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금방 돌아올게. 운명이 허락한다면." 저 마지막 문장, "운명이 허락한다면"에는 "스토아철학의 유보조항"이라 불리는 것이 잘 나타나 있다. 롭이 처음 이 개념을 언급했을 때 나는 무슨 어려운 법률 용어 (아마도 서명해야 하는 각서 같은 것)인 줄 알고 걱정했지만 그건 오해였다. 유보 조항은 법률용어가 아니라 치료 요법이다. 삶의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스토아철학의 또 다른 기술이다. - P419
욕망한다는 것은 지금 내게 없는 것을 바란다는 뜻 아닌가? 어떻게 이미 가진 것을 욕망할 수 있지? 내가 보기엔 니체가 이 질문에 가장 훌륭하게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운명에체념하지 마라. 운명을 그저 받아들이지 마라. 운명을 사랑하라. 운명을 욕망하라. - P420
시카고행 열차에 올라타는 스토아주의자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내일 아침 시카고에 도착해있겠지. 운명이 허락한다면." 승진 물망에 오른 스토아주의자는스스로에게 운명이 허락한다면 승진하게 될 거라고 말할 것이다. 이 유보 조항은 이슬람교의 인샬라(신의 뜻이라면)나 유대교의 비에스랏 하샴bezrat hashem (신의 도움으로)에서 종교적 색채를 벗겨낸것과 유사하다. - P420
하지만 이 원통들이 여기저기 부딪치며 힘들게 굴러갈지 부드럽게 굴러갈지는 원통에 달려 있다. 이 원통들은 매끈하게 다듬은 완벽한 형태의 원인가? 아니면 거칠고 울퉁불퉁한 원통인가? 즉 이 원통들은 도덕적인 원통인가? 언덕이나 중력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어떤 종류의 원통이 될 것인가는 통제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다. - P42
스토아 철학은 힘들다. 스토아철학은 쉽지 않으며 쉬운 척하지도 않는다. 그리스의 중용 사상은 거의 들어있지 않다. 전부 아니면 전무의 철학이다. 사람은 고결하거나 고결하지 않거나 둘중 하나다.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거나 그렇지 않거나 둘 중 하니다. - P423
우리 모두는 각자 조금씩 로고스를 지니고 있다. 스토아철학에 따르면 로고스는 전 세계에 스며 있는 신적 지성이다. 이성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이며 유일하고도 진정한 행복의 근원이다. 우주에는 신적이면서도 전적으로 합리적인 지성이 스며 있다. 이성적으로 행동할 때마다 우리는 이 지성과 악수를 나눈다. - P423
하지만 스토아철학의 세계관에서 당신은 사실 코트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반납한 것이다.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거나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할 때보다 더 충격받을 이유가 없다. 내가 영국에서 잃어버린 애정하던 노트? 잃어버린 게 아니다. 반납한 것이다.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한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 자리에서 즉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에 감사해라. 네 유모와 어머니 앞에서 훌쩍훌쩍 우는 게 더 낫다고생각하는 게 아니라면!" 남자답게 굴어야 한다. - P425
그렇다면 더 큰 상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하는 이의 죽음보다 더 큰 상실은 분명히 없을 것이다. 그런 슬픔은 자연스러운 감정이므로 스토아철학도 장려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틀렸다. 스토아철학은 슬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나친 슬픔은 인정하지 않는다. 세네카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물이 흐르게 두라. 하지만 동시에 멈추게 하라." 한번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느라 손자 손녀와 더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다며 한 여성을 꾸짖기도 했다. 스토아철학에 따르면 어린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적절한 반응은 다음과같다. "나는 내가 언젠가는 죽을 인간을 낳았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나는 스토아철학을 이해할 수 없다. 슬픔을 억압하면 그와 함께 기쁨도 억압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슬픔을 포함한 인간성의 모든 스펙트럼에 마음을 열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 P426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지? 대답은, 최선을 다해 좋은 아빠가되는 것이었다. "그 모든 분석과 증명은 아주 조금도 중요치 않아요. 내가 더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다면요. 좋은 아빠가 된다는건 뭘까요? 내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사람이 되는 것, 아이에게 약을 먹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정신줄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롭은 스토아주의자로서 더 도움이 되는 아빠, 더 나은 아빠가 되었다. 그리고 스토아 철학에서 거의 사용하지않는 단어이긴 하지만, 더 다정한 아빠가 되었다. - P428
세네카에게 기대본다. 세네카는 내가 당면한 고난(이자 내가 평생해온 일)인 휴양 여행을 즉시 비난한다. "여행을 한다고 기술 중의 최고 기술인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내 말을 들어라. 그 어떤 여행도 너의 성질머리와 두려움에서 너를 꺼내줄순 없다. 로마의 개자식 같으니. - P429
이름을 다시 붙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가 처한 곤경을 짧은 휴가이자 동료 스토아주의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로 명명한다. 파리는 수세기 동안 그 자리에있었다. 아마 좀 더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이다. 눈은 평생 내리지않을 것이다.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다. 눈은 곧 멈출 것이고, 나는 남쪽으로, 스노위 산맥을 지나, 와이오밍의 널따란 하늘 아래 덴버 국제공항으로 이동해 결국은 파리의 환한 불빛 아래 설 것이다. 그래, 나는 곧 파리에 있게 될 것이다. 운명이 허락한다면. - P430
보부아르는 혼란스러웠고 배신감을 느꼈다. 한때는 친구였던 시간이 이제는 자신이 모르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보부아르는 언제나 다음 프로젝트나 탐험을 계획하며 앞을 향해 "미래로 뻗어 나가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제 보부아르는 어깨 너머로 과거를 돌아보며 뒤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자기 나이와 충돌한 것이다. - P436
보부아르의 오래된 파트너이자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는 노년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지만 절대로 온전히 내면화할 수 없는 상태, 오직다른 사람들만이 이해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늙어 보이고, 늙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누가 봐도 늙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우리는 절대로 자신이 늙었다고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노화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 P436
소설가이자 철학자, 페미니스트 영웅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예상 밖의 롤모델 후보자임을 인정한다. 보부아르가 노년에 관해 쓴 글은 암울하다. 보부아르는 우아하게 나이 들지 않았다. 나이와 싸우면서 마지못해 억지로 나이 들었다. 보부아르는 불빛이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했고, 자신의 분노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노했다. 하지만 결국 보부아르는 노화와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 노화를 받아들였으며, 본인은 아마 부정하겠지만 나이듦을 사랑하게 되었다. - P437
고대 그리스에는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가 두 개 있었다. 바로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다. 크로노스는 일반적인 시간이다. 시계 속의 분, 달력 속의 달이다. 카이로스는 딱 맞는 적절한 때를 의미한다. 무르익은 기회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카이로스를 의미하는 것이다. - P441
이 여행은 나의 ‘기투‘였다. 기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실존주의 용어다. 기투는 우리가 일상의 환경을 초월하게 해주고자기 자신을 넘어설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우리의 기투가 영원히 다른 사람들의 기투와 부딪칠 거라고 경고했다. 나의 자유는 타인의 자유와 뒤얽혀 있다. 우리는 타인이 자유로운 만큼만 자유롭다. 나의 기투(부녀간의 사랑 넘치는 프랑스 여행)는소냐의 기투와 정면충돌했다. 소냐의 기투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먹고 고향에 있는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 P442
실존주의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를 다룬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더 진정성 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는가? 실존주의자들은 이 질문의 답이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좋은 소식을 전한다. 그 답은 신이나 인간 본성에 있지 않다. 하나의 인간 본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각기 다양한 특성들이있을 뿐이다. 또는 보부아르가 말했듯이, "본성이 없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 P445
‘임신했을 때 나타나는 신체 증상은 다 나타나는데, 임신은 아넌닌거야. 그냥 임신했다고 생각만 한거지." "흥미롭네. 근데 그게 이거랑 무슨-" "아빠도 상상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아빠는 저 쿨하게 생긴다리가 무슨 대단한 생각에 대한 은유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엔 저건 그냥 쿨하게 생긴 다리야." 철학자들은 도를 잘 넘는다. 심오한 생각이 너무 하고 싶어서 지적 환영에 빠질 위험을 감수한다. 때때로 희미하게 빛나는 저빛은 오아시스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만들어낸 장난일 뿐이며, 때로는 가장 단순한 설명이 가장 좋은 설명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도 둘씩 짝을 이뤘을 때 철학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다고 믿었다. 2인조 방식이다. 지나치게 멀리 가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줄다른 사람, 다른 정신이 필요하다. 소냐는 내 소크라테스다. 소냐는 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다. 의심을 심는다. - P449
어린 나이에, 실존주의자가 되기도 전에, 실존주의자라는 용어가 생겨나기도 전에 보부아르는 "내 삶은 현실이 될 아름다운 이야기, 내가 살아가면서 스스로 만들어낼 이야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게 바로 실존주의다. 따라야 할 각본도 지문도 없다. 우리는 우리 삶이라는 이야기의 저자이자 감독이자 배우다. - P450
보부아르가 보기에 노화는 타인이 내리는 문화적·사회적 판결이었다. 배심원이없으면 판결도 없다. 무인도의 여성은 생물학적 노쇠를 경험하겠지만 나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 - P452
내 생각에 보부아르는 키케로의 밝음을 지나치게 만회하려 했던 것 같다. 보부아르는 로마인의 장밋빛 렌즈를 새까만 선글라스로 바꾸었다. 선글라스는 해로운 광선에서 눈을 보호해주지만 빛을 차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빛은 엄연히 존재한다. 보부아르의 말처럼 노년이 천천히 죽어가는 암울한 시기여야 하는 것은아니다. 노년은 커다란 기쁨을 느끼고 창의적 결과물을 내는 시기일 수 있다. 가장 좋은 사례가 누구냐고? 바로 시몬 드 보부아르다. - P453
"어려운 일인 거 알겠어. 우아하게 나이 드는 법에 관해 쓰고있는데 어떻게 우아하게 나이 들 수 있는지를 모르는 거지? 주제를 살짝 바꿔서 쓰는 건 어때? 예를 들면 나이 들지 않는 법에 대해 쓰는 거야. 신체적으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 P455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반쯤 잠든 채로 인생을 살아간다. 우리는 사회적 역할과 자신의 본질을 혼동한다. 사르트르는 우리가 타인에게 사로잡혀 있으며 타인의 시선대로 스스로를 바라본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유를 박탈당했으며 진정성이 없다 (진정성authenticity 이라는 단어는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그리스어 이우텐테스authentes에서 나왔다). 나는 노인들이 특히 이렇게 자유를 포기한다고 생각한다. - P458
노인은 자신의 과거를 버리거나 자선단체에 기부해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실수다. 과거는 두 가지 측면에서 나름의 가치가 있다. 하나는 치유의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적 측면이다. - P461
"추억에는 일종의 마법, 나이에 상관없이 느낄 수 있는 마법이있다." 보부아르는 말한다. 그 마법의 뿌리는 과거에 있지만 마법이 꽃을 피우는 것은 현재다. 얼마나 오래전의 일이든 상관없이우리가 과거를 경험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다. - P461
최근 연구들은 2000년 전에 에피쿠로스가 한 말이 사실임을 증명해준다. 바로 우정이 행복의 가장 큰 원천 중 하나라는 것, 우리가 맺는 관계의 질은 행복 방정식의 가장 중요한 변수다. 보부아르는 이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보부아르는 자신의 회고록<모든 것이 끝나고All Said and Done에서 "내가 타인과 맺는 관계, 나의 애정과 우정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라고말한다. 젊은이들에게 친구는 중요하다. 나이 들면 친구는 더욱더 중요해진다. - P463
보부아르와 실비는 함께 노르웨이 피오르드로 크루즈 여행을떠났다. 보부아르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실비는 이렇게 말한다. "보부아르는 마치 모든 것을 잊기로 한 것 같았다. 그녀는우리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 관계가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고, 살아갈 이유를 주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난 너를 위해 살지는 않지만 너 덕분에, 너를 통해서 살아‘ 우리의 관계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 P465
나이가 들면 특이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생각에 신경 쓰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애초에 다른 사람들은 내 생각을 안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P465
몽테뉴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지혜와 이론의 핵심은 결국 바로 이것이다. 우리에게 죽음을 두려워하지않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 P482
소나와 나는 몽테뉴가 450 년 전에 오른 것과 똑같은 원형 계단을 오른다. 몽테뉴가 고독을 음미한 곳이다. 나는 몽테뉴가 나처럼 필요할 때는 그럴듯한 외향형처럼 굴 수 있는 내향형이었으리라 추측한다. 우리 같은 사교적 내향형들은 세상을 속일 수 있지만 거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꾸며낸 외향성은 우리를 소모시킨다. 진을 빼놓는다. - P485
몽테뉴는 말 그대로 회의론자였다. 일부러 사사건건 끼어들며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망쳐놓는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 헤매며 늘 의심하는 사람이었다. 몽테뉴는 확신하기 위해 의심했다. 한 번에 하나씩 의심하며 자기만의 확신의 탑을 쌓았다. - P487
에세이는 실험이자 시도다. 몽테뉴가 쓴 에세이들도 하나의 거대한 시도다. 무엇에 대한 시도냐고? 스스로를 더 잘 알기위한 시도다. 몽테뉴는 삶을 잘 살아내지 않고서 잘 죽을 수 없었고,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알지 않고서 삶을 잘 살아낼 수 없었다. - P488
죽음은 체스나 와인 제조처럼 통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음은 기술이 아니다. 죽음은 하나의 지향이며,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 몽테뉴는 "자연에 쓸모없는 것은 없으며, 쓸모없음이라는개념 자체도 없다"라고 말한다. 죽음은 삶의 실패가 아니라 삶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 P495
죽음의 해결책은 더 긴 삶이 아니다. 절망의 해결책이 희망이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죽음과 절망 모두 같은 약을 필요로 한다. 수용이다. 보부아르처럼 몽테뉴도 결국 받아들였다. 마지못한 수용이 아니라 완전하고 관대한 수용이었다. 죽음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지만 삶에 대한 수용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용이기도 했다. - P497
몽테뉴 철학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자신을 믿을 것. 자신의 경험을 믿을 것. 자신의 의심도 믿을 것 경험과 의심의 도움을 받아 인생을 헤쳐 나가고 죽음의 문턱을 향해 다가갈 것. 타인과 스스로에게 놀라워하는 능력을 기를 것. 스스로를 간질일 것. 가능성의 가능성에 마음을 활짝 열 것. 그리고 몽테뉴는 동포인 시몬 베유와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제발, 주의 좀 기울여. - P501
걷는 동안 대답이 떠오른다. 짧은 두 단어다. 낯설지만 익숙하고, 터무니없지만 타당하고,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말 다카포. 처음부터 다시 한번. - P5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