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남은 구절, 내 맘대로 pick. 그리고 덧붙이는 내 느낌.
「"난 이제 돌아갈 수 없어. 너도 알고 있잖아, 그렇지? 숲 밖으로 나가도 안개는 언제든 찾아올 거야. 평생 도망치며 살 수는 없어. 나오미 너는 그럴 수 있지만, 난 그럴 수 없어. 내가 마지막으로 진실을 확인하게 해줘"
-P18」
책의 처음 부분인데 저 때만 해도 가는 길이 프림빌리지인 줄몰랐다. 절박하면 결국 찾나 보다. 마지막으로 라는 표현, 절박함.
「"그럴 땐 역시 '생물 다양성'이지. 생물 다양성이 우릴 구원할거야. 더스트 종식 이후 가장 먼저 재건된 지역도 생물 다양성이 잘 보존된 지역이었다. 뭐 이런 얘기라도 써놔야지. 더스트 폴이 또 터질 수도 있다고 겁도 좀 주고"
-P30」
생물 다양성이 우릴 구원한다는 말. 나중에 결말 즈음 짧게 나온 더스트 원인의 이유와도 연결되고, 꼭 그걸 떠나서 생존과도 연결된다. 하나의 구성만 가지고 있으면 멸망한다는 건, 지구 같은 큰 의미에도 동감하며, 사회적 조직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해본다. 스펙트럼이 넓을 수록, 다른 분야를 존중할 수록 더 연대해 살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물도, 사회도 나와는 다른 것들을 배척하기 마련인데, 나 역시도 그런 모습으로 되지 않았나 하며 경계를 해 본다.
「수연의 반응은 조심스러웠다. 노인들을 주로 상대하는 수연은 다른 지역에 비해 온유에 사는 공헌자 노인들이 좀 더 품위 있고, 친절하고, 대하기가 까다롭지 않은 고객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것이 그들이 정말로 존경받을 만한 사람들인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전부 나쁜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수연은 덧붙였다.
-P63」
아영의 엄마 수연은 현명한 사람 같다. 나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착각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책에서는 멸망 이후 재건의 시대의 공헌자들을 말하는 부분인데, 꼭 그게 그 상상의 시대에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어느 시대나 그렇지 않을까. 그 이유가 존경받을 만한 사람인지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다 나쁘다 말하기도 어렵다는 말. 그 말도 편협되지 않아 좋다. 나는 워낙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인지라, 더.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P63」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무조건 선량한 사람보다는, 다른 이들의 희생을 딛고 살아 남았을 확률이 높았겠지. 참 슬픈 말이다. 그리고 아니라고 할 수 없는 말이고. 그렇다고 나쁘다 할 수 없고. 이 책은 <더 로드>나 웹툰 <심연의 하늘> 같이 재난의 시대에 생존을 무섭게 표현하지는 않는다. 이미 재건 된 평화의 사회라서 마음이 무겁지는 않다. 그러나 저런 문구를 보며 그래도 생각 해보라고 얘기해 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것 같다가도 혼란스러워지곤 했다. 당장 목숨이 걸려 있다면, 죽음 앞에서 누구나 이기적인 선택을 할 텐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수연의 말대로 아영 자신이 '이타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후손'이어서 그런 것일까. 생각이 꼬리를 묻다보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결국은 더스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심오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P64」
이 부분도 그렇다. 심오하게 생각해 보라고. 아영과 함께 생각해보라고 책이 말 해 준다.
「"이건 아이들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구나. 어쨌든 그들이 있어서 인류의 명맥이 이어지긴 했으니까. 세계가 망했으면 좋겠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속 편한 소리지. 정말로 세계가 망한 와중에 살아남은 사람으로서는 할 자격이 없는 말이야."
-P75」
「"할머니는 타운의 어른들이 위선자라고 말했지만, 어른들만 그런 건 아니에요. 아이들도 다 조금씩 비겁하거든요. 여기 아이들은 제가 내년이면 여길 떠난다는 걸 알아서 저를 더 쉽게 괴롭혀요. 도와주는 애들도 없고요. 정작 그러면서 타운 어른들에 대한 비난은 잘 거들죠. 그래서 전 사람은 누구나, 모두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위치에 따라 좋은 사람인 척할 뿐이라고요."
-P76」
이런 말을 허구의 인물이지만 아이가 할 수 있구나. 어른도 아이도다 조금씩 비겁하지. 엉망진창이지. 그래도 모든 사람이 좋은 사람인 척 하는 건 아니다. 엉망진창인건 맞는데 그래도 평범한 그 사람들이 조금씩 선의를 가지고 있고 재건의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고, 그런 마음들이 있이서 소설이지만 다행이다. 난 아무래도 너무 어두운 디스토피아는 못읽을것 같다.
「"나도 어느 순간 깨달았지, 싫은 놈들이 망해버려야지, 세계가 다 망할 필요는 없다고, 그때부터 나는 오래 살아서, 절대 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그 대신 싫은 놈들이 망하는 꼴을 꼭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P77」
그렇지. 모두가 망할 필요는 없지. 아, 솔직해서 좋다. 싫은 놈들 망해 버려라, 그 꼴을 꼭 봐야겠다는 말.
「정원의 식물들은 더욱 무성해져서 울타리를 거의 칭칭 감고 도로로 빠져나오려고 하고 있었다. 그 식물들에서 푸른빛을 다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아영에게 보여주고, 영영 감추어버린 것 같았다.
-P81」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 푸른 빛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게 모스바나의 진짜 모습이 맞았다. 모스바나를 왜 번성시켰는지도.
「"아영, 원래 위대한 이야기는 다 실패를 무릅쓰고 시작되는 거예요. 고작 그 정도로 망설여서야 되겠어요?"
-P98」
멋있는데. 위험한 말이지만.
「"그래도 그 눈에 띄는 호버카는 어떻게든 좀 숨기는 게 좋을거다. 사냥꾼들에게 들켜 죽는 게 아니면 우리가 훔쳐갈 거니까."
-P121」
아, 츤데레. 나오미 , 아마라 자매가 프림빌리지 입성 전 만난 사람들 중 그래도 호의를 베푼 사람들이었는데...
「나는 곱슬머리를 노려보다가 침묵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물정 모르는 어린애로 보인 게 분명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악의를 가진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음식도 약품도 나눠주지 않았지만, 어쨌든 최선의 호의를 베풀고 있었다. 떠돌이가 떠돌이에게 베풀 수 있는 최대한의 호의를.
-P127」
따뜻하지만 슬픈 이야기다. 떠돌이가 떠돌이에게 베플 수 있는 최대한 호의라는 말.
「하루는 대니와 야닌, 밀리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돔밖을 떠돌다가 폐쇄된 연구소 마을을 찾아냈다. 나는 하루와 대니가 아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견딘 사이에 가까웠던 것이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둘 사이의 어떤 복잡한 감정들을 생각하다가, 내가 아마라에게 가진 양가적인 마음을 떠올렸다. 나는 아마라에게 미안했고, 고마웠고, 가끔은 아마라가 미웠다. 아마도 대니와 하루 사이에도 그런 마음들이 쌓여 있을 것이다.
-P175」
긴 시간을 같이 보낸 것도 의미가 있지만, 가장 행복하던, 고통스럽던 함축적인 시간을 함께 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이 책을 보며 사람에 대해 양가적인 마음이라는 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마음이라 안심이 된다.
「"눈에 보이는 건 떠돌이들이 이미 건져가고 폐품만 남은 곳을 목적지로 삼지. 프림 빌리지에 대해 누군가 눈치채면 곤란하니까. 그런 폐허를 걷다보면 아주 이상한 생각이 들어. 타인의 무덤을 파헤쳐서 이곳의 삶을 쌓아올리고 있다는 생각, 더스트 폴 이후로 세상은 예전보다도 더 모순으로 가득해진 것 같아."
-P186」
타인의 무덤을 파혜쳐서 쌓아 올린 마을이라는 말. 슬픈 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리고 그나마 다행인 상황.
「그 표정을 보면서, 나는 막연히 생각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타인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고, 어쩌면 지수 씨가, 나와 레이첼에게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P193」
「 하루는 마치 어른처럼 괜찮아. 이런 일들은 예전에도있었어" 하고 말했지만, 나는 이런 균열들이 결국 이 마을에 낫지 않는 흉터를 남길까봐, 그리고 이곳을 마침내 파괴해버릴까봐 두려웠다.
-P203」
균열들이 낫지 않는 흉터를 남기고, 파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을이 더 강력한 더스트에도 버틸 수 있는지, 이 마법 같은 식물들이 어떤 원리로 더스트를 견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프림 빌리지는 거대한 기적이었지만, 기적이라는 말은 근원을 알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곳은 불안정한 기반 위에 세워진 도피처였다.
-P204」
그렇구나. 이런 말을 할 수있구나. 기적이란 근원을 알 수 없는 거고. 그건 불안정한 기반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구나.
「뭐가 옳은 건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세계를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프림 빌리지 바깥의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인류 전체의 재건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그들은 우리를 착취하고 내팽개쳤다. 그 사실만은 절대로 잊을수 없었다. 그런데 왜 버려진 우리가 세계를 재건해야 할까.
-P215」
이런 마음이지만 결국 나오미는 지수씨와의 약속을 지키고,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하고, 재건을 했다.
「"제조에 필요한 재료와 무게, 과정을 정확히 기록하는 것이 과학의 원칙이지. 하지만 이건 달라. 감추는 것이 널 구할 테니까. 지금은 그런 시대야, 원칙이 네 약점이 되고, 편법이 네 무기가되지, 이 비참한 시대가 끝날 때까지는, 네 머릿속에 제조법이 완벽하게 들어가 있어야 해, 남이 볼 수 있는 기록은 절대 남기지 마. 아무리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숨기는 게 좋아."
-P221」
이런 시대와 비교하기엔 작은 거지만, 사회 생활도 그런 생각을 한적이 있다.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때로는 원칙은 약점, 편법은 무기. 그러면 안되지만 그런 시대도, 그런 때도 있나 보다.
「"돔을 없애는 거야. 그냥 모두가 밖에서 살아가게 하는 거지. 불완전한 채로, 그럼 그게 진짜 대안인가? 물론 그렇지는 않겠지,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거야.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수는 없어. 뭔가를 해야 해. 현상 유지란 없어. 예정된 종말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해서 벌이는 것 자체가 우리를 그나마 나은 곳으로 이동시키는 거야."
-P227」
지수싸의 이 말. 불완전 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다. 더스트 시대 뿐 아니라 지금도.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고,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거.
「돌이켜보면, 이별이 찾아오기 전에 아주 짧은 순간, 평화가 지속된 날들이 있었다. 일주일쯤이었을까. 아니면 열흘쯤 그 이후로 프림 빌리지에 들이닥친 수많은 일들에 비하면 너무나 일시적인 평화였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날들이었다.
-P233」
「푸르게 빛나는 먼지들이 공기중에 천천히 흩날렸다. 나는 숲을 푸른빛으로 물들이는 그 식물들을 보며 고통은 늘 아름다움과 같이 온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니면 아름다움이 고통과 들함께 오는 것이거나. 이 마을에 삶과 죽음을 동시에 가져다준 이 식물이 나에게 알려준 진실은 그랬다. 어느 쪽이든, 나는 더이상 눈앞의 아름다운 풍경에 마냥 감탄할 수는 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P234」
이렇게 나오미는 성장 아닌 성장을 했다. 고통과 아름다움. 삶과 죽음. 동시에 있구나.
「프림 빌리지를 처음 찾아왔을 때, 나는 영원함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았다. 나와 아마라는 당장 오늘 버틸 곳, 내일 머무를 곳이 필요했다. 그렇게 매일을 쌓아가면 이곳도 지속될 것이라고, 우리의 도피처는 파괴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P237」
매일을 쌓아간다는 말.
「"지금부터는 실험을 해야 해. 내가 가르쳐준 것, 그리고 우리가 마을에서 해온 것들을 기억해. 이번에는 우리가 가는 곳 전부가 이 숲이고 온실인 거야. 돔 안이 아니라 바깥을 바꾸는 거야. 최대한 멀리 가. 가서 또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어. 알겠지?"
-P242」
공동체라는 거에 부정적이던 지수씨의 내린 결론, 그리고 부탁.
「나는 천천히 시트에 몸을 붙였다.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내가 마음을 모두 주었던 이 프림 빌리지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 끝이 결코 오지 않기만을 바랐었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도 여기에 내 마음이 아주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 동안 붙잡혀 있으리라는 것을나는 그때 이미 알고 있었다.
-P244」
「실패할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부분은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놀라운 진실을 그 길에서 찾게 될지도모른다고, 아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P257」
어쩌면 대부분은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보아야 한다. 그래서 찾게 된다.
「"그들은 자가 중식 나노봇의 입자 크기를 줄이는 실험을 하고있었어요. 그러면 분자 단위에서 모든 것을 통제하고, 또 재조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분명히 경고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듣지 않았고."
-P292」
아마 정환이의 서평이 없었다면, 이 문구는 그냥 지나쳤을 거다. 그런데 그 서평때문에 잠시라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사람들은 어떤 신념 없이 그저 내일을 믿었다. 그들은 이 마을의 끝을 상상하지 않았다. 한 달 뒤의 창고 보수 일정을, 다음해 작물 재배 계획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했다. 레이첼의 온실이 마을에 희망의 감각을, 죽음과의 거리감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의 실체가 불안정한 거래에 불과할지라도 그랬다.
-P299」
「지수는 자신이 조금씩사람들이 가진 어떤 활력에 물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년 뒤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만을 생각하는, 그러나 그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데에서 오는매일의 활기에.
-P302」
수 년뒤를 생각하는 미래가 아닌 당장 내일의 삶 만을 생각하되, 그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거리는 미음에서 오는 매일의 활기. 일단 나도 그렇게 살아 보자.
「- 네가 말레이시아까지 온 이유는 뭐였어?
-쓸데없는 걸 물으려고 이 강아지를 개조한 건 아닌 줄 알았는데.
-이런 거 물으려고 개조한 것 맞아.
-P315」
이런 거 물으려고 개조한 거라니.
「"내가 너에게 개량종을 넘겨주면, 프림 빌리지는 해체되겠지.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이 온실은 유지되지 않겠지. 그러면 우리는 여기 더이상 남지 못하게 되고, 언젠가 너도 나를 떠나겠지. 이곳 밖에서 너는 유일한 정비사가 아니니까. 그래서…… 네게 개량종을 주지 않은 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선택지였어."
-P339」
나에게 주어지 유일한 선택지였어. 레이첼의 마음.
「"그제야 언니가 사실은 아무것도 잊지 않았다는 걸 알았지요. 저는 언니가 떠나버릴까봐 언제나 두려웠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요. 아마라는 단지 아마라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켰을 뿐이라는 걸 이제야 이해했죠. 아마라에게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 고통이 더 컸는지도 몰라요. 그리움과 고통은 언제나 함께 오고, 모두가 그것을 견뎌낼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당신을 만나서, 아마라와 그 이야기를 다시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P346」
「"우리만이 아니었군요. 모두가 잊지 않았어요"
"맞아요. 당신들이 약속을 지켰고, 세계를 구한 거예요."
-P363」
그랬었다.
「식물 인지 편향은 동물로서의 인간이 가진 모래된 습성입니다. 우리는 동물을 과대평가하고 식물을 과소평가합니다. 동물들의 개별성에 비해 식물들의 집단적 고유성을폄하합니다. 식물들의 삶에 가득한 경쟁과 분투를 보지 않습니다. 문질러 지운 듯 흐릿한 식물 풍경을 바라볼 뿐입니다. 우리는 피라미드형 생물관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식물과 미생물. 곤충들은 피라미드를 떠받치는 바닥일 뿐이고, 비인간 동물들이 그 위에 있고,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반대로 알고 있는 셈이지요.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은 식물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지만, 식물들은 동물이 없어도 얼마든지 종의 번영을 추구할 수 있으니까요. 인간은 언제나 지구라는 생대에 잠시 초대된 손님에 불과했습니다. 그마저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위태로운 시위였지요..
-P365」
「문득 아영은 레이첼의 눈빛이 어릴 적 정원에서 보았던 지수의 눈빛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후회와 그리움이 섞인, 하지만 고통이라고만은 단언할 수 없는 어떤 복잡한 감정이 그 시선 속에 있었다. 생의 어떤 한순간이 평생을 견디게 하고, 살아가게하고, 동시에 아프게 만드는 것인지도 몰랐다.
-P378-379」
이런 표현에 마음을 같이 한다. 후회와 그리움이 섞인다는 것. 고통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 복잡한 심정. 생의 어떤 순간이 평생을 견디게 할 있다는 것. 동시에 아프게 만든다는 것.
「해 지는 저녁, 하나둘 불을 밝히는 노란 창문과 우산처럼 드리운 식물들, 허공을 채우는 푸른빛의 먼지. 지구의 끝도 우주의끝도 아닌, 단지 어느 숲속의 유리 온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유리벽 사이를 오갔을 어떤 온기 어린 이야기들을.
-P385」
작가의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이 써지게 된 마음이 아닌 가 한다. 지구를 재건한 건 각자의 조그만 장소에서 있었던 어떤 온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