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은 대개 그다. 가장게 퇴근하는 사람도 그다. 경력이란 그런 대가를 치르면서 쌓아가는 것이다. 
- P34

출근할 때 남자들은 필요한 서류만 챙겨 나갔지만, 사라는 무거운 등껍질을 지고 다니는 거북이처럼 죄의식을 짊어지고 다녀야 했다.
- P40

예전에 일하던 로펌에서 한 여자 동료가 시니어로 막 승진한 상황에서 임신한 사실을 공표했다. 다음날 그의 승진은 취소되고 주니어로 강등당했다. 소리 없는 폭력이었다. 고발하는 사람이 없을 뿐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이었다.
- P41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일이지만, 어쩌면 사라는 남자를 고용함으로써 엄마로서의 자기 자리만큼은 누구에게도 넘겨주지 않으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 P45

사라의 상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완벽한 화장과 유명 디자이너 정장 아래 감춰져 보이지않는다.
그렇지만 상처는 존재한다.
- P45

엄마의 손을 잡고 걷던 랄리타는 불안한 듯 눈을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아이를 겁먹게 하는 것은 트럭이 아니다. 엄마가 주려고 하는 낯선 세계다. 이제 아이는 홀로 그 세계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P52

스미타는 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기뻐하렴, 너는 나처럼 살지 않아도 돼. 나처럼 숨을 참느라 폐가 망가지는 일 없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어.
너는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해. 더 오래, 존중받으며 살아야 해. 
- P51

그의 희망, 어쩌면 정신 나간 꿈, 그의 뱃속에서 날개를 팔랑거리는 나비에 대해 딸에게 어떻게 이야기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54

바로 그 남자, 유쾌하고 흥 많고 건강한, 포도주 애호가이며 집안의 가장이자 공방의 주인이기도 한 남자가 줄리아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서는 안된다. 아직은 이런 식으로는.
- P59

확인할 수 없는 갖가지 가정들이 뒤엉켜 머릿속이 복잡했다. 무엇보다 한 가지 생각이 그를 괴롭혔다.
‘구경꾼처럼 보고만 있었어. 만약 내가 끼어들었더라면・・・・・ 아니 그렇다고 해도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 P64

의사의 입에서 들으나마나한 말이 흘러나왔다.
"대신할 사람이 없는 경우란 없어요."
- P72

‘달리트는 얼마나 많은 호수를 우리의 피로 채워야 이 족쇄에서 풀려날 수 있을까‘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인 채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간다. ‘다음 생은 더 좋을 거야.‘ 라는 희망을 품고서.
- P88

‘안돼, 랄리타가 그들 앞에 무릎 꿇게 할 수는 없어‘
그의 반란은 말없이 고요하다. 그의 결심은 정적에 가려 들리지도 않고 어둠에 묻혀 보이지도 않는다.
오늘, 그의 반란이 움텄다.
- P89

줄리아는 평소보다 두 시간이나 늦게 공방으로 돌아왔다. 걱정하고 있던 노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자전거 바퀴에 구멍이 났다고 둘러댔다.
자전거가 아니라 자기 영혼이 전복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차마 말하지 못했다.
- P101

그의 진료실을 찾은 환자들은 걱정하던 사실을 통고받는 순간 무너져 내렸다. 젊은이도 노인도, 나이와 상관 없이모두가 그랬다. 누구라도 자신의 눈앞에서 삶이 뒤집히면 덤덤할 수 없을 것이다.
- P102

이번 사건은장기 소송이다. 신경전이 난무하고, 희망, 회의, 또 다른 감정들이 꼬리를 물고 교차할 것이다. 간혹 패배감이 고개를 들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이런 종류의 전투에서는 끈기 있게 버티는 쪽이 이긴다.
- P107

사라의 내면은 부서져 조각났지만, 원래 이런 사실은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 P108

그는 용기 있는 여자다. 고통을 견디는 일에는 이골이 났다.
도시로 나가서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 P113

인도에서 매년 살해당하는 여자의 숫자가 200만 명이라고 했다. 그 숫자를 듣고 스미타는 두려움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해 200만, 이들의 죽음에 모두가 무관심했다. 온 세상이 이들의 죽음을 방관했다. 세상은 여자들을 버렸다.
- P116

"나는 다음 생을 기다릴 생각 없어."
스미타는 잘라 말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현재의 삶이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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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있는 이 시간, 내 손이 춤추는 시간이 좋다.
손가락들은 특이한 발레 무용수가 되어
얽히고설킨 하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간다.
이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가 나의 것은 아니다.
- P9

내 어머니는 자기 딸이도랑에서 구토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나는 내 딸이 토하는 모습을 보지 않겠어. 그럴 수는 없어. 결코 그렇게 하지는 않겠어. - P16

아버지가 머리카락에 쏟아붓는 정성에는 참을성과 엄격함, 애정이 녹아 있었다.
- P27

노나의 손가락은 굽고, 살갗은 양피지처럼 쭈글쭈글하지만 눈빛만큼은 세상을 꿰뚫어보듯늘 창창했다. 그가살아온 일흔다섯 해 세월 위에 올라앉아 세상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 P28

독서광이라고 할 정도로 책 읽기를 좋아하는 그는 책들이 가득 들어찬 도서관의 고요한 분위기에 매번 홀린 듯 끌려들어갔다. 가끔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릴 뿐인 그 공간에는 종교적인 무엇인가가 흘렀다. 비밀스런 의식이 숨겨져 있는 분위기랄까.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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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가 전생에 뭔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그 값을 치러야 하는 거라고, 속죄해야 하는 거라고, 아무튼 이번 생은 앞서왔던 생이나 다음에 올생에 비해 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수많은 생 가운데 그저 하나일 뿐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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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생각을 지운다는 생각조차 없이 그저 멍하니 구름과 바다의 물결을 좇는 시간.
- P7

나도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 되었으니까.
- P44

누군가와 기억을 나누지 않으면, 즉 누군가의 마음에 살지 않으면 살아도 살아있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때가 있다. 그런 기분을 자신이 스스로 이해해주고 바라주면 이내 괜찮아지지만 모든 순간을, 그리고 평생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 P54

웃고 있지만 지겹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는자신이 끔찍하다는 생각, 그냥 홀로 누워 완전히 고립되고 싶은 생각. 그게 내가 늘 홀로 떠난 이유였다. 내게 여행은 낭만이 아니라 도피에 가까운 행위다. 
- P55

사는 동안 마중 나가는 다정이 자연스레 몸에 밴다면 좋겠다. 버스나 기차가 멀어질 때까지 손 흔들고 배웅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멀리서 누가 온다고 했을 때 먼저 나가 맞이하는 사람이고 싶다. 
- P72

나는 이곳을 오래도록 그리워하겠구나. 지구 한편에 ‘아는 마을‘이 있어 오래 따뜻하겠구나.
- P75

아, 눈앞의 이 삶이 전부가 아니지, 느끼게 해줄 여행지가 슬픔과 후회에 너무 오래 발목 잡혀 있기엔 그래, 삶에는 다른 좋은 일도 많지, 생각하게 만들어줄 여행지가.
- P79

올려다본 하늘엔 아무것도 반짝이지 않았지만 나는 반짝이는 마음 하나를 쏘아 올렸다. 우리가 그저 안녕하기를. 밤이 지나면 아침이 찾아올 테니까. 그걸 아니까. 고생 끝엔 웃어버리기. 동그란 얼굴들 마주 보고푸하하 웃어버리고 나면 정말로 다 괜찮아졌다. 고생담이 모험담이 되는 한 끗 차이는 결국 웃음이란 걸. 어쩌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 P167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그리고 동시에 나 또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낯선 여행지,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배낭을 메고 혼자걸을 때 느껴지는 짜릿한 감정, 바로 해방감이다. 그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아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는, 여기 머물렀다는 흔적도 없이 훌쩍 사라져버릴 수 있는 이방인의 자격. 
- P192

유명해지고 싶다. 속물같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 P193

목적을 향해 직진할 뿐이다. 그런 길에는 실패가 없다.
하지만 우연도, 행운도 없다.
- P200

도전은 두렵고 실패는 아프다. 현실에서 수없이 겪어봐도 힘든 건 여전하다. 꿈은 허망하고 희망은 잔인하다. 더 이상 어떻게든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차마 발 한번 담가보지 못하고 고개만 빼꼼히 들어보고는,
보장되지 않는 승패의 확률에 덤비기보단 차라리 포기하는 것이 안전하다. 
- P201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경험과 도전에도 모두 검증과 계획이필요한 세상. 위험한 사건 사고의 가능성을 최대한 비하기 위해서겠지만, 그 조심스러움이 지나치면 우연과 새로움이 들어설 곳이 없다. 간접 경험이 너무 쉽기에 마치 해본 것 같은 기분이 들면 호기심도 쉽게 사라진다. 적당히 알고, 적당히 경험하고, 적당히 깨달아가며 내 감각은서서히 무뎌지고 있었다.

- P202

검증된 리뷰도, 계산된 일정도 필요 없는 여행. 그래서 완벽했던 여행.
- P205

 다 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다 가지고 싶지만 다 버리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지만 사라지고 싶다.
어쩔 수 없이 앞으로도, 매일 매 순간 이렇게 양가감정에 휘둘리며 살아가겠지. 
- P207

일상을 여행처럼, 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그럴싸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상은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노력하지 않고는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도 노력은 한다. 집근처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기 위해 애쓴다.  - P216

여행은 ‘모른다‘를 몸에 익히는 경험이다. 
- P218

오늘을 더 적극적으로, 여행자로 살아본다.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 가늠해보곤 한다. 세계의 안녕이든 나의 안녕이든, 이렇게 우연과 필연을 넘나들며 낯선 세계와 부딪히는 여유가 얼마나 남았을까. 이런 심산한 마음을털어버리려고, 여행 짐을 싼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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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단순화할수록 그에 비례하여 우주의 법칙도 간결해져 고독은 더 이상 고독이 아니고, 가난은 가난이 아니며, 약점 또한 약점이 아니게 될 것이다. 당신이 공중에 누각을 지었더라도 그 일이 결코 헛되지는않으리라. 누각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그곳이기 때문이다. 이제 누각을 받칠 토대를 쌓기만 하면 된다.
- P464

아무리 삶이 초라해도 받아들이고, 또 살아라. 외면하지 말고 욕하지 말아라. 잘못된 것은 삶보다는 당신이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조차 당신 삶은 가장 빈곤해 보일 수 있다. 모든일에 흠만 잡는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흠만 잡는다. 당신 삶이 빈곤하더라도 그 삶을 사랑하라. 구빈원 신세를 지더라도얼마든지 유쾌하고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저녁 노을은 부자의 저택 창문이든구빈원 창문이든 똑같이 아름답게 물들인다. 봄이 오면 구빈원 앞이든 부자의 저택 앞이든 똑같이 눈이 녹는다. 
- P470

나그네가 길을 가다 눈앞에 늪이 나타나자 한 소년에게 바닥이 단단하냐고 물었다. 소년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늪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폭빠져서 나그네가 탄 말의 뱃대끈까지 물이 차올랐다. 나그네가 소년에게 따지듯 물었다. "방금 이 늪 바닥이 단단하다고말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소년이 이렇게 대꾸했다. "네, 맞아요. 바닥은 단단해요. 하지만 바닥에 닿으려면 멀었어요.
아직 절반도 가라앉지 않았다고요." 사회의 늪과 유사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것을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 P474

나는 존이나 조너선이 모든 이치를 명확히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단순히 시간의 경과만으로 밝아올 수 없는 것이 새벽이다. 우리 눈을 멀게 하는 빛은 우리에게 어둠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깨어 있는 날이어야만 동트는 새벽이 찾아온다. 앞으로 더 많은 새벽을 맞이할 수 있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 P479

 소로는 말한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나 자신이 의도한 대로 삶의본질적인 사실만을 앞에 두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인생의 가르침을 온전히 익힐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고, 죽음을 맞았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삶이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면서 허위와 망상과 탐욕에 젖은 채 허우적거리며 사는 동시대인들을 질타했다.
- P492

소로는 삶에서 무엇이 본질이고 진실이며, 어떤 것에 의미와 가치를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월든이라는 자연에서 찾으려고 했다. 자연을 사랑한 만큼 자연 속에서 자연인으로 살기를 택한 그는 자연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이 책 『월든』에 꼼꼼히 기록했다. 
- P492

우리 시대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물질, 자본, 문명, 편리, 개발 같은 용어에 물들어 있다. 하지만 어떤가? 소로 시대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운가? 앞에서 열거한 용어가 우리 사고를 지배함으로써 자연은 마구잡이로 파괴되고 우리의 영혼은 온통 탐욕으로얼룩져 있는 것 아닌가? 지구가 기상이변으로 몸살을 앓고 인류가 팬데믹으로 고통을 겪는 것이 물질과 문명에 대한 무턱댄 신뢰와 의탁의 결과 아닌가? 이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월든』을 읽어 보기 바란다.
- P495

사람들은 대부분 조용한 가운데 절망적인 삶을 산다. 체념은 곧 절망으로 굳어지기 십상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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