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픽션에 대한 강연을 부탁했는데 왜 자기만의 방에 대한 얘기를 하는 건지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 점을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 P7

그러나 다시 잘 생각해보니 여성과 픽션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성과 픽션의 의미는, 더불어 이 강연을 요청하며 염두에 둔 의미는 ‘여성 그리고 여성은 어떤 존재인가?‘일 수도 있고, ‘여성과여성이 쓴 픽션‘ 또는 ‘여성과 여성에 대한 픽션‘일수도 있으며, 이 세 가지 주제는 얽히고설켜 떼어놓기 힘든 만큼 바로 그런 관점에서 이 세 가지 모두를다뤄야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P8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사소한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는 것인데요, 여성이 픽션을 쓰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 P9

주제 자체가 대단히 논란이 많을 때(성性에 대한 문제는 늘 그렇죠) 진실을 얘기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견해가 무엇이든 간에 어떻게 해서 그런 견해를 갖게됐는지 보여줄 수만 있어도 다행이죠. 실제로는 강연자의 한계, 편견, 특이한 성격을 관찰하면서 청중이 자신만의 결론에 도달하는 기회를 줄 수 있을 뿐입니다.
- P10

사색(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좀 더 그럴듯한 이름의로 부르자면)은 낚싯줄을 물결에 드리웠죠. 그러자여기저기 강물에 비친 그림자와 수초들 사이로 흔들리며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올라왔다가라앉았다 하다가(여러분도 어느 순간 줄이 살짝 당겨지는 그 느낌을 알 거예요) 갑자기 그 줄 끝에 생각의 덩어리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어요. 
- P12

서두를 필요도 없었죠. 일부러 발랄할 필요도 없었고요. 다른 어떤 모습을 할 필요도 없이 오롯이 내 모습 그대로이면 됐어요. 우리는다 함께 천국으로 갈 것이고, 반다이크도 함께 할 거예요. 달리 말하면 삶은 얼마나 좋으며, 그것이 주는보상은 얼마나 달콤한 것인지, 원한과 슬픔은 얼마나부질없으며, 사교계와 우정은 얼마나 경외할 만한 것 인지, 담뱃불을 붙이고 창가 자리의 쿠션 속으로 몸을깊이 묻으며 생각했답니다.
- P23

곧 소멸할 세상의 아름다움은 한쪽엔 웃음, 한쪽엔 분노라는 양날이 있어서 우리의 심장을 산산이 조각냅니다.
- P34

 그리고 한쪽 성의 평안과 번영에 대해, 다른 한쪽 성의 불안과 가난에 대해 생각했고,
작가의 마음에 전통이 미치는 영향과 전통의 결여가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했으며, 논쟁과 인상, 분노와 웃음으로 구겨진 하루의 껍질을 걷어내어 덤불에 던져버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P49

가늠하기 어려운, 그러나 아주 소중한 이 자질을가장 빨리 갖추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른 사람들이자기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 P72

그런 어려움보다 더 큰 고토ㅇ으느 남은 것은 그 당시 내 안에 뿌리내린 두려움과 쓰라림이라는 독입니다. 우선 원하지 않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노예처럼 아첨하고 아양을 떨며 일해야 하는거힘들었죠. 꼭 그러지 않아도 됐겠지만 그땐 그래야할 것만 같았어요. 
- P78

나는 어떤 남자도 미워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그들이 나를 해칠 수 없으니까요. 나는 어떤 남자에게도아첨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에게 얻어내야 할 게 없으니까요.  - P79

이런 결점들을 인식하자 두려움과 비통은 연민과관용으로 변해갔어요. 그리고 다시 한두 해가 지나자연민과 관용조차 사라졌고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었죠. 그건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생각할 수 있는 자유였어요.
- P80

물리적 어려움도 상당했지만 무형의 것들이 주는어려움은 훨씬 더 심했어요. 키츠, 플로베르 같은 천재들이 견디기 힘든 건 세상의 무관심이었지만, 여자가 견뎌야 하는 건 무관심이 아니라 적대감이었습니다. 
- P112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고 활활 타오른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셰익스피어의 마음일 거라고, 다시 책장쪽으로 돌아서며 생각했어요.
- P121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여자가, 자연과 사색에 조화로운 마음을 지닌 여자가 내내 분노와 비통함을 느낄수밖에 없었다니 유감천만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달리 어쩔 수 있었을까요? 
- P130

이렇게 질책을 받은 그녀의 소일거리란, 우리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이 들판을 거닐며 공상하는 무해한 것이었을 겁니다.
- P131

 독자도 비평가도 없이 오직 혼자만의 기쁨을위해 글을 쓰던 고독한 귀부인들을 뒤로하고, 이제 시내로 나와 거리에서 보통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치며걷고 있어요.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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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 참고용 사전류> 칸에 있던 로베르」에 생각이미쳤다. 도서관 밖으로 나간 적도 없고, 어느 누구도빌려 간 적이 없는 책.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책. 상호독립적인 조각조각의 설명들을 모아 놓은 것일 뿐인잡동사니 그렇다면, 그 사전은 우리의 숨바꼭질이 끝났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닐까?
- P78

갑자기 삼라만상이 저마다의 의미를 띠었고, 나는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나는 존재하고있었다.
- P100

그렇게 그는 존재하고 있었고, 그렇게 나는 나날이이상과 상상의 힘으로 그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는내 곁에 없었지만, 그렇게 내 삶에 깊이 파고들어 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무래도 좋았다. 
- P103

누구나 아는 버릇말대로, 모든 것이 최선의 세계에서최선의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
- P106

사람들은 용케 마음의 균형을 잡으며 살아간다. 어떤 삶의 방식을 놓고 자신과 타협하고, 그것의 나쁜 면을 인정하되 좋은 면만을 보려고 애쓰면서, 아침마다 스스로를 달랜다.
- P121

나는, 우리가 뭔가를 착각한 게 틀림없으며, 두 개의고독을 합친다고 해서 하나의 행복이 만들어지는 건아니라고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음수(-) 더하기 음수는 여전히 음수예요. 그건 수학이라서 이론의 여지가 없어요. 
- P154

이 편지를, <나를 원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말로 시작하지는 않으렵니다. 당신이 나를 대단히원망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러는 당신마음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 사이에는당신이 나를 원망할 만한 것이 분명히 있어요. 
- P159

나는 당신의 밑줄을 좋아했고, 그 사람도 틀림없이 나만큼이나 좋아했을 거예요. 당신이 더 이상 전화를 하지 않아도 이해할 거예요.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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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카롤린봄그랑은 프랑스 2 TV와 미국 CBS의방송 작가로, 또 프랑스 영화 배급자로일하기도 했다. 1991년에 뉴욕의 삶을그린 소설 「맨해튼 혼돈을 발표함으로써작가 생활을 시작했으며, 1993년에 밑줄긋는 남자 1994년 초에 세 번째 소설「아이들의 입에서」를 차례로 발표해촉망받는 작가로 떠올랐다.
「밑줄 긋는 남자는 스물다섯 살의콩스탕스가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속에서 우연히 낙서 하나를 발견한 후겪는 특이한 경험을 그리고 있다. 낙서는마치 그녀를 겨냥해서 써놓은 듯하고책의 마지막 쪽에는 다른 책을 읽으라는권고까지 적혀 있는 등, 이 <밑줄 긋는남자와 여주인공의 기이한 숨바꼭질이도스토옙스키, 가리, 니미에, 키르케고르를매개로 계속 이어진다. 콩스탕스는<밑줄 긋는 남자>의 정체를 알아내려고 고심한다. 
- P1

어느 날, 내가 사랑하던 남자가 내게 너무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 주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난 싫증을 느꼈다.
- P11

나는 강종종 걸러뛰며 읽다가, 그 사람과 마주치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밑줄 긋는 남자와의 첫 대면이었다. 76페이지 위쪽 여백에 한마디 말이 연필로 적혀 있었다.
당신을 위해 더 좋은 것이 있습니다.
- P20

단호함이 좀 수그러든 말체라고나 할까?
도스토옙스키의 『노름꾼』, 좋은 책입니다. 그걸 당신에게권합니다.

나는  노름꾼』에 쏟은 내 열의가 작가의 어떤 변덕때문에 사그라지지 않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책장을 넘겼다. 선후를 분간할 수 없게 시제를 혼용한다거나, 밑도 끝도 없이 대화가 불쑥 튀어나오는 일 따위가 없기를 바라면서………….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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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생각한 후에, 저희는 새 울음소리를 만드는 것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덜 해로운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죠.(동시에저희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하고요.) - P51

오백 년 전에 말이야. 그 목소리가 말한다. 세 명의 현자가 판사 누쉬란 앞에서, 슬픔으로 가득한 삶이라는 바다에서 가장 무거운 파도가 무엇일까를 놓고 논쟁을 벌였거든. 이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 것 같다. 끼어들기 좋아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야리다. 첫번째 현자는 병과 고통이라고 했지. 야리가 계속 말한다. 또 다른현자는 나이들과 가난이라고 했어. 세번째 현자는 죽음에 가까워졌는데 할 일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지. 결국 세 현자는 마지막이 최악이라는 데 동의를 했어. 죽음에 가까워졌는데 할 일이 없는 상황이라고.
- P66

에우리피데스는 이렇게 적었다. 나 또한 너의 불쌍한 운명에 함께했으니, 나의 슬픈 인생을 눈물 속에 보내게 되겠지.
- P82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해요. 그와 얼굴을마주하고 무슨 말을 할지는 모르겠어요. 그 사람이라는 걸 어떻게알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어요. 그 동안 실험실 검사에서 밝혀진 건한 가지뿐이에요. 제 몸이 그 자체로 하나의 실험실이라는 것. 그리고 그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가 그를 가리키고 있다는 점이죠. 그 사람 때문이었고, 저는 그가 저를 보기를 자신 때문에 인생이 끝나버린 저를 보기를 원했어요. 아직 제 몸에 반점 같은 것은 없지만,
그가 저를 본다면,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도 알겠죠. 그런 다음 제가 그를 죽일 거예요.
- P82

아이가 죽을거예요. 점점 더 아프다가 끔찍하게 죽는다고요. 무방비 상태로, 이병은 다른 병이랑 다릅니다. 병 이름을 말하지도 않아요. 그냥 레트로바이러스라고 부릅니다. 마치 그게 이름이라도 되는 것처럼요.
다른 병들은 어느 날 죽음이 찾아오면, 생명이 훅하고 꺼지죠. 이병은, 니농의 이 병은 서서히 삶에서 버림받는 겁니다. 몸의 부분부분이 차례로 말을 듣지 않으면서, 삶이 무너지는 거죠. 무슨 이야기인지 아시겠어요. 성스러운 성모님? 아이의 능력이 사라지는 거예요, 하나씩 하나씩요. 밤도 별도 없고, 절대 밖으로 나갈 수 없는병실만 있는데, 다른 사람이 거기 머무를 수도 없어요. 약을 먹으면죽음의 속도를 잠시 멈출 수 있지만, 대신 몸이 아픕니다. 그렇게잠시 멈춰 놓은 동안에는 고통과 시간이 있을 뿐, 희망은 없죠. 제아이는 성모님의 딸이기도 합니다. 바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무엇이든 바라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을 무엇이든 바꿀 수 있게 해 주세요.
- P89

내가 너무 가까이 다가갔던 모양이다. 지노, 그 아가씨의 눈에서 고통을 보고 말았지. 너무 고통스러워서 더 이상의 고통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 보이더구나. 그때 아가씨가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할 수가 없더구나. 커피 한 잔 마시고 그냥 나왔다. 할 수가 없더구나.
- P99

제 생각에 인생에서는요, 알게 된 무언가에 대해 의미를 주는 건 장소가 아니라 사람인 것 같아요. 아끼는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이요. 지금 제 생각은그래요, 프랑스 아저씨.
- P126

대머리 남자는 여인의 규칙적인 숨소리를 느낄 수 있다. 주무세요, 가련한 어머니여, 주무세요.
- P141

낯선 사람이 자신의 슬픔에 다가오게 내버려 두는 일, 그래서 그와 시시덕거리기까지 하는 일은 지금까지 즈데나에게 한 번도 없었다. 그 어이없음에 그녀는 울고만 싶지만, 한편으로는 안도감에 미소를 짓는다.
- P148

이런 고통을 차례차례 겪다 보면 결과적으로 주변의 모든 지평이 닫혀 버리고, 아픈 사람은 고통 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는 일(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종종 권하는일)은 할 수가 없다. 고통은 사람을 단절시키고, 고립시키고, 마비시킨다. 또한 그것은 완전한 실패 혹은 패배감을 불러일으킨다. 
- P162

우리는 광기 (craziness)와 속임수(canning)와 보살핌(care)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갈 거예요. 셋 모두랑요. ‘c‘가 세 개네요. 권투선수 마테오는 제가 미쳤대요. 제가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다고, 제가 말해요.
- P167

니농은 죽은 셈 치라고 했죠. 죽은 거라고, 니ㅎ겪었던 일을 겪으면 누구나 죽을 만큼 힘들 거예요. 기다리라고, 그럼 어쩌면, 정말 어쩌면, 니농이 두번째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정말 그녀를 원하면 그렇게 하라고 제가 말했어요. 지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세요? 놀랐어요. 지노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았거든요. 니농의 두번째 삶은 우리 결혼식으로 시작할 거야. 지이렇게 말했어요. 
- P179

아름답고 활달한 스물세 살의 나놓은 어느날 예기치 못한 병에 걸린다. 더이상 누구와의 사랑도 허락되지 않는, 함께하려면 상대의 죽음까지 각오해야 하는 병이다. 하지만 그녀와 사랑에 빠진 지노는 흔들림 없이 결혼을 결심한다. 니농의 아버지는 오토바이를 몰고,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결혼식이 열리는 베네치아 남쪽 지방으로의 여정에 오른다. 이십세기가 저물어가는 현대 도시에서 시골 마을로의 여행길은 우연한 만남과 대화, 깊은 연민과 눈물로 채워진다. 그 모든 순간을 함께하는 어느 눈먼 이야기꾼이 있다.
그리고 결혼식 가는 길‘의 종착지에서 슬프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축제를밤새 지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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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런 건 물어보면 안 된다고 부인에게 말했죠. 하지만 저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이었고, 부인의 말에 따르면,
저는 삶이란 것이 어디까지 힘들 수 있는지 아직 몰랐으니까요.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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