군가를 사랑할 지금 나의 시작이기도 했다. - P14
나는 여행자가 되었고 마침내 순례자가 되었다. 마지막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를 완전히 놓아주는 것이다. 걸어가는 느리지만 분명한 이 길 위에 그의 도태와 낙오 그리고 절망을 바랐던 나의 마음 또한 놓아두고 간다. - P28
그는 아파레시다와 대화할 때 갑자기 큰 소리를 내거나 말을 무척이나 빨리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는데 ‘신께서 그에게 감격스러운 다정함을 준 대신 안타깝게도 무엇 하나를 가져가셨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그럴 수도 있지. - P43
내 사진이그들에게 가 닿아 그때에 이렇게 아름다운 길을 걸었노라고길에서 한국 청년 ‘Bang‘이 보니또한, 예쁜 사진을 찍어주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그렇다면 나는 내가 찍은 이 사진을 혼자 보던 방에서 나와 언젠가 마주할 한없이 슬퍼할 어떤 순간에 혼자가 아닐 것이다. - P46
몸을 감싸던 바람막이를 벗어 가방에 넣고 신발 끈을 고쳐 맸다. 길은 이곳에 있다. 그 누구도 혐오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이 길 위에서 다시 걸어간다. 나는 존재하는 단단한 길. 그것으로 되었다. - P61
무례한 순례자들, 그들은 이 길 위에서 순례자다. 그러나 이길을 떠나는 순간 순례자가 아니다. 이 길 위에서 걸으면서 생각하면서 그들의 무례함을 버리면서 나아가면서 웃기도 하고울기도 하길 바란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이 길 위를떠날 때 무례한 순례자에서 무례한 자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 P73
아니면 무엇을 알려주지 않아도, 어떤 의미가 되지 않아도,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건지 생각하면서 매일 길 위에 선다. 느슨한 동행인 우리는 오늘도 어김없이 함께 걷는다. 따로또 같이. - P84
지친 마음과 몸으로 나는 왜 이 길을 걷고 있을까 생각하는 밤을 보낸지 며칠이 지났다. 답은 쉽사리 내게 와 닿지 않았고 때문에 걷는 시간이 고통스러워 길의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나는 그들과 같은 바보가 아니라고 나는 뚜렷한 목적을가지고 이 길 위에 섰다는 오만한 생각 속에서 발버둥치고있었다. - P106
길 위에서의 그냥 나를 내버려 두고 길 위에서 오늘을 위해 살아가는 것뿐이지 않을까. 그것뿐이면 충분한데 나는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 있지도 않은 것을 찾기 위해 나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았는지 생각한다. 그렇게 그뿐인 것을 받아들이고 나 또한 바보가 된다. - P112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내가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과 타인이 작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다르고 그차이는 크다고 생각한다.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었지만 나보다 더 써내는 사람, 배 선생님은 작가보다 더 작가 같았다. - P120
오늘 떠나신 배 선생님 부부도 오늘 찾아온 써니도 내일 헤어질 지훈이도 우리가 이길 위에서 만나 보낸 시간이 ‘End‘ 가 아닌 ‘And‘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속한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 P123
누군가를 먼저 보내주는 것이 이토록 힘든 것임을 깨닫는다. 이 길 위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지만 앞서가는 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는 철저히 패자가 된 기분에 사로잡힌다. - P126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 껍데기와 자물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또 다른 순례자인 마리온 할머니의 보내주는 마음에 상처를 냈다는 사실이 가슴 아팠다. 난 그 이야기를 들은 뒤 가리비 껍데기를 고쳐 달아 더 이상 딸깍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했다. - P129
상처는 나 스스로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기꺼이 보내주지 못했던 내 마음이 오히려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제야 돌아본다. - P130
길 위에서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답을 낼 수 없는 질문을거듭하다 보면 걷기만 해도 부족한 체력이 금방 소진되기 마련이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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