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Pascal Quignard1948년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베르뇌유쉬르아브르(외르)에서 태어나 1969년에 첫작품 『말 더듬는 존재를 출간했다. 어린 시절 심하게 앓았던 두 차례의 자폐증과 68혁명의 일기, 실존주의 · 구조주의의 물결 속에서 에마뉘엘 레비나스·폴 리쾨르와 함께한 철학 공부, 뱅센 대학과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의 강의 활동, 그리고 20여 년 가까이 계속된 갈리마르 출판사와의 인연 등이 그의 작품 곳곳의 독특하고 끔찍할 정도로 아름다운 문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귀환한 뒤 글쓰기 방식에 큰 변화를 겪고쓴 첫 작품 『은밀한 생으로 1998년 ‘문인 협회 춘계대상‘을 받았으며, 떠도는 그림자들로 2002년 공쿠르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대표작으로 로마의 테라스』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 『섹스와공포』 『옛날에 대하여 심연들 빌라 아말리아 『세상의 모든 아침』 『신비한 결속』 『부테스』 『눈물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등이 있다. - P1
오늘 저녁 어두운 대형 회장에 모이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화요일에요. 해가 뜨는 곳에서 해가 저무는 것도 물론 잊지 않고 살펴보았답니다. 꽃들이 죽고 안개가 짙어지는 것도 보았고요. 가을이나뭇가지들 아래 피처럼 질펀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걸어가는데 아주 진한 향기가 피어올라 제 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더군요. 비를 부르고 확산시키고 추적추적 내리게 하는 냄새였어요. - P7
‘나를 사랑하는 당신, 바라건대 내가 언제 죽을지 알려고 하지 말라. 살아 있는 당신 자신이 죽을 시기는 더욱 알려 하지말라. 혹한, 폭풍우, 조난, 선박을 집어삼키는 파도, 선체를박살 내는 암초, 배 위로 솟은 돛을 찢어발기는 돌풍, 온몸을마비시키고 복통을 일으키며 목을 메게 하는 극도의 불안,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겪어나갈 무엇일 뿐 아니라 우리가 그리로 돌진하는 무엇이다. 그러므로 태어난 이후로 품어온 온갖 희망에 종지부를 찍어라, 과도한 끈기와 인내를 요구하는모든 꿈과 계획을 끊어내라. - P12
꽃은 느닷없이 피어서 심연처럼 자신을 열어 보입니다. 돌연 눈앞에서 피어나는 우주의 중심이 됩니다. 무한에 꽃을 놓기, 그것은 죽음의 검은 쟁반에 살아 있는생명을 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밤중에 달을 감상하는 것입니다. - P35
이런 식으로 꽃은 다음 순간에 앞선 순간을 가리킵니다. - P67
그러므로 불안에 빠지더라도 절대 당황해중에서 이서는 안 된다. 하룻낮을 ‘산‘으로 만들게 되니까. - P69
시간 여유가 있으며 구름이 없는 저녁에, 석양에, 밤에 달의 변모를 바라보기란 확실히 인간의 가장 오래된 독서의 기본이다. - P72
낮은 계절에 따라 조바꿈을 한다. 그것이 낮의 작업으로 변화되는 아름다움이다. 밤은 자제하고, 한결같고, 완강히 버티며, 한없이 침묵한다. 그것이 바탕이다. - P76
시간의 단위는, 불행이라는 단어 안에서, 잘 흐르지 않아서아예 멈춘 듯 느껴지는 시간을 가리킨다. - P77
육신 안에서 나이는 죽음을 피하지 못하고 서서히 그것의입장에 동의한다. 느리게 불러들인 연후에 휴식을 위해끌어당긴다. 이제는 어느 것도 잘 들리거나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나이가 죽음을 맞아들이면 모든 것이 잠잠해지고, 먼 곳의 아름다움이 증가하고모든 것이 눈물겨워진다. - P91
우리에게 하루의 정수를 주소서. 아침부터 밤까지의 지속시간을 한 번 더 주옵소서. 하루의 하룻낮을 통째로 다시 한번 살기, 그것이 나의 기도다. 단 하나의 기도다on그저 하나의 낮을 살기. 낮의 행복을 다시 누리기. 지상에서 빛이 지속되는 대략 열두 시간을 다시 보내기. 밝음과 무지갯빛 광채, 오로라의 빛 속에서 퍼지는 외침, 그런 연후에 흐릿해짐, 부드러움, 식, 황혼 녘의 고요와 어둠의 도래. - P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