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미영이가 추천한 책이다. 미영이는 1월 모임 책인 소크라테크 익스프레스 시절, 이 책을 읽다가 정작 모임 책은 앞부분만 읽었었다. 그 만큼 빠저드는 무언가가 있었나 보다라고...그 때엔 그렇게 생각했다. 애리가 두어년전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추천했고, 그 책의 파급력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그 <소년이 온다> 를 쓴 작가의 책인지라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며, 이미 다음 달 마침 미영이가 도서 선정하는 달인데, 이미 2월 도서로 선정했다는 말에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계속 다른 책을 못읽다가 2워 모임이 3월1일 하게 되고, 3월 1일 이 책을 완독하게 되었다.
<소년이 온다> 작가의 책이라 말하긴 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소년이 온다>를 떠올리고, 비교가 자연스럽게 되었다. 한강 작가의 책이 많은데 다른 책을 읽어 보진 못했다. 다른 책일 읽었으면 달랐을까? 그래도 어쩐지 <소년이 온다>를 떠올리고 자꾸 비교했었을 것 같다.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에 책이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에 관한 책이다. <소년이 온다>는 각 주인공들의 시점을 오가며 읽는 게 고통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세세하게 그날의 역사를 그 시점에서 설명하지 않는다. 친절하지 않은 탓에 그 만큼 고통스럽지 않아서 휴유증이 크지 않다. 그래서 <소년이 온다> 만큼 절절한 감정이 들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소년이 온다>가 비수처럼 내리 꽂고 나를 엉망으로 망든다면, <작별하지 않는다>는 동일한 나중 시대의 사람의 입장으로 다가간 후 이 일이 남의 일이 아니구나라는 결심이 들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 책을 읽고 실망을 했을 수도 있으나, 나는 이 책은 자기만의 몫을 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 이유가 미영이가 이 책을 추천한 이유와도 동알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생각일지도 모르는 생각을 해 본다.
책의 등장인물이 적다. 주인공 경하. 또 다른 주인공인 경하의 친구 인선,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
경하는 아마도 한강 작가의 아바타인듯 하다. 책에서도 경하는 무언가 힘든 소설을 쓰고 나서 휴유증을 앓고 있다. 그리고 제주에 살고 있는 인선이 제주가 아닌 육지의 병원에 있다는 문자를 보내고, 병원에서 손가락이 절단 된 인선을 마주하게 된다. 손가락의 고통이나 재생은 뒤로 하고, 앵무새 아마를 살려달라고 , 당장 제주에서도 한참 시골 같은 숲속의 집으로 가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마침 폭설이 내려 그 다음 비행기 일정부터 끊기고, 대중교통도 만만치 않은 제주로 경하는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하면서도.. 어떻게 어떻게 간다. 그러나 아마는 이미 죽어 있었고, 경하는 사랑하지 않는 새라고 했던 아마를 슬프게 묻으며 그 때 부터 몽환적인 일이 일어난다. 인선의 혼이 찾아오고 아마의 혼, 그리고 인선의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모임에서는 그런 몽환적인 부분이 좋았다는 사람도, 그래서 싫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도 이게 무언가 싶었다. 그리고 경하가 인선의 집을 찾아가다가 미끄러진 물가에게 이미 죽은거다, 아니다 인선이가 죽거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혼으로 찾아온 것인다, 둘다 죽었다 (작가가 혼이라는 떡밥?을 책 중에 던졌었다), 누가 죽었다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런 저런 내용이 나왔다. 누가 죽었는지, 그게 중요한 건지 아닌 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죽음이나 혼을 볼 만큼 절박한 상황에서 절절한 사연이 이어지고, 그렇게 그 사건은 우리에게 잊혀지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인선이가 죽을만큼의 절박한 상황, 경하가 냉방에서 코트를 입으며 잠든 (이미 죽었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살아 있어도 동상 등의 심각한 상황이었다. 멘탈도) 그 상황이 되어야만, 역사는 그냥 지나간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전달 받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나 보다. 그래야지만, 그 정도 되는 의지가 있어야만 작별하지 않을 수 있나 보다.
여전히 이 책은 어렵다. 상당히 쉬워서 금방 완독 할 수 있는데, 작가의 마음은 알아 채기 어렵다. 그러나 작가는 이 책이 사랑에 대한 책이라고 했다. 영주에 말에 의하면 한강 작가 소설에서 역사가 배경이 된 것은 이 둘 정도 이고, 이 책은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작별>, <작별하지 않는다> 눈 3부작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책의 눈의 의미도 참 어렵다. 눈은 순환하여 예전에 누군가 맞았던 눈을 내가 다시 맞는다라는 내용을 생각 해 본다. 그리고 눈 3부작을 읽어봐야지 라고 생각하며, 또 읽을 수있을까란 생각도 해본다.
(책 이외의 이야기. 이 책을 읽음 인선이의 손가락 절단을 보며, 그 보다도 더 심하게 다치고 힘들어하고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했던 동생이 기억나 괴로웠다. 그 시절 내 동생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가능한 매일 병원을 가고 싶어, 퇴근 후 회사에서 병원, 다시 집으로 긴거리를 오갔다. 그리고 내가 입원이 힘들었을 때 동생을 생각했었다. 그 기억이 잊었다가 다시 책을 읽으며 생각을 했다. 동생이 어떤 마음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밝아 보이고 그렇게 일상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며 감사하다. 그리고 나 역시 그렇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아팠던 때와 그렇지 않았던 때가 다르지 않도록. 그렇지만 마음은 감사함과 현명함이 있도록. 그럼에도 죽음을 생각하고 우울해 하는 마음이 때로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살아야지.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야지. 가족을 사랑하고 냐옹이들을 지키고, 회사를 가서 내 몫을 하고, 입원도 계속하고, 책을 읽고, 고마운 친구들을 만나고, 달리기를 간간히 하고, 피아노를 친다. 그렇게 힘들지만, 힘들지 않게 일상을 살아간다. 살아가겠다. )
마음에 남은 구절, 내 맘대로 pick
그때 왜 몸이 떨리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마치 울음을 터뜨리는순간과 같은 떨림이었지만, 눈물 같은 건 흐르지도, 고이지도 않았다. 그걸 공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불안이라고, 전율이라고, 돌연한 고통이라고? 아니, 그건 이가 부딪히도록 차가운 각성 같은거였다.
11-12
물에 잠긴 무덤들과 침묵하는 묘비들로 이뤄진 그곳이, 앞으로 남겨질 내 삶을 당겨 말해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바로 지금을.
12
그렇게 죽음이 나를 비껴갔다. 충돌할 줄 알았던 소행성이 미세한 각도의 오차로 지구를 비껴 날아가듯이, 반성도, 주저도 없는 맹렬한 속력으로.
15
인생과 화해하지 않았지만 다시 살아야 했다.
15
어떤 사람들은 떠날 때 자신이 가진 가장 예리한 칼을 꺼내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가까웠기에 정확히 알고 있는 상대의 가장 연한 부분을 베기 위해.
17
언제나처럼 아침과 저녁이면 요리를 해서 가족과 함께 먹었다. 막 중학교에 들어가 새로운 상황들과 부딪쳐야 하는 딸과 되도록많은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치 몸이 절반으로 갈라지듯, 그 모든 사적인 순간들에까지 그 책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있었다.
18
오랫동안 깊은 잠을 자지 못했으며 악몽과 생시가 불분명하게 뒤섞인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에게 믿기지 않는 장면이 포착될 때, 아마도 그의 첫번째 반응은 자신에 대한 의심일 것이다.
19
악몽은 물론 그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제는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한다.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일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 - 뻔뻔스럽게 -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23
세계와 나 사이에 소슬한 경계가 생긴다.
28
자신의 삶을 스스로 바꿔나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생각해내기 어려운 선택들을 척척 저지르고는 최선을 다해 그 결과를 책임지는 이들. 그래서 나중에는 어떤 행로를 밟아간다 해도 더이상 주변에서 놀라게 되지 않는 사람들.
33
이런 건 처음 봤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채 나는 그녀를 건너다봤다.
나도 처음 봤어.
38
입술을 다문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인선의 옆얼굴을 나는 보았다. 특별한 미인이 아니지만 이상하게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녀가 그랬다. 총기 있는 눈 때문이기도 하겠기만, 그보다는 성격 때문일 거라고 나는 생각해왔다. 어떤 말도 허투루 뱉지 않는, 잠시라도 무기력과 혼란에 빠져 삶을 낭비하지않을 것 같은 태도 때문일 거라고 인선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것만으로 혼돈과 희미한 것, 불분명한 것들의 영역이 줄어드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리의 모든 행위들은 목적을 가진다고, 애써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낱낱이 실패한다 해도 의미만은 남을 거라고 믿게 하는 침착한 힘이 그녀의 말씨와 몸짓에 배어 있었다. 피투성이 손에 헐렁한 환자복을 걸치고 팔뚝에 주렁주렁 주삿줄을 매달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약하거나 무너진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44
일단 나는 계속하고 있을게.
51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나간 사람들 말이야.
57
그후로 엄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는데, 이야기는 커녕 내색조차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87
사실은 미친 짓이야, 라고 나는 낮게 중얼거린다. 나는 인선이아니고, 이런 눈에 익숙하기는커녕 경험해본 적도 없고, 이 눈보라를 뚫고 오늘밤 그녀의 집으로 갈 만큼 그 새를 사랑하지 않는다.
88
결정들과 계속해서 결속한다. 구름과 땅 사이의 거리가 무한하다면 눈송이의 크기도 무한해질 테지만, 낙하 시간은 한 시간을 넘기지 못한다. 수많은 결속으로 생겨난 가지들 사이의 텅 빈 공간때문에 눈송이는 가볍다. 그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 가지들이 무한한 방향으로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어떤 색도 지니지 않고 희게 보인다.
93
무미무취한 눈길이 내 눈을 잠시 마주본다. 다정하지도 무심하지도 냉정하지도 않은, 어렴풋이 따스한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도 같은 눈길이다. 어쩐지 인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할머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작은 체구와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무엇보다 무심함과 미묘한 따스함의 조합이 닮아 있다.
96
오랜 시간 그 만남을 기다려온 사람의 대답이라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그 짧은 승낙의 말에 그의 인생 전부가 들어 있다고.
97-98
이 할머니와 비슷하게 조심스러운 태도로,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발언 대신 또렷한 서울말로 인선의 어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어떤 기쁨과 상대의 호의에도 마음을 놓지 않으며, 다음 순간 끔찍한 불운이 닥친다 해도 감당할 각오가 몸에 밴 듯한, 오래 고통에 단련된 사람들이 특유하게 갖는 침통한 침착성으로.
99
접시에 김치를 덜어 식탁에 올려놓는 인선의 얼굴이 서울에서보다 평온해져 있다고 나는 그때 생각했다. 인내와 체념, 슬픔과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105
혼자만 산 이유를 알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불꽃 같은 게 활활 가슴에 일어서 얼어죽지 않은 것 같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어요. 그때 젖은 신발이 끝까지 마르지 않아 발가락 네 개가 떨어져나갔는데,
나중에야 그걸 알았지만 아깝지도 슬프지도 않더래요.
133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 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들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 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133
아마.
갈라진 내 목소리가 정적 속에 울린다.
내가 살리러 왔어.
148
시고 끈적이는 눈물이 다시 솟아 상처에 엉긴다.
이해할 수 없다. 아마는 나의 새가 아니다.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
152
우리 프로젝트 말이야.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그녀는 주전자에 생수를 부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제목을 묻지 않았어.
나는 대답했다.
작별하지 않는다.
주전자와 머그잔 두 개를 양손에 들고 걸어오며 인선이 되뇌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192
잔에서 입술을 뗀 인선과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녀의 뱃속에도 이 차가 퍼지고 있을까. 인선이 혼으로 찾아왔다면 나는 살아 있고, 인선이 살아 있다면 내가 혼으로 찾아온 것일 덴데, 이 뜨거움이 동시에 우리 몸속에 번질 수 있나.
194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인선의 목소리가 그 열기 사이로 번졌다.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197
꿈이란 건 무서운 거야.
소리를 낮춰 나는 말한다.
아니, 수치스러운 거야.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폭로하니까.
이상한 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을 이야기를 고백하고 있다.
237
아닌데, 하고 인선이 내 말을 끊고 들어온다.
아무도 남지 않은 게 아니야, 너한테 지금.
그녀의 어조가 단호해서 마치 화가 난 것 같았는데, 물기 어린눈이 돌연히 번쩍이며 내 눈을 꿰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