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에밀 졸라가 유명함에도 그가 지은 책을 한 권도 읽은 적은 없었다. 그러던 중 오래 전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를 상당히 인상적으로 보았고, <박쥐>의 모티프가 에밀졸라의 원작이라는 것을 알고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가끔 <박쥐>가 생각 난 적은 있지만 원작소설은 못읽다가,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보고 읽게 되었다.
<사건의 집합, 줄거리>
줄거리는 <박쥐>와는 조금 다르다. 일단 뱀파이어 같은 것은 나오지 않는다. 범죄를저지르는 사람이 나오고 살인은 그대로 이어진다. 영화처럼 많은 사람이 죽진 않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카미유의 죽음이 처음부터 끝까지 지배한다. 대신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무게가 너무 무겁고 물을 가득 먹은 커다란 솜 같아서, 많은 사람이 죽는 것 보다 더 숨막힌다. 모티프 였을 뿐 다른 줄거리다. 그러나 죄책감에 대한 그 주제는 동일하다. 여주인공 테레즈는 어린 시절 고모 라캥 부인에게 맡겨지며 사촌 카미유와 같이 성장한다. 테레즈는 매우 열정적인 성향이 있었지만, 라캥 부인의 환경에 의해 그러한 성향을 눌러서 살며, 겉으로는 조용한 성향으로 보여 라캥부인이나 다른 사람은 테레즈의 열정을 알 수 없다. 성장 후 라캥 부인은 조카 테레즈와 아들 카미유를 결혼 시킨다. 테레즈는 병약한 카미유에게 답답함과 억눌림을 느끼다가, 카미유의 친구 로랑을 만난다. 로랑은 카미유와 정반대의 성격으로 활달하며 열정적이고, 카미유와 라캥 부인은 그런 로랑을 아끼게 된다. 그리고 로랑과 테레즈는 몰래 사랑에 빠지고, 결국 카미유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 된다. 그러나 막상 카미유가 죽고 나서, 그 둘은 카미유의 환영에 시달리고, 결국 사랑 대신 서로에 대해 증오만 남게 된다. 그리고 서로를 죽이게 되는 파멸을 맞이한다.
<마음대로 느낌과 생각>
테레즈와 로랑이 왜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파멸되는 지 그 상황이 줄거리로는 말하기 어렵지만, 하나하나의 세부적인 느낌의 변화를 정말 잘 표현되었고 스며들어갔다. 테레즈는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걸 제외하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다 (물론 완전 내 생각). 겉으겉으로는 얌전한 여인으로 라캥 부인이 초대하는 사람들에게도 나서지 않고 정숙해 보이지만, 테레즈의 원래 열정적인 모습을 기반한 진짜 테레즈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닌 듯이 느꼈다. 믈론 그렇다고 카미유를 살해한 것이 정당화 되지 않는다. 당연하다. 그러나 만약 테레즈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면 다른 삶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테레즈는 열정적이지만 계획적이고 참을 성이 많다. 살인 후 향후 계획을 세우고 인내심 있게 시간을 기다린다. 어떻게 보면 소름끼치는 모습이겠지만, 테레즈가 다른 환경이었으면 하는 가정을 자꾸만 생각하게 만들었다.
반면 나에게 로랑은 너무나 별로인 사람이고, 별로인 남자였다. 테레즈와 로랑의 죄는 동일한 무게지만 왜 이렇게 나는 테레즈와 로랑을 구분하여 판단하는 지 모르겠다. 솔직히 카미유와의 결혼생활과 지금까지의 삶에 질린 테레즈가 아니었다면, 결코 로랑을 사랑할 일은 없었을 것 같다. 사실 현재의 삶을 돌파하고 싶었던 어리석은 판단으로 내린 대안이 아니었을까. 로랑은 너무 계획도 없고, 욕심 많고, 게으로고, 본인의 대한 잘못된 판단,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 마음 등 카미유에 대한 범죄를 제외하고도, 너무나 내가 맘에 들어하지 않는 성향이다. 그런데 그런 로랑의 대외적인 이미지는 반대로 너무나 좋다. 회사에서 조는 등 불성실하지만, 최소한 여기 등장인물인 라캥 부인과 그녀의 절친들에게는 그렇다. 인싸 같은 느낌. 그렇다면 세상에도 이렇게 우리가 대외적으로 아는 사람과 실제가 다른 사람도 많겠지. 나도 라캥 부인의 절친들의 입장이었다면 오히려 테레즈와 로랑을 아름다운 한 쌍으로 보고 결혼을 추진했을 것 같기도 하다.
라캥 부인은 생각 보다 평범하고, 아들을 위하고, 며느리를 믿고, 로랑을 신뢰하는 조금은 날카로운 사고가 떨어지는 그냥 평범한 시어머니 같았다. 꼭 한국의 평범한 시어머니의 성향이 약간 묻어 나오는. 그런데 라캥 부인은 테레즈를 키우면서 본인도 모르게 이 집안의 가풍을 테레즈에게 주입시키지 않았을까. 본인도 모르는 그런 교육관이 있지 않았을까. 카미유에게는 맞았지만, 테레즈에게는 맞지않았다. 사실 카미유에게도 맞은건지도 확언할 수 없다. 그 시절은 다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라캥 부인 역시 희생양이 맞다. 라캥 부인이 진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소름 끼쳤을까. 이때엔 나도 라캥 부인 빙의된것처럼 테레즈에게 소름끼쳤다. 테레즈 역시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어서, 진실을 알게 된 라캥 부인이 자신은 아닌 로랑에게 원망하고 있을 거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잘못된 생각을 했기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았을까.
이렇게 사람들의 심리 묘사를 잘하는 훌륭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나의 평가는 결론적으로 좋지 않다. 괜히 읽었다 싶었다. 이 책 때문에 몇 권의 책을 같이 정리하여 다시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게 되었다. 일단 이 책을 읽은 시기가 병원에 입원하던 시기였는데 그 시기 동안 마스크도 못벗고 숨도 잘 안쉬어 지는 것 같고, 머리는 아프고, 엄청난 무기력 증에 빠진 상태였었다. 그 때 밝은 책도 아니고 이런 지하실 습기 가득함에 짓눌리는 것 같은 느낌의 책을 읽다니. 내가 잘못 선택한 책이었다. 그 이후로 많은 깨달음을 얻어 이후 입원 시에는 밝던가, 아니면 경제 경영 같은 책을 가져가고 있다. 부정적인 사람 옆에 있으면 부정적이 되어서,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같이 자존감이 낮거나 부정적이거나 본인에 대해 애정없는 비판만 주는 사람을 멀리하라고 한다. 나는 비슷하게 내가 힘들 때 같이 한 없이 힘든 사람의 이야기나 언해피 엔딩 같은 책 보다는, 객관적으로 피드백을 주거나, 응원을 하거나, 밝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책에 대한 평가가 낮은 것은 단지 이 이유다. 동일하게 언해피 엔딩 (언해피 엔딩이라고 단정 지을수 없지만)이면서 죄책감을 주제로 하는 영화 <박쥐> 정도는 괜찮다. 정말 이 책의 심리묘사는 늪에 사람을 조금씩 더 빠뜨린다. 그런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빠져나온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 책을 읽고 다른 에밀 졸라의 책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테레즈 라캥 같은 책일 것인가, 또 다른 책일 것인가. 궁금하다.
