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의 프레임을 어떻게 구성하는가는 중요하다. 제니퍼는 "왜 성공하고 싶어?"라거나 "얼마나 성공해야 충분한 건데?"라고물어볼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나는 우리가 뉴저지에 있는 제니퍼의 발코니에 앉아 있는 동안 우리 곁을 맴돌던 모기한테 그랬듯 그 질문을 찰싹 때리고 무시해버렸을 것이다. 왜 성공하고 싶으냐고? 그냥 다들 그렇지 않나? 얼마나 성공해야 충분하냐고? 지금나보다 더. - P71
바로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일으키고자 했던 것이었다. 관점의근본적 변화가 나타나리라는 희망에서, 내가 아는 것뿐만 아니라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묻는 인정사정없는 자기 심문. - P72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는 내가 문학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들어 있다. 아마 생각지도 못한 구원을 받는느낌 때문에, 또 기차와 관련된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은 성공한 관리로, 불치병에 걸려 두려움과 후회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을 향할수록 새로운 관점이 두려움을 밀어낸다. "사람들이 가끔 기차 안에서 경험하듯이,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뒤쪽으로 달리고 있고, 그러다 갑자기진짜 방향을 깨닫게 된 것이다. - P72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을지 모르지만, 그건 지나치게 성찰하는 삶도 마찬가지다.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하냐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그러면 곧 행복하지 않게 될 것이다"라는 말로 쾌락의 역설(헤도니즘의 역설Paradionof Hedonism이라고 불리기도 한다)을 설명했다. 행복은 붙잡으려고 애쓸수록 우리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 행복은 부산물이지, 절대 목표가 될 수 없다. 행복은 삶을 잘 살아낼 때 주어지는 뜻밖의 횡재 같은 것이다. - P76
재판이 끝나고 운명이 결정된 소크라테스는 제자 몇 명과 한자리에 모인다. 제자들은 비탄에 잠겼지만 소크라테스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죽을 때까지 낙천적이었고, 속을 알 수 없었다. 그는이렇게 말했다.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 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중 누가 더 좋은 곳으로 갈지는 신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 P77
"걷기는 자극과 휴식, 노력과 게으름 사이의정확한 균형을 제공한다." - P80
장 자크 루소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철학자, 소설가, 작곡가, 에세이 작가, 식물학자였고, 독학자, 도망자, 정치이론가, 마조히스트였다. 무엇보다 루소는 산책자였다. 그는 자주 걸었고, 혼자서 걸었다. - P83
루소의 철학은 다음 네 어절로 요약할 수 있다. 자연은 좋고 사회는 나쁘다. 루소는 "인간의 자연적 선함을 믿었다. 자신의 저서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루소는 자연 상태에 있는 인간이 "노동도 언어도 없이 거처도 바라는 것도 의사소통도 없이, 타인에 대한 욕구도 마찬가지로 타인을 해치고자 하는 욕망도 없이숲속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다. - P89
이제 우리는 루소가 왜 걸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걷는 데에는인류 문명의 인위적 요소가 전혀 필요치 않다. 가축도, 사륜마차도, 길도 필요 없다. 산책자는 자유롭고, 아무런 구애도 받지 않는다. 순수한 자기 사랑이다. - P91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루소의 작품이다. 이 책에는 추방당하고 돌에 맞고 조롱당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눈곱만큼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의 도덕적 명료함과 생생한 지혜가 고동친다. 이 책 속의 루소는 주류 의견에 반대하는 루소도속마음을 고백하는 루소도 개혁을 주창하는 루소도 아니다. 여기서의 루소는 쉬고 있는 루소다. - P94
놀랍게도 철학자이자 황제인 마르쿠스가 대답을 해준다. 상상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삶은 더 이상 실패한서사나 망쳐버린 결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진실이 아니다. 결말 같은 건 없다. 무한한 시작의 사슬만이 있을 뿐. - P99
우리는 또 한 명의 훌륭한 산책자였던 윌리엄 워즈워스의 표현처럼 "우리에게 너무한 세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걷는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잊기 위해 걷기도 한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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