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날 나는 그에게 늘 자신에게 만족하고 사는지 물어본 적이있다. 바깥 세상의 사제를 대신하는 자기 내면의 사제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더 높은 차원에 놓인 삶의 목적도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려 주고싶어서였다. 그러자 그는 "만족이라!"라고 탄성을 내지르더니, "어떤 사람이 이거에 만족하면, 또 어떤 사람은 저거에 만족하는 법이죠. 뭐, 부족한게 없는 사람이야, 온종일 화로 앞에 앉아 밥만 배불리 먹어도 충분히만족할 테니까요. 내 참!"이라고 대답했다.
- P185

그의 존재는 사회의 밑바닥 계층에도 얼마든지 뛰어난 사람이 있을 수있음을 암시했다. 그들은 평생 가난하고 무식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늘 독자적인 견해를 품고 살아가며, 자신이 세상 모든 것을 다안다는 듯 잘난 척하지 않는다. 또한 겉으로는 어둡고 혼탁해 보일지라도 월든 호수만큼이나 한없이 깊은 속내를 품고 있다.
- P186

근래 나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는다. 모두가 콩만 돌보느라 바쁜 모양인지, 시간이 없어 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토록 일만하는 사람과는 사귀고 싶지 않다. 그들은 일하는 틈틈이 괭이나 삶을 지팡이 삼아 기대서 있지만, 바닥에 뿌리 내린 버섯이 아니라 땅에 내려 앉아서도 이리저리 헤매 다니는 제비처럼, 똑바로 서 있다기보다는 지면에서 약간 발을 떼고 안절부절못하는 듯 보인다.
- P205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어찌 우리의 농사에 실패가 있을 수 있겠는가? 잡초의 씨는 작은 새의 곡식이 될 테니, 잡초가 무성해지는 것 역시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섭리와 비교해 보면 들판의 곡식이 농부의 곳간을 채울지 어떨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다람쥐가 올해는 숲 속에 얼마나 많은 밤송이가맺힐지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듯이, 진정한 농부도 걱정 같은 것은 접어 두어야 한다.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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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보다 나은 일을 할 때도 많았다. 손으로 하든 머리로 하든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활짝 피어난 현재라는 시간을 희생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삶에 넓은 여백을 두고 싶다. 
- P140

그러다 보니 관계가 너무 돈독한 탓에 서로의 앞길을 막아서기도 하고, 서로의 발에 걸려 넘어지기도 한다. 장담컨대, 지금보다 조금 덜 만나도 중요하고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터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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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만간 개발될 위험이 없는 여러 군데의 집터를 찾아냈다. 마을에서 너무 멀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마을이 내 집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듯했다.
- P103

"나는 내가 조망하는 모든 것의 군주이고,
그러한 내 권리에 대해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1) 윌리엄 쿠퍼(Wiliam Cowper)의 <알렉산더 셀커크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시(Verses supposed to be written by Alexander Selkirk)> 중에서.
- P104

나는 의도적인 삶을 살아보고자 숲으로 들어갔다. 최소한의 필요한 것만 충족한 채 살아도 삶이 가르쳐 주는 진리를 배울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되이 살지 않았음을 깨닫고 싶었다. 삶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삶이 아니라면 살고 싶지 않았다. 반드시 필요하지않다면, 체념한 채 살아가고 싶지도 않았다. 깊이 있게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은 모두 파괴해 버리고 강인하게 스파르타인처럼 살아가길 바랐다.
- P114

왜 우리는 이처럼 바쁘게 삶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것일까? 지금의 우리는 배고프기도 전에 굶어 죽기로 결심이라도 한 듯하다. 흔히들 제때 뜨는 한 땀의 바느질이 훗날 아홉 땀의 수고를 줄여 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뜰 아홉 바늘을 줄이려고 오늘 천 땀의 바느질을 한다.
- P117

필요하다면 강에 다리 하나를 덜 놓고 조금 멀리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를 에워싼 무지의 검은 심연을 건너게 해줄 구름다리 하나라도 놓아 보자.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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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때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노라는 ‘등거리‘라는 단어를떠올렸다. 안전한 교실에 속한 단어 등거리 노라가 마지막 힘을 쥐어짜는데도 거의 제자리에 머무는 동안 너무도 중립적이고 수학적인 그 단어가 강박적인 만트라가 되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등거리 등거리 등거리 어느 쪽 강둑하고도 더 가깝지 않았다.
노라는 평생 그런 느낌으로 살았다.
- P272

중간에 끼어서 안간힘을 쓰고, 허우적거리며 그저 살아남으려고 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어느 길에 헌신해야 후회가 없을지
- P273

"인생은 언제나 행동하는 거란다." 강에 뛰어들었던 조가 친구들에 의해 끌려 나오는 모습을 노라와 함께 지켜보며 엘름 부인이말했다. 
- P274

"디지털 피아노는 네 방으로 옮겨갔고, 넌 그걸 친구처럼 환영했지. 그리고 꾸준히 연습했어. 용돈으로 피아노 독학 교재와 <초심자를 위한 모차르트> <피아노로 연주하는 비틀스>를 샀지. 피아노가 좋았으니까. 오빠에게 인정받고 싶기도 했고."
- P276

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노라가 선택했던 삶은 사실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결혼해서 펍을 운영하는 것은 댄의 꿈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는 것은 이지의 꿈이었고, 같이 가지 못한 후회는 자신에 대한 슬픔이라기보다 단짝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가 되는 것은 아빠의 꿈이었다. 노라가 어릴 때 북극에 관심이 있었고, 빙하학자가 되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 꿈마저도 학교 도서관에서 엘름 부인과 나눈 대화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라비린스는 늘 오빠의 꿈이었다.
- P276

어쩌면 그녀를 위한 완벽한 삶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에 틀림없이 살 가치가 있는 인생이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을 발견하려면 더 큰 그물을 던져야 한다는걸 노라는 깨달았다.
- P277

"우리가 정돈해 놓은 체스판을 보렴." 엘름 부인이 부드럽게 말해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인 지금은 얼마나 질서 있고 안전하고 평화로워 보이니. 아주 아름답지. 하지만 동시에 지루하고 죽어 있어..
그러다 네가 체스판의 말을 움직이는 순간 상황은 변하지. 좀 더 무질서해져. 내가 말을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그 무질서는 점점 쌓이는 거야."
- P278

엘름 부인은 예전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
"절대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마라."
나중에 알고 보니 이는 유용한 조언이었다.
- P279

"연민은 도덕성의 근본이다"라고 아서 쇼펜하우어는 덜 냉소적이던 시절에 말했다. 어쩌면 연민은 삶의 근본일지 모른다.
- P282

 마음 쓰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길을 가세요.
여러분 없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네요.

*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밥 딜런의 노래 제목•
You can go your own way. 플리트우드 맥의 <Go your own way> 가사• 
God only knows what we  be without you. 비치 보이스의 <God only knows)의 가사.
- P287

이 우주에서 개와 함께 살고있는데 왜 다른 우주를 원해?
-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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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게 다 오빠 때문이니?"
"아뇨, 전부 다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서는 살 수가없는 것 같아요."
"원래 인생은 그런 거야."
"그럼 대체 왜 살죠?"
"변호하자면, 죽음 역시 타인에게 상처를 준단다. 자, 이젠 어떤삶을 살고 싶지?"
3402
"살고 싶지 않아요."
"뭐?"
"더는 책을 펴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삶은 원치 않아요."
- P266

노라는 깨달았다. 그녀가 살면서 했던 대부분의 후회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되었다는 걸.
- P267

"체스에서 한 번이라도 이기려면 무언가를 깨달아야 해." 이것이 노라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듯이 엘름 부인이 말했다. "경기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넌 그걸 깨달아야 해. 체스판에폰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경기는 끝난 게 아니야. 한 사람은 폰 하나와 킹 하나만 남고, 다른 사람은 기물이 다 있어도 경기는 아직 진행 중인 거야. 설사 네가 폰이라고 해도, 아마 우리 모두 그럴테지만, 넌 폰이 가장 마법 같은 기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해.
폰은 하찮고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왜냐하면 폰은 절대 그냥 폰이 아니니까 폰은 차기 퀸이야. 넌 그저 계속 앞으로 나아갈 방법만 찾으면 돼. 한 칸 한칸 앞으로 나아가는 거야.
그러다 반대편 끝에 도달하면 얼마든지 다른 기물로 승급할 수있어."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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