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가. 그럴듯한가? 그렇지 않다면, 과학적으로 좀 더 논리적인 일은 어류란 내내 우리의 망상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 P242

별들의 경우에 꼭 그랬던 것처럼.
어떤 사람들에게 별들을 포기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그건 그들이 너무 작고, 너무 무의미하고, 너무 통제 불능으로느껴지게 만들었다.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신저를 공격했다. 코페르니쿠스가 별들을 포기했을 때 그는이단이라는 저주 어린 판결을 받았다. 조르다노 브루노가 별들을포기했을 때 사람들은 그를 화형대에 묶어 불에 태웠다. 갈릴레오가 별들을 포기했을 때 그는 가택연금을 당했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일은 야망과 발명과 공학의 영감을 불어넣었다. 수 세대에 걸쳐 사람들은 직관의 반대편으로 보낼 배를 출항시키는 방법을 알아내고자 혈안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품은 황당무계한 꿈들 덕분에 지금 우리는 달에 닿을 수 있다.
나의 경우, 어린 시절 데크 위에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눈 그날 아침, 별들을 포기했을 때 내게는 가벼운 바람이 한 자락 불어왔다. 그것은 빙글빙글 돌며 우주를 의미 없이 누비는 느낌이었고,
상태가 나쁜 날이면 거의 치명적인 냉기를 안겨주는 느낌이었다.
- P248

큰언니는 물고기를 놓아버리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언니는 어류라는 범주 전체를 바로 손에서 놓아버렸다. 왜 언니한테는 그게 그렇게 쉬운 거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왜냐하면 그게피할 수 없는 사실이니까. 인간은 원래 곧잘 틀리잖아." 언니는 평생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늘 반복적으로 오해해왔다고 말했다. 의사들에게서는 오진을 받고, 급우들과 이웃들, 부모, 나에게서는 오해를 받았다고 말이다. "성장한다는 건,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는 법을 배우는 거야."
정말로 이 물음은 모든 사람마다 다 다르다.
- P252

우리가 세상을 더 오래 검토할수록 세상은 더 이상한 곳으로 밝혀질 것이다.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받은 사람 안에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잡초 안에 약이 있을지도 모른다. 당신이 얕잡아 봤던 사람 속에 구원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 내가 그 좋은 것들을 누릴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가 얻으려 노력했기 때문이 아니다. 파괴와 상실과 마찬가지로 좋은 것들 역시 혼돈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 P263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 P264

원기 왕성하던 나의 친할머니가 갑자기 심하게 앓아눕게 되리라는 것도 늘 남들을 세심히 배려하며 극도로 시간을 엄수하는 큰언니가 너무나도 자기다운 행동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애도의 카드를 써서 부치고, 그 카드가 공교롭게 하루 일찍도착하게 되리라는 것도. 다음 날 할머니가 숨을 거두고, 얼마 후아버지가 언니의 카드를 생각하며 웃게 되리라는 것도. 그것이 그가장 쓸쓸한 날에 처음으로 번진 따뜻함이리라는 것도.
- P266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 raler 뒤에는 지배자 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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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당신이 밟고 선 그 땅뙈기가 이 세상에서, 아니 그 어느 세상에서도 당신에게 가장 달콤한 기쁨을 주는 땅이 아니라면 당신에게는 희망이 없다"라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인용한 뒤, 분발을 요구하는 ‘카르페 디엠‘의 구호를 외치며 독자들을 배웅한다. "그 어디에도 바로 여기, 지금, 오늘만큼 하늘이 파랗고 풀밭이 푸르고 햇빛이 밝고 그늘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곳은 없다."
- P127

그러면 나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면 어떻게 하라는 걸까? 데이비드는 나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동정심을 거의느끼지 않는다. <절망의 철학>의 최종 결론은 절망이 선택이라는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절망이 청소년기에 자연스럽게 거쳐 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기는 해도 그런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경멸한다. 
- P127

그리고 네가 말한 그 이야기 말이야. 너무나 소중하고, 너무나 정교한 뭔가를 쌓아 올렸다가… 그 모든 게 다 무너지는 걸 목격한그 사람... 그 사람은 계속 나아갈 의지를 어디서 다시 찾았을까하는 그 질문. 계속 가고 싶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계속 가게 만드는, 모든 사람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그것을 카프카는 ‘파괴되지 않는 것‘이라고 불렀어. 파괴되지 않는 것은 낙관주의와는 전혀 무관해.
- P130

이 얼마나 경이롭고 분발을 요구하는 투쟁의 권유인가.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위로이자, 어깨를 움켜쥐는 손길인가. 그런데 작은 문제가 하나 있다. 그가 쓴 단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신도그 문제를 발견할 것이다. 그 진주알을 만든 최초의 작은 모래알 하나가 거짓말이라는 것을.
운명의 형태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의지다.
이 말은 그가 자기 자신에게 결코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사악함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라고 그가 경고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 자기 경력을 바쳐 맞서 싸워왔던그런 종류의 거짓말이자, 그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가치가 있다고 말했던 그런 종류의 거짓말이다. 자연은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않으니까! 그조차도 절망에 완전히 집어삼켜지지 않으려면 그거짓말이 진실이기를 믿어야만 했던 것이다.
- P133

이때 핵심은 자기기만이적당한 수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수의 연구가 밝혀낸바, 극단적 부인이나 기만은 오히려 적응에 해롭다고 나타났다. 그러나 순한 거짓말, 하얀 거짓말, 작은 장미봉오리 같은 거짓말은 무척 이로운 효과를 낼 수 있다. 요컨대 힘들어하는 어떤 사람을 붙잡고그 사람이 자신에 관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약간 더 긍정적인 이야기-그가 실제보다 조금 더 강한 사람, 실제보다 더 친절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이야기, 연인과의 이별에서 자신의 잘못이 겉보기만큼 그렇게 크지 않게 보이는 이야기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에 심오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 P140

심리학자들은 인간으로 산다는 건 가혹한 운명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우리는 세상이 기본적으로 냉담한 곳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성공은 보장되지 않고,
수십만 명을 상대로 경쟁해야 하며, 자연 앞에서 무방비 상태이고, 우리가 사랑한 모든 것이 결국에는 파괴될 것임을 알면서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작은 거짓말 하나가 그 날카로운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낼 수도 있고, 인생의 시련 속에서 계속 밀고 나아가도록 도와줄 수도 있으며, 그 시련 속에서 가끔 우리는 우연한 승리를 거두기도 한다.
- P141

몇 년 뒤 더크워스는 그 비밀의 요소라 여겨지는 한 가지 특징을 발견하고 그 특징에 ‘그릿Grit‘(끈질긴 투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림, 끈질김을 뜻하지만 그보다 귀에 착 붙는 단어, 그릿. "긍정적 피드백"이 없는데도 "매우 장기적인목표"에 로봇처럼 뛰어들게 해주는 것, 그릿. 
- P142

그릿이란 여러 특성들이 섞인 칵테일 같은 것이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특징이 바로 이것이다. 좌절을 겪은 뒤에도 계속 나아갈 수 있는 능력,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능력, 또는 더크워스의 표현을 빌리면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불구하고 수년간 노력과 흥미를 유지하는 것" 말이다.

- P143

어쩌면 이것이 신이 없는 세계의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지속적으로 오만을 복용하는 것이야말로 실패할 운명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보여주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 P146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가 가져 마땅한 미치광이들이 생겨난다." 영국의 역사가 로이 포터Roy Porter가 언젠가 쓴 말이다.
- P46

바우마이스터와 부시먼은 이렇게 썼다. "쉽게 말해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자신을 우월한 존재라고 보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고 싶다는 욕망이 강한 사람들이다. (・・) 거창한 자기상을 확인받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비판당하는 것을 몹시 괴로워하며 자기를 비판한 사람을 사납게 공격하는 것으로 보인다."
- P151

그러니까 자신의 세계관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자신감은 부패를 불러온다는 내 아버지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 사실들을 왜곡하는 일을?
- P174

이것이 바로 다윈이 예언했던 그런 상황이다. 그가지구의 수많은 생명들의 순위를 정하지 말라고 그토록 뚜렷이 경고한 이유는 "어느 무리가 승리하게 될지 인간은 결코 예측할 수없기 때문이다."
- P189

인간의 지력으로 도저히 다 이해할 수 없는 생태의 복잡성에 대한 이러한 조심스러움과 겸손함, 공경하는 마음은 사실 대단히오래된 것이다. 이는 때로 "민들레 원칙"이라고도 불리는 철학적개념이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로 여겨지지만, 다른 상황에서는 경작해야 하는 가치 있는 약초로 여겨지기도 한다.
- P189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그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수천 명의 아우성-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가니요-도 무시해버린남자.
- P201

"그가 좀 더 의심하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하지만 데이비드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의 예언자가 해준 경고, "일반적으로 과학은 믿음을 싫어한다"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데이비드는 그 사다리에 관한 관념을 고수했다. 결국에는 그 관념을 갉아서 무너뜨렸어야 마땅할 반대 증거들이 파도처럼 몰아닥치는 앞에서도 그는 그걸 꼭 붙잡고 끝내 놓지 않았다.
- P204

 크건 작건, 깃털이있건 빛을 발하건, 혹이 있건 미끈하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의 그 어마어마한 범위 자체가 이 세상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는 데는 무한히 많은 방식이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그런데 데이비드는 왜 그걸 보지 못한 걸까? 사다리에 대한 그의 믿음을 반증하는 증거들이 이렇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식물과 동물이 배열되는 방식에 관한 이 자의적인 믿음을 왜 그토록 보호하려 한 걸까? 그 믿음에 도전이 제기되면 왜 더욱 강하게그 믿음을 고수하고 폭력적인 조치를 합리화하는 데 그 믿음을 사용했을까?
아마도 그 믿음이 그에게 진실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 P206

그럴 순 없다. 명민하고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호흡, 모든 걸음마다 우리의 사소함을 인정해야 한다. 그와 다르게 말하는 것은 죄를 짓고, 거짓을 말하고, 기만과 광기로, 그보다 더 나쁜 것으로 자신을 이끌고 가는 일이다.
- P222

천천히 그것이 초점 속으로 들어왔다. 서로서로 가라앉지 않도록 띄워주는 이 사람들의 작은 그물망이, 이 모든 작은 주고받음-다정하게 흔들어주는 손, 연필로 그린 스케치, 나일론 실에 펜플라스틱 구슬들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대단치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그물망이 받쳐주는 사람들에게는어떨까? 그들에게 그것은 모든 것일 수 있고, 그들을 지구라는 이 행성에 단단히 붙잡아두는 힘 자체일 수도 있다.
- P226

그리고 인간들, 우리도 분명 그럴 것이다.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서는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히 많은 관점 중 단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 P227

데이비드가 판단하기에 전쟁은 한 국가의 가장 훌륭하고 똑똑한 인재를 고갈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형 루퍼스의죽음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좋은 자질을지닌 남자들이 싸우리 나가 죽으면 "부적합한" 자들이 남아서 번식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수백 명의 관중을앞에 두고 말했다. "한 국가가 낳은 최고의 인재들을 파괴하는 일에 내보내면, 차선의 사람들이 그들의 빈자리를 메울 것입니다. 약한자들, 악한 자들, 낭비하는 자들이 번식하고… 나라를 다 차지해버릴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신의 우생학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평화주의자가 된 것이다.
- P233

휴, 한숨이 나온다.
그의 이야기는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일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기 죄에 대한 벌을 받지 않고, 상처 하나 입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런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우주적 정의의 감각 같은 건 그 까칠하고 무의미한 조직 속 어디에도 새겨져 있지 않을 만큼 야멸차기 때문이다.
- P235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류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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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이 사상은 정의, 향수, 무한, 사랑, 죄 같은추상적인 개념들이 천상의 에테르적 차원에 머물면서 인간이 발견해줄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가 그것들의 이름을 만들어낼 때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본다.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제"가 된다. 우리는 전쟁, 휴전, 파산, 사랑, 순수, 죄책감을 선언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다. 
- P93

이 세계에는 실재인 것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이름을 붙여주지 않아도 실재인 것들이 어떤 분류학자가 어떤 물고기 위로 걸어가다가 그 물고기를 집어 들고 "물고기"라고 부른다고 해서 그 물고기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이름이 있든 없든 물고기는 여전히 물고기인데・・・.
맞지? 맞겠지?
- P95

창밖에는 그들의 선지자가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있고, 공기 중에는 먼지가 희부옇게 드리워 있으며, 이 난장판을 어떻게 다시 수습할 수 있을지 알 수없는 상황에서, 차가운 물과 불확실성을 정면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며 적어도 당장은 이것들을 마르지 않게 하겠다는 단호한 의지.
- P116

그래서였다. 나는 절박했다. 단순하게 말하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책에서, 망해버린 사명을 계속 밀고 나아가는 일을 정당화하는 그 정확한 문장을 찾아내는 것이 내게는 절박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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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관계자들을 위한 직무 교육 프로그램, 의대생들과 의료전문가들을 위한 세미나, 목회자 훈련 센터들이 점점 늘어나고있는 상황과 더불어,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논의 자체를 피해왔던 주제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관심이없기 때문이 아니라 삶의 최후의 고비에 생기는 해답 없는 질문들 앞에서 느끼는 거대한 무력감 때문에 피해왔던 주제 말이다.
- P7

죽어가는 환자는 자신의 병과 궁극적인 죽음을 인정하기 위한 몸부림 속에서 많은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그는 잠시 나쁜 소식을 부정하면서 ‘마치 자신이 이전과 마찬가지로 튼튼하고 건강한 것처럼‘ 계속 활동할지도 모른다. 혹은 진단이 정확하지 않을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서 이 의사 저 의사를 필사적으로 만나볼지도 모른다. 또는 진실로부터 자신의 가족을 보호하고 싶어 할지도(혹은 그의 가족이 그를 보호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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